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4)
나 빼고 다 회귀자-114화(114/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114)
Chapter 22. 맨 인 골든 – 4
기준 없는 기준 파티의 분투는 실로 대단했다.
승급에 몸이 달은 지혜가 한없이 템포를 올린 덕에―― 비브가 찾아올 즈음엔 놀랍게도 이미 승급을 마친 상황이었던 것이다!
“헥, 헤엑…… 지혜 누님, 이제 우리 쉴 수 있는 건가요.”
“준 님과 대련할 땐 매번 10분도 안 돼서 퍼지던 사람이 대체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쌩쌩한 거죠?”
“냐냣, 나도 더는 한계냐. 더 움직였다간 내 꼬리가 똑 하고 떨어져 도망갈 거냐.”
물론 그 대가로 언제나 여유로운 틸라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던전 바닥에 나뒹구는 처지가 되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심지어 기준의 자산 취급인 나비냐마저 종족 등급은 이미 레어인 것이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은근한 자격지심을 품는 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혜는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월요일 오전 강의는 20분도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지만 주말엔 48시간 내내 게임하면서도 멀쩡히 버틸 수 있는 거랑 비슷한 거야.”
레어 등급으로 승급을 마치고 전신으로 한층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는 지혜가 우쭐거리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와중에, 그들을 찾아온 비브가 작게 박수를 치곤 선고했다.
“아무튼 승급도 마친 데다 멀쩡하다는 거죠? 잘됐네요, 지금부터 파티 단위 퀘스트 시작이에요.”
“아니, 잠깐만요. 우린 쉬어야 한다니까요!”
“이제부터 승급 기념 파티하려고 했는데 무슨…….”
“준 님이 기다리세요.”
비브는 그 말 한마디로 지쳐 있던 파티원들의 입을 다물게 하곤 그들을 곧장 아니모로 날려 보냈다.
피 같은 금화와 레타 포인트를 소모해 텔레포트 게이트를 탄 것인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코르에서 아니모로 향하는 텔레포트 게이트의 이용료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오, 오오……?”
“처음 코르에 도착했을 때도 놀라웠는데, 여기도 거기 못지않게 크네요. 와아…….”
“앗, 저기 마도구 상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커다란 탑이 보여요! 그라티아에도 마탑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게 그!”
공간 이동 능력을 갖추고 있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비브는 곧장 능력을 발현해 그들을 따라잡은 후―― 가만히 놔두면 코라도 베일 것처럼 촌놈 티를 내고 있는 일행을 이끌고 기준에게로 향했다.
참고로 일행보다 먼저 아니모에 도착한 기준 일행은 황족의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는 별장에서 정비하고 있었다.
“이젠 절 미들휴먼이라고 불러 주세요, 오빠!”
별장 로비의 소파에 걸터앉아 방패를 닦고 있던 기준을 발견한 지혜가 자랑스럽게 어깨를 펴며 외쳤다.
하이휴먼이 되기 전 단계라서 미들휴먼이라는 건가?
기준은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거짓말하지 마. 종족 이름 뭐냐.”
“아니 이걸 안 속네…….”
“마력이 피와 같이 흐른다고 해서 마혈(魔血)인이라고 하네.”
“언니!”
옆에서 웃고 있던 틸라가 그녀 대신 정답을 얘기해 주었다.
지혜는 그 종족명이 무척 구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직 그녀는 진정한 심연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이다.
기준은 지혜에게만큼은 결코 자신의 종족명을 말해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마혈인? 설마 하이휴먼을 목표로 하는 건가.”
“인간이 함께하고 있어 드물다고 생각했지만…… 대단하군.”
자존심 강한 두 인간이 종족명으로 신경전을 하는 가운데 파툼과 렉투스는 사뭇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이휴먼으로 승급하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는 이미 비브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기준이 그런 의문을 담은 시선을 보내자 렉투스가 설명해 주었다.
“마력을 포기하거나 신앙에 의존하는 등 안이하게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종족의 근원, 그 너머에 있는 초월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나. 하이휴먼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이다.”
“아직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가능성은 느껴지는군.”
입을 열었다 하면 빛이니 어둠이니 지껄이던 파툼마저 이번엔 순순히 지혜를 칭찬했다.
렉투스와 파툼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제법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 어깨가 으쓱해진 지혜.
한편 가만히 있다가 신앙에 안이하게 타협했다며 한 대 얻어맞은 로라는 렉투스를 째려보고는 기준의 등 뒤로 홱 몸을 숨겨 버렸다.
“흥.”
“아하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던 사제였다고는 믿을 수 없는 새침한 로라의 모습을 본 긴은 머리 위로 솟아난 삼각형 귀를 까딱이며 작게 웃곤 기준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희는 뭘 하면 될까요, 준 님?”
“그야 전투지. 미리 경고하지만 굉장히 위험할 거야.”
하지만 흡혈귀 왕국에 침투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위험할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흑마법사와 어둠 진영의 괴물들을 상대하는 이번 즉석 퀘스트는 루멘 파티의 시너지를 확인하고 파티 전술을 확립한다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되어 줄 터였다.
“너희가 지닌 대적자로서의 힘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되겠지.”
“은 탄환을 준비해야겠네요.”
“준 님이 바라신다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기준과 떨어져 던전에서 수련을 하고 온 긴과 로라는 한층 강렬하면서도 차분하게 정돈된 기세를 내보이며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두 사람 다 운명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사건을 통해 승급한 터라 스테이터스 평균만 놓고 보면 레어 등급에서는 압도적인 상위권.
스테이터스와 스킬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저는 상가를 비롯해서 큰 거리를 쭉 조사해 보고 올게요.”
일행이 재회의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있던 비브가 문득 말했다.
전투 요원들도 다 모였겠다 슬슬 비브는 위험한 현장에서 빠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퀘스트에 참여하려는 모양.
“독액을 가져갔다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어쩌면 아니모에 어떤 식으로든 그 독액이나, 실험의 다른 부산물을 유통했을지도 몰라요.”
“좋은 착안점이네.”
“좋아요. 그럼 나비냐.”
“냣?”
소지품으로 취급되는 덕에 혼자서만 게이트 비용을 내지 않고 무료로 넘어온 나비냐가 기준의 허리춤에 이마를 비비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왜 부르냐? 바쁜 일이 아니라면 나는 주인님한테 좀 더 냄새를 묻히고 싶냐.”
“아, 냄새를 묻히고 있었던 거구나.”
우르는 고양이처럼 생겼을 뿐 고양이다운 짓은 하나도 안 하는 탓에 반대로 나비냐의 행동이 무척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 녀석이 귀엽게 느껴져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고 있자니, 비브가 밉살맞은 미소를 지으며 나비냐를 기준에게서 떼어 냈다.
“바쁜 일이니까 따라와요. 실컷 준 님의 냄새를 맡았을 테니 거기 섞여 있는 흑마법사의 냄새도 맡았겠죠?”
“짜증 나는 비린내를 맡긴 했는데…… 냐악! 저 나방이 자꾸 나를 멋대로 조수로 부리려고 하냐!”
“나방이라고 하면 안 되지, 나비냐.”
“알았냐, 그럼 팅커벨이냐.”
“그건 더 싫은데요!”
나비냐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브를 따라나섰다.
저 콤비는 이미 저번에도 크게 한 건 해낸 적이 있기에 기준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캐트시……. 저들은 강렬한 직감과 때로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행운의 영역에서 사건을 해결한다. 좋은 수하를 들였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파툼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기준이 어떤 이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도 용사 시험의 평가 요소에 속하는 모양이다.
아까부터 기준과 관련된 모든 것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데 여념이 없는 파툼을, 기준의 파티원들이 슬슬 기피하기 시작한 시점에.
“그럼 그동안 우리는…….”
렉투스가 남은 일행을 한 바퀴 둘러보곤 제 투구를 눌러쓰며 제안했다.
“영주를 찾아 사건 해결에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에라도 놈이 이 도시 전체를 인질로 삼아 난동을 피운다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질 것이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기라도 할 건가? 괜한 혼란만 가중시키는 데다 놈이 눈치를 채게 만들 수도 있어. 차라리 놈의 위치를 알아낸 후 빠르게 들이닥쳐 손쓸 틈도 없이 제압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으으음…….”
기준의 반박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뇌하던 렉투스가 파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용사인 그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려는 것이다.
파툼은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윽고 두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발상을 입 밖에 냈다.
“영주가 놈과 한 편일 가능성은 없나? 놈이 굳이 이런 대도시에서 얌전히 머무르고 있는 시점에서, 영주를 의심해 볼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보는데.”
“뭐? 흐음…….”
반사적으로 반문한 기준이 여태껏 자신이 겪은 레타 대륙이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반면 렉투스는 질색하며 대꾸했다.
“파툼, 아니모의 영주는 흡혈귀가 아니다. 저번 사건 이후로 중요한 직위에 있는 귀족들은 모조리 점검을 마쳤어.”
“흡혈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놈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파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20년 전 당시 프랑켄슈타인이 거대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비단 그의 연구가 어둠 진영을 부흥시켰을 뿐만 아니라, 빛의 진영에도 그와 내통하며 제 뜻을 이루려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측 진영의 욕망이 팽배해 끝내 거센 충돌을 일으켰기에 역사에 남은 재앙이 된 것이지.”
“프랑켄슈타인의 연구를 지원한다면…… 죽은 이를 부활시키려고?”
“혹은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군단을 원했던 것일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일행은 비브가 한차례 조사를 마치고 온 다음에 다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로 했다.
“후, 그럼 그동안…….”
―파티다!
“제 승급 기념 파티 해 주세요, 오빠!”
지금 루시는 모습을 감추고 있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텐데 기가 막히게 지혜와 맞물렸다.
기준은 자신한테 맡겨 놓은 것 있냐는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째렸지만 결국 픽 웃어 버렸다.
일전을 치르려면 그 전에 든든히 먹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좋아, 그럼 괜히 이상한 거 옮지 않게 면역력 가득한 식재료들로 푸짐하게 차려 주지.”
“제가 장담하는데 오빠, 아무리 면역력이 좋은 식재료를 써도 저주나 독을 상대로는 아무 의미 없어요.”
언제나처럼 촌철살인을 시도하는 지혜는 무시하기로 했다.
* * *
지금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황족이 보유한 별장으로, 태자인 렉투스의 권한으로 들어와 있어 지극히 안전했다.
“파티니까 역시 피자가 있어야겠지. 오늘 메인 메뉴는 버섯과 마늘을 듬뿍 올리고 고구마 무스를 두른 피자다.”
“면역력을 포기할 생각은 없구나, 오빠.”
기준은 피자 반죽을 빚더니 금세 커다란 원판 형태로 늘려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는 토핑을 가득 채웠다.
피자에 고기가 빠지면 섭섭하므로 버섯, 마늘과 함께 하티 고기도 적당히 썰어 올리고 치즈로 그 위를 새하얗게 덮은 다음.
뭉근하게 삶은 고구마에 우유와 꿀, 소금을 섞어 달고 짜게 만든 고구마 무스를 엣지 부분에 둘러 마무리했다.
“으음…… 늘 생각하던 거지만 준은 정말 레퍼토리가 풍부해. 나중에 고급 레스토랑을 차려도 되겠는걸.”
그가 요리를 하는 사이 등 뒤로 다가온 틸라가 검지를 내밀어 고구마 무스를 찍어 먹어 보더니 쿡쿡 웃으며 말했다.
기준은 광 마력과 빛의 정령력을 한껏 불어넣은 피자를 오븐에 넣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레스토랑, 나쁘지 않네. 한가해지면 생각해 봐야겠어.”
“나도 염인으로서 요리 하나는 자신 있어. 불 관리는 맡겨 줘.”
설마 날 빼놓고 음식점을 차릴 생각은 아니지? 하고 덧붙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틸라.
기준이 그 말에 당황해 눈을 끔벅이고 있자니 틸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 뒤에서 묶어 올린 머리카락이 말 꼬리처럼 깡충깡충 튀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진지하게 고민해 주니 고마운걸? 부담을 주려고 했던 말은 아닌데. 그럼 일단 시험이라도 해 보는 게 어때?”
“무, 무슨 시험?”
순간 머릿속으로 무수한 가능성을 떠올린 기준이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 이 섬세한 염인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고뇌하던 그때.
“레스토랑 직원 채용 시험 말이야.”
그녀가 덧붙인 말에 기준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 그렇지. 괜찮은 생각이야.”
“그렇지?”
틸라가 눈웃음을 치며 능글맞게 웃었다.
기준은 그녀가 일부러 헷갈리게끔 말한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괜히 당황하거나 되레 성질을 내며 그 사실을 언급하면 지는 셈이 되므로――.
염인의 가면으로는 같은 염인인 그녀에게 감정을 온전히 숨길 수 없다.
냉정한 흡혈귀 사냥꾼의 가면은 아군인 그녀를 상대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기준은 곤란에 맞서기 위한 인격의 갑옷, 페르소나 ‘마스터 셰프’를 불러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디 시험해 볼까. 여기 있는 면역력 가득한 단호박으로 맛있는 스프를 만들어 줘야겠어. 엄격하게 채점해 주지.”
“아, 그건 안 돼. 스프는 준이 해 준 게 제일 맛있으니까.”
스프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젓는 틸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람만은 절대 직원으로 뽑지 말아야겠다고 마스터 셰프는 굳게 다짐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불 조절 능력을 살려 구워 낸 스테이크는 과연 자신할 만큼 맛있었다.
“바로 알아냈어요, 준 님. 그 사람―― 마탑에 있어요! 콧대 높고 오만한 마법사들 무리에 파묻혀 뻔뻔하게 마법사 흉내를 내고 있다고요!”
문제는 그 직후 비브가 가져온 싱싱한 소식에 입맛이 다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