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6)
나 빼고 다 회귀자-146화(14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46)
Chapter 29. 심연 – 1
악룡은 분명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맞았다.
날갯짓 한 번에 대마법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굉음을 내며 찢어지는 대기.
떨어진 비늘 하나에 수만 리터의 산을 쏟아부은 것처럼 녹아내리는 대지.
숨결을 타고 번진 저주로 인간에겐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독으로 화하는 일대의 마나.
―크아아아아아악!
결코― 결코 저렇게 하늘을 가득 메운 수백 미터 굵기의 촉수에 제압당해,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존재는, 기준의 식견이 좁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대륙에서는 쉬이 찾아볼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그 존재는 외부에서 찾아온 것이다.
“아, 아아…….”
“……비체.”
기준은 평소 비체가 보낸 메시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르게 확인한다.
이미 레타를 오랫동안 겪은 그녀가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상당히 큰 도움이 될 때가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의 메시지를 보는 것만으로 기준에게는 큰 활력이 되어 주었으니까.
그래서 아까 비체가 그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며 짜증을 내는 메시지를 보냈을 땐 조금 웃었고, 갑자기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을 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결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발라히아 상공에 ‘마왕’으로서 강림한 이때 비로소.
기준은 어째서 비체가 자신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요정 피해 보상금. 페어리가든 문명의 요정들이 낸 벌금―― 올해 세금의 추가분 3할 가운데 절반을 내가 받기로 되어 있었어!’
그것을 바로 비체에게 보낸다는 선택을 한 후, 머릿속에서 곧 그 사실을 지워 버린 탓에 지금까지 그런 것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먹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세금이 정산되면서 자연히 보상금도 책정, 분배되었고― 그것을 전달받은 비체는 본래 한참 미달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비용이 바로 충족되며 레타로 직접 강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 저건…….”
와이번의 등에 올라탄 채 악룡을 향해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려던 파툼이,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검은 촉수들이 악룡의 몸을 갈기갈기 잡아 뜯는 것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건 레타의 힘이 아니다. 악룡조차 저 존재를 불러내기 위한 매개에 불과했단 말인가……?”
“아니, 저 사람은 내 스승이야. 날 도와주러 온 거다.”
기준의 즉답에 파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찌 접했단 말인가?”
“튜토리얼에서. 그녀가 ‘시험관’이었어.”
물론 그녀는 튜토리얼에선 저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구사한 적이 없지만―.
튜토리얼이 끝나고, 기준을 10년간 단련시키면서.
처음 그에게 변화 계열 스킬에 대한 강의를 할 때 한 번, 그와 마지막 대련을 치르면서 한 번.
저 끔찍한 능력의 편린을 내보인 적이 있다.
그것이 일부 드러난 것만으로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설마 시스템이 공언한 에픽 등급의 적을 상대로마저 저렇게 몰아붙일 수 있을 줄은.
“지금 농담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기준조차 그런 상황인데 파툼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해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재앙이란 말이다. 그것이 힘을 감추고 튜토리얼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조차 납득할 수 없는데, 그것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파툼, 그녀에겐 확실한 인격이 존재하고, 나와 친밀하니 ‘그것’이란 표현은 그만뒀으면 하는데. 실제로 그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알잖아?”
두 재앙이 날뛰는 가운데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기준과 파툼 정도.
나머지는 애초에 악룡이 태어나며 발현한 압도적인 위세에 몸이 굳어 입조차 열지 못하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비체가 나타나며 그 디버프를 한층 강화시켰다.
특히나 비체가 다루는 저 능력은― 기준은 악룡이 돌아간 순간부터 발동한 그의 체내 시계가 그녀의 능력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한층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상태 이상을 무시하는 그의 고유능력조차 저것을 받아들이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저항에 성공해 내겠지만, 그 과정이 길고 조금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믿을 수 없는 나를 용서해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경거망동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파툼은 당장에라도 돌진하려던 것을 멈추곤 숨을 고르며 그런 말을 해 왔다.
설령 비체가 적이라고 해도, 그녀가 악룡을 상대하는 지금 섣불리 적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기준은 만약에라도 그녀가 전투를 끝낸 후 파툼이 그녀를 공격하면 어쩌나 싶어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오해가 있어도 대화로 풀어야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기준은―.
―캬아아아아아! 너는!
그때 악룡이 촉수에 의해 절반 이상 찢겨 나간 몸을 순식간에 재생시키며 입을 열었다.
오늘 치고받고 싸우며 제법 익숙해진 가시공의 목소리가 절반, 그보다 한층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절반 섞여 기괴한 목소리를 발하고 있었다.
―외계의 마왕! 네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그 목소리는 검은 하늘 아래 울려 퍼지며 그것을 듣는 이의 심신을 불길하게 진동시켰다.
가시공이 존재만으로 다른 이를 위축시켰다면, 악룡은 저주가 담긴 목소리를 퍼트려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다.
기준은 저것이 설령 가시공을 포함한다 할지언정 이미 이전의 그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직감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상태 이상이 연달아 덮쳐 오는 탓에, 기준의 체내 시계도 단번에 그것에 저항해 내지 못하고 일종의 ‘연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기준이 다급히 품 안의 성유물을 발동시켜 일행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약한 이는 지금쯤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렉투스는 악룡의 등장 이후로 완벽히 정신을 잃어 와이번의 등에 꽁꽁 묶여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그러나 거대한 악룡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약자들의 마음 따위는 알 길도 없이 마왕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마왕,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아는가! 그랜드 퀘스트의 대미를 방해하다니!
“물론이지, 나도 상황은 대충 파악하고 있어.”
하늘을 찢고 내려오는 거대한 촉수들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박쥐 날개를 펼친 채 허공을 부유하며 그녀는 입을 열어 느긋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양쪽 뿔 위로 솟아난 검은 마력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뻗어 하늘과 이어져 있는 것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내가 이렇게 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게 뭣 때문이라고 생각해? 네가 먼저 반칙을 했기 때문이잖아?”
―반칙? 무슨――!
“쓰지 말라는 성유물을 썼잖니. 시치미를 뗄 생각이야? 뭐, 덕분에 나는 페널티가 줄어들어서 움직이기 편해졌지만.”
이럴 수가.
설마 가시공의 꼼수가 발각되어 이런 식으로 간접적인 처벌이 이루어질 줄이야!
기준은 가시공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놈이 성유물을 조작하고 있는 것을 보곤 역시 레타 대륙의 균형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의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을 비체가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녀 또한 어둠의 진영이라고는 하지만!
‘어라, 결국 비체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우린 그대로 에픽 등급의 악룡과 격돌해야 했다는 얘기 아냐?’
그런 생각이 떠올라 다시금 기준에게 시스템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 주었지만 지금은 굳이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네 위치를 착각하지 마라! 너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건 네 생각이고――! 찢어져 버려!”
―쿠화아아아악!
그러는 사이에도 비체는 다시금 수십 줄기의 촉수를 조종해 악룡을 붙들고 있었다.
악룡은 세상을 모두 태울 수도 있을 암흑의 불길을 피워 내고.
자신의 비늘을 사방으로 쏘아 내고 다시 그것을 작은 용 형태의 몬스터로 만들어 내 반항했지만.
그 모든 것이 비체가 조종하는 촉수와, 그녀로부터 발산되는 검은 번개와 같은 형태의 마력으로 인해 무(無)로 돌아갔다.
기준을 상대로는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별이라도 그대로 붙잡아 쪼갤 수 있는 듯한 압도적인 위용.
그것을 보며 기준이 설마 이대로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무렵.
“쭌, 준비해!”
돌연 비체가 목소리를 높여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끝장낼 수는 없어, 슬슬 힘이 달리는 데다 그런 계약이기도 하거든! 대신― 원래 수준으로까지 힘을 낮춰 줄게! 그 정도면 잡을 수 있지?”
“물론이지!”
씩씩하게 대꾸하며 기준이 파툼에게 눈짓했다.
정말로 자신이 그녀와 친한 사이이며, 그녀가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한 것인데― 역시나 파툼은 형언하기 어려운 두려움과도 비슷한 표정을 얼굴에 띠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일단 알겠다― 우선은 저 존재의 말에 따르는 걸로 하지. ……그건 그렇다 쳐도,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레타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고 했으니 그때 들어 본 거겠지.”
“농담하나? 내가 저 정도 존재와 적으로 만났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파툼이라 할지언정 홀로 악룡을 밀어붙이고 있는 비체를 앞에 두고 강한 척을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두 사람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돌격 준비를 하는 사이, 비체는 본격적으로 적의 힘을 약화시켰다.
―레타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연이네,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 이제 그만 내려올 시간이야!”
악룡의 몸통을 칭칭 감싼 촉수들의 사이사이로 금이 내달리는가 싶더니, 시뻘겋고 날카로운 톱니 이빨을 드러내며 한껏 입을 벌려 악룡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이제야 그녀의 능력이 무슨 계통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에 저 멀리서 능력을 구사하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상태 이상 저항 스킬이 발동하는 능력 계통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까 악룡이 ‘외계’라는 말을 입에 담았던가?
분명하다.
그녀는 지구에서 흔히 크툴루 신화라고 불리는,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나오는 외신들의 힘을 다루는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악!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어! 결코!
“응, 슬슬 네 본 목적도 잊어먹을 거라고 생각했어.”
악룡의 신체 일부가 ‘영구적으로’ 소실되어 간다.
그것은 단순히 살점을 베어 먹는 것이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인 포식― 예를 들면, 여태껏 가시공과의 전투에서 핵심이 되어 왔던 ‘피’나 ‘영혼’의 강탈에 가까웠다.
“그러게 영혼을 왜 바쳤어, 네 원래 의지는 그런 게 아니었잖아.”
금세 너덜너덜해져 가는 악룡과는 달리, 정작 그런 끔찍한 힘을 다루는 비체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투로…… 마치 원래의 가시공을 아는 것처럼 말을 늘어놓다가는―.
“여기까지네. 더 망가트려 놓고 싶긴 한데― 이 이상은 내가 위험하겠어.”
―마왕―! 후회할 것이다, 후회…….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던 등장 때와는 달리 반쯤 구겨진 쓰레기 같은 몰골이 된 악룡의 모습을 확인한 후.
돌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촉수들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시커멓게 열렸던 하늘이 닫히고, 본래 발라히아의 상공을 지배하던 검붉은 먹구름이 돌아왔다.
비록 그 가운데 크게 베어 먹힌 구멍이 남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곤 어디에서도 거대한 촉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거대한 힘들이 갑자기 소실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혹시 비체까지 덩달아 사라진 것이 아닐까 긴장한 기준이었지만.
“준, 혹시 먹을 것 좀 있어?”
나지막이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비체의 목소리를 듣고 간신히 안심할 수 있었다.
비체는 어느덧 그의 뒷자리를 점하고 그리핀 위에 앉아 있었다.
오토바이에 같이 타고 고속도로라도 질주하는 것처럼 그의 가슴팍을 양팔로 뒤에서 껴안고 있는 것은 덤이었다.
비체가 나타난 순간부터 말이 없던 루시는 그것을 보자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해 폭발했다.
―이 악마가 오랜만에 보자마자!
“오해하지 말고 진정해 봐, 정령아. 난 혹시라도 준이 다칠 때면 페널티를 감수하고라도 빠르게 능력을 발동하려고 대기 타고 있는 거야.”
흑심 따윈 조금도 없다는 듯 담백한 목소리로 말하는 비체였으나 기준은 자신의 등과 맞닿은 그녀의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알았다.
기준이 반가운 것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는 그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겠지.
한껏 여유를 가장하고 있지만 그녀가 내심 초조해하며 발을 굴렀을 것을 그는 안다.
이제 그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빨리 먹을 거. 네가 만들어 놓은 걸로 줘. 있지?”
“지금? 그야 있긴 한데― 그건 너한테는 독…….”
“응, 아냐. 최고 보약이니까 빨리 줘.”
다급한 말투로 말하는 비체에게 어쩔 수 없이 이전에 잔뜩 만들어 둔 베이비 슈를 한 상자 꺼내 넘겨주자, 그녀는 슈 몇 개를 한 입에 던져 넣고 우물거리며 푸후― 하고 한숨을 토해 냈다.
“냠― 이제 좀 살 것 같네.”
“……진짜 괜찮은 거야?”
그녀가 다루던 촉수는 아무리 봐도 어둠/악 속성 그 자체.
그런 힘을 다루는 그녀가 기준이 만든 빛과 영혼의 힘이 담긴 요리에 타격을 받지 않을 리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 와 지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비체는 태연히 슈 몇 개를 더 집어먹으며 대꾸했다.
“방금 봤지? 우물우물…….”
“응.”
“꿀꺽, 실은 부작용이 제법 있는 능력이거든. 신체도 그렇지만 특히 정신 쪽으로.”
그럴 것 같기는 했다.
사실 지금도 비체의 마력이 안정되지 않고 날뛰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믿을 수 없게도 기준이 넘겨준 베이비 슈였다.
“사실 네가 없었다면 이렇게 마음껏 능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을걸? 넌 아직도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구나?”
“넌 예전부터 내 요리만 대단한 것처럼 말할 때가 있어.”
“후후, 그럴 리가 없잖아. 네 정말 대단한 점은 요리 말고 따로 있는걸.”
이제 슬슬 쟤도 준비가 된 모양이네, 하고 비체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비체 탓에 파 먹힌 상처를 수복하느라 몸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족히 3분의 1 크기로 줄어든―.
그럼에도 여전히 서사시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음을 확신하게끔 하는 위압감을 내비치는 검은 비늘의 악룡이 거대한 날개를 홰치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저것이 밸런스 패치가 된 결과라고 생각하니, 결국 저 괴물도 절대적인 존재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 실감되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저항 성공. 보유한 모든 스킬과 칭호에 매우 긍정적인 보정(30%)이 주어집니다.
―칭호 [배후 던전의 공략자(L)], [한계 초월자(L)], [최후의 용사(L)], [자이언트 킬러(U)], [그리핀 라이더(U)], [흡혈귀 사냥꾼(U)]의 효과가 발동하고 있습니다.
―악룡이 지배하는, 외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허의 공간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전투는커녕 살아남기에 급급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적응 스킬의 영향으로 모든 능력이 20% 상승합니다. 적응 스킬이 한계를 초월해 언커먼 등급으로 성장합니다!
그때 마침 체내 시계의 연산이 끝나고 그에게 막대한 보정이 주어졌다.
상대가 주는 디버프가 어마어마한 만큼 그것에 저항했을 때 얻는 결과물도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것만으로, 기준은 자신에게 승리의 열쇠가 주어졌음을 확신했다.
기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것을 본 비체가 웃으며 그를 부추겼다.
“빨리 끝내. 후딱 끝내야 그…… 데이트.”
굳이 그걸 지금 말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기준의 용기라도 북돋워 주고 싶었던 걸까, 비체가 크흠, 헛기침을 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데이트, 해야 될 거 아냐?”
참고로 심박수는.
지금이라도 그녀의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기준은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빨리 끝낼게.”
악룡을 향해 그대로 돌진하기 전, 마지막으로 주위를 돌아본다.
길길이 날뛰고 있는 루시를 시작으로.
자신을 압도하는 존재의 등장에 갑자기 얌전해진 악령.
루시가 늘 욕하던 악마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어 신기해하면서도 호의 섞인 울음소리를 내는 우르.
바로 옆에서 비체가 기준과 친밀한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보며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경악하는 파툼.
기준이 공유해 준 고유 능력의 효과로 간신히 쇼크에서 회복되었지만, 싸울 생각보다는 갑자기 나타나 기준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비체의 존재에 경악하고 있는 파티원들까지.
“……다들 들었지?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악룡이랑 싸워야 하는 거야. 알지?”
지나치게 비체에게만 집중되는 시선에 헛기침을 하며 기준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지금 네가 그런 말을 하게 생겼느냐는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으나―.
“알겠습니다.”
드물게도 로라가 상황을 정리했다.
“이야기는 모두 끝나고 듣겠습니다.”
아니, 그저 폭발을 뒤로 미뤘을 뿐이었다.
“준 님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죽을 순 없지요.”
“이야기 나도 엄청 듣고 싶어……!”
이미 비체와는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지혜가 헤드뱅잉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앞뒤로 격렬하게 흔들며 외쳤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저 도마뱀을 마무리하자고요!”
―캬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말을 비웃듯 악룡이 울부짖었다.
그것을 시작 신호로 삼아 파툼이 탄 와이번과 기준이 탄 그리핀이 허공을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