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0)
나 빼고 다 회귀자-170화(170/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70)
Chapter 33. 제물 의식 – 3
“드워프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요.”
파티원 중에서는 가장 일반인의 감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은신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지금 그들은 우르알타 화산을 오르고 있었다.
오버플로가 끝나기 무섭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다른 소환자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사실 눈동자와 신수를 연달아 사냥하며 레벨이 대폭 오른 덕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굴잖아요. 정작 그 프타흐라는 신이랑은 여태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그 말을 들은 로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대장장이 신인 프타흐에 대한 신앙은 평생 쇠를 두드리며 살아가는 드워프들에게 있어 단순한 신앙을 넘어 삶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었겠죠. 그런데 그 신앙이 실은 신에게 닿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으니…… 저들이 조급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역시 수녀님이라 잘 아시네요.”
“그렇게 절실한 것이라면 우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어떻게든 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역시 도객답게 예리하시네요.”
함께 신수를 사냥했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사이의 벽도 적당히 허물어진 듯했다.
은신의 적절한 추임새에 픽 웃음을 터트린 기준이 손뼉을 쳐 일행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던전이 가까워진 것 같다. 여기서 일단 휴식하면서 밥이라도 먹자.”
오버플로가 발생하기 전에 기름진 것을 많이 먹고 진탕 날뛰기까지 했으니, 지금은 입맛을 돋우면서도 속에는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 메뉴가 좋으리라.
그럴 땐 역시 한국인의 밥이 최고였다.
닭 육수로 지은 밥에 단순히 소금만 넣거나 멸치 조림, 명란젓, 참치 마요네즈, 고추장에 볶은 다짐육까지 다양한 재료를 넣고 손에서 굴려 만들어 낸 주먹밥.
조개와 미역을 잔뜩 넣고 끓인 된장국까지 곁들이니 절로 속이 풀렸다.
―먹는 이를 철저하게 배려한 영혼의 보충식을 섭취했습니다.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며 모든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을 얻습니다.
기준이 만드는 요리는 이제 단순히 그런 기분을 느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시스템까지 인증을 해 준다는 점이 특별했다.
“형, 국은 대체 언제 끓여 둔 거예요?”
주먹밥은 물론이지만 된장국에 크게 감동을 받은 은신이 질문하자 기준은 잘 물어봤다는 듯 답해 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끓여서 솥째로 인벤토리에 넣어 놓고 있어. 이거 말고도 고추장찌개, 비지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겟국에 해물탕까지 종류별로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말만 해.”
“……형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 아닐까요?”
튜토리얼 때보다 한층 발전해 이젠 밥집을 차려도 될 듯한 재고 목록에 은신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따름이었다.
심지어 그가 만든 요리에는 특별한 효과까지 붙지 않는가.
모르긴 몰라도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 밥집을 차려도 사람들이 금화를 바치며 먹으러 올 터였다.
―이것도 전부 나와 계약자가 함께 노력한 덕이지.
―키이…….
“……아니, 우르.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지만 실제로 루시가 기여한 부분이 있으니까.”
가슴을 한껏 펴며 으스대는 루시에게 쏟아지는 우르의 게슴츠레한 눈총.
기준은 요리 스킬을 빛의 요리로 성장시켰을 때를 떠올리며 루시의 편을 들었으나, 구체적으로 그녀가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에 대해선 죽었다 깨어나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제 던전에 들어갈까.”
“아마도 이쪽인 것 같냐. 따라오냐.”
파티의 스카우터로 활약하고 있는 나비냐가 입에 주먹밥을 하나 물고 일어섰다.
멸치 조림이 들어간 주먹밥만 골라 먹는 것이 과연 고양이는 고양이인가 싶었다.
“아.”
“여기가 확실하냐.”
머지않아 던전 입구에 도착한 루멘 파티는 던전이 감추어져 있다고 했던 글리터토스의 말과는 달리 땅 아래로 훤히 드러난 동굴 입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마도 이번에 화산이 대규모 분화를 일으키고, 신수와 눈동자가 한꺼번에 뛰쳐나오면서 지형에 극심한 변화를 불러온 탓인 듯했다.
루멘 파티가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다른 이들에게 선수를 빼앗겼을 수도 있으니 드워프들의 재촉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셈이다.
“들어가 볼까.”
“용암이 흐르고 있으니까 다들 조심해서 움직여.”
기준은 파티원들을 동굴 안으로 들인 후 일단 근처의 바위들을 옮겨 자연스럽게 입구를 막았다.
“솔직히 몬스터 걱정은 안 되지만.”
“저도 신수가 아닌 이상은 괜찮을 것 같네요.”
약화된 상태였다고는 하나 신수와 맞상대하고 쓰러트리는 데 성공한 은신은 제법 자신감이 붙은 모습.
기준은 한 손에 쥐고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녀석에게 잔혹한 진실을 전해 줄지 말지 고민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틸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것도 신수에게서 얻은 거야? 아까 보여 줬던 거랑 조금 달라 보이는데.”
“스콜과 하티에게서 얻은 동전이 하나로 합쳐져서 완전한 야른비드르의 출입증이 완성됐거든. 모르긴 몰라도 신수급의 늑대와 거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인 것 같은데.”
“어.”
기준이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신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계속 잘난 체를 했다가 기준이 바로 그 지옥도로 자신을 밀어 넣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니까.
하지만 틸라는 그 말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비경’의 입장권이구나?”
“비경이라.”
“응. 못해도 전설 이상의 등급과 관련된 던전, 유적을 보통 비경이라고 불러.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비경은 매우 희귀한데― 야른비드르는 나도 처음 들어. 아마 그걸 판다고 내놓으면 레전더리 등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모조리 덤벼들지 않을까?”
물론 기준이 이걸 판다고 내놓을 일은 없겠지만.
은신이 걱정하는 것처럼 당장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는 그와 파티의 성장을 위해 써야 할 것이다.
틸라는 괜히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을 이었다.
“원래 전설 등급에 이르면 레벨 업 한 번 하기도 쉽지 않거든.”
“역시?”
“더없이 위험한 미개척지에 강자들이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해. 나야 운이 워낙 좋아서 등급이 오르고도 계속 레벨을 올렸지만 말이야.”
거대 문명 쿠드라크의 몰락과 관련된 그랜드 퀘스트, 악룡, 거짓된 신에 신수의 사냥까지.
운이 좋다고 할 게 아니라 고생을 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 역시 경력자인 틸라의 관점은 특출 났다.
“당장 우리가 겪은 일이 알려지면 그랜드 퀘스트를 놓친 걸 아까워하는 소환자들이 엄청 많을걸. 레타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이쪽이 유리한 입장에서 어둠의 진영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가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거지…… 아.”
어느덧 좁은 통로가 끝나고 상당히 넓고, 천장이 높은 공동이 그들을 맞이했다.
뭐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에 긴장하고 있자니 달걀 썩는 냄새가 기준의 코끝에 희미하게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카우터로 선행하고 있던 나비냐가 후다닥 돌아오며 외쳤다.
“골렘이 오고 있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골렘하고 용암이 줄줄 흐르는 골렘이냐!”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달려온 녀석이 기준의 뒤로 숨는 것과 동시에.
쿠웅,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쪽 통로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두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은 노란빛이 나는 암석으로 몸을 이룬 골렘이었고, 다른 한쪽은 나비냐의 말마따나 시뻘겋게 흐르는 용암과 그것이 검게 굳은 바위가 반반 섞인 몸체의 골렘이었다.
“유황이네. 방패보다는 곡괭이로 싸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수 아저씨가 채광 스킬은 아주 끝내주는데…….”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찾아봤자 별수 없다.
기준은 두 방패에 최대한 두텁게 광 마력을 입혀 둔기로 다루기 좋게 만들었다.
“비생물에 칼로 베기도 힘든 바위. 저와의 상성은 절망적이네요.”
한편 로라는 골렘의 거체를 확인하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납도하고는 기도서를 꺼냈다.
골렘과의 상성이 좋지 않은 것은 단검을 다루는 은신도 마찬가지인지라, 괜히 두 사람을 괴롭히는 대신 기준과 틸라가 각각 한 마리씩 맡아 처리하기로 했다.
―우오오오오오옹!
적을 감지하자마자 두 주먹을 크게 들어 올리며 내리찍을 준비를 하는 유황 골렘.
기준은 모순의 은월을 앞세우고 돌진해 놈의 다리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타격 부위가 완전히 터져 나가며 다리 하나를 잃은 놈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어?”
―아까는 신격을 가진 놈도 잡아 놓고!
생각보다 강한 파괴력에 스스로도 놀라 잠시 경직되는 기준에게 루시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그건 템빨이었잖아.”
―그런 아이템은 아무나 다루나? 아무튼 이놈들은 그래 봐야 유니크 상위 정도야. 계약자의 지금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한 방에 죽일 수 있으니까 일일이 놀랄 필요 없어.
“그렇다면야.”
그녀의 말을 듣고 기준이 쓰러져 가는 골렘의 복부에 그대로 모순의 은월을 내지르자 유황으로 이루어져 있던 거체가 폭죽처럼 산산이 터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누가 보면 정말로 평범한 유황 수준의 경도인 줄 알겠지만 골렘의 몸체를 이루고 있던 유황은 화산의 마력으로 한껏 강화되어 있던 상황.
심지어 충격을 전신으로 퍼트려 해소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탓에 놈을 일격에 죽이려면 수 미터에 달하는 거체를 단숨에 으깰 만큼의 파괴력을 가해야만 했다.
워낙 성장이 빨라 까먹기 쉽지만 지금 기준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근력 스테이터스조차 레전더리 상위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쪽도 끝이야!”
그때, 틸라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단두대처럼 내리쳐진 채찍이 용암 골렘을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갈랐다.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틸라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냄새는 별로 좋지 않네. 오리할콘이 됐든 뭐가 됐든 빨리 채집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날 거라면 글리터토스가 경고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 두 마리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 골렘은 그 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평범한 바닥이나 천장, 벽으로 위장했다가 덮쳐 오는 놈들도 많았던 탓에 기준은 발광 도발을 계속해서 시전해야 했다.
“형, 저 눈이 따끔거리는 것 같아요.”
“기분 탓이야. 아군한테는 해를 입히지 않으니까.”
“코끝도 따끔거리는 것 같은데요.”
“혹시 용암 때문에 코털이 타들어 가는 것 아닐까?”
“아뇨, 그게 아니라 어디서 달걀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아마 유황이…… 음?”
희미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암이 아니라 물.
그러고 보면 어느덧 주위 온도도 조금 내려간 듯했다.
시원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하수가 증발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거 설마.”
“그러고 보면 이 도시가 온천으로도 유명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온천!”
그 말을 듣는 틸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걸음이 빨라진 그녀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다른 파티원들은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그녀를 따랐다.
곧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하수가 적당히 고여 만들어진 천연 온천이 펄펄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던 것.
유황이 녹아들어 피부에도 좋은 유황 온천이었다.
“준, 들어가자. 거대한 덩치들을 상대하느라 지쳤잖아,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 줘야지.”
기준의 한쪽 팔을 단단히 붙든 틸라가 욕망이 시키는 그대로의 말을 내뱉으며 그를 온천 쪽으로 끌어당겼다.
물론 기준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반박했다.
“유황 냄새는 싫다고 하지 않았어?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며.”
“하지만 온천은 별개라고 생각해. 준과 등을 맞대고 쉴 수 있다면 더더욱!”
“어허, 남녀가 유별한 법인데 어찌…….”
“오, 포인트 상점에서 현대식 수영복도 파네요! 이걸 입고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때 마침 적절히 끼어들어 발언하는 은신.
기준이 그에게 시선을 주자 은신이 그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로라가 적극적으로 은신의 말을 거들었다.
“하지만 수영복은 괜찮습니다. 실은 우르알타로 온다는 얘기를 듣고 이미 구해 뒀거든요. ……신틸라와 같이.”
“맞아. 준 것까지 준비했어.”
“그럼 저만 사면 되겠네요!”
―계약자, 나도 실체화할 거니까 내 수영복 사 줘!
아무래도 기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마음인 듯했다.
온천에 들어가자는 말에 순간이나마 엄한 상상을 했던 기준도 곧 수영복을 입는다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빡빡하게 구르고 고생한 파티원들에게 이 정도 여유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좋아, 그럼 저놈만 사냥하고 나면 온천에 들어가는 거야.”
“저놈? 아――.”
기준의 말에 잽싸게 고개를 돌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틸라가 탄식했다.
저 너머,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굉장히 거대하고.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전신이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체.
몸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럼에도 굉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금속 골렘――.
“역시 여기선 곡괭이로 싸우는 게 낫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아마 글리터토스의 아버지, 글리터핑거가 채광한 오리할콘은 저놈의 몸의 일부였으리라.
이 작은 ‘비경’의 주인, 오리할콘 골렘이 등장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