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8)
나 빼고 다 회귀자-158화(158/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58)
Chapter 31. 불의 고향으로 – 1
기준이 왕궁에서 보상을 받고 돌아와 비체와 오랜만에 전력을 다한 대련을 벌이느라 일대의 땅을 갈아엎고 파티원들을 기겁해 쓰러지게 만든 그날, 늦은 밤.
비체를 환송하는 자리에는 기준과 루시만이 나와 있었다.
정확히는 시간이 다 되어 비체가 은근슬쩍 사라지려던 찰나 루시의 도움을 받은 기준이 그녀를 배웅하러 나온 것이었지만.
“몰래 떠나고 싶었는데.”
“말도 안 돼, 이번에 헤어지면 또 언제 볼지 모르잖아.”
기준은 비체의 말에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긴이 몰래 떠났다는 것을 늦게 알고 얼마나 울적했던가.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 전에 드래곤의 소재로 만든 방어구는 입혀 보내고 싶었는데.
덩치만 크다 뿐이지 속은 여리기 그지없는 늑대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섭섭해? 금방 넘어올 거라니까.”
기준이 한숨짓는 것을 본 비체가 그만큼 자신과의 이별에 상심했다고 여겨 부드러운 말투로 그를 위로했다.
그건 마냥 오해도 아니긴 했지만, 그녀가 말하는 금방이라는 말은 믿을 수 없었던 기준의 눈은 가늘어졌다.
그 눈빛에 비체가 다급히 덧붙였다.
“진짜야. 이번에 온 게 정말 큰 도움이 됐으니까. 내 원래 예상보다 기간이 훨씬 단축됐어, 정말.”
그렇게 말하는 비체의 시선이 아주 짧은 한순간 루시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기준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 요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보내 줄게.”
“히, 약속이야.”
두 사람은 그 이상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나눠야 할 말은 어제 데이트를 하면서 충분히 나눴고, 이 이상 속내를 털어놔 봤자 과할 터였다.
이제 헤어져야 할 판에 서로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꼴이 되기 싫었던 것이다.
“쭌, 제안할 게 있어.”
미련과 아쉬움, 갑갑함을 견디지 못한 비체가 먼저 그에게 제안했다.
“이별의 포옹을 하는 거야. 이런 거 다들 하잖아.”
“아―― 좋네. 그런데 기왕이면 재회를 약속하는 포옹으로 하자.”
“그래, 그게 좋겠다.”
두 사람은 단단히 긴장한 표정으로 얼빠진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간격을 좁혔다.
그리고 루시가 가관이라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팔을 벌려 상대방을 끌어안았다.
기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비체가 자신의 과감한 행동에 지레 찔린 듯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좀 과한가?”
“아냐, 괜찮은 것 같아.”
“그치?”
“좀 부족한 것도 같은데.”
“맞아, 그런 것 같아.”
순식간에 합의를 마친 두 사람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더욱 깊이 끌어안았다.
서로의 숨결과 향기, 체온이 여과 없이 느껴지며― 마치 둘이 하나가 된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후――.”
“하아…….”
호흡이 지독히도 길고 느렸다.
지금이라면 상대의 생각을 선명히 읽어 낼 수도 있었다.
더 깊이 끌어안고 싶다.
떨어지기 싫었다.
이대로 영원히, 가능하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악마, 너 안 돌아가?
서로 떨어질 타이밍을 잊고 꼭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은 루시의 말에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눈을 깜박이며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하던 둘은 순간 서로가 공통된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한 발짝씩 뒤로 물렸다.
―겁쟁이들.
루시가 킥킥 웃으며 하는 말에 기준은 분하게도 뭐라 대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비체는 샐쭉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대담하게도 다시 한 발짝 반을 나와 기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제 입술을 내밀어 그의 뺨에 쪽, 하고 도장을 찍었다.
“어.”
―아아아앗!
기준은 그대로 굳었고 루시는 자신의 도발이 불러온 참사에 격하게 후회했다.
비체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물러나더니.
“오해하지 마, 이건 그거야, 그―― 우리 문명에선 스승이 제자의 앞날을 기원하며 해 주는.”
하고 횡설수설했다.
―잘도 그런 어설픈 변명을 당당하게.
“아무튼 그런 인사법이야! 그럼 간다!”
허공에 금이 가더니 쩌억 벌어지며 순식간에 검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비체는 양손을 해파리처럼 휘저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구멍 안에 곧장 뛰어들어,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멍이 닫히고, 홀로 남은 기준은 멍하니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앞날을 기원하면서…….”
―믿지 마!
* * *
왕궁으로부터 보상도 받았고, 비체도 떠나보냈다.
이젠 정말로 코르를 떠날 때가 왔다.
사실은― 좀 더 코르에 남아 예민이 길드를 만드는 것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예민은 그를 방해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그것을 거부했다.
더구나 기준 본인도, 괜히 그가 길드에 깊게 관여하다가 혹여나 대외적으로 이름이 높은 자신의 영향력이 예민에게 해가 되는 것이 우려되기도 했고.
“그래도 길드 이름은 오빠가 지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빠 파티 이름이 루멘이라면서요? 그대로 가져와도 좋을 것 같은데.”
“그걸 그대로 가져오면 그야말로 끝장이잖아.”
“뭐 어때요, 어차피 지구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길드인데. 오빠가 지구를 대표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뭐하면 문명 스킬도 오빠가 얻은 거고…….”
예민은 그렇게라도 기준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 길드 이름은 기준이 지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미 적절한 때가 되면 기준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예민과 함께 길드를 이끄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럼― 테라(Terra)라고 하자.”
“좋네요.”
라틴어는 물론이고 현대 영어로도 지구, 그리고 대지를 뜻하는 단어.
지구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그만큼 좋은 단어도 없을 것이다.
정말로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를 공용어로 구사하는 이곳 레타에서, 테라라는 단어가 지구 외의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은 무궁했으나― 신기하게도 다른 레타인들은 그 단어를 듣고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쓰는 말인가? 문명을 대표하는 길드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지. 좋다고 생각하네.”
길드 개설을 도와주러 온 투리스 영주 모노케로스가 그렇게 말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인원을 관리하는 일이니 잡음도 많으리라 생각되네만…… 그라티아 왕실이 뒤에서 버티는 한 자네에게는 그들 모두를 찍어 누를 압도적인 권위가 주어질 것이야. 작위도 하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적당히 그쪽에 맞춰 주게.”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력에 감사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예민의 모습에 투리스 영주는 으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국왕이 기준을 놔두고 다른 사람을 대형 길드의 마스터로 만드는 것부터가 잘 납득가지 않는 일이었는데, 과연 예민과 일대일로 대면하고 보니 그녀의 무시무시한 미모와 압도적인 매력에 깨닫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투리스 영주는 기준을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보게, 자네 옆에 우리 딸을 위한 자리도 남아 있는 거겠지?”
“무슨 자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기준은 그렇게 시치미를 떼며, 죽었다 깨어나도 이 사람에게는 우니카가 자신에게 뿔을 주겠다고 얘기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허, 이 사람. 아무튼 그래, 우르알타로 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맞아. 아마 오늘내일 중으로 출발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럼 조금 번거롭겠지만 나와 투리스로 가 우니카를 데리고 함께 우르알타로 가 주지 않겠나? 내가 투리스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딸도 바로 우르알타의 관리로 취임하게 될 터인데― 그 호위로 자네만 한 인재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야 우니카는 아름다우니까…… 혼자 여행한다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럼 그럼, 자네가 잘 알고 있구만. 자랑은 아니지만 내 딸이 아내를 닮아 참으로 가련하고 어여쁜 매력이 있지.”
우니카가 아름답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여태껏 귀족 앞이라고 표정 관리를 하고 있던 예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도 경쟁자가 너무 많아 미칠 것 같은데, 마왕이 이제야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 명이 더 있어?
심지어 제법 친밀한 것 같은데?
물론 기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투리스 영주와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렇지만 여행길이 걱정된다면 그냥 텔레포트 게이트로 가는 게 좋지 않나?”
“이런, 자네가 아직 모르고 있었군. 우르알타는 텔레포트 게이트로는 갈 수 없어. 그나마 가장 가까운 도시가 투리스라네. 그러니 자네에게도 부담 없이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뭐?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었다.
기준이 이유를 묻자 투리스 영주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설명해 주었다.
“나도 마법사는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네만, 우르알타의 중심에 있는 화산에는 거대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고 하네. 그 마력이 터무니없이 거대한 데다 끊임없이 진동하는 탓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지. ……아니, 아마 이건 변명일 거야. 우르알타가 지닌 가치는 터무니없이 높고, 폐하께선 마탑의 마법사들이 우르알타에 머무르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으셨네.”
“과연…… 유명한 지역이지만 어느 정도 폐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건가.”
“정확해. 그 가치는 엄청나서, 이전에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데펙트 백작도 우르알타와 관련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선 폐하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네. 그래서 그녀가 수도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고, 한마디 보탤 것 같으면 그래서 더더욱 폐하와 친밀하게 굴었던 것이지.”
“덤으로 흡혈귀였고 말이지.”
“……그래서 자네에겐 정말이지 여러 의미로 감사하고 있네.”
그럴 일은 적었겠지만 기준이 그녀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했을 경우, 흡혈귀들의 기습 작전이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다고 한다면― 이오 데펙트와 만날 일이 많은 그라티아 국왕은 자연히 위험에 처했을 테니까.
“투리스에서 출발하는 게 제일 가까울 정도라면 내가 더 거절할 이유도 없지. 알겠어. 우니카는 내가 데리고 움직이지.”
“그렇게 나와야지! 딸아, 이걸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모두 해 줬구나…….”
“목소리가 들린다.”
어쨌든 길드 테라는 성공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정식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문명 대표 길드로 자리매김했다.
테라에 소속된 지구인들은 무려 3만 명에 이르렀고, 지구인이 아닌 인간은 7천 명, 인간이 아닌 이종족은 3천 명으로 총원은 대략 4만 명― 터무니없는 대인원이다.
레타 대륙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초대형 길드들과 비교하면 그야 아직 많이 부족하고 구성원들도 약하지만, 결집력만 놓고 보면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예민은 인원을 열 배 이상으로 불릴 자신도 있었고, 이들 모두가 자신을 절대자로 섬기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지구인들이 언젠가 모두 이곳으로 모이게 될까?”
“그런다고 뭐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요. 최선을 다해 키워 내 볼게요. 오빠가 얻어 낸 문명 스킬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부탁할게, 민아.”
“맡겨 주세요, 오빠.”
하지만 길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기준을 지원하는 것.
송별 파티에서 기준과 잔을 부딪치며, 그녀는 앞으로 길드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 고심했다.
“길드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나도 그 길드에 들어가고 싶다! 네게 받은 은혜를 갚을 차례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다음 날 자신의 파티를 이끌고 국가에서 넘겨받은 테라의 길드 하우스에 쳐들어온 남자― 최강을 보고.
예민은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웃었다.
쓸 만한 장기 말이 이렇게 알아서 굴러들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