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5)
나 빼고 다 회귀자-205화(20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05)
Chapter 38. 마도 왕국 – 5
기준은 비체가 빛의 용사 베아트리체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즉 이 대륙에 그녀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굳이 그녀의 행적을 찾지 않았다.
언젠가 비체가 직접 얘기해 주리라 믿고 있기도 했고, 그녀가 모르는 데서 그녀의 과거를 캐내고 다니는 것도 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또 일부러 그녀의 과거를 피하는 것도 우습다.
해서 기준은 비체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나: 율영이 네 얘기 하자는데.] [비체♥(차원 대기실): 후후, 그렇게 나와의 유대를 과시하고 싶다면 마음껏 하도록. 아직 내 이름값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체♥(차원 대기실): 그런데 걔가 나에 대해 아는 게 뭐 있다고……? 뭐, 걔가 아는 정도라면 나한테 굳이 물어볼 것도 없어. 대륙에서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도 있을 테고.]자신과 비체의 관계를 간단히 증명할 겸, 율영에게 그 메시지를 보여 주자 그녀는 순간 굉장히 무서운 표정을 지었지만…… 직후 얼굴이 새빨개지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뭐야, 왜 그러는데?”
“바, 바보가…… 이 바보야! 바보 같으니!”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칠현자라는 어깨 뻐근해지는 직함을 달고 한껏 잘난 척 똑똑한 척을 하던 그녀가 어째선지 유아 퇴행이라도 한 듯 바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의아해하던 기준이 레타폰을 확인하자 그 짧은 사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해 있었다.
[비체♥(차원 대기실): 그것보다 무녀복이라는 거나 빨리 보내. 내가 친히 입어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사진도 찍어서 보낼 테니까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는 거 잊지 말구.]과연 칠현자가 유아 퇴행할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긴 했다.
기준은 헛기침을 하며 곧장 폰을 회수했다.
그러고 보면 레타폰에 카메라 기능도 있었구나.
쓸 일이 없다 보니 알아볼 생각도 안 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가 왔을 때 같이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 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급작스럽게 밀려들었다.
[나: 옷 바로 보낼 테니까 사진 많이 보내 줘.] [비체♥(차원 대기실): 사진 첨부는 포인트 소모가 커지는데 어쩔까…… 너 하는 거 봐서. 기브 앤 테이크 알지? 아, 갑자기 우리 쭌 애교 부리는 사진이 너무 보고 싶네요!]―지금 악마가 눈앞에 있었으면 바로 빛의 창을 먹여 주는 건데. 수천 발 정도.
율영은 갑자기 어색하게 셀카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는 기준에게 한 점 망설임 없이 마나 미사일을 쏘았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로라와 틸라는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엄지를 세워 보였다.
“미안, 얘가 빨리 답장 안 해 주면 삐져 가지고.”
“하아…… 그래, 네가 베아트리체 언니랑 대충 어떤 관계인지는 알겠어. 아니,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들긴 한데…….”
칠현자의 마나 미사일에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기준이 폰을 닫으며(그사이 잽싸게 사진 하나를 찍어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과하자 율영은 어지러워하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결했던 용사가 연애라니. 여태 언니를 걱정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지네.”
“아니, 그게 연애는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나, 아직 서로를 알아 가는 단계라고 해야 하나.”
―조금만 더 알아 가다간 몸에 있는 백혈구 숫자까지 체크하겠네.
루시의 빈정거림을 무시한 기준이 율영에게 물었다.
“아무튼, 허가도 받았으니까 내가 비체랑 어떻게 만났는지부터 얘기해 줄게.”
“그래…… 대체 어떻게 만났기에 네가 그 사람을 꼬셔 낸 건지 꼭 들어 봐야겠어.”
그러나 이어진 기준의 이야기에는 딱히 운명적인 만남도 충격적인 반전도 숨겨진 비밀도 없었다.
튜토리얼 NPC가 존재한다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고, 지구인들이 워낙 약해 튜토리얼을 두 번 치르게 되었다는 것도…… ‘우연한 오류’로 기준만이 폐쇄된 튜토리얼 채널에 남게 되었다는 것도, 영 납득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었던 탓이다.
“베아트리체 언니도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튜토리얼 따윈 그냥 대충 마치고 내보냈어도 됐을 텐데. 아무리 지구인들이 약해 빠졌다고 해도, 시스템과 흥정해 문명 전체에게 두 번째 기회를 부여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소비했을 거야.”
그의 얘기에 율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전해, 정말. 그 더러운 꼴을 겪고도 변하지 않다니 난 상상도 못 할 일이야. 하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마탑에 처박혀 있는 거겠지만.”
“더러운 꼴이라.”
“너도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것 아냐. 그보다 너, ‘우연한 오류’라고 했지? 내가 보기엔 그 ‘오류’가 아까 법천의 능력을 튕겨 낸 것과 똑같은 오류인 듯한데 그 부분 어떻게 생각해?”
“글쎄, 무슨 말인지 영.”
“흥.”
굳이 숨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준의 고유 능력을 자세히 설명해 줄 필요도 없겠지.
썩어도 칠현자, 율영 또한 대강이나마 그의 특별함을 가늠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언니를 낚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좋아, 납득했어. 네가 그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기준이야 율영이 납득하든 말든 알 바 아니었으나…… 기준과 비체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된 율영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상당히 부드러워진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떤데. 비체랑 무슨 일이 있었지?”
“언니는…… 너도 메시지를 봤으니 알겠지만, 딱히 나를 신경 쓰진 않았을 거야.”
사실 신경을 쓰긴 했다.
과거의 메시지까지 짚어 보면 비체가 율영의 인성을 마구 디스하며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버리라고 말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율영은 비체를 크게 흠모하는 듯했으니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인식에는 크나큰 괴리가 있는 셈.
기준은 이제는 아군이 된 율영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 메시지의 존재를 어둠 속에 묻어 두기로 마음먹었다.
“위로해 줄 필요 없어. 어차피 언니와 비교하면 나 같은 건 하찮은 사람이었으니까. 베아트리체 언니는…… 당시 대륙에서 활동하던 모든 여성의 우상 같은 사람이었거든. 나 말고도 언니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많았고.”
“그 정도였나.”
“물론. 아름답고 강하고,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 고결하고 완벽한 용사 그 자체였어. 언니가 이끌어 준다면, 어쩌면 정말로 빛의 진영이 어둠의 진영에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 아닐까. 난 그렇게 믿었어. 내가 칠현자가 되어서 그런 언니에게 힘을 보태 주고 싶었어.”
여전히 비체의 기억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마탑을 대표하는 칠현자로서 중립을 고수하는 율영의 평소 모습과도 딴판이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이 좀 있긴 했지만.”
기준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율영의 심연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그녀가 말한 희생에 대해 묻지 않기로 다짐하며 뒷말을 독촉했다.
“하지만 무리였어. 내가 베아트리체 언니에게 도움이 되어 주기도 전에, 언니는…….”
“내분?”
율영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빛의 진영이 승리한다고 문명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건 필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 굉장히 중요한 전투― 결코 네 업적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에 그라티아에서 있었던 그랜드 퀘스트를 일곱 개쯤 합쳐 놓은 거대한 퀘스트에서 언니는 배신당했고, 홀로 분투한 끝에…… 죽었어.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졌지.”
거기까지만 들으면 흔한 비극적 영웅담이지만― 기준은 비체의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죽지 않았고, 그저 어둠에 물들었을 뿐이었다고.”
“그래, 너도 빛의 용사 후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 언니는 침식의 위험성을 알고 여러모로 대비하고 있었지만, 어둠의 진영과 배신자들에 의해 완벽히 짜인 판 위에선 부질없는 저항이었어. 더구나 ‘침식’은 상황과 감정에 큰 영향을 받아. 믿었던 아군의 배신은…… 언니에게는 치명타가 되었겠지.”
이 정도면 굉장히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는 빛의 용사, 그와 대적하는 어둠의 진영과 침식에 대해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단지 모두가 쉬쉬하며 이 일을 묻었을 뿐.
물론 비체가 누구에게 어떻게 배신을 당했는지, 그 당시 정확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비체 본인에게 직접 들어야 할 얘기였다.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 길이 없었어. 솔직히 말하면, 난 언니가 새로운 어둠의 진영 세력의 수장이 되어 배반자들을 처단하러 올 줄 알았거든. 그 뒤로 10년 이상 언니를 찾았지만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적어도 레타 대륙에는 더 이상 언니가 없다는 사실뿐이었어.”
“하지만 비체는 사실 이성으로 어둠을 억누르고 튜토리얼 NPC가 되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나?”
“……아니. 언니는 시스템과 거래를 한 거야. 어둠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레타 대륙을 나가는 선택지를 고른 게 분명해. 끝까지 빛의 진영을 지킨 거라구. 지킬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을 위해서.”
지금이라면 율영이 빛과 어둠의 진영의 대립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알 듯했다.
당장 기준도 어둠의 진영보다는 같은 빛의 진영에 속해 있는 이들로부터 당한 일이 더 많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도 마탑처럼 중립을 표방하거나, 혹은 다른 이들처럼 행동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의 삶의 방식은 결코 타인에 의해 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를 제외한 모든 이가 그를 배신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보다도…….’
기준은 입을 다물고 비체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기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비체가 ‘어떻게 레타 대륙에서 쫓겨났느냐’가 아닌, ‘어떻게 레타 대륙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였다.
하지만 지금 대륙에 비체를 배신한 자들이 남아 있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비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녀가 돌아온 후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힐끗, 여전히 분노하고 있는 율영을 훔쳐본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를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순간도 없었지만, 어쩌면.
“비체는 레타로 돌아올 거야. 그때 네가 도움이 되어 줬으면 좋겠어.”
“그야 나는 언제든 언니를 돕…… 잠깐.”
어울리지도 않게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하던 율영이 기준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외쳤다.
“언니가 레타로? 어떻게?!”
그 직후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로라와 틸라에게 붙잡혀 내동댕이 쳐진 후에야 간신히 냉정을 되찾은 그녀가 빠르게 뒷말을 내뱉었다.
“언니가 레타로 돌아오면 다시 어둠의 진영에 속박될 거야. 너랑도 싸우는 신세가 된다고.”
“실은 이미 한 번 왔었어.”
“뭐――?!”
이번 그랜드 퀘스트의 마지막에 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소속이 불분명한 비체의 존재를 굳이 드러내 혼란을 불러올 필요도 없었고, 애초에 그라티아 왕실조차 비체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마지막으로 모든 포커스를 기준에게 집중시켜 그를 영웅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준이 비체의 강림과 앞으로의 복귀 계획에 대해 얘기해 주자 율영도 어느덧 기준의 파티원들과 비슷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준이 쌍방패술의 기원과 철학자들을 연관지어 설명할 때 그를 바라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다.
“빛의 요리라고……. 요리로 어둠을 억누른다는 발상은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는데…….”
―후훗, 나와 계약자의 사랑의 결실이지. 그 악마는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니까.
분하게도 루시의 말을 부정할 길이 없다.
요리 스킬을 승급시킬 때 있었던 일은 이제 와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튼 그게 제법 효과적인 것 같더라고. 지금도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게끔 정기적으로 보내 주고 있어.”
“출근하는 아내 도시락 만들어 주는 가정주부 남편이야?”
“비슷한 거지. 비체는 아무래도 차원의 틈이란 데서 계속 싸우면서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것 같더라고.”
“……시스템이 언니를 알차게 부려 먹고 있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율영이 시간을 확인하곤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차원의 틈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기에 좀 더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럴 여유는 없는 듯했다.
“너라는 미끼를 뿌렸으니 다른 놈들이 움직일 때가 됐어. 슬슬 낚아 보자구.”
“참고로 콘클라베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어?”
“일주일.”
율영이 냉소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어쩌면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에 결판이 날지도 모르지.”
다음 날.
마도 왕국에 제국의 사절이 찾아왔다.
본격적인 수라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비체♥(차원 대기실): (사진)] [비체♥(차원 대기실): (사진)] [비체♥(차원 대기실): (사진)]……
[비체♥(차원의 틈): 야 잠깐만, 너도 사진 보내 주는 건 좋은데…… 그거.] [비체♥(차원의 틈): 너무 야해.] [비체♥(차원의 틈): 딴 여자한텐 보여 주지 마.] [비체♥(차원의 틈): 아이씨, 남자한테 찍어 달라고 해!] [비체♥(차원의 틈): 율영이 날 존경하는 것 같다고?] [비체♥(차원의 틈): 헹, 내가 활동하던 당시에 날 존경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어.] [비체♥(차원의 틈): 내가 얼마나 위대하고 멋지고 끝내주는 여자인지 이제 잘 알겠지?] [비체♥(차원의 틈): 어디에나 예외가 있긴 한데.] [비체♥(차원의 틈): 제국의 도마뱀 놈들 말이야.] [비체♥(차원의 틈): 특히 그년은…… 아, 떠올리기만 해도 화나.] [비체♥(차원의 틈): 응? 뭐가 불길하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