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97)
나 빼고 다 회귀자-197화(197/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97)
Chapter 37. 적은 누구인가 – 4
기준은 틸라와 함께 루라…… 아니, 악의 비상을 사용해 코르로 향했다.
이틀의 쿨타임이 생기겠지만, 우르알타 인근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없는 탓에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시간이 빨랐던 것이다.
정체를 숨기고 움직이기에도 이러는 것이 유리했고.
“오빠!”
코르에 위치해 있는 지구 문명 대표 길드, 테라의 길드 하우스.
사전에 예민이 알려 준 대로 비밀 통로를 통해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로 들어온 기준은 방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덤벼드는 예민에게 꼼짝없이 품을 내어 주고 말았다.
“오빠, 오빠…… 걱정했어요.”
“무사하다는 연락은 했었잖아?”
“메시지만 보면 알 수 없단 말이에요. 너무 멀었어요, 너무 길었고…….”
어째 얘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어려지는 것 같은데.
기준이 도저히 그녀의 텐션을 따라가지 못해 머쓱한 표정만 짓고 있자니, 틸라가 연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온 파티원들이 그 모습을 보곤 눈을 깜박였다.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거야, 계약자?
“아, 그래.”
루시의 날카로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기준은 그의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예민을 간신히 떼어 놓았다.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예민이 기준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민이 너는 어째 점점 어리광이 늘어? 길드 마스터다운 모습을 보여 줘야지.”
“공석에서는 잔뜩 폼 잡고 있는 걸요. 사석에서라도 이러지 않으면…….”
과연, 그녀가 어울리지도 않게 기준에게 애교를 부리는 건 그만큼 길드 마스터로서 활동하는 게 힘들다는 뜻일까.
순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할 뻔했던 기준은 현실을 깨닫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예민이 그에게 감정을 품을 리가 없다.
자신을 설득하듯 그렇게 새삼스레 되뇌는데, 문득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튜토리얼에서도 저랬으면 좋았을걸.”
“지혜.”
“준이 오빠, 오랜만!”
루멘 파티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일까, 지혜가 방에 들어온 것이다.
예민이 기준에게 다소나마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다면, 지혜는 이제 친동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 증거로 지혜와는 아무리 오랜만에 봤어도 포옹 따위 징그러운 짓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째선지 예민은 지혜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며 다른 일행에게 시선을…….
“시, 신이가 여자랑 팔짱을 끼고 있는데?!”
그래, 거기에 놀랄 줄 알았지.
오히려 놀라 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혜가 은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뜻일 테니까.
“뭐야, 게다가 엄청 예쁜 애잖아, 뭔데. 뭔데 이거!”
“감사합니다. 렌카라고 해요. 신 군과는…… 에헤.”
“에헤?! 에헤가 무슨 뜻인데! 나 일본어 몰라!”
“혜 누나, 이건, 그게…… 일단 일본어는 아니고요, 아아, 진짜!”
참고로 예민은 렌카의 존재에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다른 이들의 시선이 렌카에게로 쏠리자 그제야 자신도 힐끗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지혜가 곧장 캐치했다.
“민이 너는 왜 태연해? 신이가 여자랑 팔짱을 끼고 있다니까!”
“난 알고 있었어. 신이한테 상담 요청 받았거든.”
“날 거르고 너한테?!”
은신이 자신을 패스하고 예민에게만 상담을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 지혜.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예민보다야 자신이 은신과 훨씬 친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상담 내용이 자신과 관련된 것이었으리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 혜 누나, 그게요.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게…… 아, 렌카! 일단 좀 떨어져 줘!”
“신 군, 절 떨어트려 놓고 싶거든 차라리 죽여 주세요. 신 군의 손에 죽는 거라면 얼마든지 괜찮으니까…….”
“아아아아!”
“뭐야, 얘 무서워! 신아, 너 무슨 사기 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얘 눈이 맛이 갔잖아!”
“누나도 렌카한테 너무 심한 말 하지 말아 주세요…….”
은신은 지혜의 반응을 보고 쩔쩔매며 예민을 째려보기도 하고, 렌카와의 팔짱을 풀려고 저항하는 둥 귀여운 짓을 벌였으나 사태는 점점 더 수렁에 빠질 뿐이었다.
―처음부터 팔짱을 풀고 나왔으면 됐을걸.
“물론 시도했습니다만, 렌카가 놔주질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루시가 툭 던진 말에 아공간 안에서부터 둘을 지켜봤던 로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해 주었다.
한편 기준은 오히려 렌카가 은신에게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지혜의 마음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기에 속으로 박수를 칠 따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동생에게 여자가 생긴 것을 보고 경악하는 지혜, 지혜에게 오해를 사는 것이 싫어 쩔쩔매면서도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내치지 못하는 은신, 앞뒤 가리지 않고 은신에게 달라붙는 렌카.
완벽한 러브 코미디 구도가 아닌가!
“저건…… 순순히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네요. 온갖 변명을 들어 가며 둘을 떼어 놓으려고 하는 게, 아주 우스워요.”
“여기서부터 시작인 거지. 길었다, 진짜.”
예민도 기준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은신과 렌카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는 지혜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려 20년을 넘게 답보하고 있던 관계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은신도 당사자만 아니었으면 그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감탄하고 있었으리라.
“오빠는…… 혹시.”
시트콤을 찍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던 예민이 문득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어 왔다.
“혹시 저를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음? 그야.”
여태껏 기준에 대한 연심을 그에게 직접적으로 전한 적은 없었던 예민치고는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이었으나, 놀랍게도 기준에게는 그것이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널 좋아하는 남자야 지금도 워낙 많잖아. 그보단 네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어떨 것 같느냐고 물어봐야지.”
“…….”
물론 예민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게 질문하지 않은 것은, 가정으로라도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민은 굉장히 귀찮고, 굉장히 무겁고, 굉장히 왜곡된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어떨 것 같은데요?”
무겁게 입을 떼어 질문하자 기준은 잠시 고민하다가는 답했다.
“아마 질투하겠지.”
“어.”
예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녀는 지금 이것이 그린 라이트라고 주장하며 당장에라도 그의 품에 뛰어들기를 주장하는 본능과,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부끄러우니 오늘 밤에 몰래 그의 방으로 찾아가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이성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이성과 본능 둘 다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상한 뜻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게 된 남자면 엄청 완벽하고 잘난 놈일 것 같아서. 아무래도 같은 남자 입장에선 좀 위축될 것 같아.”
“……그뿐이에요?”
“아니, 그럼 꼴사납잖아. 됨됨이를 파악하고 나면, 축복해 줘야지. 민이 너를 제대로 지지해 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다.”
예민은 과거 자신이 기준과 쌓은 관계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이 못나고 약했던 탓에 그에게 많은 부담을 지게 했던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기준을 한 대 때려도 무죄가 아닐까, 순수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참자.
이 비틀린 관계를 되돌리려면 자신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빠,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가면은 벗어 주세요.”
“아― 잊고 있었네.”
예민의 말에 기준이 별 망설임 없이 얼굴에서 가면을 떼어 내고 있자니.
“오빠.”
안에서 괴물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침을 꼴깍 삼키던 예민이,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가면을 벗고 다녀도 되는 것 아닐까요? 저도 길드를 완전히 장악했고…… 오빠도 인간이니까요, 슬슬 길드에 소속돼서 정식으로 활동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건…… 뭐, 사실 굳이 가면을 쓰고 다닐 이유가 없긴 하지.”
기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예민이 기준을 길드 마스터, 적어도 길드의 중임에 앉히고 싶어 하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이제 와 인간이라는 사실이 탄로 난다고 해서 딱히 무서울 것도 없고…….
그보다는 그가 인간이든 염인이든 상관없이 그를 노리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정체를 감추는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쓰고 다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저 페르소나가 강력한 무구이기 때문이다.
‘스테이터스 하나를 더해 주는 무구 같은 건 정말 드무니까.’
기준도 이번에 ‘광륜’을 얻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광륜을 전개하고 빛을 만들어 내면 그 효과가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훌륭했다.
아니, 오히려 여태까지 그가 빛을 다루던 방식이 지나치게 조잡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래도 길드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지금 적이 워낙 많아서, 내가 길드에 속하는 것으로 오히려 길드가 노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성원들이 전부 정예는 아니니까 말이지.”
“그건…… 그렇죠. 조금 더 빡세게 굴려야겠네요.”
어쩌면 방금, 그의 한마디가 다른 무수한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는지도 모른다.
기준은 애써 그 사실을 모른 체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수 형은?”
“길드원들하고 파티 맺고 던전에 갔어요. 내일이면 돌아올 거예요.”
“그래…….”
목수가 예민, 지혜와 따로 행동한다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예민은 길드 마스터고, 지혜는 서브 마스터로 평소 그녀를 보조하고 있으니까.
길드를 세우고 얼마 안 되어 어수선할 때, 예민과 지혜가 노려질 때라면 몰라도 늘상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따로 파티를 구성해 레벨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혹시 세 사람 레벨은 어떻게 돼?”
“……저랑 지혜는 유니크 등급을 목전에 두고 있어요. 등급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요. 어딜 가든 발목은 잡지 않을 거예요.”
목수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파티를 함께 맺고 활동해도 경험치를 완벽히 등분하는 것은 아니다.
활약에 따라 경험치의 배분도 다르고, 뭣하면 퀘스트의 보상이나 칭호 획득도 달라진다.
테라 길드는 그라티아가 작정하고 밀어주는 만큼 성장의 기회는 적지 않았을 터이나…….
“그래, 대충은 알겠네.”
기준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언젠가는 이 문제가 발목을 잡으리라고 줄곧 생각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벌써.
당장 그라티아에서 활동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지금 기준이 예민 파티를 끌고 향하려는 곳은 사지였다.
“역시 마도 왕국은 우리끼리만 가야 하나. 너흰 길드가 있으니까…….”
“안 돼요, 오빠! 무조건 저도 가요! 무조건!”
목수만 빼놓고 가자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걸려 어설프게 둘러대 보는 기준이었으나 예민이 기겁하며 그를 붙들었다.
“길드는 확실히 정리됐어요. 저랑 지혜를 대신해서 길드를 관리할 인재도 있고요. 아무 문제 없어요, 정말로.”
“하지만 위험해. 정말로 위험할 거야.”
“아무리 위험해도 상관없어요. ……수 아저씨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제가 아저씨랑 따로 얘기해 볼게요.”
“그래도 그건 형한테…… 하.”
애초에 지혜를 데려오라는 율영의 말을 무시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예민 파티에게 모든 일을 비밀로 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딱히 안일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 현실이 잔혹할 뿐이다.
“우리도 어린애가 아닌 거 알죠, 오빠?”
“알아. 그러니까 더 문제인 거지.”
“안전한 곳에서만 활동할 수는 없어요. 수 아저씨한테는 남으라고 설득해 보겠지만…… 아마 함께 움직이는 게, 아저씨의 성장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기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난 지 이제 고작 두 달?! 그런데 뭘 그렇게 끈적거리게 달라붙는 거야! 안 돼, 이런 문란한 교제는 누나가 용납 못 해요!”
―그냥 네가 너무 늦된 거 아냐? 남녀가 눈만 맞으면…….
“루시는 좀 빠져 봐! 이건 안 된다니까 정말루!”
“사랑이 있다면 두 달이 아니라 2초라도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보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저와 신 군 사이에 이렇게 간섭하시는 거죠?”
“2초?! 2초오오오오오!!”
“아니, 렌카! 혜 누나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말라니까!”
기준과 예민이 무거운 고민을 하든 말든 은신과 지혜는 그 뒤에서 렌카와 더불어 열심히 러브 코미디를 찍고 있었다.
분위기가 가벼워지는 건 다행이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익룡화하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