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6)
나 빼고 다 회귀자-166화(16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66)
Chapter 32. 장인의 약속 – 5
당연하지만 기준은 장인이 아니었기에 이 망치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프타흐의 대리자라니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신물의 넘쳐 나는 열기를 자신이 다루는 불꽃에 보태는 것은 가능했다.
저 눈동자가 프타흐라면, 대장장이 신이라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지만.
―그건…… 굉장한 물건이군,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내 불꽃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놈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실 놈이 정말로 대장장이 신이었더라면, 기준이 그 힘을 다루고 있는 시점에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간섭할 수 있을 터였다.
신물의 힘을 약화시키거나, 반대로 폭주시켜 기준을 불태워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놈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신적인 존재임에는 분명하지만 놈은 결코 프타흐가, 헤파이스토스가, 불카누스가 아니었다!
“염인이…… 어찌 프타흐 님의 신물을.”
“아아아, 저분이야말로 우르알타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신 프타흐 님의 대리자가 분명해!”
“나는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고! 어쩐지 몸에 두르고 있는 열기부터 범상치 않았지!”
한편 그것이 대장장이 신의 신물임을 알아본 드워프들의 태세 전환이란!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의 위엄에 압도되어, 앞장서서 기준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던 드워프들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모습은 그저 코웃음만 나올 지경이었다.
―어리석은! 그깟 사물에 현혹되어 그동안 너희를 지켜 준 나를 부정하겠다는 것이냐! 너희가 섬기는 프타흐가 이곳에 있다!
모든 이를 압도하며 등장한 신의 눈동자가 분기탱천하여 고함을 내질렀다.
그럴 때마다 화산이 한껏 폭발하고 여기저기서 용암이 솟구쳤으나 드워프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우리를 농락한 사악한 악마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진정한 프타흐 신의 대리자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놈을 무찌르기 위해 프타흐께서 자신의 전사를 내어 주신 것이다!”
“저 눈동자를 없애 줘! 우리의 거짓된 신을 용암 속에 다시 묻어 줘!”
“지금 느껴지는 감각은…… 나는 정의 속에 있다. 저 괴물은 악! 그라티아의 영웅은 정의! 악과 정의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정의를 집행하고 있다!”
신의 이름은 거짓일지언정 그 힘은 진짜일 텐데도 드워프들의 태도는 한없이 굳건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랜 세월 찾아 헤매던 성배를 드디어 찾아낸 원탁의 기사들과 같았다.
“순식간에 태도가 바뀌었군요. 준 님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던 드워프들까지.”
레타인들을 지휘하며 그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오버플로를 막아 내고 있던 우니카가 그들의 단호한 태도에 놀라워하고 있자니, 그 옆에서 특제 연발식 보우건을 쏘아 내던 글리터토스가 코웃음을 쳤다.
“필사적이구만. 하긴 장인이라면 누구나가 원하는 신물이 눈앞에 있으니 드워프라면 당연하다만.”
우니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가 정신을 되찾곤 다급히 그에게 반문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들이 준 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라서가 아니라, 그분의 손에 들려 있는 망치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얘긴가요?”
“당연하지 않겠소, 뭐 얼마나 봤다고 저들이 VVIP를 진심으로 따를까. 저들이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신물이오.”
우니카는 고개를 들어 최전방, 그 너머에 우뚝 서 있는 기준의 모습을 보았다.
지상을 내려 보며 그들 모두를 압박하는 거대한 붉은 눈동자에 맞서, 씩씩하게 망치를 들어 올리며 그 기운을 떨쳐 내는 영웅의 모습을.
전장의 모든 이가 그의 의지에 감화되어 신의 이름을 부정하고 인간의 의지를 관철하는― 그런 감동적인 광경을 상상하던 우니카는 어느덧 자신의 시선도 그의 손에 들린 망치에 고정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휘휘 젓고 말았다.
드워프는 기계적으로 석궁을 쏘아 내면서도 말을 이었다.
“프타흐께서 직접 강림하시지 않는 한 드워프들은 영웅의 노예일 것이오. 그가 죽으라고 하면 팔 하나 정도는 자르지 않을까.”
“그럼 당신은?”
“그야 손가락 하나쯤은…… 큼, 설마 전속인데 한 번 정도는 그냥 쥐여 주지 않겠소?”
애초에 기준의 전속도 아니면서 벌써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시고 있는 글리터토스.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드워프들의 진의를 파악해 속이 시원해진 우니카였으나 문제는 여전히 산재해 있었다.
화산의 진체가 모습을 드러내며 오버플로는 더욱 격해졌고, 하늘에는 심상치 않은 힘을 품은 눈알이 언제고 힘을 쏟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르알타를 수호하는 결계가 버티고 있으나 계속해서 쏟아지는 용암과 화산암의 빗줄기가 결계를 두드리고 있어 언제 그것이 뚫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선이 밀리지 않는 것이 기적이었다.
“준 님이 대량으로 만들어 주신 요리가 아니었다면 이미…… 정말이지 그분은.”
상황이 이렇게나 절망적인데도― 전장을 뒤덮는 기준의 강한 존재감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어느덧 자신이 안도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은 우니카는 픽 웃어 버렸다.
“우니카 아가씨, 힘들면 뒤로 빠지시오.”
“아뇨, 모두를 모은 것은 접니다. 그런 제가 빠지면 레타인과 소환자들은 서로를 믿고 싸우지 못하게 될 겁니다. ……괜찮아요, 힘들어서 정신이 나간 게 아니니까.”
그녀는 자신의 이마의 뿔이 강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노케로스 일족 특유의 직감이,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곧 찾아올 것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함께 신수를 사냥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군요.”
“지금 신수가 문제요, 신이랑 싸우게 생겼는데.”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글리터토스가 툴툴거리며 보우건을 당겼다.
불꽃 늑대의 미간을 정확히 볼트로 꿰뚫은 후, 어느덧 단순 대치를 넘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기준과 거대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는 한마디 툭 내뱉었다.
“소재는 뭐가 나올지 궁금하긴 하네.”
그의 말을 들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 순간 기준과 눈동자가 충돌을 개시했다.
―네놈이 저 바보 같은 난쟁이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렷다! 내 친히 너를 지상에서 지워 내 저들을 올바른 길로 되돌려 놓으리라!
눈동자가 홍채 부분에 압도적인 에너지를 집약시켜 레이저 광선처럼 일자로 그것을 쏘아 내자, 기준이 방패를 들어 다급히 그것을 막아 냈다.
“큭……! 정체가 들통났다고 바로 덤벼 올 줄은 몰랐는데……!”
기준은 금방이라도 얼굴을 홀라당 태워 버릴 것만 같은 열량에 침음을 흘리며 방패에 아다만트의 힘을 집중시켰다.
그럼에도 막대한 에너지를 온전히 이겨 내지 못해 몸이 뒤로 질질 밀려 나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신력을 개인이 막아 내고 있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정말 신의 힘이 느껴지기는 하네. 고작 화산 하나에 틀어박혀 있던 잡신치고는 격이 상당해. ……꼭 힘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설프지만.
말투는 가벼워도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기준의 방패에 자신의 정령력을 집중시키는 루시.
모순의 은월에 집중된 빛의 마력과 정령력이 눈부신 빛을 뿌려 내며 레이저를 막아 내는 사이 기준은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나마 놈의 레이저가 주위로 몰려들던 적들까지 일소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끝나지 않는 레이저 세례에 기준은 이를 빠득 물고 다리에 힘을 강하게 주어 버티며 악을 질렀다.
“루시, 신이 이래도 되는 거야? 저번 그랜드 퀘스트에서도 이렇게 직접 힘을 쓰진 않았잖아!”
사실 기준이 놈에게 예상했던 것은 대치와 경고, 시스템의 눈을 피해 기준에게 페널티를 입히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었지 결코 이렇게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프타흐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면 적당히 눈싸움이나 하다가 얌전히 물러날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죽자 사자 덤벼들 줄이야!
―계약자의 말이 맞아. 저건 레타, 즉 시스템을 주관하는 신이 아닐 거야. 레타에서 구분하는 선신과 악신의 부류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얘기지. 그 정도 되는 신격이었으면 굳이 다른 신을 사칭하고 화산에 들어앉아 있을 필요도 없잖아?
“엥.”
기준은 틀림없이 레타를 주관하는 신들이 그에게 관심을 품고 분신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리라 지레짐작하고 있었으나― 그 추측은 완전히 틀렸음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레타를 다스리는 신들은 그렇게 과감하지도 못했고, 애초에 저 눈동자는 분신 같은 것이 아니라 신의 본체였던 것이다.
“그럼 저놈은 뭔데?”
자신이 비대한 자의식이 섞인 망상을 하고 있었음을 감추려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기준.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주제에 레타를 다스리는 신들의 사정에 대해 묘하게 자세히 알고 있는 루시가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계약자도 맞상대하고 있으니 알겠지만 놈의 힘은 한없이 불안정하고, 진정한 신격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어.
끊임없이 쏟아지는 레이저에 금방이라도 뼈째로 바삭하게 구워질 듯한 상황에 놈이 나약하다는 말을 들으니 방패를 든 팔에 힘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만큼 ‘진정한 신격’이 지닌 힘이 거대하다는 얘기겠지.
―아마 놈은 신위를 잃고 영락한 신이거나, 반대로 신의 힘을 갈취하고 어설프게나마 신격을 얻은 토착신이겠지. 나는…… 아마 후자일 거라고 생각해. 왜냐면 놈은 계약자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고― 그 이유로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마도.
루시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 순간이었다.
기준은 자신의 영혼과 연결된 끈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극심한 분노와 슬픔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루시가 아닌 다른 쪽, 우르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저 불안정한 신의 힘이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샤아아…….
“우르.”
우르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건 녀석을 만나 치료해 주는 순간 흘러 들어온 기억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다른 정령들과 함께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고 있던 우르.
그러나 녀석은 내부의 배신을 당해 힘을 잃고 큰 상처를 입어 도망쳤었다.
하지만 설마― 녀석의 힘의 일부만으로 저런 존재가 탄생했을 줄은.
자신이 우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무는 기준에게, 루시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아마 놈은 불완전한 힘과 격을 보충하기 위해 화산에 들어앉아 프타흐의 흉내를 내던 거겠지. 그렇게 오랜 세월 드워프들의 신앙을 받아먹고 몸집을 불렸을 거야.
“……그 신앙이 흔들릴 것 같으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건가.”
―어쩌면 그것도 연기일 뿐 그 이상으로 원하는 게 생겨서 나타났을 수도 있지. 그건 아마도 계약자이거나, 아니면.
뒷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기준은 방패를 쥔 손에 힘을 더하며 눈을 빛냈다.
“놈이 원하는 건 무엇 하나 이뤄 낼 수 없을 거다.”
모순의 은월에 한층 창백하고도 서늘한 빛이 어린 다음 순간.
기준은 가시공과의 전투를 벌일 때도 톡톡히 활약한 은월 파동과 함께 그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쇼크 웨이브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기준을 향해 일직선으로 쏟아지던 레이저가 방패가 뿜어내는 파동과 격돌한 순간, 놀랍게도 그것이 그대로 튕겨 나와 놈에게로 내쏘아졌다!
―뭣……!
모순의 은월이 지닌 옵션 가운데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쳐 내는 데 성공했을 경우 데미지의 일부를 상대에게 되돌린다’는 것이 있는데― 은월 파동과의 조화로 더한 기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완벽했어, 계약자!
반사된 레이저는 모든 것을 정화하는 은월파동의 힘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닌 힘을 억지로 붙들고 있던, 즉 한없이 조화롭지 못한 상태였던 놈에게는 실로 치명적인 일격.
불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비틀거리고 이지러지는 것을 보며 기준은 루시가 한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놈은 분명 터무니없이 강력하지만― 그만큼 불안정하고 어설펐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런 놈을 몰아붙일 기회다.
―이, 인간 주제에! 나약해 빠진 인간이 분수에 맞지도 않은 힘을 얻어 날뛰다니! 네가 아무리 발악한들 이미 영락한 그놈이――!
“프타흐 님께서 너를 징벌하실 것이다!”
여기서 우르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그리 좋지 않겠지.
기준은 놈의 말을 막듯 강하게 외치며 방패를 쥔 손과 다른 손에 불카누스의 망치를 쥐고 높이 들어 올렸다.
끝까지 프타흐의 대리자 신분을 관철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가 쥔 망치가 불꽃에 휩싸이더니, 나아가 그 불꽃이 기준의 전신을 감싸고 화려하게 타올랐다.
―신을 사칭하는 존재에 대한 신벌. 시스템이 신의 간섭을 인정합니다.
―불카누스의 망치가 당신을 일시적으로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스킬 ‘신의 망치’를 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전투 능력이 20% 상승합니다.
“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기준은 외마디 감탄사를 흘리곤, 망치 위로 자신의 마력을 덧씌우며 소리 높여 외쳤다.
“프타흐 님께서 대답해 주셨다! 저 거짓된 악신을 몰아내고 화산에 프타흐 님의 신전을 세우리라!”
―우리 계약자가 악마한테서 매력 컨트롤을 배우면서 덩달아 이상한 걸 같이 배워 온 것 같은데…… 뭐, 멋지니까 됐나!
기준이 대지를 짓밟고 강하게 점프했다.
천만다행하게도 망치는 그의 전투 기술인 월광혈아의 전신인 둔기술에 속하는 무기.
스킬 보정으로 실로 완벽한 자세로 망치를 쥔 기준이, 아직까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눈동자를 향해 그것을 강하게 내려치며 외쳤다.
“신의 망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