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9)
나 빼고 다 회귀자-209화(20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09)
Chapter 39. 자극 – 4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다.
아마 누군가는 기준이 하필 이 시기에 마도 왕국을 찾은 것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의 의중을 짐작하고 대처를 고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마도 왕국 한복판에서 대놓고 깽판을 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계약자는 어딜 가나 인기 만점이라니까.
루시가 태평하게도 그런 말을 하며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연락이 들어오고 있는 율영의 통신용 수정구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나랑 손을 잡고 한 일이라고! 내가 흑마법사 색출에 도움을 받은 거야! 그래, 마탑의 위신에 흠이 갈 일 따윈 없어――! 내 계획이야, 전부 위대한 내 계획! 후우.”
또 하나 통신을 마친 율영이 숨을 헐떡이며 흘러내리는 보랏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기준을 힐끗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흑마법사랑 손을 잡고 있는 개자식들 말고도 너한테 불만을 품은 놈은 많아. 칠현자가 지배하는 마탑의 영역에서, 한때나마 마탑의 일원이었던 마도사들을 칠현자도 아닌 차기 빛의 용사, 네가 처리한 일이니까. 자존심, 위신, 그런 것들을 신경 쓰고 있는 거지.”
“너랑 똑같네.”
“그래, 똑같으니까 그런 놈들은 내가 대처할 수도 있는 거야. 내가 모든 현장에 직접 있어야만 한다고 했던 데에도 이런 이유가 섞여 있어. 활약은 네가 하지만, 주관은 내가 하는 것. 그렇게 인식시켜야 트러블을 줄일 수 있거든.”
율영은 애써 기준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당당히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옳았음을 설명하던 그녀는 곧 기준의 안색을 살피며 변명하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널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야. 오해 안 했지?”
―너 역시 계약자한테 쫄았지? 계약자의 진짜 능력을 보고 말이야, 그치?
“바― 바보 아니야? 원활한 협력을 받고자 비위를 맞춰 주는 거잖아!”
율영이 루시의 말에 정곡이라도 찔린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루시, 그냥 안으로 들어와 있어.”
루시는 기본적으로 기준을 제외한 타인에게 까다롭게 굴지만 특히 마도 왕국의 인간들을 대상으로는 더 틱틱거리는 티가 났다.
기준은 루시를 가슴팍에 집어넣으며 율영에게 말했다.
“이대로 움직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는 거지?”
“응, 적어도 그렇게 되게끔 내가 조치했어. 하지만 적들도 바보는 아냐. 더 깊이 숨을 거고, 네가 더 날뛰기 전에 어떻게든 널 처리하려 들 거야.”
“너는?”
“적어도 네가 죽기 전까지 나는 안전하지 않을까? 저들이 두려워하는 건 흑마법사가 정체를 감추지 못하고 폭주하는 거고, 그걸 유도할 수 있는 건 너뿐이니까. 네가 특별한 건지 정령이 특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율영의 가늘게 뜬 눈이 기준의 얼굴과 그의 가슴팍을 왕복했다.
굳이 그 의문에 답하자면 둘 다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광륜을 드러내는 것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어설프게 내게 접근해 빈틈을 드러내기보단 먼저 너를 확실하게 처리하려 들겠지. 특히나 저들이 나를 대상으로 꾸미던 계획의 일부가 드러난 지금은 더더욱,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내게 접근해 올 수는 없을 거야.”
마도 왕국을 장악하려는 무리에게도 율영을 죽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공간 마도에 일가견을 지닌 그녀를 포섭하지 않으면 콘클라베로 마도 왕국을 뒤집어엎은 후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제하기 힘들어지니까.
그럼 어떻게 고결한 칠현자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느냐.
침식이다.
그녀를 흑마법사로 만들어 버리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군이 된다.
실제로 어제 폭주를 일으킨 흑마법사들을 처리하며 수집한 증거품 가운데에는 칠현자 정도 되는 존재의 마력을 제어하고 악마와 강제 계약을 맺게 하는 등의 터무니없이 위험한 계획이 적힌 자료와 준비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바보 멍청이들이 머저리같이 급하게 움직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 계획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초대형 변수를 어떻게든 빨리 처리하고 싶었던 거야. 그 탓에 본인들이 죽게 될 것도 모르고.”
“지금쯤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그래, 확실한 건 흑마법사들도, 배신자들도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네가 당장 내 안전을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어.”
“그렇게 말해 준다면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날뛸 따름이지.”
하지만 사실, 날뛴다고 해도 정말로 기준이 마탑을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준은 어디까지나 손님이었고, 그가 도시 한복판에서 날뛰는 게 허용된 것은 어디까지나 눈앞에 폭주하는 흑마법사가 나타났기 때문.
그나마도 트집을 잡으려 드는 놈들이 많은 판국이니, 그에게 허용된 것은 어제처럼 덫을 쳐 놓고 기다리는 것 정도였다.
단지 어제 노골적인 덫으로 적을 경계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조금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덫을 칠 뿐.
“이걸로 내 입장도 확실해졌고, 설령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던 이들도 너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한층 적극적으로 나설 거야. 방해를 받는 만큼 도움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상황은 훨씬 좋아진 셈이지.”
통신을 모두 마친 율영이 근심이 한결 줄어들어 가볍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걸 여태 왜 못 했나 몰라.”
―어둠을 밝혀 주고 앞에서 든든하게 버텨 줄 계약자 같은 탱커가 없었으니까 그렇지.
“가만히 있으라니까, 루시.”
“흥, 그렇게 몇 번이고 강조 안 해도 나도 잘 알고 있어. 정식 의뢰고, 저번에 폐를 끼친 것까지 포함해서 제대로 보상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물론 콘클라베까지 모두 무사히 끝났을 때 얘기지만.”
기준은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돌아섰다.
“그럼 나가 볼게.”
“그래, 아마 오늘 정도는 잠잠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또 폭주가 일어나면 바로 데리러 갈게.”
간신히 통신이 진정된 것일까, 한숨을 내쉰 율영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아, 그런데 우리 러블리 큐트는 어디 있는지 알아?”
“이제 제자라는 말도 빠진 거야?”
“자꾸 입 밖에 내면 고마움이 덜하잖아. 더구나 혹시 다른 칠현자가 눈독들일지도 모르니까 큐티의 존재는 꽁꽁 감추어 둬야 해.”
비단 큐티, 아니 지혜뿐만 아니라 마탑에 도착한 이후로 기준 외의 다른 멤버들은 탑 안에만 박혀 있는 상태였다.
괜히 따로 다니다가 노려질 수도 있으니 전면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외부 활동을 자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잠입 요원인 나비냐와 은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마법이라도 연습하고 있나 보지.”
“그래, 내가 찾아가 봐야…… 아?”
그 타이밍에 통신구가 점멸했다.
실시간 통신은 아니고 단순한 메시지였는지, 빠르게 그것을 확인한 그녀의 안색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왜? 다른 칠현자가 한 판 뜨쟤?”
“황녀가 당신을 단독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네.”
“또 전속 셰프 자리를 제안하는 거라면 거절한다고 말해. 대신 나중에 불닭볶음면은 선물해 줄 수 있다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제법 건방진 제안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기준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그 여자와 한 번 더 얘기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은 솔직히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머리는 좀 아프겠지만― 이번 사태는 몸으로만 고생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 만나 주지.”
“설마 마음에 든 건 아니지?”
제법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철저히 부정하기 전까지 그녀의 방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 * *
든든하다.
남한테 기댄다는 것을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여겨 경멸해 왔던 율영에게 있어서, 요 며칠간 일어난 일들은 굴욕이면서 동시에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이에게는 기댄 적이 없느냐고?
확실히 용사 베아트리체에게는 동경을 품고 있었지만 그녀는 율영이 아닌 세계의 의지를 지탱하던 존재였고, 그나마 대등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는 칠현자는 애초에 논외였다.
칠현자라는 건 기본적으로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일곱 명의 에고 덩어리가 서로 절대 뭉칠 생각도 없으면서 자신의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 유지되고 있는 집단이니까.
“하, 이러면 안 되지. 이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남자가 아니모 마탑을 무너트려 마탑 내부의 흑마법사 세력을 자극했기 때문이잖아. 이건 내가 기대는 게 아니야. 그냥 그 남자가 자기가 저지른 일의 뒷감당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아니.”
자기 자신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중얼거리다 말고 스스로가 한심해져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그 남자 탓이긴커녕, 그 남자가 없었으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채 감쪽같이 어둠에 집어삼켜졌을지도 모른다.
어젯밤의 그 번개 같은 습격으로 얻어 낸 증거품들만 보아도…….
인정해야 한다.
그 남자에게선 베아트리체와 같은 찬란한 빛과 희망이 엿보였다.
우상을 넘어 자신의 인생의 이정표로 삼고 있는 존재와 그가 겹쳐 보인다는 생각에 괜한 반발심이 들었지만 썩어도 현자답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곧 접어 두었다.
“언니가 직접 키운 인재라면 그게 당연하지, 응.”
사실 베아트리체 언니가 자신에 대해선 제대로 기억도 못 하면서 기준에게는 상냥한 수준을 넘어 끈적끈적한 애교까지 부리는 것을 보고 ‘이런 건 내 베아트리체 언니가 아냐!’ 하고 울부짖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무녀복을 입고 뒤집은 브이 자 사인을 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베아트리체의 사진을 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언니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했고.
‘아마도 언니만큼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사람도 없었겠지.’
베아트리체는 실패했다.
배신당했고,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
그런 그녀에게 희망을 주었다면 그야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
비로소 자신이 떠안고 있던 무거운 의지를 타인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남자의 고유 능력, 한낱 인간에게서 발현되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기적적인 권능……. 황녀가 그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언니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그년이, 자신의 힘과 하찮은 계략 따위로 어쩔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지금쯤 황녀 스카이나와 만나고 있을 기준의 모습을 떠올리며 냉소하던 율영은, 문득 기준이 자신과는 달리 황녀에게 그닥 적의를 드러내지 않던 것을 떠올리곤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천박한 지방 덩어리에 넘어가는 건 아니겠지.’
그러다가는 또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불쾌한 기분인지 이해하지 못해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골몰하다…… 곧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럴 리가 없나. 황녀가 당하면 몰라도.’
그녀는 기준이 발하던 기세를 이기지 못해 결국 혼자 그 매운 두부 요리를 모조리 먹는 신세가 된 황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고 있자니 어느덧 프리티 뷰티 제자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문 앞에 비스듬히 선 채, 마법으로 문의 성질을 물리화하고 내부를 훔쳐본다는 말도 안 되게 난이도가 높은 뻘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 제자, 거기서 뭐 하니?”
“언니, 쉿……!”
어째선지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큐티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섹시 러블리가 훔쳐보던 방 안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미안, 렌카. 아직 내가 준비가 안 된 탓에.] [신 군, 신경 쓰지 말아요. 억지로 달라붙고 있는 건 나잖아요. 물론 떨어질 생각도 없지만…… 신 군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남녀가 제법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모양인데.
분명 어둠의 진영은 아니지만 굉장히 꺼림칙한 기운을 품고 있어 신경 쓰였던 여자와, 그런 여자가 홀딱 반한 남자이며 동시에 고유 스킬이 무척 뛰어나 기준이 정탐을 믿고 맡기던 남자다.
“좋아하는 사람? 렌카 말고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신이가? 으으으……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 누나 감당할 수가 없어……!”
“……설마 저 남자애가 신경 쓰여서 이러고 있는 거니? 마법은 연습 안 하고?”
“마법 연습은 아까 끝냈는데요, 저 발랑 까진 애가 신이를 둘만의 공간으로 끌고 가는 게 눈에 보여서……!”
마치 자신에게 은신을 관리 감독할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 러블리였으나 율영은 이미 그들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나이를 먹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기가 막혀 헛숨을 토하던 율영은 문득 깨달았다.
어째 지금 큐티가 걱정하는 모습이, 불과 조금 전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인 탓이다.
“에이, 설마.”
“설마 뭐요? 혹시 지금 무슨 오해하고 있어요? 언니, 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도 따로 있어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설마라고 했잖아요, 방금!”
프리티가 외친 순간 방문이 열리고 은신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뒤로는 은신을 양팔로 껴안고 있는 렌카의 미소 어린 얼굴도 보였다.
“누나?! 여기서 뭐 하세요?”
그가 지혜와 사귀는 것도 아니니 딱히 찔리는 짓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어째선지 잔뜩 움츠러들며 괜히 렌카를 자신에게서 떼어 내려는 은신.
그들을 잘 모르는 율영이 봐도 은신이 누굴 좋아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건만, 큐티는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뭐 하다니, 그냥 마법 수련이지! 변검!”
기묘한 포즈를 취하며 가면을 바꾸는 지혜의 손을 율영이 잡아끌고 당겼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새로운 마법이나 배우자.”
“아니, 언니 잠깐만요, 잠깐!”
율영은 바보짓을 하는 지혜를 끌고 움직이며 아주 잠깐, 율영은 스스로의 감정을 매우 객관적으로 진단해 보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역시나 자신은 지혜와는 달랐다.
자신이 지금 그 남자를 걱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속에 시커먼 구렁이가 들어앉아 있는 황녀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