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5)
나 빼고 다 회귀자-105화(105/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105)
Chapter 20. 새로운 페르소나 – 5
소년, 청년, 장년, 중년, 노년의 흡혈귀 사냥꾼이 바닥과 천장도 없는 공간을 저마다 자유롭게 디디며 쇄도해 오는 광경이란 실로 장관이었다.
더욱이 한 사람이 일생에 걸쳐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단계별로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재미난 일인지.
담피르 또한 흡혈귀의 일종이라 노화가 늦는 탓인지, 아무래도 청년기와 장년기에 이르러 있는 놈이 가장 많았는데―― 그런 놈들도 세세하게 전투 스타일이나 사격술과 검술의 숙련도가 달라지는 것이 우스웠다.
“청년기에 이르러 어느 시점이 되면 권총이 바뀌네.”
―아, 정말. 아까 그 흡혈귀가 다루던 권총인가 보다. 다행이야, 계약자! 어머니의 복수를 마쳤나 봐!
그 짧은 시간 동안 펼쳐졌던 연극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인지 박수를 짝짝 치며 감동하는 루시.
그러나 순진한 감탄과는 달리 그녀는 지금 이 순간도 기준의 영력과 자신의 정령력을 합쳐 자아낸 빛의 채찍을 휘둘러 사방에서 날아드는 적의 총탄을 걷어 내고, 틈틈이 빛의 창을 쏘아 내 놈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은 약하지만 같은 능력을 익힌 것들이 합을 완벽히 맞추니까 까다롭네. 쯧――!”
기준은 루시가 미처 막아 내지 못한 총탄을 두 개의 방패를 휘둘러 모조리 막아 내고, 자신을 칼로 베어 버리려 다가오는 놈들은 빛과 불꽃을 머금은 송곳니를 늘려 찍어 버렸다.
그의 모든 움직임은 이전에 비해 명백히 빨라져 있었는데, 그건 지금 그가 그리핀에게 기승해 있어 칭호 그리핀 라이더의 효과로 모든 속도가 20% 향상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잔뜩 흥분해 날뛰려는 포르티스를 다독여 진정시키곤 녀석의 등 위에 앉은 채 상체만을 놀려 전투를 벌이는 기준의 모습은 평생을 그리핀 위에서 살아온 듯 자연스러웠다.
―계약자, 조심해!
“괜찮아.”
제법 많은 숫자를 줄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의 숫자는 많이 남아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흔히 그렇듯 숫자가 줄어들수록 한 명 한 명의 마력이 강해져, 자연히 놈들이 쏘아 내는 탄환이나 날아드는 검에 담긴 힘도 강해졌다.
기준은 철저히 타이밍을 맞춰 사방에서 틈을 주지 않고 날아드는 탄환, 그것을 막아 내지 못하게끔 날카롭게 쇄도해 오는 시퍼런 검날을 마주하며 활짝 웃었다.
‘연극 체험이나 하는 것보단 역시 이쪽이 훨씬 재밌는데.’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공격의 궤적을 읽어 낸다.
피할 수 있는 것과 막아 내야 하는 것을 구분해 낸 직후.
우르의 정령력을 집중시켜 전면에 불의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키이이이이이!
일정 방향으로부터 날아든 공격을 모조리 태워 버리는 우르의 불꽃과,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에 위축되는 놈들.
“지금!”
그 순간 앞으로 내던진 방패가 허공에서 기묘하게 움직이며 수십 개 총탄의 궤적을 비틀고 끊어 냈다.
레어 등급으로 성장시켰을 당시만 해도 그저 빠르게 날아갔다가 되돌아오는 데에 한정되었던 그의 투척 스킬이, 어느덧 그의 의지를 반영해 허공중에서 미묘한 변화를 몇 번이고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팅! 티티팅!
더욱 놀라운 것은 방패가 회전하며 튕겨 낸 총탄 일부가 다른 총탄과 상쇄되고, 또 일부는 사방에서 덤벼들던 칼잡이들을 노리고 날아들어 놈들의 움직임을 막아 냈다는 것.
그리고 놈들이 멈칫하는 그때를 노려―― 기준의 남은 한 팔에 들린 방패가 날카로운 송곳니로 화해 빠르게 놈들의 머리통을 찍어 버린다!
―절반 이하로 줄었어!
“지금부터야.”
―피요오오오오오!
적의 숫자가 줄어들어 놈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지자, 여태껏 얌전히 있던 포르티스도 비로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을 대지처럼 자유자재로 딛고 활보하며 공간을 활용하는 놈들에 맞서 녀석 또한 기준을 태운 채 3차원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창공의 제왕이라는 그리핀답게 바람 속성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녀석은 날개를 가볍게 접었다 펴는 동작만으로도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고, 심지어 강력한 바람을 발생시켜 적의 움직임을 멈추거나 날아드는 탄환의 궤도를 틀어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건 뭐 바람의 정령이 필요 없네.”
―환상종쯤 되면 사실 반 정도 정령이지.
포르티스가 더 성장하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바람을 다룰 수 있게 될까?
기준은 이전보다 한층 강한 기운을 품고 덤벼드는 적의 공격을 쳐 내고 곧장 송곳니를 찔러 죽이며 한가하게도 그런 것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그와 주종의 계약을 맺은 나비냐도 마찬가지.
파티를 제외하고도, 그의 계약 정령인 루시와 우르를 포함해 그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인연이 이렇게나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아직 유망한 루키 정도지만…….’
그는 나비냐와 포르티스가 혼자 힘으로도 집단을 쓸어버리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미래를 떠올리며 피식 웃곤 재차 방패를 내던졌다.
이번엔 단순한 견제 목적이었는데, 놀랍게도 포르티스가 날갯짓으로 날아가는 방패의 속도를 더해 직선상에 있던 적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라, 이거.’
기준은 포르티스의 마력이 자신이 방패에 담은 광 마력과 반응해 한층 강력해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 녀석을 타고 하늘을 난 이후로 녀석이 광 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이건 녀석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실마리가 아닐까?
“좋아, 포르티스. 제대로 해 보자!”
―피요오오오오오오!
포르티스가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허공을 딛고 돌진했다.
남은 적의 숫자는 어느덧 간신히 두 자릿수에 걸치는 수준.
이젠 한 명 한 명이 유니크 등급 이상의 강함을 자랑하게 되어, 역시 이 유적이 원하는 대로 흡혈귀 사냥꾼의 인생극장 한 판을 어울려 주는 쪽이 훨씬 간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누구도 내 육체와 정신에 멋대로 간섭할 수는 없어.’
포르티스가 용맹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을 내지르는 순간에도.
루시가 기준의 영력을 한꺼번에 뽑아내 어두운 공간을 밝히고 놈들의 움직임을 속박하는 빛의 사슬을 수십 줄기 뽑아내는 순간에도.
우르가 유니크 등급에 이르러 한층 강력해진 불꽃을 압축하고 또 압축해, 확실하게 한 명 한 명씩 대상을 제거하는 순간에도.
기준이 아다만트의 운용으로 극히 단단하고 날카로워진 두 개의 방패를 휘두르며 적의 총탄을 튕겨 내고 심장에 송곳니를 박아 넣는 순간에도.
―째깍, 째깍
그의 고유 권능이 끊임없이 작동하며 크게 시곗바늘 소리를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유 영역이라고 했었나.
흡혈귀 사냥꾼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지배하고 있던 공간을, 기준이 제 의지를 관철해 억누르고 이겨 내려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기준이 꿈꾸던 초인에 가까워지기 위한 한 걸음이 아니겠는가.
“전달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네 입으로 직접 날 설득해 보란 말이다――!”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를 억지로 주입하고 감정적으로 동화시키는 방식으로는 결국 자신의 마이너 카피를 만들어 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투쟁할 때에야말로 가장 강해지는 법.
기준은 흡혈귀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그라티아에서 놈들을 몰아낼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다른 누구의 뜻도 아닌 그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가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걸맞기 때문이다.
흡혈귀를 더욱 잘 때려잡기 위해 흡혈귀 사냥꾼에 감정 이입할 생각 따윈 없다는 얘기다!
―콰직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 송곳니가 노년의 흡혈귀 사냥꾼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거의 수 시간에 달하는 혈투 끝에 그 많던 담피르가 모조리 모습을 감추고, 어느덧 가장 완벽한 신체 능력과 노련한 기술을 겸비한 장년의 흡혈귀 사냥꾼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네 뜻은 잘 알았다.”
놀랍게도 혼자 남은 흡혈귀 사냥꾼은 여태껏 죽어 나간 놈들과 달리 무척 생생한 모습으로 그에게 말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내 의지를 이을 생각은 없고, 오직 내 능력만을 탐내어 이곳까지 왔다는 거냐.”
“흡혈귀는 사냥할 거야. 순수하게 내 뜻으로.”
―계약자의 그 강철 같은 의지가 난 정말 존경스러워…….
흡혈귀 탓에 인생을 망치고 남은 인생을 모조리 흡혈귀 사냥에만 바쳤을 흡혈귀 사냥꾼의 분신을 상대로 한마디쯤은 립 서비스를 해 줘도 될 법한데.
거짓말을 하면 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꿋꿋이 제 의지를 관철하는 기준을 보며 루시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 모습에 흡혈귀 사냥꾼, 크라트 반 헬싱은 오히려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 흡혈귀 사냥꾼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가 권총을 들지 않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네 힘으로, 완전에 가까운 나를 상대로 그 의지를 증명해 봐라.”
놈이 허공을 잡아 뜯는 순간, 기준은 자신과 외부를 연결하는 모든 끈이 뜯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를 태우고 있던 포르티스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을뿐더러 루시와 우르의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착용하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며 순수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
“아하.”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갑옷과 두 방패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기준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말이지.”
“후회해도 늦었어.”
어느덧 두 사람은 아까 청년이 무수히 쏟아지는 구울들을 상대했던 바로 그 평야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기준의 권능에 방해받고 공간의 축을 이루던 메달이 그의 품속에 들어가 있는 탓에 배경이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지만, 이번엔 기준도 굳이 그것을 흐트러트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제 아비를 죽이고 얻은 권총을 쥔 채,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직검을 들고 있는 흡혈귀 사냥꾼을 마주하며 씩 웃었다.
“한 가지만 말해 두고 싶어.”
“말해라.”
“혹시 둘 중에 하나만 드롭할 거면 권총으로 해 줬으면 해. 내 동료 중에 권총을 다루는 녀석이 있거든.”
그 동료란 물론 긴을 말하는 것이었다.
긴에게 말하면 기겁하며 그럴 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기준은 자신이 미숙했던 탓에 긴의 부모를 죽게 만들고, 그의 운명을 뒤틀어 버렸다는 생각에 아직까지도 은밀한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긴에게 신경을 별로 써 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딱 봐도 역사와 ‘업’이 철철 넘쳐흐르는 저 권총을 가져다주면 녀석이 얼마나 좋아할까.
루스벤이 남긴 권총 블라디미르와 함께 전설적인 흡혈귀 사냥꾼 크라트 반 헬싱이 남긴 권총을 양손에 쥐고 싸우는 늑대 인간.
상상만 해도 박수가 절로 나오는 조합이었다.
“이 귀한 물건을 남에게 주겠다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어처구니가 없는 후배군. 그러고도 흡혈귀 사냥꾼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하도 어이가 없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는 크라트.
기준은 그 말을 듣고 그가 유적에 들어오기 전 열쇠에 스캔을 당했던 것을 떠올렸다.
과연, 이 유적의 입장 조건은 칭호 ‘흡혈귀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흡혈귀 사냥꾼을 위해 준비된 유적인 시점에서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계속 그런 느슨한 생각을 하고 있다간 골통이 으스러지고 말 거다.”
기준은 진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트는 그것을 도발로 받아들였는지, 한쪽 눈을 흡혈귀의 그것처럼 붉게 물들이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젠 기준도 상대하는 데 제법 익숙해진, 그러나 흡혈귀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혈력이 크라트의 전신을 휘돌며 전체적인 능력을 크게 증폭시키고 있었다.
일단 이 시점에서 여태까지 상대한 그의 분신들과는 크게 달랐다.
“내 힘은 흡혈귀를 상대로 가장 강해지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상대로 약한 것은 아니거든…… 각오해라!”
붉은 기운을 머금은 탄환이 쏘아 내지는 순간.
고개를 가볍게 젖혀 탄환을 피해 낸 기준 또한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광 마력을 끌어 올렸다.
고유 영역을 유지하던 모든 힘이 집중된 지금 놈이 전과 비할 바 없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겠으나, 기준이 몇 시간이나 놈의 분신을 상대하며 전투법과 기술을 겪은 것도 사실.
“이미 익숙해졌거든――!”
양팔에 착용한 두 개의 방패가 눈부신 빛을 발하며 거대한 송곳니로 화했다.
그러나 마치 한 마리의 맹수처럼 놈을 향해 거칠게 돌진하던 기준은 아까 자신이 피해 낸 탄환이 허공에서 선회해 제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느끼곤 헷, 웃음을 흘렸다.
직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던진 방패가 그 탄환을 정확히 맞혀 가루로 만들었다.
피할 수 없게 한다면 모조리 막고 부숴 주는 수밖에!
“무슨……!”
“누구 골통이 으스러지나 보자!”
방패를 회수한 기준이 눈을 빛내며 송곳니를 내질렀다.
흡혈귀 사냥꾼 또한 그에 맞서 직검을 휘두르고 권총을 겨누며 입가에 사나운 미소를 띠었다.
그로부터 수십 번의 총성이 더 울렸고.
신철(神鐵)이 깨어지기 전에, 그것이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