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62
862화. 재난 속에서 (1)
두 각성자는 엘리베이터로 밀려드는 인파를 거슬러 움직이느라 사력을 다한 끝에 겨우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이는 남자 각성자가 목표를 강제로 통제한 이유이기도 했다. 안 그럼 그들이 엘리베이터 홀로 나왔을 때, 그는 진작 도망쳐버렸을 것이었다.
용여홍 곁에 이른 두 각성자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그 여자 동료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엘리베이터 한 대가 떠났는데도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와중에 두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는 백새벽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선을 거둔 두 각성자는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 것이었다.
“여기 목표는 조금 트인 공간으로 끌고 가자.”
남자 각성자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홀 주위는 오가는 사람들로 굉장히 혼잡했다. 두 사람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습격당하게 될지도 몰랐다.
자료에 따르면 목표 여성 역시 생체 공학 의수를 이식받았다고 했었다.
이내 여자 각성자가 의혹이 어린 얼굴로 귀를 가리켰다. 귀를 막고 있는 까닭에 동료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남자 각성자는 정신을 차리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대신 쪼그려 앉았다. 직접 용여홍을 끌어 행동으로 뜻을 전할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남자는 돌연 머리가 핑 돌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심장이 수축하는 것을 느끼며 구토까지 한 그는 점점 사지가 뻣뻣해졌고 시야도 흐릿해졌다.
그의 시야 속, 여자 동료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젠장! 습격이다!”
남자 각성자는 휘청거리며 일어나 습격자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가 판단하기론, 자신들을 향한 습격은 방금 막 발생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암암리에 한동안 진행되고 있었고 이제야 폭발한 듯했다.
남자 각성자는 초조해진 나머지 근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강제 입면 능력을 발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와 여자 각성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백새벽은 그제야 인파 속에서 빠져나와 용여홍 곁으로 다가갔다.
저주파 공격이었다.
그녀가 방금 용여홍을 챙기는 대신 그와 거리를 벌린 건, 어인형 생체 공학 의수의 저주파 공격으로 적들을 몰래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그 공격이 다른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건, 전혀 생각지 않았다.
이내 백새벽이 가한 외부적 자극에 용여홍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각성자야!”
그가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백새벽은 간결하게 대꾸했다.
“이미 기절시켰어. 다른 엘리베이터 홀로 가자. 멀수록 좋아. 도망치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은 틈에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직원은 갈수록 많아질 테고, 방송 횟수가 늘어날수록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날 것이었다.
본디 시간이 지체될수록 변수는 많아지는 법이었다.
이 정체 현상은 반고 바이오의 퇴근 시간마다 생기는 정체 현상보다 훨씬 심각할 터였다.
지하 빌딩 곳곳에 자리한 엘리베이터 홀은 평소에는 아무 문제도 없이 사람들을 실어다 날랐지만, 앞으로는 새치기를 하거나 비집고 들어가려 하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었다.
용여홍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응, 먼저 495층부터 가자.”
그의 가족이 사는 곳이었다.
성건우는 두 번째 방송에 용대용, 고홍자, 용지고, 용애홍의 직장과 학교에 중점적으로 힘을 써주겠다고, 495층 이웃들과 용여홍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도 ‘VIP 명단’에 포함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그러나 용여홍은 아무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녹음의 영향 아래 지하 빌딩에서 도망치려다가도 집안의 잡동사니를 챙겨가려고 다시 돌아오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용여홍과 백새벽이 직접 가족들을 안전하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편이 나았다.
* * *
소용돌이형 건물, 핵심 연구 구역.
장목화는 실험 캡슐의 지시등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성공했다는 표시가 뜨자마자, 즉각 투명 커버를 열고 성건우를 꺼내줄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머리에 갑자기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무심병 전조 증상과 비슷하긴 한데, 그만큼 강력하지는 않은 현기증이었다.
장목화는 경계심이 어린 눈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가 주위에 자리한 기기들의 지시등이 멈춘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홀 안을 휘휘 휩쓰는 바람은 전보다 더 거칠어져 있었다.
* * *
기기로 가득한 장생의 방 안.
이두형의 귓가에, 강한 분노가 어린 왜곡의 그림자의 목소리가 닿았다.
“왜 우릴 속였어? 우리는 당신을 지지했는데 당신은 우리를 죽음으로 끌어들이려 하다니!”
이 질문은 그뿐만이 아니라 작열하는 문과 말인의 것이기도 했다.
이두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갈랜드, 우린 사실 수십 년 전에 이미 죽었어. 지금 살아있는 건 그저 우리의 의식을 빌려 존재하는 악마일 뿐이야. 나는 끝내 철저하게 타락하고 싶지는 않아.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부분마저 잃고 싶지 않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너무 많은 잘못을 해왔어. 더는 이런 죄를 이어갈 수가 없어. 일찍이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잖나. 우리도 이만 함께 안식을 취하러 가세.”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모든 달지기는 청각을 끊어낸 상태였다.
이내 왜곡의 그림자와 말인, 작열하는 문이 물러나거나 반격에 나서자 신세계 핵심 구역으로 통하는 방이 완전히 개방돼 버렸다.
수십 명의 이두형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각자의 권한으로 방 하나하나를 미궁으로 만들며 달지기들의 전진 속도를 늦췄다.
사명 조단옥은 바닥과 벽을 따라 각기 다른 길을 통과하며 신속히 목적지로 돌진했다. 화려한 왕관을 쓰고 꽃과 잎으로 빽빽이 장식된 가운을 입은 그녀는 꼭 초나라 전설 속 그 신 같았다.
그때, 사명의 전방에 돌연 흐릿한 빛이 피어났다.
청록빛은 눈 깜빡할 사이 이 구역을 뒤덮었다.
그리고 사명의 눈앞에, 황금빛 부처가 나타났다.
사명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휘영, 또 편을 바꾸려는 거야?”
부처는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제가 당신들을 도운 것은 그저 당신들을 이곳에 한데 모아 외부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고, 당신들이 이 혼란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사명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타심통을 역이용한 것이었다.
“죽고 싶어?”
사명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부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당시의 기쁨과 근래의 연명이 후회되더군요. 전 새로운 각성자가 나타나 애쉬랜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제 신도들에게 육신을 포기하는 길을 택하게 했지요. 그렇게 그들을 제 곁에 묶어뒀습니다.
이런 제가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세상에 누가 지옥에 떨어질까요.
시주님, 소멸은 즐거움입니다!”
상대를 설득할 수 없음을 확인한 사명은 곧장 심장마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의식 마비를 발휘했다.
거의 동시에 보리 이휘영 주위로 장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의식 박탈!
두 달지기는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사명은 망설이지 않고 반고 바이오와 엔드이어 시티에 남겨둔 좌표를 통해 일부 인간의 의식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인간 의식을 흡수하지 않은 건 그녀가 수용할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계치 이상의 의식을 흡수해봤자 낭비만 될 뿐이었다.
그보단 앞으로 이어질 전쟁에 대비해 인간 의식을 아껴두고, 조금씩 흡수해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나았다.
* * *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 6층 라디오 방송국 안.
허정민이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녹음만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빅보스는 달지기 사명이고, 반고 바이오를 건립한 건 그저 우리를 길러 우리 의식을 먹이로 삼기 위해서였다고?”
잠시 방송을 듣던 허정민은 점차 그 이야기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지하 빌딩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전, 방송이 갑자기 끊겨버렸다.
슈퍼컴퓨터 오메가가 마침내 지령을 받아 라디오 회선을 끊은 것이었다.
허정민은 황급히 녹음실을 떠나 라디오 방송국 출구로 튀어 나갔다.
그때였다. 그녀는 순간 눈동자가 혼탁하고 몸이 굽은 무심자 몇몇이 인간의 살을 뜯어 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헉…….’
허정민은 소리 없이 경악하며 살금살금 라디오 방송국 안으로 물러났다.
* * *
495층.
용여홍과 백새벽은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C구역 11호로 직행했다.
타다닥-!
둘은 계속 엘리베이터 홀로 이동하는 인파를 거슬러, 빠르게 질주했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한 순간, 혼란한 표정의 고홍자를 목격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고홍자도 비로소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고 꽤 안정을 되찾았다.
그사이 방송은 이미 중단된 상태였다.
용여홍이 내뱉듯 물었다.
“출근 안 하셨어요?”
고홍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멍하니 답했다.
“오전에 몸이 좀 불편해서 휴가를 내고 쉬었지. 방금 막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야.”
그녀가 손에 들린 약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하…….”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뱉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니, 처음부터 신중히 집 상황부터 확인하기로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지금까지 성건우의 녹음은 5번이나 반복된 상태였다. 이 영향을 받은 직원은 적어도 10만 이상일 것이었으나, 구조팀의 계획상 병원 구역에 있는 사람 중 사유 이식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 소수의 인물이 모두를 다 데리고 나오길 바랄 수도 없었다.
말하자면 고홍자는 촘촘한 그물 틈 사이로 빠져나온 물고기인 셈이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용여홍은 시간 낭비하지 않고 외쳤다.
“엄마, 우리 얼른 땅 밖으로 도망쳐요!”
“그, 그러면 처벌받지 않니?”
고홍자가 매우 걱정스러워했다.
백새벽은 막 달려가고 있는 직원들을 가리켰다.
“다들 도망치고 있어요.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어떻게 그 모두를 처벌할 수 있겠어요?”
당황한 고홍자는 곧장 자식들의 말에 설득됐다.
그렇게 세 가족이 막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 홀로 향하려는데, 고홍자는 곁눈에 잡히는 매우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남편 용대용이었다.
용여홍의 아버지가 빠르게 집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용여홍은 안 그래도 철렁했던 가슴이 다시 또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아빠! 안 도망치셨어요?”
용대홍은 고홍자를 보며 긴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아니, 사람들을 따라 도망치려는데 네 엄마가 아직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뭐냐.”
“…….”
고홍자의 목부터 눈까지 뜨거운 물기가 차올랐다. 빨갛게 젖은 눈시울엔 금세 잔잔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가요!”
일단 시간이 없는 상황이라 용여홍이 얼른 손을 휘둘렀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부모님을 모시고 C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 홀로 달렸다.
일과 시간 중이라 생활 구역에는 아이들과 학생, 선생님, 퇴직한 직원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없었다. 사람들도 몇 무리나 도망친 뒤라, 곳곳이 조용했다. 연말 공연 중 활동 센터에서 나왔을 때나 볼 수 있을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