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80)
나 빼고 다 회귀자-180화(180/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80)
Chapter 34. 표적 – 5
유니크, 레전더리, 심지어는 에픽 등급의 존재까지 도사리고 있는 레타 대륙.
마경이나 마찬가지인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고작해야 레어 등급, 그나마도 제약을 받아 약화된 몬스터 따위나 상대했던 튜토리얼 시절을 문자 그대로 튜토리얼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약해 빠진 나머지 약화된 마왕을 사냥하는 데만도 15년이 걸려, 그나마도 실패하고 두 번째 기회를 부여받았던 지구인들과 달리 절대다수의 소환자들은 순식간에 튜토리얼을 마치고 레타 대륙으로 넘어가곤 했다.
비체도 과거 기준에게 다른 문명은 길어 봤자 3년이면 튜토리얼을 끝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그나마도 그가 충격을 받을까 조절했던 것이다.
정말로 강한 종족은 애초에 튜토리얼을 치르지 않고 바로 레타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순식간에 튜토리얼이 요구하는 핵심 퀘스트를 수행하고 몇 달, 몇 주 만에 튜토리얼을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것은 그 문명에 있어선 손해였다.
지구인들이 도합 25년씩이나 튜토리얼 채널에서 시간을 보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튜토리얼 채널의 시간의 흐름은 레타 대륙과 뒤틀려 있었으니까.
레타 대륙의 1년이 튜토리얼 채널의 10년, 20년에 해당하는 만큼, 곧장 레타 대륙에 떨어지는 것보단 상태창에 적응하며 튜토리얼 채널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수련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았다.
다만 대부분의 소환자들은 애초에 튜토리얼 채널이 레타 대륙과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이미 강한 수준이라면 수련을 하는 것보다는 레타 대륙의 강한 몬스터들을 잡고, 좋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이 빨리 강해질 수 있기에 설령 그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튜토리얼 채널에 남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누누이 말하건대 튜토리얼 채널의 몬스터들은 그래 봤자 레어 등급이니, 레타 대륙에 넘쳐 나는 몬스터들을 놔두고 이들을 잡아 경험치를 얻는 것도 효율이 좋지 않았고.
종합해 보면, 튜토리얼 채널에서 강해진다는 발상은 슬라임만 잡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구인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도합 25년씩이나 튜토리얼 채널에 머물렀지만, 기준을 비롯해 ‘수련만으로 강해질 수 있는 재능 넘치는’ 극소수의 인물들을 제외하곤 결국 레타의 소환자 평균에 간신히 도달, 혹은 미달한 상태로 레타에 소환되지 않았는가.
그럼 슬슬 결론이다.
지구인들의 25년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25년 동안, 지구인들은 다른 소환자들을 뛰어넘어, 레타인들보다도 압도적으로 성장한 분야가 있었다.
레타로 넘어온 순간 일어난 선동과, 원정대를 훌륭히 이끌어 목적을 달성한 예민을 보면 알 수 있듯― 그것은 바로 말빨과 속임수였다.
극한의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구른 지구인들은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구사할 수 있는, 극한의 잔머리로 진화한 것이다!
단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게 들키거나 통하지 않으면 바로 끔살이라는 것.
실제로 그래서 레타로 넘어온 지구인들 가운데 많은 이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기회도 잡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다…….
멍청하고 약한 놈들은 전부 죽거나 도태되고, 약삭빠르고 강한 놈들만이 살아남았다.
“저놈들을 던전 보스한테 유도하는 거야.”
“예전에 많이 해 본 거네요.”
그리고 이곳에도 그렇게 살아남은 지구인이 두 명 있었다.
기준은 자신과 파티원의 안위가 보장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정의롭게 살아가고자 하지만 자신을 노리는 적에게는 얼마든지 비열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아마 니체 선생님도 그가 옳다며 박수를 쳐 주실 터였다.
“대륙에서 오래 굴러먹은 놈들이라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신이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몬스터는 제가 유도할게요. 지형을 대충 훑어보니까 우리 파티가 이런 식으로 움직여서 사람들이 이 구석에 몰리도록…….”
―후후, 제가 도와드릴게요.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켜, 사고를 단순하게 만드는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기준을 노리고 덤벼든 실력자들이라면 저주 저항력도 높을 텐데, 그것을 뚫고 저주를 걸 수 있다는 시점에서 역시 악령의 능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기준이 은신, 악령과 순식간에 작전을 구상하자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로라와 틸라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준 님께도 이런 면이 있었군요.”
“사실 우린 준과 함께 ‘사람’들을 적대한 적은 얼마 없으니까…….”
저번에 틸라를 구출하기 위해 대형 길드 하나와 망설임 없이 대치한 적이 있는 기준이지만 그땐 어디까지나 함정을 판 놈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어 모조리 깨부순 경우이니 지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우리도 움직이자. 던전의 보스가 얼마나 강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놈과의 사이에 적들을 끼워 넣으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돼.”
―결계나 환각도 조금 쳐 두는 게 좋겠지?
―키이.
은신이 곧장 출발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머지않아 저 밑에서 끔찍한 충격이 일며 괴물의 거대한 고함이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은신이 보스 몬스터와 접촉하는 데 성공한 것이리라.
그와 함께 신수를 사냥하며 정이 제법 든 로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혼자서 괜찮을까요.”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유인해 도망치는 정도라면 신이는 절대 죽지 않아. 괜찮아.”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선언한 기준이 루시와 공유되어 확장된 감각으로 동굴에 들어온 적들의 규모와 능력, 위치를 잡아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로 작정했나 보네. 전설 등급도 섞여 있는 것 같아. 두 명.”
“그 정도까지 읽어 낼 수 있는 거야, 준?”
놀라워하는 틸라에게 기준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가까워진 적의 능력을 읽어 낼 수 있는 건 맞지만 그것도 유니크 등급까지야.”
“준이 못 읽어 내는 사람은 확실하게 레전더리 이상이라는 거구나. 납득했어.”
그라티아 왕국에서 활동하는 레전더리 등급의 소환자는, 과장을 조금 보태면 숫자로 셀 수 있을 만큼 적다.
기준을 비호하는 우르알타의 앞마당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니― 멍청이가 아닌 이상 신분이 특정될 수 있는 이가 나서지는 않았을 터.
아마 외국에서 넘어온 이들일 것이다.
“우리가 대체 뭐라고 레전더리 등급에 이른 소환자가.”
“우리가 아니라 준. 준의 명성은 단기간에 너무 가파르게 높아졌는걸. 당장 그라티아 왕국은 물론이고 제국에서도 준을 좋게 평가하고 있잖아. 강하면 강할수록 더더욱 자신의 경쟁자가 나타나는 걸 바라지 않는 거겠지.”
기준은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빠르게 일행을 이끌고 움직였다.
“이쪽이야. 아, 루시. 저쪽 통로 좀 자연스럽게 무너트려 줄래?”
―얼마든지! 그리고 우리는 이쪽으로 돌아가면…….
“아, 몬스터가 서쪽에서 와 준다면 자연스럽게 가둘 수 있겠네요!”
“그래, 그건 신이를 믿어야지.”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금 침입자들에게로 향한 악령이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후후, 지나치게 수가 많더라니 역시 연합이었군요…… 그럼, 에잇.
“끄아아아아악!”
“폴!”
“폴이 죽었다!”
“젠장, 누구냐! 목표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경쟁하지 않기로 했잖아……!”
“전부 그 자리에 멈춰! 움직이는 새끼가 범인이야!”
이번에 루멘 파티를 노리는 이들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었다.
물론 처음엔 파티 단위로 움직이는 이들이 많았으나, 악령이 워낙에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그들을 모조리 사냥하다 보니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연합을 맺기에 이른 것.
당연히 그렇게 구성된 연합의 상호 신뢰도가 높을 리가 없고, 악령이 수작을 부리자 곧장 서로를 향한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끼리 싸우고 있어 봤자 아무 의미 없어……! 서로를 경계하는 건 좋지만 걸음이 늦어지면 곤란하다고! 소란 피우지마, 뒈질 거면 조용히 뒈져!”
“일단 놈들을 따라잡는다. 싸우는 건 그다음이야!”
소환자 연합에는 레전더리 등급의 실력자들도 있는 만큼 악령이 계속 멋대로 움직였다간 들키고 말 터.
가벼운 혼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악령은 겉으로 나서지 않는 대신 가벼운 흑마법을 구사해 습격을 당한 이들의 마음을 다소 급하게 만들었다.
저들에게 간파되어 파훼당해도 곤란했기에 그리 대단한 마법을 구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짜증과 분노, 조급함 따위의 감정을 증폭시켜 ‘이대로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가 소란을 일으켜 그놈이 우리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더 서둘러야 한다.’ 따위의 생각을 유도했을 뿐이었다.
정말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일단 진행을 멈추고 일행과 확실히 대화해 내분의 여지를 없애고, 나아가 악령의 존재를 찾아냈겠지만― 애초에 그렇게 뛰어난 이들이라면 신수에 이어 악룡을 사냥하고 거짓된 신마저도 참살한 기준을 죽이겠다며 이런 동굴까지 기어들어 왔을 리가 없었다.
“찾았다!”
“멍청이 같으니, 소리 내지 마. 일단 디버프 먼저 걸고, 다른 것들부터 저격한다.”
“저 수녀복 입은 년은 살려도 되지?”
“난리통에 살아남으면.”
그렇게 정신없이 동굴을 돌파한 침입자들은 기어이 루멘 파티의 끄트머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보스 룸을 향해 하염없이 직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루멘 파티, 그들을 이끌고 있는, 방패 두 개를 들고 꼴사납게 설치고 있는 남자의 뒤통수를 본 습격자들.
당장에라도 그의 뒤통수를 꿰뚫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나 미리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준은 파티를 수호하는 탱커이며 다른 멤버들 모두가 어태커라고 했으니.
그 탱커에게 눈에 뜨이지 않게 몰래 접근한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어태커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것이 필승법일 터였다.
습격자들은 모두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며 타깃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 주는 결계형 마도구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나 공격하는 순간 그것이 해제되는 터라, 루멘 파티를 발견하자 일제히 숨을 죽이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공격하는 순간 침묵 결계가 해제된다. 동시에 공격해야 돼.”
“내가 디버프를 걸고.”
“나는 놈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다.”
“헷, 진짜배기 신수 사냥꾼의 솜씨를 기대해 보실까.”
“그럼 내가 왼쪽 여자. 강해 보이는데…… 이쪽으로 몇 명 더 붙어.”
“이미 준비 중이야.
“쓰읍, 저 수녀, 가슴을 꿰뚫어도 살아남겠지? 저대로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데.”
여태껏 조급해하던 이들은 목표물을 발견하자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다만 그 와중에도 소환자를 사냥하는 빌런들답게 죽이 척척 맞아 순식간에 역할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저주, 약화 따위의 온갖 디버프 능력을 보유한 자들이 파티 전원이 범위에 들어오는 거리에서 호흡을 골랐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가 누구를 죽였네― 하며 서로를 의심하던 주제에, 지금은 눈으로 신호를 교환하며 습격 타이밍을 재는 것이 아주 기가 막혔다.
뒤에서 그것을 구경하며 코웃음을 치던 악령은 자신이 먼저 저들을 습격할지 여부를 기준에게 질문했으나, 돌아온 답은 부정이었다.
그 이유는 곧장 드러났다.
“지금!”
“염인, 넌 너무 설쳤어――!”
신호와 함께 루멘 파티를 향해 일제히 날아드는 디버프!
심지어 그 가운데에는 무려 레전더리 등급의 능력자가 구사하는 종족 고유 능력도 포함되어 있어, 이것에 적중된 순간 루멘 파티의 면면이 아무리 날고 기더라도 습격자들에게 이겨 낼 수 없을 터였다.
그래, 그것에 당하기만 한다면.
“준!”
“좋아, 위치 완벽해.”
“……하?”
디버프가 날아든 순간, 그 모두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염인의 영웅이 방패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것으로부터 피어난 빛이 그와 일행을 감싸며 일종의 결계를 형성하고― 디버프들은 모조리 그것에 튕겨 나왔다.
명색이 레전더리 등급인 만큼 디버프를 시전했던 소환자도 그 정체를 단박에 알아보곤 침음을 흘렸다.
“말도 안 돼…… 고유 영역? 성유물이라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정답!
순간적으로 얼이 빠진 습격자들의 뒤통수에 악령의 마법이 작렬했다.
화려한 피의 꽃이 피어난 다음 순간, 이를 악물며 뒤를 돌아본 이들의 눈에 보인 것은 악령이 아니라.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형, 이거 장난 아닌데요! 그냥 벽이고 뭐고 다 갈아 버리는데 어떡해요!”
한없이 거대해 통로를 모조리 갈아 버리며 돌진해 오고 있는 용암 지렁이의 모습이었다.
* * *
[비체♥(차원 대기실): 그런 전설이 있지.] [비체♥(차원 대기실): 지렁이 몬스터 가운데에는 보물을 한없이 집어삼켜 체내에 보관하며, 그 보물의 힘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는 괴물이 있다는 전설.] [비체♥(차원 대기실): 사실은 평소 내가 싸우는 전장에 나타나는 괴물들이 전부 지렁이처럼 짜증 나게 생겼는데, 하필이면 전부 강한 놈들이라 그 얘기가 와전된 게 아닐까 싶긴 한데.] [비체♥(차원 대기실): 그런데 갑자기 지렁이에 대해서는 왜 물어본 거야?] [비체♥(차원 대기실): ……야, 아니지?] [비체♥(차원 대기실): 아니라고 말해. 에이, 외신의 권속이 갑자기 그런 데 나타날 리가 없지.] [비체♥(차원 대기실): 아무렴 레타 대륙에 있는 모든 전설을 네가 감당할 것도 아니고.] [비체♥(차원 대기실): 종이 다르다고? 용암 지렁이라고?] [비체♥(차원 대기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아무래도 이 지렁이들, 신의 힘을 흡수하는 순간부터 괴상해지는 것 같거든.] [비체♥(차원 대기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