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5)
나 빼고 다 회귀자-155화(15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55)
Chapter 30. 적이 아니라니까 – 5
근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완벽한 형태로 달성된 적이 없는 그랜드 퀘스트가 드물게도 빛의 진영 측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그랜드 퀘스트의 중심지였던 코르는 지금 어딜 가나 축제의 현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코르가 대도시라고는 해도 명백히 코르의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코르에 모여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그건 국왕이 직접 포상한 수여식을 구경하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그라티아인들이 몰려왔음은 물론이고 그랜드 퀘스트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에 굳이 먼 곳에서부터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코르까지 넘어온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레타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력이고 그다음은 정보였으니까.
비체와 함께 코르의 대로를 걸으며, 이 도시가 맞이한 대호황을 몸으로 겪고 어둠의 진영 하나가 궤멸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새삼스레 깨닫는 기준에게 비체가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그랜드 퀘스트는 대륙의 역사서를 새로 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큰 변화가 찾아오게 마련이거든. 더구나 이런 압승은 정말 드물어서…….”
“그게 두려워서 신들이 개입씩이나 한 거 아냐?”
“맞아. 그래 놓고도 실패했지만. 꼴좋다.”
비체는 축제가 벌어지는 광장을 둘러보며 킥킥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어딘가 아련한 감정을 읽어 낸 기준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이 많아서 싫으면 이동할까? 텔레포트 게이트라도 타고서.”
“설마. 매력만 잘 컨트롤하면 어느 정도 존재감을 줄일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 은신이라는 애만큼은 못해도.”
“미안하지만 우리 신이는 매력 컨트롤 같은 거 못 해.”
신이는 컨트롤할 매력이 없는 거야……!
아니, 물론 은신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지나치게 존재감이 없었고, 퀘스트 보상으로도 매력이 잘 오르지 않았다.
그 반대급부로 은신 스킬만 쑥쑥 성장했고 그것이 더욱 존재감을 낮추는 악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원래 같은 빛의 진영의 인물을 대량으로 죽이면 매력을 낮추는 칭호를 얻게 되어 있었는데, 암살에 최적화된 능력을 갖춘 은신은 튜토리얼 시절부터 이런 칭호를 종류별로 모조리 섭렵한 바 있었다.
그나마 매력이 낮아진다고 얼굴이 못생겨지는 것은 아니니 다행이라며 은신이 자조하듯 말한 바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의 존재감만은 착실하게 깎여 나갔고.
지금에 이르러선 같은 공간에 있어도 파티원들이 아니고선 그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은신이라…… 어쩌면 그 특이한 이름도 그 녀석의 특별한 성장에 관여되어 있는 걸지도.”
“이름이 뭔 상관…… 아니, 아니야. 맞아, 이름은 중요하지.”
“맞아. 언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네 이름도 무척 중요해.”
비체가 기준을 돌아보곤 지그시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 듯이 보여 기준도 안도했다.
언령이라, 나중에 신이가 자기 이름 가지고 투덜대면 비체가 한 말을 고스란히 해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비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걔는 이름부터 능력, 성품까지 진짜 타고났네. 네가 없었으면 은신이 유일한 희망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 모자란 지구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너나 은신 같은 애가 나온 거지?”
“너는 예전부터 신이는 엄청 높이 평가하면서 나랑 같이 끝까지 살아남았던 민이는 되게 과소평가하네.”
“그 여자는 네가 없으면 안 되잖아. 혼자선 불완전하니 짜게 평가할 수밖에 없지.”
물론 비체가 예민을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그 때문만이 아니었지만, 그것까지 기준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그 얘기는 이제 됐고.”
듣기에 따라선 굉장히 로맨틱한 말로 예민을 매도한 비체는 그녀의 말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고개를 갸웃하는 기준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라며 화제를 되돌렸다.
“쭌, 너도 제대로 매력 관리 못하고 있잖아.”
“아― 그건 그렇지. 게다가 이번에 그랜드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내 매력의 효과가 그라티아에서는 한결 증폭되는 모양인 것 같아. 어떻게 하긴 해야 되는데.”
기준도 평소 가면을 쓰고 다니며 레전더리 등급에 달한 매력을 감추곤 했지만― 가면을 쓴 모습이 유명해져 버린 지금은 그것도 유명무실했다.
일단 급하게 둘 다 로브를 쓰고는 있었지만 이 상태로도 많은 이목이 쏠리는데다,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돌아다니는 데이트는 전혀 즐겁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배워 둬. 얼굴이 잘생긴 건 어쩔 수 없지만 분위기는 어떻게든 바꿀 수 있으니까.”
“방금 뭐라고?”
기준의 반문에 비체가 고개를 갸웃하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응? 내가 뭐라고 했어?”
“방금 잘생겼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헛소리야. 매력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면서 네 귀도 고쳐 놔야 될 것 같애.”
분명히 그렇게 들은 것 같았지만 비체는 딱 잡아떼며 오히려 기준을 매도했다.
하지만 사실 기준은 알고 있었다.
비체는 다른 건 몰라도 기준의 얼굴은 예전부터 제법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까딱하면 기준의 매력이 성장하기 전부터 말이다.
팅커벨이 비체의 취향이 이상하다며 놀렸을 정도이니 확실했다.
물론 비체가 기준을 크게 신경 써 줬던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겠지만…….
“듣고 있어?”
“응, 물론이지.”
비체의 눈이 가늘어지자 기준은 잡생각을 멈추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는 마력을 컨트롤하는 요령이랑 비슷해. 이게 극에 이르면 그 은신이란 애처럼 아예 자기 모습을 감출 수도 있게 되는 거지. 다만 나한테 집중하는 상대한테는 들킬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당연히 일대일로는 써먹기 어려워. 그러니까 이렇게 이목을 피해 몰래 돌아다닐 때나 쓸 만한 방법인 거고.”
“전투에 응용할 정도가 되면 이미 신이 수준이라는 얘기구나.”
“바로 그거야. 그럼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따라와.”
매력을 컨트롤하는 요령은 정말로 마력의 그것과 비슷했다.
재능이 없으면 헤맸겠지만 물론 기준은 그렇지 않았고, 두 사람은 곧 한없이 수상한 차림새임에도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후드 걷을까. 답답한 가면도 벗고…….”
“잠깐만, 나 옷 가게 들를래.”
기준은 그 말에 잠시 그녀를 살피다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
“비체, 혹시 입을 옷이 없어서 아까부터 그 튜닉 위에 로브만 걸치고 있었던 거야?”
“말 좀 이상하게 하지 말아 줄래? 어차피 옷을 사야 한다면 네 의견도 듣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뿐이거든?”
“아―― 네 말이 맞아, 내가 잘못했어. 바로 가자.”
데이트에 평가 점수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기준은 대량 실점을 했다.
아무리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비체라도 여성임에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준은 새삼스레 깨달았다.
지금 그는 전장에 있다.
없는 눈치라도 살려 대응하지 않으면 데이트라는 이름의 전쟁에서 장렬히 폭사하고 말 터.
그는 솔직하게 반성하며 비체를 데리고 코르에서 이름난 부티크로 이끌었다.
그나마 코르에서 뭐가 유명한지 조사한 자료가 그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참고로 이 자료는 이전 그와 함께 코르를 찾은 우니카가 시간이 날 때 놀러 가기 위해 조사한 것 절반과 충성심 높은 캐트시 나비냐가 발품을 팔아 조사한 것 절반이 합쳐져 완성된 것이었다.
‘미안. 우니카, 나비냐……!’
코르로 오자마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에 관광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투리스로 돌아간 우니카와, 주인의 데이트를 위해 파티에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고 코르를 조사하고 돌아다니느라 지금까지 침대에 누워 자고 있을 나비냐를 떠올리며 기준은 마음속으로만 경례를 올려붙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꺅!”
가면을 벗은 기준과 비체가 부티크에 들어서자 그들을 맞아 주던 직원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로브를 입고 있건 허접한 튜닉만 걸쳤건 간에 두 사람의 맨얼굴은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빛이 났던 것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리액션에 과장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직원은 실제로 너무 놀라 바닥에 엉덩방아까지 찧은 상황.
황당해하면서도 일단 그녀를 친절히 일으켜 준 기준이 옷을 보러 왔다고 말하며 비체를 돌아보았다.
“비체, 어떻게 할래. 네가 직접 고를래?”
“난 옷 같은 거 잘 모르니까 네가 골라 줘.”
“미안, 사실 나도 여자 옷을 잘 모른단 말이지…….”
그러니 직원이 추천해 주는 걸 몇 개 입어 보고 고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준이 직원에게 순순히 부탁하자― 그녀는 두 사람의 외모에 맞는 옷이 과연 이 부티크에 있을까 심각하게 고뇌하며 스태프 룸으로 달려가 모든 직원에게 헬프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와르르 달려 나온 직원들이 두 사람을 보고 다시금 소요를 일으키고, 진지하게 가게를 뒤집어엎으며 데이트 복장을 물색하는 광경에 기준이 압도되어 있자니 옆에서 비체가 그의 허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쭌, 너 예전부터 그렇게 여자랑 연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치곤 주위에 여자가 너무 많은 거 알아?”
“내가 너라서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건데, 데이트 같은 건 오늘이 생애 처음이야. 여자 옷 보러 온 것도 마찬가지고.”
“진짜? 그런 것치곤 상당히 자연스럽게 데이트하자는 말이 나오던데…….”
서로 메시지로 주고받았기에 티는 나지 않았겠지만 그 메시지를 본 순간 비체의 마음을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비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하자 기준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순순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야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고생했는데 나한테도 보상이 좀 필요하잖아.”
“그, 그래? 흠…….”
보상?
나랑 데이트하는 게?
기준의 솔직한 고백에 압도된 비체가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십 년간 같은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해 왔고 그건 상당히 노골적으로 티가 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최후의 일전을 치르는 그때까지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는 일은 없었다.
거기에는 물론 각자의 이유가 있었지만― 서로 앞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 공통된 이유였다.
결국 레타로 떠나는 그에게 비체가 먼저 레타폰을 안겨 주며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고…… 서로의 비밀을 이래저래 알게 된 지금, 기준은 조금 더 욕심을 내 봐도 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비체는 아직――.
“손님은 이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시지만― 이 정도라면 그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는 수준은 되지 않을까 싶은 것들을 추려 봤습니다……!”
“아―― 전부 입어 보자, 비체.”
두 사람의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던 찰나.
실로 적절한 타이밍에 직원들이 오직 비체만을 위한 옷을 몇 벌 선별해 가져왔다.
비체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직원들을 따라 탈의실로 향하다가, 중간에 기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 옷 몰라. 그러니까 네가 보고 예쁜 걸로 골라 줘.”
“나한테만 예쁜 옷일 수도 있잖아.”
“그럼 됐어.”
비체가 조그만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거면 충분해.”
“그래, 그러면야…… 알겠어.”
아마도 그것이 비체 나름 최선의 답일 터였다.
두 사람 다 근본적으로는 숙맥인 데다 이상한 데서 자신감이 없었기에 지금의 교환이 최선이었다.
졸지에 두 사람의 염장질을 직관하게 된 직원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타고난 프로 의식으로 참아 내고 비체를 안내했다.
물론 모두가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런 미모를 타고나면 서로 얼굴만 쳐다봐도 배부르겠다.”
“무한 동력이네.”
“쉿.”
안타깝게도 타고난 미모는 아니지만 말이지.
그 후로 비체는 몇 벌의 옷을 갈아입은 끝에 기준이 고른 검은 레더 원피스를 구매했다.
분명 고급스럽긴 했지만 조금 짧은 데다 라인이 상당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감한 옷이었다.
확실히 아무나 소화할 수는 없는 옷이었고, 기준이 무난한 옷을 고르지 않을까 생각했던 비체는 순순히 갈아입으면서도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복잡한 뜻이 담긴 그녀의 시선에 기준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가장 좋은 걸 좋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게 내가 선택한 초인의 길이야.”
“미안하지만 지금 듣고 싶진 않은 말이었어. 그래도…… 킥.”
언제 이런 옷을 입어 보겠어, 하며 비체가 끝내 웃음을 터트렸다.
기준은 그녀가 튜토리얼에서 입고 다녔던 마왕 전용 복장도 결코 방금 산 원피스에 밀리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말을 했다가 괜히 그녀가 다시 그것을 입어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참고로 부티크를 나선 비체는 남들 보는 앞에서도 이 꼴로 다닐 수는 없다며 결국 다시 로브로 옷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