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2)
나 빼고 다 회귀자-162화(162/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62)
Chapter 32. 장인의 약속 – 1
“정말로 그럴까? 그야 물론 그라티아의 영웅이 우르알타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글리터토스가 제물을 빼돌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말로 장담할 수 있느냔 말이야.”
기준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으로 얘기가 얼추 정리되었을 무렵― 드워프 한 명이 재차 문제를 재기했다.
다른 드워프들도 그것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들 있었으나 이미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 기준으로선 가소로운 얘기일 뿐이었다.
“애초에 글리터토스에 대한 처벌은 50년 전에 끝났던 게 아닌가? 이미 내가 이번 일을 해결해 주겠다고 했는데 어째서 다시 글리터토스를 문제 삼으려 하는 거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오! 바로 그 제물!”
드워프가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글리터토스는 제물을 되돌려 놓지 않았어. 그것을 가지고 다시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면, 설령 이번에 분화를 가라앉힌다 해도 언제고 같은 일이 반복될 거야!”
“맞아, 저자가 영웅이니 뭐니 해도 우리보다 이 도시를, 화산을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 피나 빨아 먹는 모기 놈들을 잡는 것과 이번 일은 완전히 달라. 실패라도 하면 어쩔 거냐고!”
“프타흐 님의 진노가 더욱 거세질 거야!”
“음, 하지만 장로께서도 납득하신 일인데.”
“정말로 이번 일이 의식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지 않나.”
“의식을 준비하는 데에만 2주 이상은 걸려. 그때까지 점점 화산활동이 심해지면 의식을 치를 때쯤에는 도시가 화산재에 덮여 있을 수도 있다고.”
“영웅이잖아, 맡겨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냥 모기만 잡은 게 아니라 드래곤까지 잡았다고, 드래곤!”
기준의 카리스마에 영향을 받은 드워프들과 거기에 저항하는 드워프들 사이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레전더리 등급에서도 끝자락에 이르러 가는 기준의 매력에 저항한다는 것만으로 드워프들에게 있어 이 도시 우르알타가, 그리고 도시의 수호신인 프타흐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걸 도저히 제물로 바칠 수가 없었어.”
그러다 문득 글리터토스가 내뱉은 말에 신기하게도 소요가 멎었다.
일제히 글리터토스를 향해 돌아가는 드워프들의 얼굴에 기준은 순간 공포마저 느꼈다.
그는 생각했다.
그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음에도 드워프들이 글리터토스를 걸고넘어졌던 이유는― 혹시, 혹시나.
“그럼 그 검은 지금 어디 있지?”
“그걸 가져와 봐!”
혹시 이 자식들은 처음부터 제물로 바칠 예정이었던 검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진실을 깨닫고 전율하는 기준 옆에서 글리터토스가 재차 입을 열어 말했다.
“지금은 내게 없어. 떠나갔지.”
“헛소리를!”
“아버지의 유품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알지만, 네놈은 우리들을 배신한 거야! 죽고 없는 글리터핑거의 마음을 지키려고 살아 있는 동족들을 배신했단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글리터토스에게도 검이 없다는 말에 폭언을 늘어놓는 드워프들.
그러나 글리터토스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가 아니다. 정말로 떠나갔어. 그 검은― 자아를 얻었거든.”
“뭐?”
“츠쿠모가미(付喪神, 부상신)가 되었단 말이다.”
다시금 정적에 빠져드는 회장.
츠쿠모가미라면 기준도 얼마 전에 상대한 적이 있었다.
포션 병이 영혼을 얻어 변이한 개체로, 독액을 끊임없이 분사하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자아가 발아한 지 얼마 안 되어 생김새는 검 그대로였지만, 의식을 치르기 전날 내게 말을 걸어와 알 수 있었지.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그 녀석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었어. 그게 내가 제물을 빼돌린 이유다. 그래, 이유를 알게 되니 속이 시원들 하신가?”
“츠쿠모가미라니…….”
“이럴 수가.”
“그래, 그 검을 너무 오랫동안 놔뒀었지. 역시 검은 쥐고 휘둘러야 하는 법인가…….”
자아가 있는 검을 제물로 바친다면 그게 산 제물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50년 전의 비사에 기준이 내심 박수를 치고 있자니 뒤에서 은신이 조심스레 물어 왔다.
“그게 에고 소드랑 뭐가 다른 거예요, 형?”
“츠쿠모가미는 막 사람처럼 커지기도 하더라.”
“형 모르는구나. 원래 에고 소드도 사람 되잖아요.”
“그럼 그것도 츠쿠모가미라고 하자.”
바보 같은 대화 끝에 원만한 합의를 보는 두 사람.
다행히 그 대화를 듣지 못한 글리터토스는 한없이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탄식을 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드워프들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아무튼 그 녀석은 홀로 떠나갔으니 미련을 버려라. 준이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땐 정말 내가 분화구에 몸이라도 던지지.”
그렇게 모든 얘기가 끝나고 드워프 회관을 나오는 길.
루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준에게 따졌다.
―계약자, 초인의 의지는 어떻게 됐어? 그렇게 안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하다니.
“내가 목표로 하는 초인은 바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내 동료를 지켜 낼 수 있는 사람이야. 난 동료들이 괜한 소란에 휘말려 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부득이 오해를 살 법한 말을 삼간 거지. 아마 니체 선생님도 인정해 주실 거야.”
청산유수같이 변명을 늘어놓은 기준이 드워프들로 가득한 회관에서 무사히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한 글리터토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쨌든 혹시라도 산 제물로 바쳐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글리터토스. 화산의 난동에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하핫, 역시 우리 VVIP라면 어떻게든 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지.”
안면의 강도로는 글리터토스도 결코 기준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그리 말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글리터토스에게 다가간 틸라가 대뜸 그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으억!”
“미리 상의할 수도 있었던 문제를 이렇게 갑자기 들이밀어 곤란하게 만들다니. 당신이 준에게 그 방패를 만들어 준 장인이 아니었더라면 앞뒤 잴 것 없이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렸을 거야!”
“나도, 나도 몰랐단 말이야! 설마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화산이 이렇게 폭주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하긴 그야 그렇다.
글리터토스는 50년 전 의식의 제물을 빼돌린 일로 우르알타에서 쫓겨났다.
달리 말하면, 그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고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50년이 흐른 지금, 슬슬 다른 이들의 분노도 잠잠해졌으리라 생각하고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날벼락을 맞게 된 셈이니 그도 나름 억울할 법했다.
물론 틸라에겐 알 바 아니었다.
“그래도 당신이 드워프들과의 문제에 준을 멋대로 끌어들인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 일로 준이 위험해지거나 오명을 뒤집어쓰기라도 하면 이 잘난 수염 전부 불태워 버릴 줄 알아……!”
“위험해지는 건 몰라도 오명은 전부 내가 입을 테니 걱정 마시고 일단 내 수염 좀 놔주시오, 수염.”
틸라의 두 눈동자가 열기를 품고 위험하게 번뜩이는 모습에 기어이 글리터토스가 존댓말로 그녀의 자비를 구했다.
투리스에서는 한없이 이름 높고 오만한 장인이었던 글리터토스의 추레한 몰골에 한숨을 내쉰 우니카가 그에게 물었다.
“참고로 묻겠습니다만 당신의 원래 계획은? 그냥 우르알타로 돌아오려고 했던 것은 아닐 텐데요.”
“그건…… 일단 내 집으로 가서 얘기하지.”
글리터토스가 원래부터 우르알타에 살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도 상당히 중앙 도로에 가까운 상업 구역에 그의 대장간이 있었는데, 누군가 침입을 시도했던 것인지 주위가 어지러웠지만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헹, 뭐 주워 먹을 게 남아 있나 싶어 어슬렁거렸나 본데, 하이에나 놈들 따위가 열 수 있는 결계가 아니지.”
“뭐야, 글리터토스. 설마 집에 들어갈 틈도 없이 붙잡혔던 거야?”
“그렇다니까. 아무래도 내가 우르알타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야. 하긴 얼마 전에는 왕궁으로 끌려가기도 했으니 내 행적이 드러나기 쉬웠겠지.”
글리터토스가 대장간 입구로 다가가 바삐 손을 놀리자 그것이 열리며 안에서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작업실 중앙에 놓인 화로에서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아까 글리터토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도 이 대장간에 돌아오는 것은 50년 만일 터.
그동안 계속 불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라면 저 화로도 범상한 물건은 아니리라.
“아버지, 글리터핑거의 화로다. 츠쿠모가미가 되어 버린 그 검도 여기서 만들어졌지.”
어딘가 그리운 표정으로 화로를 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한 글리터토스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일행을 살피더니 말했다.
“이곳은 얘기를 나누기엔 너무 덥구만. 일단 다들 안으로 들어와라.”
화로를 지나 일행을 작업실과 떨어진 방으로 안내한 글리터토스가 비로소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이 화산에는 굉장히 위험한 던전이 하나 있어. 그곳에 터무니없이 희귀해 신의 광석이라고 불리는 오리할콘이 잠들어 있는데……. VVIP라면 그 던전에서 오리할콘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것으로 내가 새로 검을 쳐 의식을 치르겠다고 하면 그 노망난 꼰대들도 납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다.”
“오리할콘?”
여태껏 뒤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만 있던 로라가 오리할콘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빛의 교단을 상징하는 신물을 오리할콘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금(神金)이라고 불리는, 미스릴보다도 희귀하다는 마법 금속인데요.”
“오리할콘이 정말로 그 던전에 있나요? 아무리 그 던전이 위험해도 오리할콘이 확실히 있다면 여태껏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어요.”
“츠쿠모가미가 된 검을 친 재료가 바로 오리할콘이다. 이걸로 답이 됐겠지?”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구나, 이 욕심 많은 난쟁이가.”
글리터토스를 곱게 보지 않게 된 틸라는 속내를 굳이 필터에 거치지 않고 쏘아붙였다.
그는 떨떠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훌륭한 장인이면서 굉장한 전사이기도 했거든. 당시 그 던전을 탐색할 수 있는 이는 아버지뿐이었고, 실제로 오리할콘을 얻어 내 돌아왔던 것도 아버지뿐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는 바람에…… 요양이 필요했는데, 바보같이 검을 만들어야 한다고 촐싹거리다가 그만 검이 완성되자마자 죽고 말았지.”
“다른 드워프들은 의식에 그 검을 제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야 우르알타에서 가장 완벽한 검을 고르라면 그것밖에 없기는 했어. 하지만 우스운 노릇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좋은 무구는 강한 전사의 손에 들려야만 한다고 믿었고, 나 또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만큼 그 검을 제대로 다룰 만한 사람을 찾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 망할 놈들이 훼방을 놓는 탓에 끝끝내 검을 팔지 못하고 가만히 모셔 두어야만 했단 말이다.”
“질투였을까?”
“분석하고 싶었던 거겠지. 욕심 많은 난쟁이 놈들 같으니.”
이번엔 틸라가 아니라 글리터토스가 한 말이었다.
“놈들이 검을 제물로 쓰자고 했을 때, 나는 놈들을 의심했다. 분명 누군가 검을 바꿔치기할 거라고 확신했어.”
“그런데 검이 자아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구나.”
“프타흐 신께서 계신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이었다. 절대로 놈들 뜻대로 놔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검을 빼돌린 거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데?”
“말했잖아, 검이 떠나갔다고. 녀석이 츠쿠모가미가 된 이유는 하나, 아무도 자신을 써 주지 않아서다. 아마 지금쯤 대륙을 떠돌며 제 주인이 되기에 적합한 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역시 에고 소드 맞네요.”
은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기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말의 오류를 지적했다.
“드워프들이 검을 탐냈던 건 그 검이 오리할콘으로 만들어져서잖아. 그런데 그 상황에 네가 다시 오리할콘으로 만든 검을 내놓는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부분은 이제 영웅의 명성을 빌려 얼버무리려고 생각했지. ……뭐, 뭐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내가 만들어 준 방패가 도움이 됐으니 VVIP도 한 번쯤 내 방패가 되어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틸라뿐만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까지도 글리터토스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계속 눈싸움만 하고 있어 봤자 상황이 변화할 것 같지도 않았기에― 기준이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선언했다.
“사정도 알았으니 이제 화산 오를 준비나 하자. 거기서 우린 신수를 잡을 거야. 아, 그리고 글리터토스― 이번 보수는 오리할콘이 있다는 던전의 정보다.”
“신수? 이봐, 잠깐.”
“자, 그럼 준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