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6)
나 빼고 다 회귀자-176화(17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76)
Chapter 34. 표적 – 1
일단 가장 쉽게 가공할 수 있는 축에 드는 소재, 신수의 뼈와 이, 발톱, 가죽을 글리터토스의 품에 들려 대장간에 처박아 놓은 루멘 파티는 무구가 완성될 때까지 기준이 말했던 대로 자기단련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급상승한 스테이터스를 온전히 다룰 수 있도록 몸을 단련하고, 파티 리더인 기준을 중심으로 한 실전적인 대련으로 전투 감각을 끌어 올리며 각종 스킬을 수련한다.
한편 기준은 따로 틈을 내어 불카누스의 망치를 다루는 연습도 했는데, 역시 두 개의 방패를 휘두르며 공수를 겸하는 게 가장 잘 맞다 보니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망치를 다룰 일은 없을 듯했다.
하지만 이 험난한 레타 대륙을 헤쳐 나가다 보면 분명 에픽 등급의 무기가 아니면 이겨 낼 수 없는 위기도 닥쳐올 터― 그때를 위해서라도 결정적인 한 방을 구사할 수 있게끔 단련하기로 한 것이다.
“형, 나중에 지구로 못 돌아간다고 하면요.”
하루 내내 숨 가쁜 단련을 마치고 기준과 함께 노천탕에 들어와 푹 늘어져 있던 은신이 문득 입을 열었다.
“우르알타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여름만 좀 시원한 지방으로 놀러 가고.”
“나 지금 좀 소름 끼쳤어.”
“아…….”
기준의 즉답에 은신이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긁었다.
“죄송해요, 형. 역시 좀 그랬죠? 벌써부터 이런 나약한 생각 하면 안 되는데.”
“그게 아니라 나도 조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역시 형도!”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싸우는 걸 관두고 은퇴하게 된다면 우르알타처럼 온천이 있는 지방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부터가 이미 지구 귀환의 가능성을 스스로 배제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제 지구가 별로 그립다는 생각도 안 들게 됐거든. 막말로 지구에서보다 많은 시간을 이쪽으로 넘어와서 살았으니까.”
“그 얘기를 하면 나이 실감하게 되니까 그만하죠, 형.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제 정신연령은 아직 20대 초반이에요.”
“사실 지혜도 그런 것 같긴 하더라.”
사실 기준은 튜토리얼 채널에서 지나치게 마음고생을 하며 정신적으로 좀 삭은 느낌이 있었지만―― 비체와 루시와 함께 지낸 10년간이 지나치게 평화롭고 행복했다 보니 다시 조금 유치해진 감이 있었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로 쳐서 지금의 정신연령은 지구에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면 안 될까.
‘좋은 일이지, 당장 지구로 돌려놔도 늙은이 티는 안 날 테니까.’
그렇지만 만약 지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자신이 그곳에 적응할 수 있을까.
지구에선 잔뜩 억눌려 있던 자신이 레타에 와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걸 감수할 만큼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한 것도 아니었다.
분명 지구에는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젠 이곳에도 그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마음에 품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너나 나나, 아마 지혜도. 다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여러 의미로 지구가 멀고 아련하게 느껴지니까.”
“뭘 또 그렇게 심각해지고 그러세요. 언젠가는 지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예요.”
기준의 복잡한 마음을 간파한 은신이 그를 달래려 하는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민이나 수 형은 어떨 것 같아.”
“엇…….”
기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은신은 머리를 굴리며 고민했다.
반사적으로 ‘민이 누나는 형이 있는 곳이면 그게 지옥이라도 상관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은신도 기준의 뒤틀린 인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으니.
대놓고 말해 봤자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며 웃어넘길 터였다.
그리고 목수는…….
“수 아저씨는 우리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지구 얘기 잘 안 하잖아요.”
“그런데 아니더라.”
“어?”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듯 반응하는 은신.
역시 목수는 은신에게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준은 씁쓸함을 감추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둘이 술 마신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러더라고. 지구로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야.”
“그 아저씨가…….”
은신은 그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만약 그렇다면 아저씨도 진짜 장난 아니네요. 평소엔 그런 티 절대 안 냈는데.”
“그래서 내가 단호하게 말해 줬지. 반드시 돌려보내 주겠다고.”
“같은 남자 상대로 뭐 하러 멋진 척을 해요?”
“자식이 말을 해도 꼭.”
“그런데,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는 건 형은 남겠다는 소리 아녜요?”
역시 은신의 비수는 언제나 쓸데없이 예리했다.
기준의 고민을 정확히 짚어 내는 은신의 지적에 그는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뜨며 대꾸했다.
“그건 그때 가 봐야 알 일이지.”
“흠…… 아, 그럼 형은 민이 누나는 어떨 것 같아요?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할 것 같아요?”
“민이? 민이는…… 그러네.”
기준은 솔직히 대꾸했다.
“솔직히 민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예전에도 그랬는데…… 10년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지금은 더더욱. 나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멀리, 크게 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데 말이지.”
“과연.”
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라더니 실로 그 짝이 아닌가.
자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예민의 연애가 고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형은 민이 누나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구나.”
“너 인마, 자꾸 아군한테 비수 날리는 거 그만해라.”
“형, 제가 자꾸 끼어드는 것도 멋없으니까 간단하게 말할게요.”
은신은 온천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준을 내려다보곤 쓸데없이 폼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형 입장은 민이 누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에요.”
“엄청 폼을 잡고 그 드립을 친다고……?!”
“아무튼 괜히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요. 저 먼저 일어날게요.”
기준을 놔두고 탈의실로 향한 은신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며 예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은신(레타): 누나, 저 해답을 좀 알아낸 것 같아요.] [예민(레타): 뭔데? 오빠가 좋아하는 거라도 알아냈어?] [은신(레타): 누나는 형이랑 공감대가 없어요.] [예민(레타): 신아, 갑자기 이상한 말 하면 누나 화낸다? 바로 얼마 전에 준이 오빠랑 진지하게 상담하고 지구인 길드 발족한 거 기억 안 나니?] [은신(레타):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개인적인―― 그럼 질문하겠는데 누나는 준이 형이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예민(레타): 당연하지. 준이 오빠는 누구보다 책임감 넘치는 사람이야. 지금도 다른 지구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 오빠는 모두를 데리고 지구로 돌아갈 때까지 절대 쉬지 않고 움직일 사람이야. 내가 지금 이 길드나 붙잡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전부 그런 오빠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하는 거라구.] [은신(레타): 그럼 누나는요?] [예민(레타): 나야 오빠 뜻에 따라야지. 내 뜻대로 모두를 휘두르다가 오빠를 상처 입히는 경험은 이제 사절이야.] [은신(레타): 애타는 사랑이네요.] [예민(레타): 누나 진짜 화낸다?] [은신(레타): 농담이에요. 아무튼 다음에 준이 형 만나면 너무 어려운 얘기 말고 좀 개인적인 얘기 해요, 개인적인 얘기.] [예민(레타): 그럼 오빠 부담스러워할 것 같은데…….]은신은 레타폰을 든 손을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기준보다 한 가지, 자신이 예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생겼으니까.
그건 바로 그녀가 본질적으로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거 진짜 본격적으로 그른 것 같은데…….”
예민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을 땐 기준과 재회하기만 하면 예민이 적극적으로 덤벼들어 금방 커플이 성사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어째 지금은 점점 더 그 가능성이 멀게 느껴진다.
차라리 같은 파티에 있는 신틸라나 로라가 예민보다는 훨씬 기준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간 것 같지 않은가.
“뭐가 글렀다는 거죠?”
“헉!”
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은신은 기겁하며 뒤돌아보았다.
바로 조금 전에 떠올린 인물, 로라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 한층 기겁했다.
명색이 암살자인 자신이 뒤를 잡히다니― 정말이지 이 흡혈귀 수녀는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스파이였군요.”
은신과 마찬가지로 이제 막 탕에서 나온 것일까, 발갛게 물든 로라의 매끈한 뺨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그는 속으로 지혜의 얼굴을 떠올리며 애써 진정하고는 대꾸했다.
“스파이일 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적이 아닌데.”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그럼 표현을 바꿔서…… 예민 씨한테 저희를 관찰하라는 지시를 받은 거죠?”
“헉.”
“처음엔 당신이 준 님을 걱정해서, 우리가 같은 파티에 있어도 괜찮은 인물인가 의심해 관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녔어요. 당신은 그냥 우리가 준 님과 접촉하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걸 예민 씨한테 보고하고 있었던 겁니다!”
은신은 정확하기 그지없는 로라의 지적에 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자신들을 관찰한다는 것이야, 직접 겪은 일이니 눈치챌 수 있다고 쳐도.
예민에게 보고를 한다는 것까지 눈치채다니 대체 어떻게!
“그, 죄송해요. 실은 저도 당신을 감시하고 있었어요.”
그 의문은 로라의 자백에 허무하게 풀렸다.
은신이 눈치채고 보니 어느덧 주위를 날아다니던 작은 날벌레가 로라의 손등 위에 앉으며 눈을 붉게 번뜩이는 것이 아닌가.
혈 마법의 지배를 받고 있던 곤충을 단숨에 짓눌러 죽인 로라가 애매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인간은 쉽게 변하는 존재인걸요. 당신들과 재회하자마자 반기며 받아들이신 준 님과 달리, 저는 10년씩이나 준 님과 떨어져 있었던 당신들이 지금의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몰래 관찰하고 있었고요. 미안합니다.”
얼이 빠진 은신은 반박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도 로라와 신틸라를 관찰하고 그녀들과 기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예민에게 알린 것은 마찬가지이니, 뭘 더 따질 수도 없었고.
“그…… 그걸 직접 말해 주시는 건.”
“계속 몰래 관찰하는 게 죄송하기도 했고…… 당신이 예민 씨에게 하는 보고 내용을 보니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요. 함께 신수에 맞서 싸우면서, 믿을 만한 전우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그럼 왜 처음에 저 보고 스파이라면서 따진 거예요?”
“입장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서 제 죄책감을 덜고 싶었어요.”
“천재신가.”
확실히 자신도 잘못한 것이 있으니 로라에게 따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그는 자신이 혈 마법으로 감시당하고 있던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로라가 순순히 그 사실을 털어놓은 시점에서 지고 들어간 게임이 아닌가.
은신은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죠. 앞으로 절 감시하지만 않는다면…….”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은 믿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미안함 반, 안도감 반이 섞인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숙이는 로라.
사실 화가 날 만도 한 상황인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미녀에게는 강하게 나갈 수가 없는 자신의 모습에 은신은 속으로 울었다.
“그리고 당신도, 더는 저희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아니, 음, 네. 그럴게요. 지금 누나 상태를 보면 어차피 그런 게 의미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 은신이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도 죄송했어요. 기분 많이 나쁘셨을 텐데. 신틸라 씨한테도 제대로 사과드려야겠네요.”
“아뇨, 사실 저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그의 말에 로라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오히려 그 사람한테 저와준 님의 관계를 자랑하는 것 같아서 조금 즐겁기도 했네요.”
“…….”
이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적이 되면 상상하지 못한 순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찔러 오는 타입의 사람이다.
터무니없이 매력적인 표정을 짓는 로라를 마주 보며 은신은 벌벌 떨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혹시 아까 그 혈 마법으로 준이 형도 감시한 적 있어요?”
“그럴 리가 없죠, 제가 준 님을 의심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라. 준이 형 좋아하시잖아요. 전 만약 민이 누나한테 로라 씨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무조건 준이 형 훔쳐봤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런 사사로운 감정으로 준 님을 염탐하는, 천박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단호히 그의 무례한 추측을 부정한 로라가, 무척 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더구나 그분 곁에 있는 정령님 몰래 혈 마법을 쓸 수 있을 리도 없고요……!”
“결국 시도해 봤단 거잖아.”
도저히 태클을 걸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