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9)
나 빼고 다 회귀자-159화(15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59)
Chapter 31. 불의 고향으로 – 2
“인원이 엄청 늘어날 줄 알았는데, 반대로 단출해졌네.”
송별 파티가 끝나고 맞이한 다음 날 아침, 예민 파티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 길.
빠져나갈 사람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추가된 파티를 둘러보며 틸라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긴 씨뿐만 아니라 지혜…… 언니도 빠졌으니까요.”
“냐아…….”
파티장인 기준과 그의 캐트시인 나비냐, 염인인 틸라와 사제 로라까지는 그대로지만 긴은 결국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늑대 인간들을 찾으러 떠나 버렸고― 본래 파티에 합류할 예정이었던 예민 파티의 면면들은 예민이 세운 길드를 안정화시키느라 따라오지 못하게 되었으니.
“내가 긴을 좀 더 신경 써 줬더라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그래도 여기 새로운 멤버도 있잖아.”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 파티에 참여한 것이 파티의 막내였던 은신이다.
우두커니 서서 파티의 분위기에 녹아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은신에게 눈빛을 보내며 말하는 기준의 모습에 나머지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냣?!”
“아.”
“그러고 보니…… 있었구나.”
“넵, 잘 부탁드립니다…….”
만약 이 제스처가 아니었으면 파티원들은 은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기준은 그렇게 파티원들에게 은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후 입을 열어 말했다.
“이 시점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 길드를 세우는 건 놓칠 수 없는 기회잖아. 언젠가는 민이네도 파티에 참여할 기회가 오겠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형. 민이 누나가 이를 갈고 있으니까.”
“뭘 또 그럴 것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준은 이번 길드 창설을 계기로 예민과는 다시 한 파티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렇지 않은가, 숫자가 곧 힘인 것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법이니.
길드가 제대로 성장하기만 하면 예민은 굳이 길드를 떠나 파티 단위로 활동하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예전의 인연이라고 기준을 많이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런 마음만으로 움직이기에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형이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아마 아닐 거예요. 형은 민이 누나의 마음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어요.”
은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덩달아 틸라와 로라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기준은 웃어 버렸다.
“아니, 신이는 그렇다 쳐도 틸라나 로라보다는 내가 민이랑 오래 알고 지냈는데, 너희가 그쪽에 붙는 건 이상하지 않아?”
“이분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형. 형이 제일 이상해요.”
은신을 시작으로 틸라와 로라도 한마음으로 그를 매도했다.
“베아트리체랑 같이 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둔해 보이지 않았는데, 이 남자 정말 큰일인걸.”
“사람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맞춰 세상을 인식하는 법이니까요. 자신의 마음속에선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이 있으니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본능의 영역에서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요.”
과연 긴이 파티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지도 못한 로라다운 발언.
세 사람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기준도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뭐어, 민이도 사람이니까. 내 존재가 더해져 완성된 튜토리얼 파티를 나름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아무튼 그 문제는 됐으니 이제 출발하자. 게이트 앞에서 투리스 영주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건 고정관념 수준이 아닌데……. 은신? 준과 예민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야 여러 가지 있긴 했는데요……. 아, 저는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만 불러 주세요. 성까지 붙이면 좀 그래서요.”
“그래.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신.”
“잘 부탁드립니다, 신.”
“……외국인들하고 파티하는 건 이래서 힘들어.”
코르에서 투리스까지는 그리핀이 끄는 하늘 마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한나절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기준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지옥도를 떠올린 로라가 투리스 영주도 동행하는 길에 그런 짓을 벌일 수는 없다며 결사반대하기도 했고.
이번 그랜드 퀘스트의 보상으로 기준에게 주어진 무수한 편의 가운데 기준뿐만 아니라 그의 파티까지도 텔레포트 게이트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있었기에 이번엔 기꺼이 그 혜택을 누리기로 했다.
“그라티아의 영웅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간이 나시면 부디 현(賢)에도 한 번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칠현자 중의 한 분이신 율영 님께서 꼭 한 번 만나 뵙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코르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관리하던 마도 왕국의 파견 마법사가 기준을 보자 뜻밖에 그런 말을 해 왔다.
기준은 그녀가 기다리는 이는 자신이 아니라 지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리지널 마법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흡혈귀도 아니면서 혈 마법을 다뤄 내는 지혜의 재능은 확실히 독보적이니, 그녀라면 언제고 마도 왕국에 가서도 큰 성취를 이뤄 낼 수 있으리라.
물론 투리스 영주 모노케로스는 칠현자가 마도 왕국에서 얼마나 큰 위치에 있는지를 아는 만큼 놀라워하며 그에게 물었다.
“자네, 칠현자와도 교분을 쌓은 건가?”
“아, 당신은 모르고 있었던가. 교분이라고 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만난 적이 있긴 해.”
“그 사람도 여자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은신이 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 왔다.
기준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자 맞아.”
“아니, 형은 대체 몇 명을 꼬신 거예요.”
그 말에 경악하는 은신.
그가 오해하고 있음을 안 기준은 다급히 그 오해를 정정해 주기로 했다.
“아냐, 그 여자가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지혜야.”
“혜 누나를 노린다고요?!”
그러나 은신은 그 말에 더 큰 오해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 그래, 응. 그렇게 알면 돼. 이제 가자.”
터무니없는 오해였지만 그렇게 오해하는 쪽이 더 은신을 과감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준은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며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사실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게 귀찮기도 했다.
“그런 짓을 해 놓고 태연히 교류할 생각을 하다니 인간은 정말 대단하냐. 나였으면 그런 여자는 다시 만나기만 하면 얼굴에 줄무늬를 그어 수박으로 만들어 주냐.”
“혹시라도 수틀리면 그땐 부탁할게, 나비냐.”
기준의 허리춤에 매달리며 발톱을 세우는 나비냐의 머리를 적당히 쓰다듬어 주고 고개를 드니 그곳은 이미 투리스였다.
언제부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단정하게 자른 하얀 단발이 인상적인 미녀― 우니카가 게이트 바깥에 서 있다가 안에서 나오는 기준을 발견하곤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준 님. 그랜드 퀘스트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승리하고 돌아오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렇게 무사하신 모습을 직접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고개를 들고 다시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진심으로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짓는 우니카.
“형…….”
이번엔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기준도 은신의 시선을 감내하기로 했다.
물론 그녀와 딱히 깊은 관계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기준에게 자신의 뿔을 잘라 주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니까……!
“명색이 내가 영주인데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 보군.”
“아,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리로 맡고 있던 영주 권한은 바로 인계하겠습니다.”
영주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상쾌하게 웃으며 대꾸한 우니카가 일행을 영주성으로 안내했다.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히 영주 대리 업무가 고됐던 것이리라, 그들을 안내하는 우니카의 발걸음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응접실로 파티를 안내한 우니카가 기준의 무릎에 앉은 나비냐의 목을 간질여 주고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인계만 마치면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음? 오늘 바로 떠날 셈이냐?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루 정도 회포도 풀지 않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당황해 묻는 영주에게 우니카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루멘 파티가 갖는 가치를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분들에게 호위를 부탁하는 입장이니 더더욱.”
“내가 보기엔 그냥 빨리 투리스를 떠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구나.”
“오해십니다. 저 또한 그라티아의 귀족으로 태어난 몸, 사심이 섞인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섞이진 않았겠지, 사심 그 자체로 내린 판단일 테니까.”
“재밌는 농담이십니다. 그럼 이리로.”
우니카는 영주의 직설적인 발언에 생긋 웃곤 그를 우악스럽게 잡아끌고 영주실로 향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기준이 한마디 내뱉었다.
“영주 대리 업무가 많이 힘들었나 보네.”
“저게 부녀 나름의 교류 방법이겠지. 행복해 보여서 부러운걸.”
“아―― 그러게.”
“맞아요, 그렇군요.”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는 틸라의 모습에 모두 약속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인계를 마친 우니카가 편한 여행복 차림으로 돌아올 때까지 장내를 계속 불편한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다…….
* * *
우니카는 투리스를 떠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일행을 안내했다.
코르에서 출발했던 것이 이른 아침인지라 아직 정오에도 미치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탓에 주위는 어둑어둑했다.
물론 내리는 비를 맞는 일은 없었다.
기준은 페르소나 ― 이그니스를 착용하고 있는 탓에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만으로 그에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모두 증발시킬 수 있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틸라가 로딤을 부려 만들어 낸 간이 결계로 비를 피했으니까.
“우르알타는 그라티아에서 고수준의 소환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지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라티아에서 가장 찾아가기 힘든 비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우니카의 담담한 목소리가 파티원들의 귓가를 울렸다.
“이는 우르알타의 화산이 끊임없이 화산활동을 하며― 그때마다 강력한 마나의 파장을 뿜어내, 텔레포트 게이트를 작동 불능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일대에 천연적인 결계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르알타는 본디 그라티아 출신의 숙달된 안내인이 없으면 찾아가기도 힘든 곳이죠.”
“즉?”
“투리스에는 우르알타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투리스의 주 수입원 중 하나랍니다.”
그리고 물론 투리스 출신인 우니카 또한 우르알타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우니카.
하지만 기준은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우르알타 주위에 형성된 결계는 기준에게는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우니카가 길을 안내할 수 있다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귀여웠기 때문에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니카, 글리터토스가 네 제안을 받았다느니 뭐라느니 하던데 그건 무슨 얘기야?”
“아아, 제 우르알타 관리직 취임에 맞춰 그도 함께 이동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우르알타에서 보자던 게 그 얘기였나……. 하지만 어째서? 우르알타가 장인의 거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 글리터토스는 투리스에 자리를 잡고 있었잖아?”
“글리터토스 같은 솜씨 좋은 장인을 우르알타로 데려가는 것이 제 실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근본적인 이유는 글리터토스가 우르알타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장인의 거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째 그럴 것 같기는 했는데.
더구나 우르알타에 대해 논하는 글리터토스에게서 기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기도 했던 탓에 기준은 그리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그가 우르알타를 떠나 투리스로 온 것은 투리스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운 일이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그 정도 되는 인재가 투리스에 머무르는 것은 손해입니다. 영주성에 납품되던 물건은 이미 요정 상인을 통해 계속해서 납품하기로 그와 계약을 맺었으니, 그가 어디로 움직이든 문제 될 것이 없고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요정 상인이란 비브를 가리키는 것이다.
비브 녀석, 기준과 전속 계약을 맺더니 투리스 영주다 그라티아 왕실이다 거래처를 대폭 늘리며 이득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그야 물론 준 님 때문입니다. 준 님이 우르알타로 가시니, 계속해서 준 님의 의뢰를 받으려면 글리터토스도 우르알타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리터토스가 우르알타를 떠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바로 그것입니다.”
우니카는 고개를 들어 저 너머 어딘가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지평선 너머, 희미하게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어쩌면 먹구름과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글리터토스는 그 이유를 준 님께서 해소해 주시리라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우니카, 내가 모르는 사이 날 글리터토스한테 팔아넘긴 거야?”
“준 님께서 우르알타에 도착하시면 자연히 이루어질 일을 그에게 설명했을 뿐입니다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얼마든지 제게 대가를 요구하셔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내어 드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우니카에게 기준은 완패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귀족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