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99)
나 빼고 다 회귀자-199화(19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199)
Chapter 37. 적은 누구인가 – 6
오우카(桜花).
쿠레나이의 죽음 이후 이백 명이나 되는 무녀의 대표로서 기준과 소통하게 된 무녀로서, 루멘 파티가 결계에 진입하기 전 마지막으로 실종된 무녀인 사쿠라(桜)의 언니이기도 했다.
사쿠라는 본디 그녀들 문명의 차기 문명 대표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이며, 그녀의 친언니인 만큼 오우카 또한 능히 무녀들을 대표할 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덤으로 아름다운 분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니고 있어 사람의 이목을 확 끌어당기는 외견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가 오해받을 말만 골라 하는 탓에 지금 기준은 파티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준도 참, 손이 빠른걸. 그렇게 밤이 외로웠으면 내게 상담했으면 좋았을걸.”
“오해야. 난 결백해.”
기준은 모두를 대표해 틸라로부터 날아든 질투 섞인 말에 당당하게 대꾸했다.
“애초에 네가 없으면 아공간에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틸라.”
“그러고 보면 그랬지. 나도 참, 저 아이가 하도 그럴듯한 태도로 나오니까 그만.”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오우카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낳은 난리판을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초연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저 기준 님을 섬기게 된 저희 무녀들의 마음가짐을 보다 확고한 형태로 드러낼 필요성을 느꼈기에.”
노예로서의 마음가짐을요, 하고 덧붙이는 오우카의 말에 예민이 정색하며 기준의 한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노예로서의 마음가짐이라니…… 오빠, 이 사람들 머리 약간 이상해요.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문명 전쟁에서 패배한 문명이 노예로 전락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니 그리 정색할 필요 없어. 물론 문명의 생존자 전원이 한 명의 휘하로 들어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틸라는 여전히 오우카를 견제하면서도 예민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죽을 위기가 넘쳐 나는 곳에 멋대로 끌고 온 것만도 억울한데 패배하면 노예 신세라니, 부조리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알고는 있었잖아? 설명을 들었을 테니까.”
모든 문명이 자신들 문명의 대표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구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하고 틸라는 말을 마무리 지었지만, 그 말에 기준과 예민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 지구인들은 제 앞가림만도 바빠 문명 대표를 지키느니 뭐니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예민을 중심으로 모여든 지구인들은 그나마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문명 전쟁에서 패배해 노예가 된 이들의 신세는 비참하다는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저희를 지옥에서 해방해 주신 준 님을 따르게 되었으니― 이 이상 나을 수 없겠지요.”
“그래도…….”
꺼림칙한 표정으로 오우카를 바라보는 예민.
아마 현대 지구인의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예민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노예 신세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기준은 자신을 붙들고 있는 예민의 팔을 부드럽게 다독여 주며 말했다.
“저들한테 엄한 짓을 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인권을 무시할 생각도 없고, 할 수 있는 한에서 도움을 받을 뿐이니까.”
“네? 아뇨, 전 오빠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섭섭한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오우카가 눈을 내리깔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저흰 이미 준 님께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엇을 필요로 하시든 내어 드릴 수 있는데 어찌 저흴 거절하시는지요. 혹 여자로서의 매력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이제 기준도 알아차렸다.
오우카는 건방지게도 기준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 자신들 이백 명 전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니 그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고 싶었겠지.
어쩌면 이것이 그녀 나름의 자격시험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거기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노예를 자칭하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것만 해. 쓸데없이 간 보지 말고. 난 앞으로도 말 바꿀 생각 없어.”
“명심하겠습니다.”
오우카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지만 한마디 덧붙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하나 방금 말씀드린 것에 거짓은 없으니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저는 언제든 당신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으니…….”
“틸라, 이제 나가자.”
“그래, 나도 그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우카 뒤로 모여든 무녀들이 기준에게 나란히 오우카의 그것과 비슷한 시선을 던져 오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신을 섬기던 무녀들인 만큼 맹목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녀들의 신앙의 대상이 기준으로 치환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위험해요! 저 여자들, 엄청!”
아공간 밖으로 나오자마자 예민이 그렇게 외쳤다.
“계속 같이 있다간 준이 오빠까지 이상하게 만들 거야! 분명해!”
이상하다니.
기준이 무녀 200명 사이에 파묻혀 주지육림 올 나잇 페스티벌이라도 주최할 거란 말인가.
……굉장히 끌리기는 했지만 그랬다간 정말 글러 먹게 될 것 같아 상상을 그만두었다.
만약 기준의 인생이 게임이라면 그건 분명히 해피 엔딩으로 위장한 엑스트라 배드 엔딩일 것이다.
“솔직히 준만 그 여자들 사이에 던져 놓으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안심해. 내가 준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틸라가 제 딴에는 예민을 안심시켜 주겠다는 듯 그런 말을 했지만 예민에게는 그녀도 적이긴 매한가지였다.
“큭…… 당신도 준이 오빠랑 깊은 관계는 아니잖아요……!”
“그러는 당신은 어떤가요?”
로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어 말했다.
“준 님과는 단순히 한때 같은 파티에 소속되어 있었을 뿐이지요……? 그것도 레타와는 조건이 많이 다른 튜토리얼 채널에서.”
“윽? 하지만…….”
10년 넘게 쌓은 인연이 그 한 문장으로 단축되어 버리는 데에는 기준도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게 사실인 만큼 예민도 입을 뻐끔거릴 뿐 뭐라 더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예민의 명치를 세게 가격한 로라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콤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준 님께선 늘 바른 선택을 하실뿐더러, 설령 그 결과가 엇나갔다 한들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시는 분입니다. 저 무녀들을 거둔 것 또한 준 님께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어디까지나 저들의 앞날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셨을 뿐. 더욱이 저 무녀들의 본성이 어쨌든 앞으로의 준 님께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이상 준 님의 업적에 흠을 새기려는 듯한 발언은, 나아가 그분의 노고를 허사로 만드는 발언은 그만두셨으면 좋겠네요.”
“나는 오빠가, 잘못했다고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그럼 됐습니다. 앞으로는 준 님의 입장을, 뜻을 잘 고려한 후에 행동하셨으면 좋겠군요. 저희가 함부로 예단하고 뜻을 강제할 분이 아닙니다.”
연속으로 너무 아프게 얻어맞은 나머지 예민은 숨도 못 쉬고 있었다.
하지만 기준은 아까 로라가 오우카를 벨까 말까 고민하며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요는 기준의 노예가 된 이들, 예전의 파티원이었던 예민, 지금의 파티원인 로라와 틸라까지 전부 서로를 묘하게 적대시하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을 뿐이었다.
“후후, 아무리 준이 좋아도 너무 그렇게 다른 사람을 사납게 대하지는 마, 로라. 같은 문명 출신이니만큼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그만.”
상황을 정리해 준 것은 역시나 틸라였다.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 내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예민을 날카롭게 노려보던 로라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인 틸라가 준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인사도 나눌 만큼 나눴으니 이제 쉬자, 준. 그러고 보니 파티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그래.”
기준은 울상을 짓는 로라를 끌어당겨 쓰다듬어 주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파티, 해야지. 파티원들 다 모이면 그때 말이야.”
* * *
다음 날, 목수는 무사히 던전으로부터 돌아왔다.
그와 행동을 함께한 이들은 최강이 이끄는 파티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들과 목수의 수준이 비슷해 예민과 지혜가 바쁠 때면 자주 임시 파티를 맺어 활동하곤 했다.
파티를 한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그날 저녁에는 그라티아의 태자 렉투스가 알아서 찾아오기까지 했다.
“오랜만이군, 준.”
“오, 렉투스. 마침 잘 왔어.”
“잘 왔다? 예민 양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에게 그렇게 대담한 말을 해도 되는 건가?”
기준은 은으로 덮인 렉투스의 왼팔을 일별하곤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헛소리하지 마. 내가 민이랑 그런 관계가 아닌 건 둘째 치고, 넌 아직 민이 감당 못 해.”
“물론 아직은 내가 예민 양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피자 도우를 멋들어지게 돌리고 있던 기준은 한 손으로 도우를 늘리며 렉투스에게 말했다.
“사실 파티에 특별 참가비가 있어서 말인데.”
“예민 양과 함께 파티를 즐길 수 있다면 왕궁의 중앙 기둥이라도 뽑아 오겠다.”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 그거 대신 파훼의 송곳 하나 더 가져올 수는 없냐?”
파티 참가비로 그걸 받겠다는 건 당연히 농담이었지만, 렉투스도 기준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즉 지금 그는 파훼의 송곳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쉽게 얻었다고 해서 오해하는 것 같은데, 파훼의 송곳이 동굴의 종유석처럼 여기저기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냐.”
애초에 기대도 크진 않았지만…….
기준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완성된 도우 위에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를 발랐다.
인벤토리에 보관해 두어 아직까지 싱싱한 킹크랩과 랍스터 따위를 굽고 그 살을 발라 내어 토핑하며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저번 그랜드 퀘스트를 해결하며 받은 파훼의 송곳을 사용해 자신이 이끄는 파티라면 자신을 포함해 최대 일곱 명까지 경험치 페널티 없이 이끌 수 있었다.
문제는 예민 파티가 합류하게 되면, 나비냐를 빼고도 풀 파티 멤버가 여덟 명이 된다는 것이다.
‘나, 틸라, 로라, 민이, 지혜, 신이, 수 형, 거기에 렌카.’
그래, 갑자기 툭 튀어나와 파티에 합류한 렌카가 문제다.
파티원을 충원할 계획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어느덧 당연하다는 듯이 은신에게 달라붙어 그와 함께 움직이려 드는 렌카의 존재가.
그렇다고 억지로 떼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성유물의 정수를 깔끔하게 쪽쪽 빨아먹고 페르세포네에게 직접 권능을 수여받은 그녀는 루멘 파티의 다른 면면과 비교해도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갖춘 실력자였다.
그 능력을 어떤 식으로 발휘할지는 알 수 없어도 필시 큰 도움이 되리라.
‘이런 말은 미안하지만, 비슷하게 페르세포네의 권능을 얻은 악령은 파티원으로 취급되지도 않아서 편한데 렌카는 멀쩡하게 살아 나온 덕에…….’
어쨌든 렌카를 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능력이 처지는 다른 사람을 뺄 수도 없다.
……적어도 목수와는 진지하게 대화를 할 필요가 있었다.
“예민 양을 두고 가면 되지 않나. 얼마나 오래 걸리든, 그동안 내가 그녀를 지켜 보이지.”
파티의 정원이 여덟 명이라는 얘기를 하자, 렉투스는 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선언했다.
기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녀석을 째렸으나 곧 한숨을 내쉬며 치즈를 찢어 피자 위에 솔솔 뿌렸다.
“됐다, 그냥 파티를 둘로 나누고 말지.”
“그렇게까지 예민 양을 코르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다면 나도 데려가라! 어디든 함께하겠다!”
“마도 왕국에 갈 거다.”
“……어, 지금 시기에 그곳에 간다고?”
기준의 말에 렉투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마도 왕국에서 흑마법으로 난리가 났다는 사실이 그라티아 왕궁에까지 알려졌단 말인가?
기준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는데, 렉투스가 내뱉은 말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주제였다.
“이제 곧 마탑주 선정 대회―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리는데. 정말 그곳에 갈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