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8)
나 빼고 다 회귀자-168화(168/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68)
Chapter 33. 제물 의식 – 1
한때는 우르의 힘을 강탈한 배신자였으며, 그 후로는 우르알타의 화산에 머무르며 대장장이 신을 사칭해 드워프들로부터 제물과 신앙심을 가로챘던 거짓된 신, 눈동자.
그런 놈이 딱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진체로 현신하는 과정에서 화산의 열기, 정(精)을 모조리 빨아먹었다는 것이다.
기준이 전리품으로 ‘우르알타의 정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며― 동시에, 놈을 해치운 직후 오버플로의 기세가 급격히 약화된 이유이기도 했다.
“화산의 마나 흐름이…… 안정되고 있어.”
기준이 눈동자를 맡아 싸우는 사이 홀로 최전선을 감당하던 틸라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쓰러트리기가 무섭게 용암 속에서 새로이 솟아나던 몬스터의 무리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는 늘어나지 않고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이다, 오버플로가 곧 가라앉을 거야…….”
“아직이지.”
틸라의 곁으로 합류한 기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신수를 못 잡았잖아.”
“아.”
여태껏 신수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어 먹고 있었음에 분명한 표정을 짓는 틸라.
기준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기준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신수 말이지, 그래. 이제 이쪽은 우리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놈을 잡으러 가자.”
“사실 나도 중간까지는 잊어 먹고 있었어. 신수보다 더한 놈이 나타날 줄은 몰랐으니까.”
“안 잊어 먹고 있었는데? 준, 나는 한순간도 신과 로라를 잊어 먹은 적이 없어.”
“그래, 그런 걸로 하자고. 포르티스!”
―피요오오오오!
충성스러운 그리핀은 소환자들 틈에서 날개와 발톱, 부리를 휘두르며 늑대들을 무찌르고 있다가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날개를 활짝 펴고 기준의 곁으로 날아왔다.
날개를 비롯한 전신에 자잘한 생채기가 난 것을 본 기준은 루시의 힘으로 녀석을 치유해 주곤 틸라와 함께 녀석의 등에 올랐다.
“친구들 구해 주러 가자, 포르티스.”
―피요오오오!
재차 날개를 펼친 포르티스가 대지를 박차고 단숨에 날아올랐다.
기준의 가슴팍에 단단히 팔을 두른 틸라가 힐끗 뒤를 돌아보며 그에게 물었다.
“유니콘 아가씨는 안 데려가도 돼?”
“우니카? 괜찮을 거야. 여기가 우니카의 전장이니까.”
“과연.”
기준의 말을 증명하듯 신수를 잡으러 떠나는 그들에게 우니카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곤 그리핀을 재촉해 하늘을 내달렸다.
“소환자들과 레타인들을 제법 그럴듯하게 통솔하고 있던걸.”
“소환자들은 몰라도, 내가 우니카와 친하게 지내는 한 레타인― 우르알타의 드워프들은 그녀를 거스르기 쉽지 않겠지.”
“……아하.”
우니카와 기준이 굳이 서로의 친밀함을 드러내는 제스처를 한 이유를 그제야 이해한 틸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처음부터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건 아니지만, 기껏 신물이 나한테 있다는 것까지 폭로했는데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모두 얻어야지.”
“신물을 노리는 이가 나타나는 걸 우려하는 거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봐. 준은 신물에 인정받아 신격을 지닌 자를 사냥하기까지 했잖아. 그런데도 신물을 빼앗겠다고 바보같이 덤벼드는 이는 없겠지.”
“진짜 바보는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덤벼드니까 귀찮은 거야. ……만약 바보가 아닌데도 덤벼든다면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일 테니, 더욱 귀찮아질 테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기준은 어딘가 자포자기한 기색이었다.
그라티아의 영웅, 신수 사냥꾼, 드래곤 슬레이어.
이미 다른 이들에게 노려지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이유가 있으니, 새삼 거기에 미끼가 하나 추가된다고 한들 딱히 달라질 것도 없지 않겠는가.
“아, 저기 보이는걸. ……제법 잘하고 있는데?”
딴생각을 하고 있던 탓에 동료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틸라보다 늦어졌다.
틸라의 말에 시선을 아래로 향한 기준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 들어갑니다!”
“부탁합니다!”
―캬아아아악!
그도 그럴 것이, 마냥 신수가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어 두기만 해도 잘한 거라고 생각했던 은신과 로라가 놀랍게도 정면에서 신수와 맞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준도 레어 등급일 당시에 신수와 싸워 이긴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 그에겐 엄연히 레전더리 등급의 정령인 루시가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대단하네. ……계약자의 종족 효과.
“내 종족 효과? 그 덕에 둘이 지금 저렇게 싸우고 있다고?”
신수는 그 전장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짓누르며, 특히나 화산보다 더한 열기를 품고 있는 스콜에게는 접근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을 터인데 두 사람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물러나는 모습이 없었다.
로라가 정면에서 신수와 맞붙으며 시선을 끌고, 빈틈이 날 때마다 은신이 신수의 뒤통수에 단검을 박아 유효한 데미지를 입힌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두 사람의 연계, 실시간으로 약화되는 것이 보이는 신수의 모습에 얼이 빠져 있던 기준이 루시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꾸하자, 그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승급하기 전에도 종족 효과가 있었잖아. 광 마력이 강화되고, 빛이 머무르는 곳에선 계약자의 회복력이 높아지는 식으로.
“……그랬나?”
본래는 다루기 까다로운 광 마력을 자신의 종족 덕분에 수월히 다루는 것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종족 등급이 모든 스테이터스와 스킬 전반에 긍정적인 보정을 주어, 등급이 높아질수록 강해진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 이상 가는 효과가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도 효과가 저렇게 좋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한번 상태창을 확인해 보는 게 어때, 계약자?
루시의 말을 듣고 상태창을 확인했더니 정말로 효과가 명시되어 있어, 여태까지 확인해 볼 생각도 안 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광휘(Unique): 인간의 강한 의지가 법칙을 초월해 순수한 빛의 정화로 화하여 탄생한 종족. 다루는 모든 빛과 열기를 증폭하며, 자신이 이끄는 모든 이에게 빛의 가호를 부여한다.] [빛의 가호: 빛과 열에 대한 친화력이 증가하며, 빛 속성 공격력과 방어력이 추가된다.]종족 등급이 오른 후로 그가 다루는 빛과 불꽃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것은 깨닫고 있었지만 빛의 가호의 존재는 처음 알았다.
저항력이 해당 속성에 대한 방어력을 높여 준다면, 친화력은 거기서 더 나아가 해당 속성의 방어력과 공격력을 동시에 높여 주는 개념.
정말로 두 사람이 그 효과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 레전더리 등급에 달하는 신수를 상대로 정면에서 버텨 내는 것도 납득이 갔다.
거기에 로라의 신성력이 더해졌으니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신수를 상대로 대등하게 겨루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흠…… 이렇게 되면.”
위급한 줄 알고 다급히 달려왔지만 알고 보니 둘이서 멋지게 신수를 사냥하고 있는 상황에 그대로 난입하자니 조금 꺼려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는 것도 문제였으니, 두 사람의 공격력이 다소 부족한 탓에 전투가 길어지고 있어 이대로 가면 신수를 쓰러트리기 전에 두 사람이 지쳐 쓰러질지도 몰랐다.
고민하던 준이 틸라를 돌아보았다.
안 그래도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준비를 하던 틸라가 기준이 머뭇거리는 모습에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
“틸라, 가서 둘을 적당히 지원해 줘. 결정타는 먹이지 말고, 신수의 빈틈을 만들어 줘.”
“과연, 이해했어. 확실히 저걸 그대로 빼앗긴 좀 아까운걸.”
파티원들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기준의 마음을 이해한 틸라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
그녀는 곧장 그리핀의 등 위에서 뛰어내리며 불꽃의 채찍을 만들어 내더니, 정확히 신수의 머리를 노리고 그것을 내질렀다.
―쿠와아아아악!
놀랍게도 채찍 끝이 빙글 회전하며 신수의 두꺼운 목을 감고 뒤로 잡아당겼다.
금방이라도 로라의 가슴팍을 찢어 낼 기세로 앞발을 내지르던 늑대, 스콜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오셨군요!”
상황을 파악하고 틸라를 반기면서도 신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돌진하는 로라.
그녀는 신성력과 혈력을 함께 품어 기이한 빛을 발하는 장도를 휘둘러 짐승의 가슴팍을 길게 베어 냈다.
날카로운 검격을 타고 흘러 신수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간 로라의 권능이 힘을 발하는 순간.
―키이이익――!
신수가 섬뜩한 비명 소리와 함께 썩은 피를 대량으로 토해 냈다.
“들어갔다! 심장이 그 근처였나 보군요?”
로라의 입가에 요요한 미소가 떠올랐다.
상처를 내면 대상의 피를 썩게 만들어 버리는, 카르밀라로부터 물려받은 가공할 권능이 비로소 신수의 저항력을 뚫고 놈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
“――흡!”
고통스러워하는 신수에게 은신이 추가타를 입혔다.
로라와 틸라에게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던 탓에 늑대가 은신의 모습을 놓친 바로 그 순간 섬광처럼 놈의 목덜미 근처에 나타난 그가 단검을 내질러 암습을 가한 것이다.
―캬아악! 캬학!
“어딜!”
연거푸 공격에 당한 스콜이 사방으로 불꽃을 뿜어내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은신과 로라가 다급히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도, 틸라는 물러나기는커녕 그대로 놈의 등 위에 올라타며 채찍에 힘을 더했다.
신수와 같은 레전더리 등급에 이른 그녀는 이미 이 정도 불꽃으로는 데미지를 입지 않게 된 것이다.
“조금 도와줄 테니까 너희끼리 죽여 보렴!”
“혼자서 신수를 꽁꽁 붙들어 매고 있으면서 잘도 ‘조금’, ‘너희끼리’라는 말이 나오네요.”
탱커도 아니면서 혼자 신수의 움직임을 틀어막는 틸라의 능력에 어처구니없어하던 로라는 그 너머 상공에서 그리핀에 탄 기준이 그녀와 은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그녀의 찌푸려진 미간이 절로 펴지고 갑자기 순수한 전의와 열망이 솟아났다.
“그, 그럼 해 보겠습니다!”
“갑자기 태도가 얌전해졌네.”
“신, 지금이 기회입니다!”
“아, 네.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기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라와 은신의 신수 사냥이 재개되었다.
두 사람의 성장을 방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정적인 순간에만 신수를 방해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는 틸라와, 순수한 능력으로는 아직 신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에 분해하면서도 열심히 움직여 신수의 몸에 상처를 입혀 나가는 로라, 은신.
전투가 워낙 격렬했던 탓에 일대에 끊임없이 지진이 일어나고, 용암이 솟구쳤다.
그즈음에는 오버플로도 많이 가라앉아― 소환자 가운데 이 소란을 느낀 이들이 몇몇 찾아오기도 했으나.
“저거 설마.”
“맞는 것 같은데. 신수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잖아?”
“윽! 무슨 열기가…… 물러나!”
신수가 만만한 것은 어디까지나 루멘 파티에게일 뿐, 다른 소환자들은 여전히 가까이 접근하기만 해도 놈의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어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러고 보면 준은 처음에 신수 사냥꾼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 설마 우르알타에 온 것도 신수를 찾아 사냥하러 온 거였나?”
“하지만― 정작 신수와 싸우고 있는 건 다른 파티원들인데?”
“……터무니없구만. 파티 리더만 대단한 게 아니었어.”
오버플로도 정리되었겠다, 소환자들은 그대로 눌러앉아 신수와의 전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만약 루멘 파티의 멤버들이 빛의 가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졌겠지만 그들이 그것을 알 방도는 없으리라.
―캬아아아악!
그렇게 얼마나 더 전투가 이어졌을까, 신수는 자신이 두려워했던 기준도 아니고 그 동료들에게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기준에게도 파티라는 이유로 경험치가 일부 흘러들어 와 1레벨이 올랐다.
하지만 아까 그가 눈동자를 사냥했을 때 로라와 은신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가 흘러들어 갔을 테니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형! 그냥 구경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진짜 죽을 뻔했는데!”
신수가 쓰러지자마자 포르티스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기준을 향해 다가가며 죽을상을 쓰고 투덜거리는 은신.
그러나 기준은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웃을 따름이었다.
“둘이서 잘 싸우고 있길래. 네가 원하는 것 아니었어? 내 도움 없이도 잘 싸우고, 성장하는 것.”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도 중간에 진짜 죽을 뻔했는데 형 덕분에 살았어요. 뭔지는 몰라도 거물 잡았죠? 레벨 엄청 오르던데요. 거기다 신수까지 잡은 덕에 이제 저도 곧 유니크 등급으로 성장할 것 같은데…….”
“준 님!”
신수를 쓰러트린 순간 레벨이 오르며 밀려오는 감각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던 로라도 기준의 접근을 깨닫곤 그에게 다가오며 눈을 빛냈다.
“지켜봐 주셔서 수월히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투 와중에 권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그렇게 말하는 로라의 시선은 기준의 목덜미에 못 박혀 있었다.
기준으로선 정말로 그녀가 피가 부족해서 이러는 것인지 단순히 자신의 피를 빨고 싶을 뿐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한 번 허락했던 것을 다시 거절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 사람 눈 없을 때.”
“감사합니다……!”
로라의 애절한 시선을 견디다 못해 결국 고개를 끄덕여 준 기준은, 환희하는 로라를 보며 과연 자신이 그녀에게 잘 대응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
“그, 이게 내 잘못은 아니거든? 내 변호사랑 상담해 봐, 진짜야.”
“그래서 왜 전투가 끝나자마자 내려오셨는데요?”
“아, 맞다.”
기준은 품에서 잘 갈린 나이프를 꺼내 들어 그 위로 달빛을 씌우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잡기는 너희가 잡았어도 도축은 내가 해야지.”
“확실히 중대 사항이네요.”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연속이었던 오버플로는 끝을 맞이했다.
아직 남은 문제는 산적해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