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27)
나 빼고 다 회귀자-127화(127/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27)
Chapter 25. 우리 파티는 연애 금지야 – 2
레타의 다른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한국식 치킨을 전부 먹어 치우고서야 간신히 한숨을 돌린 일행은 비로소 예민 파티가 예정보다 빨리 코르를 찾게 된 이유…… 즉 소환자로 위장한 흡혈귀들의 선동으로 인한 흡혈귀 왕국 원정대 조직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양손으로 지혜의 양쪽 볼을 길게 잡아 늘이며 예민이 먼저 발언했다.
“흡혈귀를 암살한다고 했었죠……? 신이 능력이라면 한둘은 가능할지 몰라도, 흡혈귀들끼리도 소통이 이루어지는 이상 원정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흡혈귀 전부를 암살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봐요.”
“아야야야야야, 놔줘, 놔줘――.”
“힘들까? 저번엔 통했는데.”
고작 조금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저렇게 과격한 인사를 나누다니 과연 절친이군, 하고 생각하며 기준이 답했다.
이는 기준과 두 왕실 기사가 함께 며칠간 텔레포트 게이트를 탈 것 대신 사치스럽게 이용하며 그라티아를 일주했던 때를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혜를 구출하려 시도하는 은신의 손을 간단히 피해 내곤 다시 지혜의 볼을 꼬집으며 예민이 말을 이었다.
“저번에 통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엔 대비하고 있지 않을까요. 저도 원정대에 숨어든 흡혈귀들을 소탕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세부적인 계획은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원정대에 잠입하는 거예요.”
“응?”
“오빠도 알겠지만 전 사람들 시선을 끌어모으는 데는 자신이 있거든요. 단숨에 원정대의 중심이 될 수 있어요.”
이 자리에 오기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예민은 막히는 것도 없이 척척 말을 이었다.
출발까지 고작 3일 남은 원정대, 그것도 지금은 여러 부대로 나뉘어 있는 수백만 원정대의 중심이 되겠노라고 선언하는 예민의 모습은 무척 멋있었지만, 그녀에게 볼을 붙들려 있는 지혜의 숨은 슬슬 막힐 것 같았다.
“원정대는 그라티아의 도시 여러 군데서 동시에 조직되고 있어요. 더구나 원정 날짜도 모두 같고요. 이들 원정대를 다 다른 데로 유인할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식으로든 일단 흡혈귀 왕국이라는 곳으로 직접 들어가서―― 한꺼번에 모아 죽이든 하겠죠.”
기준과 파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왕국 내에 귀족과 관리로 잠입해 있던 흡혈귀를 싹쓸이당한 것에 어지간히도 열 받았던 것이리라, 이번 흡혈귀들의 행동은 굉장히 조직적이고 또 방대했다.
모르긴 몰라도 왕국 내부에 사람 수백만 정도는 쉽게 묻어 버릴 수 있는 함정을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제가 원정대의 중심이 되면 흡혈귀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도 늘어날 테고, 원정대가 한데 모이는 순간도 캐치하기 쉽겠죠. 그때가 바로 놈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예요. 물론 흡혈귀들에게 당한 것처럼 위장할 생각이지만.”
원정대의 수뇌부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함정으로 유인하려던 흡혈귀들을 처리하면서, 오히려 흡혈귀들에게 단숨에 수뇌부가 전멸당한 것처럼 위장할 셈이라는 얘기다.
만약 흡혈귀들이 자신들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안다면 죽어도 눈을 편히 감지 못하리라.
“그렇게 되면 아무리 생각 없는 인간들이라도 위기감이 들겠죠. 그때 수뇌부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제가 나서서 철수를 주장하면 그들도 거부하지 못하고 따를 거예요.”
위험도가 단숨에 폭등한 것 같은데.
그녀가 제시한 방법에는 빈틈이 여러 군데 보인다는 것 외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설령 흡혈귀들을 쓸어버리는 데 성공한다고 쳐도 그 타이밍이 너무 애매해. 흡혈귀들이 한데 모인 때면 이미 위험하잖아. 그대로 함정에 목을 들이미는 꼴이 될 수도 있어.”
“――맞아!”
볼이 두 배로 부어오른 지혜가 그즈음에 간신히 예민에게서 탈출해 외쳤다.
“민이 너 튜토리얼 2회 차부터는 그런 대담한 짓 안 했잖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그냥 할 수 있어서 하는 거야. 많은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
기준은 멋들어지게 단언하는 예민에게서 10년도 이상 전, 백만의 지구인을 이끌던 용사의 모습을 보았다.
역시 변함없이 멋진, 용사의 표본이라 불려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살짝 질투심을 느끼는데.
어째선지 기존 예민 파티의 멤버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준은 당연히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은 그가 없던 10년간의 튜토리얼 2회 차의 기억에 의거한 타당한 감정이었다.
“민아, 초조해진 건 알겠다만 목숨을 잃으면 모든 게 다 끝이야. 이제 우리에겐 기회가 더 없어.”
목수의 말에 예민은 옅게 웃어 보였다.
“아저씨는 빠지셔도 돼요. 하지만 신아, 네 힘은 필요할 것 같아.”
“저야 누나가 한다면 당연히 같이 하겠지만…… 누나, 진짜 하실 거예요? 그야 물론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커요.”
걱정하는 표정으로 은신이 답했다.
지혜의 늘어난 볼따구니에 대한 걱정도 섞여 있어 한층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저 많은 사람이 전부 위험에 빠질 거야. 신이 네가 암살에 나서면? 장담컨대 그렇게 몇 명 암살하는 식으로는 결코 원정대가 와해되지 않아. 오히려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커. 결국 우리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해.”
원래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욱 강하게 튀어 오르는 것이 사람의 의지다.
특히 흡혈귀 소란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불온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지금, 원정대의 수뇌부가 흡혈귀라는 이유로 원정을 막는다면 오히려 왕실이 흡혈귀를 무서워해 거짓말까지 한다며 반발할지도 몰랐다.
지난날 재판장에서 기준이 이오 데펙트를 직접 죽여 흡혈귀라 증명했던 것이 통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재판장에 있던 모두가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이었을뿐더러 그 여자가 죽는 광경을 보며 흡혈귀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이 갖춰진 사람들만 모여 있었기 때문.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상대로 흡혈귀가 수뇌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들을 직접 죽인다고 한들 과연 몇 명이나 그것을 믿어 주겠는가.
최소한 골드 로저를 처형한 광장에 그 사람들을 모조리 모아 놓고 공개적으로 흡혈귀들을 처형하지 않는 한은 무리일 터다.
“오히려 놈들은 상태창 위장까지 마쳤으니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붙일지도 몰라. 그러면 진짜 끝이야.”
“그래도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 방법이오. 차라리 내가 나서는 것이 좋겠어.”
렉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치듯 말했다.
마치 이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서는 것이 참 꼴사나웠다.
“그라티아의 태자인 내가 원정대를 이끌겠다고 말하면 그 누가 반대하겠는가? 정당성도 확보될뿐더러 백성들 모두 내게 주목할 수밖에 없을 터! 그대가 말하는 작전을 수행하기에 나보다 더한 적임은 없을 것 같군.”
“내용은 그럴듯한데 저 말투 때문에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네.”
“국왕의 허락을 받을 자신은 있나?”
파툼이 툭 내뱉는 말에 렉투스의 인상이 참혹하게 구겨졌다.
참고로 파툼 또한 기준과 동향인 이들을 알게 되면서 그가 염인이 아니라 인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런 힘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탄할지언정 그를 경멸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 대륙에서 가장 귀한 피로 취급받는 드라코니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폐하께선 그리 좋아하시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녀린 여성에게 그런 위험한 일을 떠맡기고 나는 편히 뒤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
“방금 네가 한 말을 민이가 제일 싫어한다는 건 둘째 치고, 아마 통하지 않을 거다.”
졸지에 가녀린 여성이 되어 버린 예민이 보내오는 싸늘한 시선에 렉투스가 침몰하는 것을 확인한 기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냐면 원정대는 왕실을 합류시킬 생각이 없을 테니까.”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 준. 내가 귀공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왕실 또한 원정대에 참여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물고 늘어지려는 렉투스.
기준은 한결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왕실에 공식적으로 원정대 참여를 요구하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나?”
“그 누가 감히 왕실에 요구하겠는가!”
“그래, 그거다.”
기준이 고개를 냉큼 끄덕였다.
렉투스 또한 그제야 기준이 한 말의 의도를 깨달은 듯했다.
“설마……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원정대에 참가하겠다고 말해도?”
“모르는 척하겠지. 책임자의 소재를 흐리며 피해 다니다가 원정 날짜가 되어 ‘처음부터 왕실은 원정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고 선언해 버리면 끝이다. 수뇌부는 흡혈귀들인데 왕실의 권위가 뭐가 두렵겠어?”
적어도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의도, 심지어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일인데, 거기에 필요한 준비물은 딱 두 가지였다.
목소리가 큰 사람과, 맹목적으로 뭔가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
공교롭게도 지금 그라티아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 비열한…….”
“생각해 보면 원정대가 조직된 것과 동시에 왕실에 대한 반감이 들끓는 것부터가 이상해. 원정대를 조직하기도 전부터 꾸준히 왕실에 대한 인식을 조작하고 있었다는 증거지. 그 이유도 간단한데, 바로 왕실에 흡혈귀를 가려 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과연, 그렇군……!”
기준이 이번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흡혈귀들을 가려 내 죽이는 퀘스트를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감추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숨어 있던 흡혈귀의 정체를 밝히고 처단한 자리에는 모조리 왕실이 관여되어 있었고, 그것은 흡혈귀들로 하여금 ‘그라티아 왕실에 흡혈귀를 가려 내는 능력자가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시기만 놓고 보면 기준 또한 수상하긴 하지만 아직 확신은 하지 못할 터.
“그러니 나랑 왕실을 한데 묶어 견제하고 있겠지. 당연하지만, 렉투스를 받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내가 원정대에 참여한다고 해도 받아 주지 않을 거야.”
“치가 떨릴 만큼 비겁한 공작이군. 흡혈귀 놈들이 소환자 행세를 하는 것만으로 이런 끔찍한 일이 가능해지다니.”
이를 갈며 분노하던 렉투스가 예민을 돌아보며 두 눈을 촉촉하게 빛냈다.
“그대에게 이런 무거운 임무를 맡겨야 한다니 내 마음이 편하질 않아.”
“태자님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닌데요.”
그에게 떨떠름하게 답한 예민이 기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 시켜 주세요. 그동안 혼자 고생했잖아요. 밸런스를 맞추려면 저도 이 정도는 해야 돼요.”
“밸런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아. 뭣보다, 무슨 문제가 터졌을 때 내가 널 지켜 줄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려.”
기준은 순수하게 파티의 탱커로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예민에겐 제법 그 의미가 무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려는 듯 일부러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제가 걱정이 됐으면 좀 더 빨리 불러 주지 그랬어요. 오빠 옆구리에 딱 붙여 놨으면 안심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별개지. 지금 이건―.”
딱 잘라 답한 기준이 뭐라 더 말하려는데 예민이 손을 내밀어 그의 입을 막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고 싶어요, 오빠. 저 잘할 수 있어요. 절대 안 다칠게요.”
그때 옆에서 뻗어 나온 틸라와 로라의 손이 경쟁하듯 예민의 손을 쳐 냈다.
여자들의 치열한 기 싸움(물리)을 눈치채지 못한 기준은 자유로워진 입을 열어 다른 이유를 찾았다.
“……신이도, 위험하고.”
“저는 괜찮아요, 형. 제 능력 잘 아시잖아요.”
은신이 예민을 말려 주길 바랐는데― 역시 이 파티의 리더는 예민이어서일까, 그까지 예민의 편을 들었다.
작전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데 기준이 그 이상 말릴 수도 없는 노릇.
결코 이럴 의도로 이들을 부른 것이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기준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예민이 잽싸게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기회이기도 해요, 오빠.”
“무슨 기회? 아.”
“흡혈귀 놈들이 무슨 함정을 준비했든, 수백만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면 적잖이 신경을 써야 하겠죠. 모르긴 몰라도 전력의 몇 할은 이쪽으로 빠지지 않겠어요?”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하는 말이야?”
“이쪽에 전력이 쏠리는 만큼 잠입이 수월해지리라는 건 알고 있어요.”
아마도 그녀는 처음 작전을 입에 담은 순간부터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기준이 입을 다물어 버리자 예민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 걱정되면, 늦기 전에 오빠가 쿠드라크인지 뭔지 하는 놈들 우두머리 목을 따 주세요. 전 오빠만 믿을게요.”
“으으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민의 작전을 회의적으로 여기던 파툼이 침음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수개월 뒤로 예정되어 있던 잠입 작전을 앞당기자는 말인가.”
“놈들의 작전을 역이용해 주자는 거죠. 이 이상의 적기가 있나요?”
기실 파툼은 흡혈귀들의 뜻대로 놀아나는 원정대가 멍청하다 여길지언정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뭔가 일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는 그의 직책인 빛의 용사가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입장인 만큼, 그가 놓인 저울의 반대편에 무능한 백성 수백만을 올려놓는다 한들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마저 미끼로 이용해 그사이에 쿠드라크의 우두머리의 목을 노리는 작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사시에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아티팩트를 빌려주지. 제국의 보물이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 주시면 너무 고맙죠. 역시 용사님이시네요!”
파툼의 입에서 사실상의 동참 선언이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기준으로서도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예민과 은신이 터무니없이 큰 위험을 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비체가 도와주러 오겠다고 한 날짜를 맞추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아, 그러고 보니.”
비체를 떠올리던 기준은 바로 오늘 그녀로부터 받은 메시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파툼, 흡혈귀들이 스테이터스를 위장했다는 사실을 시스템에 알려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던데 혹시 그것과 관련해 알고 있는 바가 있나?”
“그것이라면 나도 이미 제국에 긴급 보고를 올리며 논의한 바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신탁을 받는 데 성공했다.”
“신탁?”
“그렇다.”
지식이 없는 이들은 알아듣기 힘든 얘기라, 기준과 개인적으로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파툼이 말을 이었다.
“우선…… 그랜드 퀘스트가 선언된 것은 알고 있나? 그랜드 퀘스트란 빛의 진영과 어둠의 진영 간에 거대한 충돌이 벌어질 때 신들에 의해 직접 선언되는 것으로, 이 경우 빛의 진영 ‘그라티아’와 어둠의 진영 ‘쿠드라크’ 사이에 일어나는 퀘스트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어.”
당장 기준이 해결한 히든 퀘스트들 가운데 ‘그랜드 퀘스트의 보상이 증폭된다’는 언급이 나왔던 것이 몇 개나 되지 않던가.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경우, 히든 퀘스트를 여러 개 수행하며 차곡차곡 보상을 쌓아 온 기준은 터무니없는 성과를 얻게 될 터였다.
“그렇다면 얘기는 빠르군. 감히 스테이터스를 위장해 신성한 시스템을 능멸한 대가로, 이번 그랜드 퀘스트에서 어둠의 진영은 성유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끝인가?”
“끝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준은 좀 더 화끈한 처벌, 예를 들면 상대측에 있는 레전더리 등급 적 가운데 셋이 즉사하거나, 봉인되거나 하는 것을 원했다.
그런데 고작 성유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끝이라니, 김이 새다가도 또 일전에 파툼이 보여 주었던 고유 영역의 힘을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듯하기도 했다.
“실망할 것 없다, 준. 이는 매우 파격적인 처사니까. 감이 잘 안 오는 것 같다면 내가 친히 말해 주건대, 제국의 황궁 중심부에는 거대한 성유물이 박혀 있다. 최후의 순간 그것을 발동해 적을 멸절하는 것이 역할이지만, 다행히 여태껏 한 번도 발동한 적이 없다.”
“그럼 혹시 쿠드라크의 왕국에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본래 내 성유물로 쿠드라크의 성유물을 막을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내 성유물의 힘을 온전히 놈들의 우두머리를 베어 내는 데 활용할 수 있지.”
성유물이니 고유 영역이니 하는 얘기를 아직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은 나란히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으나, 기준은 파툼이 이미 결심을 마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전력으로 임해 최대한 다른 이들의 피해를 막아 내는 수밖에 없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기준은 음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민이 넌 나랑 단둘이 얘기 좀 하자.”
“네, 넵!”
튜토리얼 1회 차 당시의 기준에게선 볼 수 없었던 박력 넘치는 모습에 예민이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나 이미 그 패턴에 몇 번인가 당해 본 틸라와 로라는 여태 기 싸움을 벌였던 것도 잊고 그녀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럼 다 정해졌네요! 이번 일은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원정대라면 일단 대량으로 물자를 반입하면 환영받지 않겠어요? 물자 하면 요정 상인의 전문 분야죠!”
“있었구나, 비브.”
“너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