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0)
나 빼고 다 회귀자-160화(160/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60)
Chapter 31. 불의 고향으로 – 3
일행의 행군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뭐하지만 파티에서 유일하게 이동속도가 느렸던 지혜가 빠지고 들어온 것이 유니콘의 피가 흐르는 우니카이다 보니, 전원이 전위 계열이 되어 버린 탓에 계속 질주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장 속도가 처지는 것이 도적 계열인 은신이었으니.
물론 은신은 그 사실에 대해 굉장히 분해하며, 자신 때문에 만들어진 휴식 시간에 기준을 향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니, 이건 말도 안 돼요, 형. 원래 파티에선 제가 제일 빨랐는데……! 심지어 사제분까지 저보다 빠르잖아요!”
“사제…… 아, 로라 말이지. 미안하지만 로라는 그냥 사제가 아니라서.”
“그래요, 흡혈귀 사제죠.”
기준에게 줄 물을 들고 다가온 로라가 가볍게 웃으며 정정했다.
“저도 이제 그 정도에 상처를 받진 않으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준 님. 더는 헤매고 상처받지 않는걸요.”
“흡혈귀 사제…….”
그 말에 은신이 눈을 깜박이며 로라를 바라보았지만 겉으로 보는 정도로는 그녀의 이질적인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흡혈귀는 신체 능력과 마력 모두 높거든요. 행군에 따라갈 수 있는 건 그 덕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거기에 신성력까지.”
“이슈타르 님의 은총이 아직까지 제게 머무르고 있으니까요. 그분께 감사할 따름이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성호를 그으며 말하는 로라의 모습에 은신은 무심코 본능적으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개사기네요.”
“뭐 그렇지.”
기준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은신도 발라히아 성에 들어가기 전의 로라와는 엇비슷한 수준으로 경쟁이 가능했겠지만, 그녀는 온전히 카르밀라의 모든 것을 인계받고 가시공의 진혈까지 흡혈하며 이미 완숙한 유니크 등급에 오른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 카르밀라의 전용 무구까지 모조리 차지한 탓에― 어쩌면 언젠가 전설을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던 것.
아무리 열심히 수련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레어 등급에 불과한 은신이 그녀를 따라잡을 턱이 없다.
“이건 뭐 경쟁이 안 되는데…….”
“로라랑 경쟁해서 뭐 할 거야, 네 장기는 따로 있는데.”
기준은 로라와의 격차를 실감하고 낙담하는 은신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처음엔 누구나 다 느린 법이잖아. 신이 너도 내가 차근차근 단련시켜 줄게.”
“사제분…… 로라 씨도 형이 단련시켜 주셨나요?”
“내가 단련을 시키긴 했는데, 크긴 알아서 컸어.”
“알아서 크다뇨, 준 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에요. 그러니까…….”
단호히 그의 말을 부정한 로라가 문득 볼을 붉히더니, 가느다랗고 매끄러운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그러나 그녀가 구체적으로 그가 무엇을 도와주었는지 언급하기 전에 기준이 그것을 막았다.
“그래, 알겠어. 물 가져다줘서 고마워, 로라.”
“후흣, 별말씀을요.”
로라는 웃음을 흘리면서도 별말 없이 물러났다.
은신은 뭐라고 말하는 것도 지쳤다는 표정으로 기준을 바라보며, 탄식하듯이 중얼거렸다.
“나랑 같은 곳에 있던 준이 형이 너무 멀리 가 버렸어…….”
“맹세컨대 수상한 짓은 안 했어.”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수상해 보일 수 있는 짓이죠?”
“응.”
“그럼 수상한 짓이 맞아요, 형.”
은신은 역시 파티에서 제일가는 암살자답게 급소를 찔러 오는 솜씨가 상당했다.
이 녀석이 혹시라도 흡혈귀에게 물리게 된다면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기준에게 은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사제치고는 로라 씨 분위기가 좀 야하지 않아요?”
“신아, 나 레타 대륙으로 넘어와서 야하다는 단어를 지금 처음 들었어.”
“전 그냥 야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말하시면……!”
“미안해, 장금아. 난 그냥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남자 동료가 없었다는 얘기였어.”
사실 기준도 이번 그랜드 퀘스트가 끝난 후로 로라의 분위기가 조금 지나치게 성숙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태껏 그녀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성숙해지는 것도 당연하지 싶었지만, 아마도 카르밀라의 영향을 받아 흡혈귀로서 한 단계 성장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은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르밀라는 사고방식과 행동, 심지어 즐겨 입는 옷까지도 야했으니까.
그렇게나 로라를 갈망하던 카르밀라라면― 자신의 일부나마 그녀에게 녹아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척 기뻐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다 쳐도 상당히 머네. 제법 달린 것 같은데.”
“진짜로…… 오늘도 야영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대로 가면 불리하다고 직감한 기준이 무리하게 화제를 전환하자, 은신은 착한 동생답게 그에게 말을 맞춰 주었다.
하지만 굉장한 속도로 행군하고 있음에도 아직 우르알타에 이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역시 지금이라도 포르티스에게 부탁해 하늘 마차를 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문득 루시가 기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계약자, 이 전방에 정말 지독한 결계가 형성되어 있는 게 느껴져. 안에 들어온 자의 감각을 교란하고 이윽고 오감 모두를 엉망진창으로 뒤섞어 버리는 결계야. 화산 특유의 열기를 품은 마나를 매개로 발현되는 천연 결계.
―키이이.
루시의 경고에 이어 우르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냈다.
단순히 화염뿐만 아니라 열기를 품은 모든 것에 지배력을 미치는 지금의 자신이라면 결계를 파고드는 것쯤은 간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준 혼자 진입하는 것이 아닌 만큼 결계를 전부 무너트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준의 영력과 마력이 바닥날 수도 있었기에― 여기선 더 쉬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휴식 종료를 선언한 우니카가 더는 뛸 필요가 없다는 말과 함께 설명을 개시했다.
“이 너머는 결계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마도구를 챙겨 왔으니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제 옷소매를 잡고…… 어머?”
무리의 선두에 서서 안내하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던 우니카가 마도구를 확인하고는 문득 두 눈을 깜박였다.
“결계가 감지되지 않네요.”
“준의 힘 덕분이네.”
당황하는 우니카에게 틸라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은 얼마 전에 자신뿐만 아니라 파티원들까지 상태 이상에서 지켜 내는 물건을 얻었거든.”
“……설마 성유물인가요?”
단숨에 ‘물건’의 정체를 유추해 낸 우니카의 얼굴에 순수한 경악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글리터토스는 고객의 정보를 영주 대리에게도 흘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준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하는 우니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아까 활성화해 둔 고유 영역의 파편을 들어 보였다.
“여기.”
“하아.”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 자리에 선 채 기절했다.
로라가 빠르게 다가가 그녀에게 신성력을 불어 넣자 눈을 번쩍 뜬 우니카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성유물이라니! 대체 어떻게 얻으신 거죠? 혹시 이번 그랜드 퀘스트에서?”
“아니, 섀도 스토커가 알려 준 유적에서 얻었어.”
“맙소사! 그 남자는 혹시 게이가 아니었을까요?! 그는 준 님을 절실히 사랑하지 않고선 넘겨줄 수 없는 걸 넘겨준 겁니다!”
“그도 아마 내가 거기서 성유물을 얻어 나올 줄은 몰랐을 거야.”
다른 이들은 막연히 성유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리에서 성유물의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우니카였다.
이번 그랜드 퀘스트에서 일행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성유물과 접촉했는지 그녀가 알게 되면 아마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군요, 글리터토스는 이것에 대해 알고 있었겠군요. 그러니 제 제안을 그렇게 순순히……!”
“화산이 보이네.”
그녀가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도 차분히 주위를 살피던 틸라가 문득 그런 말을 내뱉었다.
일행이 이미 결계 영역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일까, 여태까지만 해도 너른 평원으로 보이던 지평선 너머로 정말 거대한 산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끊임없이 화산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인지 지금도 시커먼 연기가 솟아나고 있어 여태껏 모르고 있던 게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
아마도 우르알타는 저 화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이리라.
우니카는 생각보다도 가까운 곳에 모습을 드러낸 화산을 바라보며 멍하니 말했다.
“원래는 여기서도 한참은 돌아가야 하는 곳입니다만.”
“우리 속도라면 1시간이면 충분하겠는걸. 어때, 준의 대단함을 좀 알겠어?”
“……당신을 준 님께 소개해 드린 게 저희인데 왜 그렇게 잘난 척을 하시는 거죠?”
잘난 것은 기준인데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하는 틸라의 모습에 어처구니없어하며 쏘아붙인 우니카가 후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바로 가시죠. 글리터토스가 저희를 반겨 줄 거예요.”
금방이라도 우르알타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지만 가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화산이 가까워져 올수록 기온이 높아진 탓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종족 등급이 낮은 이들은 버티지도 못할 만큼 공기가 뜨거워졌다.
―드높은 기온, 지열, 감각을 교란하는 천연 결계가 펼쳐져 있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적응(Uc) 스킬의 영향으로 모든 능력이 15% 상승합니다.
역시나 적응 스킬이 발동했다.
반면 기준의 고유 스킬은 이 정도로는 디버프 취급도 안 해 주는지 감감무소식.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은신도 기준과 같은 타이밍에 적응 스킬이 발동했는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스킬 진짜 엄청 사기네요. 스테이터스 한정도 아니고 모든 능력이 10%나 올랐어요.”
“언커먼 등급으로 성장시키면 15% 올라.”
“……스킬을 얻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벌써 언커먼이에요?”
“흡혈귀 성에 냅다 돌격하면 그렇게 돼.”
다른 이였으면 여기서 질려 하는 반응을 보였겠지만 은신은 아까워하며 혀를 찼다.
“역시 저도 성으로 갔어야 했는데요.”
“걱정 마, 다음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땐 형 등 뒤는 제가 지킬게요.”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니, 오히려 걱정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옆에서 그 말을 엿들은 우니카가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문득 떠올린 것이 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기준에게 물었다.
“혹시 저번에 말씀하셨던 다른 신수와 관련된 얘긴가요?”
“역시 우니카야, 예리한걸.”
“그야 준 님께서 제게 신수를 잡고 얻은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요.”
“기억하는 이유가 그거구나…….”
우니카에게는 이미 성유물까지 보여 줬으니 훼손된 야른비드르의 출입증도 보여 주지 못할 것 없다는 생각에 인벤토리를 연 기준은― 어느덧 그것이 진동하며 빛을 토해 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응?”
잠깐만, 설마.
조금 전의 우니카와 비슷하게 눈을 가늘게 뜬 기준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니카, 설마 우르알타에 신수가 잠들어 있다든가 하는 전설은 없어?”
“…….”
그 말에 우니카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기준이 연유를 물으려던 그때 우니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우르알타의 이변이 신수 탓이었다니.”
“아니, 무슨.”
신수를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으니 기뻐해야 할 일인가?
어처구니없어하는 기준에게 우니카가 변명하듯 말했다.
“준 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신수가 그렇게 흔한 존재는 아니에요! 신수처럼 위험한 게 도사리고 있을 줄 알았으면 준 님을 우르알타로 모시고 오지 않았을 텐데.”
“탓할 생각 없어, 우니카. 어차피 신수는 조만간 잡으러 갈 생각이었거든.”
하티와 쌍을 이루는 신수― 스콜은 해를 삼킨 늑대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강한 열기를 품고 있는 것이 공략의 난점이겠지만, 기준은 이번에 유니크 등급으로 성장하며 빛과 열기를 제어하는 능력이 대폭 성장했으며 염인인 틸라 또한 레전더리 등급으로 승급했으니 열기 대책은 만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콜이라. 놈을 잡으면 비경 야른비드르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건가? 원래 우르알타에 들른 다음엔 마도 왕국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어차피 지혜도 당분간 코르에 머물러야 하니 차라리 그 전에 야른비드르를 다녀오는 게 좋을까. ……아니, 스콜은 그렇다 쳐도 야른비드르에서 과연 우리 파티가 버틸 수 있기는 할까?’
야른비드르.
이는 철의 숲이라는 뜻으로, 하티와 스콜이 태어난 곳이며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들인 요툰족이 살고 있는 험지 중의 험지였다.
그야 그런 극한의 환경에 들어가면 은신이 원하는 수련은 팍팍 할 수 있겠지만.
여태껏 미뤄 둔 일을 뜻밖의 장소에서 맞닥뜨리게 되어 마음이 복잡해진 기준이 멍하니 화산을 올려다보던 그때.
―우르르릉
마치 그를 경계하는 것처럼 화산이 분화를 시작했다.
하늘로 치솟는 용암을 보며 우니카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산을 오르긴 위험하겠네요. 일단 여기서 조금 쉬고 나서…….”
“아냐, 괜찮아.”
―키이이이!
기준의 단호한 목소리에 맞춰 우르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 높여 울었다.
틸라의 홍염수, 로딤이 주인의 눈빛을 받곤 꼬리를 살랑이며 우르 옆에 사뿐히 착지했다.
“오늘 밤은 우르알타에서 자는 거다.”
“로딤, 출발하자.”
정령과 홍염수가 일제히 질주를 개시했다.
대지가 뒤집어지고 이곳저곳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와중에도 녀석들이 나아가는 길은 융단이라도 깔아 놓은 것처럼 평탄했다.
코르에서 있었던 세력전에서 기준이 화산 하나를 터트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우니카는 얌전히 그 뒤를 따라 내달렸다.
“오오, 드디어 왔구만, VVIP!”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알타의 초입에 들어선 일행은 정말로 글리터토스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모든 게 저놈 때문이다! 일족의 배반자를 당장이라도 찢어 죽여야 해!”
“화산이 계속 분화하는 것도, 작업물에 신의 축복이 깃들지 않는 것도, 메리가 내 고백을 거절한 것도 모두 글리터토스 때문이야!”
“글리터토스! 너를 산제물로 바쳐 프타흐 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겠다!”
비록 그가 밧줄에 칭칭 묶여 화형대에 매달린 모습이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