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1)
나 빼고 다 회귀자-111화(111/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111)
Chapter 22. 맨 인 골든 – 1
과정이야 어찌 됐든 하이오크로의 성장을 이룬 차반베쉬는 무척 기뻐하며 파툼과 기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지금 기준이 매우 크고 심각한 일에 휘말려 있다는 건 알았다. 언제가 됐든 우릴 불러 준다면 미력하나마 지원하겠다.”
“너희가 도와주면 든든하지. 또 만나자.”
오크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 던전에서 사냥할 생각이라고 했다.
냉정히 말해 이들의 지금 수준으로는 흡혈귀 왕국 침투 작전에 참여하긴 어렵겠지만, 그 심성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이들인 만큼 보조 인원으로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푸즈를 비롯한 나머지 네 명의 오크도 승급에 성공한다면, 그때 가서 한번 말을 꺼내 보자고 기준은 다짐했다.
“저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차반베쉬의 승급에 도움을 준 파툼은 냉정하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나마 오크들과 헤어지고 던전 밖으로 나와서 한 얘기라 다행.
기준이 그 말에 어떤 식으로 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어둠을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나약해.”
중2병이었냐고.
그러나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는 파툼을 보고 있자니 기준은 차마 태클을 걸 수도 없었다.
놀랍게도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둠과 대적하고도 그것을 버텨 내며, 끝내는 물리치고 나아갈 수 있는 자. 그것은 오직 빛의 축복을 받은 자들뿐이다. 그것을 용사라고 부른다.”
자화자찬으로 마무리하기까지?
실로 완벽하다는 생각에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던 기준은 어느덧 파툼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는 자화자찬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기준을 떠보려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역시 알고 있는 거야! 어쩐지 아까부터 저놈의 기운이 묘하게 신경 쓰이더라니, 용사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 아닐까?
‘이제 알겠어. 루시가 용사였구나?’
기준은 루시의 말에 대충 말을 맞춰 주며 던전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그리핀, 포르티스의 등에 올랐다.
위풍당당한 풍채의 그리핀에 나직이 감탄하는 렉투스를 돌아보며 기준이 물었다.
“그래서 너희는 지금부터는 어떻게 할 셈이지? 나는 이대로 코르의 던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티 멤버들과 합류하려고 한다만.”
“그 전에 잠시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어떤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일정에 태클을 거는 렉투스.
그럼 그렇지, 용사씩이나 되는 인물을 데려와 놓고는 오크들 앞에서 힘자랑 한 번 하고 헤어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파툼은 작전에 대비해 그라티아에 머무르는 동안 이곳에서 용사 활동을 할 것이다.”
“용사 활동이라고?”
생전 처음 듣는 말에 반사적으로 반문하는 기준에게 렉투스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해설했다.
“그렇다. 이번에 발각된 흡혈귀 놈들의 수작질을 제외하더라도 이 왕국에 꿈틀거리는 어둠은 깊고 짙다. 제대로 된 용사가 그라티아를 찾은 김에…….”
1+1 끼워 팔기 행사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던 렉투스가 파툼의 눈치를 슬쩍 보곤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작전까지는 여유가 제법 남아 있으니 그사이에 파툼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고난이도의 퀘스트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서가 있어도 그간 인력의 부족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제법 있으니까.”
“용사랑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너무 당당하게 일을 떠맡기는 것 아닌가?”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친족 관계이기도 하지.”
렉투스가 제 투구의 관자놀이 부분을 톡톡 두드려 보였다.
아마도 그 안에 있을 뿔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대륙을 다스리는 모든 정통한 왕가에는 티란누스의 지배자, 골든 드라코니안의 피가 흐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둘이 같이 움직이는 거였나.”
레타인 혈통의 끝판왕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
그나저나 모든 나라의 왕실에 골든 드라코니안의 피가 흐른다면 사실상 레타의 모든 나라는 티란누스와 혈연관계를 맺고 간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티란누스의 위세가 얼마나 막강한지 이제야 비로소 실감하곤 감탄하는 기준.
렉투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런 그에게 뭐라 다시 말하려는데, 그 전에 파툼이 앞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움직인다면,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하겠는가?”
“어둠을 버텨 낸다는 말?”
“그렇다.”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기준이 비브를 슬쩍 곁눈질하자 그녀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필시 그녀는 파툼을 통해 기준이 용사로 승인받고, 나아가 티란누스 황실과 연결되는 장면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터였다.
“좋다, 내 파티원들이 던전을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좋다면.”
“결정됐군. 그럼――.”
그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파툼이 돌연 목을 진동시키며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드래곤 피어인가 싶어 긴장하고 있자니 문득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피이이잇!
목의 깃털을 빳빳하게 세우며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는 포르티스를 따라 고개를 드니, 하늘에서 날개가 달린 거대한 도마뱀이 하강해 오는 것이 보였다.
앞다리 대신 날개를 달고 있는 괴물 도마뱀이라면 기준이 아는 한 하나뿐이다.
와이번(Wyvern).
―캬아아아악!
와이번은 솜씨도 좋게 파툼의 눈앞에 착륙하고는 사납게 울어 댔다.
샛노란 눈을 희번덕거리는 녀석은 아무리 봐도 몬스터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파툼은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싱싱한 고기를 물려 주었다.
설마 저 강력한 몬스터를 길들인 것인가?
기준이 놀라워하고 있자니 비브가 작게 박수를 치며 그에게 속삭였다.
“드라코니안은 용종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어서 와이번을 테이밍하기 수월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래도 이 정도로 크고 강력한 와이번이라니…… 역시 용사는 용사네요.”
“들으면 들을수록 개사기 종족이잖아.”
타고난 근력과 체력이 좋고 비늘이 달려 있어 방어력도 훌륭한데, 거기에 더해 방대한 마력까지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용종을 지배하기까지 하다니.
‘이러니 드라코니안이 대륙을 지배할 수밖에 없지. 똑같이 스타트한다 치면 이쪽이 알보병 굴리고 있을 때 저쪽은 바로 공군 육성에 돌입하는 거잖아?’
하지만 아무리 와이번이 멋지다고 해도 이쪽에는 탑승 펫 최상위 티어인 환상종 그리핀이 있다!
기준은 와이번을 경계해 목을 울리는 포르티스를 쓰다듬어 주며 녀석의 등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와이번의 등에 오른 파툼이 제 뒤에 렉투스를 앉히곤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바로 출발하지. 따라올 수 있겠나?”
“물론.”
기준의 자신만만한 대꾸에 콧소리를 낸 파툼이 곧장 와이번을 이륙시켰다.
와이번은 바람 속성 마나를 다루는 듯 거센 바람을 뿜어내며 끊임없이 가속했으나 포르티스는 놈이 발생시키는 바람마저 조종해 제 속도를 더하며 수월히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 날랜 움직임은 기준이 녀석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수준.
미미하게나마 포르티스의 바람에 섞인 빛의 마력이 그 효율을 말도 안 되게 증폭시켜 주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
문득 그를 돌아본 파툼이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그리핀을 보곤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더니.
“라피, 그리핀에게 선두를 내어 줄 참이냐?”
―캬오오오오옥!
자신의 와이번을 도발해 더욱 속도를 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그들을 보며 기준이 어이없어하고 있자니 그의 품에 들어와 있던 비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준 님의 기를 죽이려고 애를 쓰네요. 하지만 이 그리핀도 정말 놀라운걸요. 희귀하다고는 해도 비행 속도로는 와이번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야 포르티스는 특별하니까…… 그런데 비브 너 어디까지 따라오려고?”
루시의 힘으로 포르티스를 한층 더 강화해 북돋워 준 기준이 비브에게 묻자 그녀는 뻔뻔하게 답했다.
“이곳에 준 님과 용사, 심지어 그라티아의 후계자가 함께 있는데 제가 어딜 가겠어요. 다른 잡다한 일에 매달리느니 준 님 곁에 붙어 있는 게 이득이죠.”
“그래도 되는 거야?”
“용사 활동이니까요. 빛의 진영을 대표하는 용사를 원조하는 일이라면 요정 상인의 금기에 위배될 것이 전혀 없답니다.”
비브와 수다를 떠는 사이에도 포르티스는 한층 가속하며 재차 와이번을 따라잡았다.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몇 번 더 거리를 벌리려 시도하던 파툼은 계속해서 따라잡힌 끝에 결국 목적지에 이르러 기준의 그리핀을 인정했다.
“그리핀이 와이번을 따라잡다니, 우수한 개체를 거느리고 있군.”
“포르티스가 특별하긴 하지.”
―캬아아아악!
―피요오오오오오!
천적 관계라도 되는 것일까, 와이번을 견제하며 울음소리를 내는 포르티스를 다독여 준 기준이 주위를 확인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외진 숲의 입구.
말라비틀어져 잎사귀 하나 없이 길고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뻗어 난 검은 나무들이 빽빽이 솟아 있는 숲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뭔가가 나타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몇 개월 전만 해도 울창한 숲이었다. 이 숲에서 나는 약초와 버섯 따위로 연명하던 작은 마을도 있었지. 하지만…….”
렉투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검게 그을린 흔적만 남은 커다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것이 마을이 있던 흔적이란 말인가.
숲과 거리가 멀지 않은 것을 보아, 마을의 몰락과 숲의 변화에 관계가 있음은 명백했다.
“어느 틈엔가 저렇게 되고 말았지.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인근 도시의 영주는 용병 길드를 동원해 수사에 나섰으나―― 결과는 전멸이었다.”
“그래서 왕실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건가.”
“그렇다. 하지만 귀공도 알고 있듯 왕실은 지금 다른 사건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어디에 짬을 때릴…… 이 일을 맡길지 고민하던 중 마침 파툼이 온 것이다.”
“방금 짬 때린다고 했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긴 병사들을 이끄는 기사는 현대 군의 영관 계급일 테니 군대 용어를 쓰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기준의 추궁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렉투스 옆에서, 파툼이 자신의 등에 매달린 대검을 뽑아 쥐며 앞으로 한 발 나섰다.
“그럼 진입하지.”
“바로 들어가는 건가?”
“숲 안에 어둠을 품은 자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놈 또한 우리를 감지했다면 도망치려 할 터, 그 전에 확보해야 한다.”
성큼성큼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파툼.
그 씩씩한 뒷모습에는 한 줌의 두려움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기준과 렉투스는 서로를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이곤 그 뒤를 따랐다.
슬슬 저 용사의 성격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피요오오오!
“그래, 포르티스. 너도 같이 가자. 숲 안에서도 움직일 수 있지?”
―피이잇!
날개를 씩씩하게 퍼덕이며 기준의 뒤를 따라오는 포르티스.
한편 와이번은 끝까지 포르티스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녀석의 엉덩이를 째려보다가는, 콧김을 훅 뿜어내곤 그들을 앞질러 제 주인의 등을 쫓았다.
그렇게 모두가 숲 안에 들어선 순간 기준의 눈앞에 시스템 알림이 나타났다.
―그라티아 왕국, 투리오(túrĭo) 숲에 진입합니다. 당신의 지금 수준으로 탐색이 어렵지 않은 곳입니다.
숲의 이름과는 달리 새싹과 녹음(綠陰)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숲을 돌아보며 기준이 숲 안에 도사리고 있을 어둠에 대해 가늠하고 있자니 루시가 조용히 말해 왔다.
―안에 어떤 녀석이 있는지 알 것 같아.
‘그래? 말라비틀어진 숲에, 루시가 알 것 같다면…… 혹시 드라이어드(Dryad)인가?’
―역시 계약자라니까!
드라이어드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무의 요정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요정은 비브 같은 날개 달린 작은 몸집의 페어리가 아니라 루시나 우르와 같은 정령과 비슷한 존재다.
나무에 깃들어 있어 그 곁을 떠날 수 없으며, 나무가 죽으면 함께 죽어 버리는 정령.
그런 드라이어드가 사는 숲이 이렇게 통째로 말라붙었다는 것은 결국 드라이어드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인데.
―맞아, 그게 이상해. 이런 환경에서 드라이어드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이 안에 있는 녀석은 살아 있거든, 더구나 기운도 강해. 유니크 상위는 되겠어.
‘어둠이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진짜인가 보네.’
파툼이 동행을 요청했을 때만 해도 용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는 마음에 수락했던 것인데 첫 건부터 어째 심상치 않다.
“와아, 용사 활동 분위기 끝내주네요……! 오늘 있었던 일을 책으로 쓴다면 제 이름도 한 줄 들어가겠죠?”
“비브 넌 들뜨지 말고 네 몸이나 잘 챙겨.”
“하지만 분위기만 음산할 뿐이지 아직 위험한 건 아무것도―― 꺅?!”
비브의 강력한 도발에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드라이어드가 곧장 응수했다.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던 나무가 돌연 뾰족한 나뭇가지를 뻗어 와 비브를 꿰뚫으려 한 것이다!
“우르!”
―킷!
나날이 교감이 깊어져 가는 만큼 우르의 반응 또한 순간적이었다.
허공에 피어난 정령의 불꽃이 나뭇가지를 단숨에 불태우고도 모자라 나무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리가 없어, 그 순간부터 숲 전체가 기이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비브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날아와 기준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저, 저 때문인가요?”
“그럴 리가. 숲 깊숙이 들어왔으니 이제 빠져나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공격에 나선 거겠지. 봐.”
수직으로 뻗은 기준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 비브가 헛숨을 토했다.
어느덧 키를 수십 미터 이상 늘린 나무들이 길게 뻗은 가지를 얼기설기 얽어,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한 창살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감옥과도 같았다.
―숲 전체를 영역으로 만드는 드라이어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마기가 더해지면 얘기가 다르지. 코를 찌르는 이 악취……. 흡혈귀보다 한 술 더 뜨는걸?
위기 따위는 털끝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듯 감탄사를 토해 내는 루시.
사실 기준 또한 염인으로 행세하는 지금 불에 잘 타는 나무를 상대로는 큰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는 셈이라 그리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어느덧 무작정 전진하던 것을 멈추고 일행에게 합류한 파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과연. 숲을 조종한다라…… 대충 알겠군.”
“파툼, 어쩔 거지? 전부 태울 수도 있는데.”
“흠. 염인의 능력은 실로 흥미롭지만―― 내가 하겠다.”
파툼이 손에 쥔 대검에 힘을 집중하자 짙은 금색의 오러가 검신 위로 솟아났다.
거기서 그는 묘한 행동을 취했는데, 검신에 대고 가볍게 숨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 순간 검신을 뒤덮은 오러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설의 권능, 브레스다.”
자신에게 뻗어 오는 나뭇가지를 가볍게 잘라 내며 렉투스가 말했다.
“순혈 드라코니안 중에서도 경지에 이른 자들만이 얻는 것이지. 위대한 드래곤의 권능, 그 일부를 온전히 깨우쳤으니 두려울 게 무엇이 있을까.”
그의 목소리에 담긴 선망과 질투를 읽어 낸 기준은 뭐라 말하는 대신 가만히 파툼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굳건히 선 채 무릎을 살짝 굽히고 검을 끌어당겨 자세를 취하더니, 다음 순간 그것을 전방으로 강하게 내질렀다.
그러자 오러와 합성된 황금의 불꽃이 파도처럼 뻗어 나가며 일대의 나무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기준 또한 다루는 힘의 크기가 크게 늘어났으나 감히 저런 광역기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바, 과연 용사라고 불러 마땅한 활약이었다.
불의 정령인 우르 역시 거기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눈을 크게 떴다.
―키이이…… 킷!
―10점 만점에 9점이라고 하네.
‘엄격하네, 이 정도면 10점 줘도 될 것 같은데.’
―킷킷, 키이잇.
―불꽃의 성질이 지나치게 난폭해서 1점 깎았대.
당장 숲의 3분의 1이 날아간 것에 더해 아직 기세가 죽지 않은 불꽃이 사방으로 번지며 검게 물든 나무들을 태워 버리고 있었다.
파툼은 대검을 이리저리 휘저어 사방에 휘날리는 재를 날려 버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래도 나오지 않는가? 내 생각이 맞는다면 도망치지는 못할 텐데.”
“그게 무슨 뜻이지, 파툼?”
“적은 아마 드라이어드의 변종일 것이다. 숲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나 숲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존재.”
파툼에게는 정령의 도움도 없을 텐데 놀랍게도 기준과 루시가 이른 결론에 자력으로 도달한 모양이었다.
“도망칠 걱정은 없으니, 숲에 있는 모든 나무를 태워 없애거나 베어 버리면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어째서 이런 마기를 품게 되었는지 묻고 싶다만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이――.”
그러나 파툼이 재차 브레스를 뿜어내려던 그 순간.
타지 않고 남아 있던 나무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제 스스로 뿌리를 뽑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자, 저거……!
‘그래.’
기준은 순식간에 한데 뭉친 나무들이 굵은 다리와 몸통, 팔, 마지막으로 머리를 만드는 것을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합체 로봇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