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4)
나 빼고 다 회귀자-104화(104/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104)
Chapter 20. 새로운 페르소나 – 4
레타 대륙을 레타인들이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은 이 거대한 대륙의 3할도 채 되지 않는다.
레타인들은 때론 자신들의 힘으로, 때론 소환자들의 힘을 빌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개척지를 새로이 개척하고 있으며 이 와중에 소환자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 결실이 바로 대륙 서쪽의 개척지를 중심으로 발전한 소환자들의 왕국 ‘프런티어(Frontier)’이며, 당연히 사방이 미개척지이다 보니 업적과 보상, 성장을 노리는 온갖 강자들이 득시글거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개척된 곳에서는 새로운 것이나 업적이 발견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이미 기준이 레타 대륙에 떨어진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몇 번이고 증명했듯 결코 아니다.
레타 대륙은 생물처럼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매 순간 변화한다.
누구나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초급 던전에서 이레귤러 현상이 일어나 고등급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몬스터가 특정한 마나에 반응해 변이하거나, 혹은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유적이 아이템이든 사람이든 몬스터든 트리거가 되는 무언가에 이끌려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는 것이다.
―쿠구구구구
기준이 루스벤을 통해 얻은 핏빛 열쇠는 바로 그 유적을 깨워 내는 트리거가 되는 수단이었다.
그리핀 포르티스를 타고 꼬박 이틀간 날아 도착한 그라티아의 외곽 지역, 근처에 출몰하는 몬스터라고 해 봤자 고블린 정도인 숲에 도착한 순간.
점차 커져 가던 열쇠의 진동이 대기를 울릴 정도가 되더니, 숲 한구석이 폭삭 무너져 내리며 놀랍게도 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포르티스!”
―피요오오오!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지른 그리핀이 그대로 하강하더니 날갯짓을 하며 사뿐히 착지했다.
다행히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는 충분히 넓어 굳이 주변을 부술 필요는 없었다.
유적 입구에 도달한 기준은 괜히 주위를 휘휘 둘러보곤, 포르티스의 등에 탄 채 돌계단을 내려갔다.
―계약자, 문이 보여.
“오오.”
족히 10분 이상 돌계단을 걸어 내려가자 짧은 복도가 나타났다.
그 끝에는 커다란 붉은 문이 있었는데, 그 문에 새겨진 붉은 문양이 열쇠와 공명하듯 짙은 마력의 파장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준이 포르티스의 등에서 내려 문을 향해 다가가자 열쇠의 진동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그가 문 앞에 이른 순간 급기야 열쇠에서 빛이 터져 나와 기준을 감쌌다.
―계약자!
“아니, 해를 끼치려는 것 같지는 않아.”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니 그를 감싼 빛이 다시 열쇠로 수렴하더니, 열쇠에 더욱 짙은 마력이 어리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그의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기준은 자신이 열쇠에 인정받았음을 깨달았다.
“이거 혹시 내가 모르는 조건이 따로 있었던 거 아냐?”
―그런 것 같은데…… 어쩌면 그 남자도 모르고 있었는지도.
여기까지 와서 자격이 없다고 하면 일이 제대로 꼬일 뻔했는데 어쨌든 무사히 통과해서 다행이었다.
그때 저 위에서 쿠우웅, 하는 소리가 나며 유적의 천장이 닫혔지만, 예전에도 한 번 겪어 본 일이었기에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기준은 문에 난 열쇠 구멍을 찾아내곤 거기에 냅다 열쇠를 꽂아 버리려다 말고, 유적이 일인용이라는 것을 떠올려 내곤 혹시나 포르티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될까 걱정되어 다시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혹시라도 못 들어가게 되면 천장 부수고 나가서 파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알겠지?”
―피요오오오!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포르티스가 씩씩하게 울었다.
기준은 녀석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곤 이번에야말로 열쇠를 문에 꽂았다.
그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전신에 가해지는 끔찍한 압력.
기준은 그가 타고난 권능이 그 어느 순간보다도 거대한 힘을 발하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을 느꼈다.
체내에 신경을 집중하면, 째깍, 째깍, 하고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뭐야 이게, 유적에 막 들어왔을 뿐인데 나한테 대체 무슨 수작을……!’
그러나 이미 전설의 영역에 이른 기준의 고유 스킬은 끝내 그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튕겨 내 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에게 올바르게 작용하지 못한 유적의 힘은 그 대신 환경을 변화시켰고.
기준은 어느덧 자신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어둑어둑한 집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태우고 있던 포르티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응?’
기감을 확장할 것도 없다.
빠르게 주위를 훑은 그의 눈이 자신을 제외하고 이 공간에 존재하는 세 명의 모습을 포착했다.
커다란 회백색 벽면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사슬에 묶여 매달려 있었고, 그녀를 감싸듯 그 앞을 가로막는 소년과―― 그들을 겁박하는 남자가 있었다.
“다 들었어, 다 들었다고. 도망을 치려고 했지!”
“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에요, 여보. 우리는 언제나와 같아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남자가 내지르는 쇳소리를 닮은 고함, 구속된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침착하게 대꾸하려 애쓰는 여성, 두 주먹을 말아 쥐고 남자를 노려보는 소년.
기준의 이질감을 더욱 자극한 것은, 그들 입장에선 기준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셈일 텐데 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의 눈앞에서 중간 부분까지 뚝 잘린 연극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계약자, 느낌이 묘해. 분명 고유의 마력도 기척도 느껴지는데 꼭 실제로는 이곳에 없는 것만 같은…….
다행히 루시는 아직 그와 함께하는 모양.
그녀의 말에 자신이 느끼던 위화감을 논하려던 그때,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고풍스러운 권총을 꺼내 드는 것을 본 기준이 곧장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앞으로 내민 방패가 놈의 면상을 가격하기 직전, 기준은 놈의 두 눈이 빨갛게 물든 것을 보고 놈의 정체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
그러나 초단거리에서 펼쳐진 강력한 실드 어택이 놈을 그대로 짓뭉개 버리려는 그 순간.
눈앞의 광경이 흐릿해지더니, 그림 위로 물이 떨어진 것처럼 공간 전체가 어지러이 뒤틀렸다.
기준은 그 와중에 공간 중앙에 희미한 빛을 발하는 메달과 비슷한 것이 떠오르는 것을 보곤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그의 손이 닿기 전 메달이 공간에 녹아들 듯 사라지며, 이번엔 제법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그것을 겪고서야 루시는 비로소 확신한 투로 말했다.
―계약자, 역시 여기는 현실이 아니야. 확실해.
“그래, 그런 것 같네. 그럼 처음에 나한테 작용했던 그 힘은 대체…… 아.”
기준은 평야에 점점 핏물이 흘러드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총성과 비명 소리, 끊이지 않는 대지의 흔들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현장을 곧 발견할 수 있었다.
―구아아아……!
―키힛, 키이이이이!
“물량으로 밀어붙여 봤자――!”
입가에서 썩은 내장과 피를 흩뿌리며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괴물들을, 한 젊은 남자가 끊임없이 베어 내고 총으로 머리를 터트려 죽이고 있었다.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었으나 역시나 이번에도 기준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다.
남자도, 괴물들도.
‘저 남자, 아까 그 흡혈귀 남자랑 닮았는데…… 아니, 아니군.’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저 젊은 남자는 바로 조금 전 흡혈귀와 대치했던 소년이 성장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흡혈귀 남자와 닮은 이유는―― 뻔하지, 그가 흡혈귀의 아들이니까.
“담피르, 흡혈귀와 인간의 혼혈…… 그리고 타고난 흡혈귀 사냥꾼.”
이 유적은 흡혈귀 사냥꾼을 위한 유적이라고 했던가, 이제야 감이 조금 잡혔다.
그렇다면 기준이 유적에 들어온 순간 작용했던 힘의 정체는 아마도…….
기준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연극의 2막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남자는 흡혈귀가 만들어 낸 열화된 괴물들, 구울(Ghoul)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곤 끝내 놈들을 거느리던 괴물―― 흡혈귀와 조우했다.
“엄마의 원수…… 죽여 버리겠어.”
“열등한 버러지 주제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놈은 아까 1막에서 고풍스러운 권총을 꺼내 쥐고 소년과 여자를 핍박하고 있던 바로 그 흡혈귀였다.
그 권총은 여전히 놈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라, 저렇게 보니까 둘이…… 닮았네?
“부자지간이니까.”
―뭐?!
기준은 진즉 눈치챘는데, 한국 드라마를 경험해 보지 못한 루시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
그는 루시에게 자신이 파악한 이 연극의 뒷사정을 설명해 주기로 했다.
“덤으로 아까 사슬에 묶여 있던 여자는 흡혈귀의 아내이자 저 담피르의 어머니였어. 아마 저 흡혈귀는 결국 제 아내였던 여자를 죽였을 테고, 담피르는 그 원한으로 흡혈귀 사냥꾼으로 성장해 제 아비를 죽이러 찾아온 거지.”
―그 짧은 순간만 보고 잘도 거기까지 알아냈구나, 계약자!
“뭘 이 정도로. 한국 드라마였으면 사실 여기서 숨겨진 여동생의 존재나, 사실은 담피르가 저 흡혈귀의 아들이 아닌 배다른 동생이었다는 반전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지. 그렇게 되면 흡혈귀는 새어머니에게 집착하던 변태 살인마가 되는 셈이라 더 극적인 재미를――.”
―그, 그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
두 남자가 격돌을 지켜보며 루시에게 사정을 설명해 주던 기준은 잠시 고민했다.
이 공간의 주인공이 저 담피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
처음은 소년, 지금은 젊은 청년.
모르긴 몰라도 이대로 놔둔다면 이 공간의 시간은 저 담피르를 기준으로 계속해서 흘러가며, 기준에게 바라지도 않았던 담피르의 일대기를 보여 줄 것이 분명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할까, 그게 아니면…….
“아니, 이미 바닥을 봤는데 더 어울려 줄 필요 없겠지.”
고민을 마친 기준이 곧장 방패를 내던졌다.
섬광처럼 공간을 질주하며 날아든 방패가 둘을 타격하려는 그 순간, 아까 그랬던 것처럼 공간이 허물어지고 일그러졌다.
그리고 공간 중앙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정체불명의 희미한 메달――.
이번에도 그것이 나타나리라 짐작하고 있던 만큼 기준의 이어지는 행동은 빨랐다.
아까 내던졌던 방패가 마치 그가 직접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궤도를 꺾어 돌아오며, 메달을 정확히 조준하고 우물의 왕의 특수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즉 바람 분사다.
―와아!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던 것처럼 저항하던 메달이었으나 일직선으로 뿜어 나오는 압축된 바람에는 이겨 내지 못했다.
기준은 정확히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메달을 보기 좋게 잡아냈고, 그 순간 그것을 자세히 확인해 볼 틈도 없이 공간 전체가 거대 생물의 위장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기준이 발을 딛고 있던 바닥이 사라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공기도 사라졌다.
―피요오오오오오!
“포르티스!”
그러나 그 와중에 날아든 포르티스가 솜씨 좋게 기준을 받아 내 제 등 위에 앉혔다.
영락없이 유적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 나갔을 줄 알았는데, 여태껏 격리되어 있을 뿐이었나.
상황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더라면 더 오랜 시간 녀석이 갇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충동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자, 이거……!
포르티스의 등에 타고 이 공간을 어떻게 돌파할까 고민하고 있자니 루시가 기준을 불렀다.
고개를 든 기준은 자신을 기준으로 천장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을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체를 가진 무수한 환상을 투영하고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전부 다양한 시간대의 담피르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어린 소년, 청년, 중년, 죽기 직전으로 보이는 노년까지…….
기준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역시 그랬어. 이 던전은 내게 이 담피르의 일대기를 경험하게 만들고 싶었나 봐.”
―경험?
“내 신체와 정신에 간섭해 오는 걸 느꼈거든. 유적 안에 들어온 사람을 일시적으로 담피르와 동기화시키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계약자는 혹시 천재야?
“이것까지 포함해서 흔한 전개라니까.”
하지만 기준의 고유 스킬은 그 어떤 것에도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목적을 이루지 못한 ‘힘’은 그 대신 기준이 담피르의 과거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보다시피 기준은 그것마저도 거부하며 유적의 핵으로 보이는 메달을 탈취했고, 유적 전체가 오류를 일으켜――.
기준을 담아낼 예정이었던 온갖 담피르의 형상이 폭주하고 있는 것.
―쟤네, 계약자를 노려보는데.
“하.”
담피르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모든 실체가 기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준은 자신의 손에 들린 메달을 들어 보였다.
역시나 그것들이 일제히 메달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데 무슨 공포 영화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인벤토리에 넣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다.
아직 그의 소유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고유 영역의 파편(Legendary)] [내구도 ― 3,279/5,000] [레타 대륙의 일부를 온전히 제 영역으로 편집할 수 있게 해 주는 권능의 아주 작은 파편. 전설의 흡혈귀 사냥꾼 크라트 반 헬싱의 힘으로 발동되어, 한정된 영역 안에서 그의 기억과 권능을 현실의 존재와 공간에 덮어씌운다. 내용물을 모조리 제거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하지만 다행히도 정보는 파악할 수 있었다.
기준은 그것을 본 순간 직감적으로 이 아이템이 앞으로의 자신에게 큰, 아주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확신했고…….
“내용물을, 모조리, 제거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일단 그것을 품에 넣고 다시 고개를 든다.
내용물―― 즉 무수한 시간대의 담피르, 크라트 반 헬싱이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뭐, 그야 지가 하려던 말을 뚝뚝 끊어 먹고 끝내 유적을 구성하던 핵심 장치까지 탈취한 놈이 곱게 보일 리는 없겠지.
“뭐 해.”
아마 이 물건은 기준에게 열쇠를 넘겨준 루스벤이 예상했던 것도.
유적이 주고자 했던 보상은 더더욱 아니었겠지만.
“빨리 덤벼, 제거해 줄 테니까.”
기준은 이미 이 물건을 자신이 확보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직후.
전설의 흡혈귀 사냥꾼이 중대를 구성하고 그를 덮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