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전투력 (2)
같은 시각, 장갑차가 지나친 거리 위.
SUV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달려갔다.
“전방으로 가고 있다. 둘째야, 저들한테 대전차 바주카포 한 방 선물해.”
하이에나 임서준의 무전이었다.
녹회색 베레모를 쓴 하이에나 수장은 현재 뒤쪽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빌딩 꼭대기에 있던 저격수에게서 장갑차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앞차에 탑승한 바주카포 포수에게 냉정히 명령을 내렸다.
“예, 형님.”
둘째라고 불린 강도는 이미 길가에 널브러진 시신 두 구와 새카맣게 탄 살점 조각을 확인한 상태였다.
SUV는 극도의 분노와 슬픔에 휩싸인 그를 싣고, 살수차 앞을 빠르게 지나쳐 장갑차를 쫓아 방향을 틀었다.
이때, 장갑차는 이미 교차로에 이르러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뒷모습을 본 둘째가 크게 소리쳤다.
“쫓아!”
SUV의 속도가 더 빠른 데다가 장갑차가 아무런 장애물도 없게 길을 다 닦아둔 덕분에 그들은 금세 교차로에 다다라 방향을 틀 수 있었다.
추격을 이어나가던 SUV 두 대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세 저격수가 자리한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이내 한 번 더 방향을 튼 그 순간, 둘째의 눈빛이 확 밝아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느릿하게 나아가고 있는 국방색 장갑차를 발견한 것이다.
곧장 바주카포를 어깨에 둘러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움직였다. 선루프로 목표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줄 차례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돌연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느새 활짝 열린 장갑차의 문 안에선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아름다운 한 여자가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는 손에 쥔 유탄발사기로 남자 쪽을 겨냥한 뒤,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장목화는 유탄을 발사한 후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콰광!
유탄은 SUV에 제대로 명중했다. SUV는 금세 새빨간 불덩어리에 휩싸인 채 뒤집혀 버렸다. 본래 이 차엔 꽤 상당한 양의 탄약이 실려 있었다. 결국 속속들이 탄약들도 폭발하며 불덩어리는 한껏 그 몸집을 불렸다.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둘째와 그 곁에 앉아 있던 운전자는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심지어 SUV 역시도 문짝과 창문을 잃고서, 불길에 타는 금속 골조만을 남겼다.
임서준은 모퉁이를 돌자마자 이 광경을 마주하고 폭발음을 들었다. 그는 곧 무의식적으로 바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의 시야에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들어오자, 임서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그가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도, 돌아가!”
SUV의 속도와 그 기동성으로 볼 때, 이 거리를 떠나기만 한다면 장갑차에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임서준을 태운 SUV의 운전자 역시 깜짝 놀라서 망설임도 없이 유턴했다. 그가 급히 엑셀을 밟자, SUV도 배기구로 연기를 내뱉으며 이 거리를 벗어날 준비를 했다.
이윽고 임서준이 탑승한 차량이 모퉁이 앞에서 막 방향을 튼 그 순간이었다. 하이에나 임서준의 관자놀이에서 한 송이 붉은 물결이 피어났다.
챙그랑!
동시에 보조석 유리도 깨져버렸다.
운전자는 이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 엑셀을 밟았다. 결국 모퉁이를 벗어난 SUV는 마침내 이 위험 구역을 떠날 수 있었다.
* * *
장갑차 꼭대기, 중형기관총 뒤에 숨은 백새벽이 조준경에서 눈을 뗐다. 그녀는 곧장 오렌지 소총을 거둬 넣은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됐어?”
용여홍이 물었다.
“하이에나가 죽었어.”
백새벽은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팀장님, 그럼 쫓아갈까요?”
용여홍은 다시금 용기를 찾았다. 그는 또 언제 긴장했냐는 듯 단번에 하이에나 강도단을 완전히 쓸어버리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목화는 웃으며 그를 힐난했다.
“여기가 무슨 황야인 줄 알아? 여긴 위험하고 기이한 폐허 도시야. 최대한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게 좋지. 게다가 우리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도 없어.”
굳게 닫힌 차 문을 바라보던 그녀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앞으로 계속 가다가 두 블록 지나서 왼쪽으로 틀어. 우리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예, 팀장님!”
성건우가 힘차게 답했다.
짙은 색 방탄유리 너머, 앞쪽으로 줄지어 자리한 가로등은 여전히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무심자들은 요란한 폭발음에도 아랑곳하지도 않고 거리 청소에 전념했다.
주위 빌딩에 환하게 밝혀진 수많은 유리창 안에서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영들을 볼 수 있었다.
* * *
하이에나 임서준을 태운 SUV는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가 자리한 구역으로 돌아왔다. 운전자도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옆을 돌아보았다.
‘……이럴수가!’
시선을 돌린 순간, 운전자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임서준은 보조석 위에 쓰러져 있었다. 녹회색 베레모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피 냄새와 악취가 한데 뒤섞여 풍겼다.
“형님⋯⋯.”
운전자는 무의식적으로 차의 속도를 낮췄다. 소리 내어 불러도 임서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운전자도 이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하이에나 임서준이 죽었다.
늘 의기양양했고, 농담처럼 아류인의 거점 하나를 박살 냈던 수장이 죽었다. 그것도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던 네 명에게 비참히 저격당해 죽고 말았다.
수장뿐만 아니라 강도단은 적어도 여섯 명을 잃었다. 핵심 구성원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에 극도의 공황 상태에 빠진 운전자는 정신없이 핸들을 돌렸다. 자꾸 목이 타들어 가는지 연신 바짝바짝 마르는 목을 축이려 억지로 침을 삼켰다.
잠시 후, 그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살수차를 지나쳤다. 이내 그는 바르르 몸서리를 치다가 순간 눈빛을 반짝였다.
‘어쨌든 이번에 얻은 수확은 적지 않아. 그 네 사람의 추격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날이 밝는 대로 이 도시를 떠날 수 있어.
형님도 잃고, 장갑차도 잃고, 중형기관총과 동료도 여럿 잃었지만, 그래도 차량 세 대랑 바주카포 하나는 남았잖아. 사람도 예닐곱은 남았고.
화력은 충분해. 이번에 여기서 찾아낸 것들을 팔고 솜씨 좋은 황야유랑자 대여섯으로 전력을 보충하면, 강력한 조직 하나 정도는 꾸릴 수 있을 거야. 전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애쉬랜드에서 약한 놈들을 짓밟고 살기에는 충분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운전자의 표정은 점차 누그러졌다. 심지어는 입가에 살짝 웃음기도 번져나갔다.
적당한 기회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잡고 권위를 세운다면 형님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임서준도 했는데, 자신이라고 수장이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형님의 죽음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운전자의 마음이 다시 빠르게 불타기 시작했다. 그는 힘차게 핸들을 돌려 다른 구성원들이 자리한 곳으로 향했다.
* * *
한편, 국방색 장갑차는 교차로를 향해 묵직하게 달리고 있었다.
용여홍은 중형기관총이 설치된 사좌와 문 위쪽 방탄유리 창문을 통해 거리 양옆의 빌딩들을 보고 있었다. 가끔 총 몇 개의 창이 밝혀진 건지 세어보기도 했지만, 차마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전의 강도단 일원처럼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날아든 총알에 두개골이 터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저기! 저기 무심자가 있어요⋯⋯.”
그러던 그때, 용여홍이 돌연 허공을 가리켰다. 그 말에 장목화가 고개를 돌리자, 전선과 시멘트 기둥으로 이뤄진 전봇대 위에 인영 하나가 보였다. 그자는 원숭이처럼 앉아 공구를 가지고 뭔가를 진지하게 수리하고 있었다.
남자로 보이는 그 무심자는 짙은 색 옷을 입고, 허리에는 어디에서 주웠는지 모를 검은색 권총을 차고 있었다.
“이전에 우리를 기습했던 이들 중에 저 무심자도 포함돼 있을까?”
장목화가 다시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그녀가 말하는 건, 차으뜸과 함께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로 향하던 와중에 맞닥뜨렸던 그 기습이었다.
“글쎄요. 그때는 무심자들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백새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아요, 그런 긴급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무심자의 특징을 기억할 수 있겠어요?”
용여홍도 동조했다.
“됐다, 됐어.”
장목화는 다시 또 고개를 들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숙련공처럼 보이는데.”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전방 길모퉁이에서 커다란 차 한 대가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붉은 거대한 차는 바퀴가 총 여섯 개나 달려 있어 매우 튼실해 보였다. 차는 폐차로 반 이상 점거당한 도로를 따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죠?”
용여홍이 약간 긴장한 듯 물었다. 그로서는 여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
“뭐 어떻게 해? 설마 그냥 갖다 들이받고 싶어서 그래? 장갑차는 이런 상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들 하지만, 만에 하나 충돌하는 바람에 어떤 부품이 망가진다면 더는 차를 몰 수가 없어. 그러면 꼼짝없이 걸어가야 하는데,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지.”
특별히 장목화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 성건우는 알아서 장갑차를 몰았다. 전방으로 비스듬히 난 골목길로 차를 돌리며 부드럽게 길을 비켜주었다.
이를 보고,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렇게나 이성적인 사람이었단 말이야? 난 네가 앞으로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과연 어떤 차가 더 단단한지 확인하려 할 줄 알았는데.”
성건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비교도 안 됩니다.”
“⋯⋯.”
말문이 막힌 장목화는 다시 화제를 돌리려는데, 거대한 붉은 차는 장갑차 옆을 홱 스치며 먼 곳으로 달려갔다.
붉은색 차 운전석엔 두꺼운 녹색 옷을 입고 노란색 헬멧을 쓴 남자 무심자가 앉아 있었다. 뻣뻣한 표정의 그는 매우 진지하게 핸들을 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모종의 편견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장목화는 그가 무심자란 확신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방을 환하게 밝힌 가로등의 불빛 속, 구조팀 네 명은 침묵에 빠졌다.
그 사이 장갑차는 다시 원래 있었던 길로 돌아갔다.
* * *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주변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장목화는 낯익은 한 사람을 발견했다. 황야에서 우연히 만난 그때 그 사람이었다.
짙은 파란색 가운을 걸친 푸른 눈의 여자. 갈루란이었다.
“저 도사는⋯⋯.”
장목화는 낮게 중얼거리며 성건우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뒤이어 장목화가 차 문을 열고 갈루란을 향해 외쳤다.
“도장!”
산책하듯 인도를 걷던 갈루란이 고개를 돌렸다가 환하게 웃었다.
“운명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했군요.”
“뭐라도 발견하셨어요?”
장목화는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갈루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떠나세요.”
“왜요?”
장목화가 물었다.
그러자 갈루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선 달지기가 남긴 기운이 느껴집니다.”
‘달지기가 남긴 기운⋯⋯.’
장목화를 비롯해 구조팀 전체가 동시에 그 말을 되뇌며 이 도시에서 있었던 갖가지 이상한 일들을 떠올렸다.
몇 초 후, 성건우가 뒤로 몸을 기울이며, 옆으로 난 문밖을 향해 물었다.
“어느 달지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갈루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생이요. 행복은 무량한 천존으로부터 오나니…….”
그녀의 낮은 중얼거림을 듣고, 장목화가 황급히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갈루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러분, 날이 밝으면 곧장 이곳을 떠나세요.”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장목화는 멀어지는 도사를 몇 초간 바라보다 성건우를 운전석으로 밀었다.
“건우 넌 빨리 운전을 해. 지프로 돌아갔다가 날 밝는 대로 여길 떠나자.”
그녀는 짧은 지시를 내린 후에, 바로 차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