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8)
나 빼고 다 회귀자-148화(148/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48)
Chapter 29. 심연 – 3
[혼돈의 충격 흡수 장치(Unique) ― 성장형] [내구도 ― 7,000/7,000] [방어력(U) ― 80] [옵션 1 ― 장치가 부착된 일대에 가해진 충격을 대부분 흡수해 저장한다. 저장량이 크게 늘어났으나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시간이 흘러도 저장된 충격량이 소모되지 않는다.] [옵션 2 ― 스킬 ‘쇼크 웨이브’ 시전 가능. 저장된 충격량을 증폭시켜 일시에 파동의 형태로 방출한다. 스킬을 사용한 후 잠시간 충격을 흡수할 수 없게 된다.] [지극히 평범한 공사용 마도 공학품이 주인의 한을 품은 채 다크 미믹 안에서 변질되어 탄생한 아티팩트. 평소 양질의 광 마력에 노출된 상태에 있었으나 강력한 어둠의 마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두 마력이 섞여 고유의 영역으로 진화했다. 놀랍게도 그로 인해 더한 성장의 가능성을 얻었다.]충격과 혼돈이다.
아니, 이 아이템이 그렇다고.
기준은 방패 안에 부착된 채 보다 얇고 날렵한, 금속 플레이트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한 충격 흡수 장치를 아주 잠깐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이윽고 지금 상황이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다시 방패를 쥐고 전방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부서진 우물의 왕은?’
잔해라도 건질까 했지만 이미 완벽하게 박살이 나 그 파편만이 반짝이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방어력은 부족하다지만 그래도 바람 분사 능력은 상당히 쏠쏠하게 써먹은 기억이 있기에 상당히 아쉬웠다.
유니크 아이템 하나가 부서지고 하나를 얻었으니 본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까 놓고 말해 훌륭한 메인 장비를 얻은 지금 짐이 된 방패보다는 방패에 부착해 방어력을 추가로 높여 줄 수 있는 아티팩트가 훨씬 훌륭했다.
더욱이 충격 흡수 장치의 등급이 유니크로 성장하면서 자체 방어력도, 충격 흡수량도 대폭 늘어나지 않았는가.
‘이제 한 번 부딪칠 때마다 그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겠지.’
기준이 그렇게 생각한 직후, 하늘 위에서 거대한 창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에 모순의 은월을 내밀어 창을 막았으나―.
―삐이이이이이이이―!
“그럼 그렇지.”
성이라도 무너트릴 만한 공격을 손목과 팔이 얼얼해지는 정도로 방어해 냈으니 아티팩트의 성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와 동시에 귓가에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에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이제 시간이 흘러도 충격량이 소모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진화 직전에 충격량이 가득 찼으니 일격에 한계에 달하는 것도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충격량을 방출할 방법이 생겼으니 한 번 써먹고 끝이었던 이전과 달리 전투 내내 활용할 수 있는 주력 무구로 성장한 셈.
지금도 이 정도로 훌륭한데 만약 레전더리 등급으로 성장하기라도 한다면……? 기준은 너무 오래전에 사냥해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보너스 던전 안의 다크 미믹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방금 그 창, 계약자가 아니라 용사를 노렸던 것 같아. 와이번이 우리 발아래로 급강하하고 있는데?
그때 루시가 문득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을 따라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정말 파툼이 탄 와이번이 수직에 가깝게 강하하는 것이 보였다.
비체는 그 모습을 확인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일부러 우리 아래로? 저것들, 우릴 방패로 써먹은 거 아냐?”
“그럴 리가. 파툼이 여태껏 정면에서 악룡의 시선을 끌어 줬잖아.”
어쩌면 혼자 악룡을 상대로 버티다 큰 상처라도 입고 퇴각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일었지만 지금은 그의 안위를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캬오오오오오오오오!
파툼에게 집착하고 있는 악룡이 허공에서 몸을 틀어 놈의 뒤를 쫓아 강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놈의 거대한 육신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 것만으로 일대에 한층 끔찍한 압력이 내려앉았으나― 포르티스가 필사적으로 발산한 바람의 마력이 그것을 해소해 주었다.
―캬하아아악!
하나밖에 남지 않은 놈의 오른쪽 날개가 일대를 찢어 버릴 기세로 세차게 펄럭였다.
틸라가 이끄는 불꽃의 소용돌이가 악룡의 몸 주위를 휘도는 다른 소용돌이들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기어이 놈을 쫓아 붙드는 그 순간.
기준은 자신의 눈앞에서부터 놈의 등판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뚜렷이 환시하곤 뾰족하게 외쳤다.
“루시, 포르티스!”
―피요오오오오오오!
루시의 가호가 포르티스를 한껏 강화하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제 날개 끝으로 남은 마력을 모조리 분출해 가속했다.
기준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어리석게도 자신의 날개를 한 짝 뜯어 간 이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어버린 악룡의 등을 노리고 돌진했다.
―키이잇!
틸라가 미처 막아 내지 못한 소용돌이 하나가 제 주인 대신 기준을 막아섰으나, 우르가 전력을 다해 일으킨 불꽃이 소용돌이의 중앙을 꿰뚫어 커다란 구멍을 내었다.
그 구멍 너머로 보이는 것은 물론 아직 멀쩡한 악룡의 날갯죽지.
기준은 눈부신 은빛을 발하는 모순의 은월을 있는 힘껏 내질러―― 두 번째의 은월 파동을 작렬시켰다!
―스킬 합성 발동. [쇼크 웨이브]가 [은월 파동]을 강화합니다!
그런데 이거 뭐야.
기준도 모르는 뭔가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처음 스킬을 구사했을 때보다 명백히 한 차원 강력한 은빛의 파동이 악룡의 날갯죽지를 강타해―― 날개를 뜯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등 한복판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 버렸다!
―불가능한 위업을 연달아 달성했을 때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 더 이상 불가능이 아니게 됩니다. [악룡의 우익(E-)]을 얻어, 두 날개가 하나로 합쳐져 온전한 [악룡의 날개(Epic)]이 되었습니다!
―홀로 서사시의 악룡의 날개를 모조리 탈취한 업적은 길이길이 노래되며, 언제고 당신을 서사시의 주인으로 만들어 놓을지도 모릅니다. 매력(L)이 10 올랐습니다. 500,000 레타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한계를 초월한 업적! 도살(R) 스킬이 한계를 초월하여 유니크 등급으로 성장합니다! 도살(U) 스킬이 1레벨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물질의 한계를 넘어 영적인 존재마저 도살할 수 있습니다!
날개는 무사히 인벤토리로 들어가 주었지만 그 외에도 피와 살점, 뼛가루 따위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루시와 우르가 저마다 기겁하며 빛과 불꽃을 일으켜 그것들을 태워 없앴지만 결국 기준은 악룡의 피로 목욕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악한 악룡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썼습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신체와 정신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신철은 재앙 속에서도 끝없이 재생되고 단련됩니다. [아다만트(L)] 스킬의 레벨이 30이 되었습니다!
“……비체.”
아다만트 스킬로 간신히 스스로를 보호한 기준은 전신을 감싼 투구와 갑옷이 녹아내리는 참담한 꼴이 되어 비체에게 질문했다.
“여기는 악룡의 피를 전신에 뒤집어쓰면 불사신이 된다든가 하는 보너스 없어?”
“끔찍한 맹독과 저주가 담긴 피를 전신에 뒤집어쓰고도 살아남았으니 불사신처럼 보이긴 하겠는데?”
터져 나오는 피에 똑같이 샤워했을 텐데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깔끔한 얼굴로 비체가 답했다.
하긴 방금 그 피의 폭발을 견뎌 내면서 아다만트 스킬이 족히 10레벨 가까이 성장했으니 마냥 틀린 말도 아닌가.
“준, 몸은 안 다쳤지?”
“몸은. 나머진 다 다쳤어.”
“그럼 됐잖아. 역시 내 예상대로네.”
“젠장, 비싼 돈 주고 맞춘 풀 플레이트였는데…….”
기준은 그나마 귀중품인 가면과, 일전에 듀라한에게서 얻은 유니크 등급의 흉갑은 녹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안도했다.
자신이 피를 모조리 받아 낸 덕에 포르티스가 무사한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패와, 그 안에 부착된 충격 흡수 장치를 확인했다.
“설마 같은 파동이라고 이게 강화될 줄이야.”
충격파가 빛의 파동을 강화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지만 애초에 은월 파동도 순수한 빛은 아닐뿐더러, 이제 와서 이런 일로 의문을 품기엔 레타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보다 강력한 스킬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납득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일격이 작렬해 두 날개를 모두 잃은 악룡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것.
기준은 포르티스를 다독여 추락하는 악룡을 뒤쫓아 하강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놈, 원래 날개의 힘으로 날던 건 아니지?”
“아니, 맞아. 순수하게 날개의 운동으로 나는 건 아니지만, 날개에서 발산되는 특수한 마력으로 몸을 띄우고 움직일 수 있던 거니까. 더욱이 날개는 드래곤의 마력 저장과 발산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야. 그걸 통째로 잃었으니 날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참고로 용의 마력 기관에 뭐가 더 있는지 물어보니 머리, 그중에서도 특히 뿔, 그리고 심장이 마력 기관에 속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장을 얻을 수만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아마 힘들겠지.”
“왜?”
“그야 저건 순수한 용이 아니니까. 날개나 뿔까지는 어찌 유지하고 있어도 심장은 온전하지 않을 거야.”
악룡이 탄생한 과정과, 그것이 나타나자마자 비체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갔던 것을 떠올리며 기준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놈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아무리 기준이 놈과 극상성인 칭호와 스킬로 무장한 상태였다고 한들 날개를 뜯어 낼 수는 없었으리라.
―어라? 용사 아직 안 죽었나 봐.
그리핀이 악룡에게 도달하기 직전, 루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지상에 가까운 부근에서 거센 바람이 일며 와이번이 치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황금빛이 번쩍이며 거대한 오러가 허공에 직선을 그었다.
그 궤적 끝에 걸린 것은 악룡의 머리 위에 나 있던 거대한 뿔.
그것이 깔끔하게 잘려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며 비체가 혀를 찼다.
“뿔도 준이 회수했어야 하는데.”
“난 날개를 얻었으니 됐어. 파툼이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이네.”
“글쎄―― 그건 어떨까.”
비체의 뚱한 반응에 기준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날개에 이어 뿔까지 잃고 완전히 대지에 처박힌 악룡의 몸을 중심으로 음산한 파동이 퍼져 나와 대기를 얼렸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영혼 간섭에 저항합니다.
“잠깐만, 이게 무슨――.”
뭐라고 더 말을 이을 틈도 없이.
짙은 어둠이 폭발했다.
“윽?!”
인지할 수 있는 영역 내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비틀렸다.
체내 시계의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만이 머릿속에 맹렬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직 기준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관측한 비체가 가만히 속삭였다.
“준, 이제 진짜 네 차례야. 용사를 구하려거든 서둘러.”
영문을 모를 소리였지만 비체는 여태껏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
기준은 본능적으로 그리핀의 등을 박차고 뛰어내렸고, 포르티스는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으켜 그를 가속시켜 주었다.
대지가 가까워 올수록 악룡과 파툼의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두 눈에 비추어졌다.
뿔과 날개를 모두 잃은 악룡은 꿈틀거리며 짙은 피와 안개를 토해 내고 있었고― 와이번을 잃고 대지에 홀로 선 파툼이 그런 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파툼에게로 짙은 어둠이 집중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힘을 잃고 쇠약해진 용의 목에서 놀랍게도 온전한 가시공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악룡으로서의 부분이 대량으로 소실된 탓에 그 안에 파묻혀 있던 가시공의 자아가 잠깐이나마 되돌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 너의 차례다, 용사.”
“몇 번을 말해도 마찬가지―― 용사는 죽지 않는다! 결코!”
파툼이 높이 들어 올린 대검에 황금빛과 함께 혼탁한 잿빛이 섞여 들고 있었다.
기준은 그것에서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죽음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저대로 파툼이 놈을 죽이게 놔둘 수는 없다는 확신이 섰다.
“악룡을 토벌하고 레타 대륙에 평화를 가져온다. 언제나처럼 이루어지리라!”
“결국 모두 반복될 뿐이다! 너 또한 톱니바퀴의 일부임을― 곧 깨닫게.”
기준은 양손으로 모순의 은월을 쥐고, 높이 들어 올린 채 부르짖었다.
“우르, 루시――!”
―그래, 이제 와서 막타를 빼앗길 순 없어! 계약자가 죽여야 돼!
―키이이잇!
낙하하던 기준의 몸에 찬란한 빛과 불꽃이 깃들며 급가속했다.
그는 방패에 남아 있던 힘으로 은월 파동을 시전해 송곳니에 힘을 보탰고.
파툼이 대검을 휘두르기 직전―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힌 핏빛의 송곳니가 기어이 악룡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카학?!”
뿌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용의 목이 찢기고 부러지는 순간, 놈의 전신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기준을 덮쳤다!
―피와 가시로 이루어진 서사시의 악룡이 제 혼을 제물로 바쳐 당신에게 분노의 저주를 내립니다. 그러나 전설의 영역에 이른 광 마력과 영력, 스킬 살루타리스(L)가 이에 저항해 저주를 약화시킵니다.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L)]가 영혼 간섭에 크게 저항합니다.
―저항 대성공. [살루타리스(L)]에 매우 긍정적인 보정이 주어집니다. [살루타리스(L)] 스킬이 35레벨이 되었습니다! 광 마력(L)과 영력(L)이 5씩 올랐습니다!
메시지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둘째 치고, 끔찍한 저주가 전신을 뒤덮는 이 느낌을 이전에도 분명 받아 본 적이 있었다.
레타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영향하에 살아가는 이라면 결코 이겨 낼 수 있을 리가 없는 저주―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고유 스킬만으로 시스템을 이겨 낸 적이 있다.
거기에 그가 여태껏 갈고 닦은 스킬들까지 더해지니 설령 에픽 등급의 적이 발현한 저주라 한들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끄르륵…… 어, 어찌…….”
혼을 제물로 바쳐 저주를 걸었다면서 아직까지 살아서 버티고 있는 악룡이 기준의 멀쩡한 모습을 확인하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완벽히 어둠을 떨쳐 낸 기준은 경악하는 악룡에게 코웃음으로 대꾸하곤, 놈의 목에서 아직까지 은은한 빛을 발하는 방패를 비틀어 뽑으며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파툼을 마주했다.
“언제나처럼――!”
역시나 그의 두 눈은 완벽하게 맛이 가 있어 기준의 모습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즉 그대로 대검을 휘두르려고 했다는 말이다.
“정신 차려라, 파툼!”
“으윽?!”
늦지 않게 뿜어낸 루시의 치유의 빛이 파툼을 그 자리에 붙들어 맸다.
고통스러워하는 파툼의 몸에서 어둠이 물러 나오는 것을 보며 기준이 안도하고 있자니 그의 발아래가 꿈틀거렸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아 알고는 있었지만― 악룡이 아직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
“어둠을 멸하는 자는, 언제고 반드시―― 새로운 어둠이 된다. 그것이 레타의 절대적인 규칙, 진리이거늘 어찌――.”
“잠깐, 그게 무슨…….”
“준은 예외거든.”
어느덧 쓰러진 악룡의 머리맡에 비체가 서 있었다.
그녀는 더없이 부드러운 눈으로 기준을 바라보며 악룡에게 속삭였다.
“그는 결코 더러워지지 않아. 우리와는 달리, 끝까지― 저 너머까지도, 신들에게, 외계의 적들과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와는, 달리……?”
“응, 뭐. 너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기준의 경악 어린 목소리에 비체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처음부터 어둠의 진영이었던 게 아니야. 나도, 까마득한 이전에는 아마 가시공도.”
“기억……났다. 당신과, 만난 적이 있어.”
여전히 고통이 남아 있는 것일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으며 파툼이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빛의 용사, 베아트리체……. 내 선대의, 전설적인 위업을 남긴 소환자 출신의 용사……. 마왕에 맞서, 죽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마왕에 맞선 게 아냐, 후배.”
비체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왕이 된 거지. 방금 네가 그렇게 될 뻔했던 것처럼.”
용사는 죽지 않는다.
파툼은 그것을 모든 용사가 대를 이어 공유하는 신념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결코 대륙을 뒤덮은 어둠에 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기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자조였던 것이다.
용사는 죽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어둠이 될 뿐이다.
‘그랬었지.’
기준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과거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튜토리얼이 끝났을 때 나타났던 요정이, 마왕을 줄곧 용사님이라고 불렀었지.
그것은 비유도 뭣도 아니었고, 하물며 튜토리얼의 용사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었다.
과거의 마왕은 정말로 레타에서 용사로서 활동했었던 것이다.
이로써 기준은 자신을 갑갑하게 만들던 수수께끼 중 하나를 비로소 해소할 수 있었지만.
개운해지기는커녕, 그 사실은 그를 더 갑갑하게 만들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