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11)
나 빼고 다 회귀자-211화(211/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11)
Chapter 40. 용서할 수 없는 배신 – 1
기가 막히는 우연의 연속, 이젠 운명이라 불러 마땅할 일련의 흐름 끝에 완전한 전설 등급의 영(靈)으로 탈바꿈한 악령은, 암중에서 황녀를 호위하는 무수한 강자들, 나아가 보호용 아티팩트를 몸에 둘둘 휘감고 있는 황녀 본인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녀를 감시할 수 있었다.
악령이 단순한 영적 존재라면 루시를 알아본 황녀의 눈을 피할 수 없겠지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명계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권능을 얻은 그녀는 그림자에 숨어 움직이는 은신 이상으로 몰래 대상을 감시하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나 탄생 과정에 크나큰 악의와 증오가 섞인 만큼 그녀는 기준에게 악의를 갖는 대상에 대해선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확실히 포착하고, 나아가 공격하는 것까지도 가능했다.
―아무래도 그 버러지는 자신의 지위마저 미끼로 내걸고 흑마법사들과 접촉한 것 같아요. 심지어는 은인의 이름까지 입에 냈답니다.
그리고 그녀가 황녀에게서 기준을 향한 악의를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 뭐라고?”
―이대론 계획이 틀어지지 않겠냐면서, 자신과 손을 잡으면 은인의…… 은인의 목을 베어 낼 기회를 잡게 해 주겠다고…… 후, 후후…….
기준의 목숨을 함부로 입에 담는 황녀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못해 음산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악령.
다만 기준도 악령도 그것이 어디까지나 미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황녀가 기준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었더라면, 악령이 폭주했어도 진즉 폭주했으리라.
“그래, 지금 나라면 놈들에게 눈엣가시일 테니, 미끼로는 제법 효과가 있겠지. 어쨌든 그 여자가 스스로 한 말을 어기는 것 같진 않네.”
“어기는 것 같지 않다고요?”
요즘 한창 나비냐와 함께 식자재 배달원 노릇을 하느라 작업복에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은신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반박했다.
“이거 그거잖아요, 차도살인지계! 흑마법사랑 형을 동시에 어떻게 해 보려는 거라고요!”
“주 목적은 어디까지나 흑마법사야.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나도 좀 위험해질지 모르지만…… 거기서 죽으면 용사 자격은 없다는 거겠지.”
“……저쪽이 형을 무슨 장기짝처럼 여기고 있는데 괜찮아요, 형? 당장 저도 엄청 기분 나쁜데요.”
황녀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몸에 남은 빛의 기운을 기준이 직접 지워 주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황녀는 흑마법사들과 접촉해서 한다는 짓이 기준을 함정에 밀어 넣는 것이라니.
은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기준은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이쪽도 그 여자가 위기를 감수하고 대범하게 움직이고 있는 덕에 흑마법사 세력의 정보를 알아내기도 했고, 당장 최대의 적이 같은 만큼 그녀의 행동 자체는 납득할 수 있어.”
“냣, 전부터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주인님은 호구였냐. 실은 나를 도와줄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냐.”
“넌 모자나 제대로 써.”
그리고 어차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뭐 하러 은신과 맞춰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귀여우니까 용서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너무 안 놀라잖아요. 형, 혹시 그 여자한테 반했다거나……?”
“반했으면 오히려 충격 먹지 않았을까?”
“그건 그렇네요.”
“난 반대야. 딱히 놀랄 이유가 없거든.”
황녀가 비체를 배신했다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애초에 그녀를 향한 긍정적인 감정이 전무했기에 이 이상 그녀에 대한 생각이 바뀔 여지가 없다.
“실제로 좋은 기회기도 하고. 황녀가 판을 짜 준다면 기꺼이 돌입해 주지.”
“냐?!”
설마 했던 무대책 선언에 나비냐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가끔 주인님의 레타 견문이 좁다는 걸 잊어버리냐. 하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게 위험한 짓이냐! 상대를 죽이려고 진지를 구축해 놓은 마법사의 영역에 직접 기어들어 가는 건 금기냐! 특히 흑마법사라면 더더욱 위험하냐!”
기준의 힘을 실감한 이후로 어지간하면 기준의 행동에 놀라거나 태클을 걸지 않았던 녀석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레타 대륙에서 ‘흑마법사’라는 이름은 제법 특별한 의미를 갖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레타 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도, 마폭탄을 본 오크들이 흑마법사 얘기를 하며 잔뜩 긴장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뿐인가, 늑대 인간들이 숨어든 유적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던 도망자들, 긴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흑마법사와 관련되어 있지 않던가.
특별한 종족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하나의 직군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레타 대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여태까지는 간접적으로만 연관되어 왔던 그들과 비로소 본격적으로 치고받게 되었음을…… 다시 말하면, 이제야 본인이 문명 전쟁의 한복판에 올라왔음을 기준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흑마법사는 몇 명 상대해 봤는데…… 준비라면 뭐가 있지?”
“그거라면 내가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네.”
기준과 악령, 은신과 나비냐.
소위 은밀 작전 멤버들끼리만 회의를 나누고 있던 방문을 열고 나타난 이는 바로 율영이었다.
콘클라베가 가까워져 올수록 한층 얼굴이 썩어 들어가는 그녀의 표정은 슬슬 숙성이라는 말로는 커버를 쳐 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괜찮아?”
“응? 응, 어. 우리 프리티 걸한테 마법 가르쳐 주다 보니까 너무 재밌어서 한 몇 시간 정도 현실을 잊고 있었는데, 수업 끝내고 보니까 여전히 현실이 개 같아서 그 낙차 때문에 좀.”
“고생이 많구나…….”
사태가 진전되어 가는 듯하면서도 점차로 수렁에 빠져드는 와중에 아무래도 지혜의 마법 수업만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
그리고 별 상관은 없지만 대체 지혜의 애칭을 몇 개까지 늘릴 생각인 건지가 신경 쓰였다.
“그보다 지금은 흑마법사에 대해 얘기하자. 당신이 워낙 성공적으로 기습해서 놈들이 제대로 대비할 틈도 없이 몰아친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때문에 흑마법사들을 얕보다 당해도 큰일이니까.”
기준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흑마법사들의 소굴에 준비되어 있던 각종 마법진에 대해 떠올렸다.
“마법사들이 다루는 마법이 판이한 것처럼 흑마법사들도 다양한 체계의 마법을 쓰곤 하지만, 대체로 놈들이 다루는 마법은 세 가지야. 언데드, 저주, 어둠 공격 마법.”
“게임에서 전직할 때 세 개로 나뉘어 나올 것 같은 선택지네.”
“우리 쁘띠 허니도 그 말 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자를 쁘띠 허니라고 부르는 율영의 끔찍한 감성과 자신과 지혜의 발상이 똑같다는 데에 이중으로 충격을 받은 기준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에도 율영의 말이 이어졌다.
“이 중에서 어둠 공격 마법은…… 뭐, 다른 계열을 포함한 복합적인 공격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나마 상대하기가 편해. 마력보다 한층 성질이 더럽고 포악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 대처법은 일반 속성 마법과 크게 다를 게 없거든. 아, 덤으로 빛에 약해.”
―그 정돈 설령 에픽 등급으로 덤벼 와도 막아 낼 자신이 있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 루시.
덤으로 악령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빛으로 어둠을 제압하는 루시와 달리 악령은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속성인 만큼 자신의 어둠으로 다른 어둠을 집어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데드. 이것도 빛에 약하다는 점에선 네가 상대하기 유리할지 모르지만, 작정하고 준비하면 정말 대군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사 오버플로에 가까운 재앙이 될 수도 있어.”
“알아, 그쪽은 이미 한 번 겪어 봤거든.”
“아, 그라티아에서 일어났던 소동? 하지만 착각하면 안 돼. 나도 이번 일이 일어난 김에 조사해 보긴 했지만 그때 나타났던 건 어디까지나 초중급 언데드였잖아? 진짜 재앙으로 불리는 언데드는 레전더리 등급부터 시작이니까. 그리고…… 진지를 구축하고 어둠의 양식을 끌어모은 흑마법사들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강한 언데드를 불러낼 수 있어. 이래서 놈들이 무서운 거야.”
특히나 스스로 시체를 불러일으키는 리치를 소환해 낼 경우엔 은행의 복리 이자는 뺨 맞고 울며 도망갈 만큼 놀라운 효율을 자랑한다는 것.
“대륙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을 땐 대량의 강한 언데드가 몰려든 경우가 대부분이야. 베아트리체 언니의 마지막 전장도…… 응, 그런 느낌이었고.”
잠시 말을 멈추고 감정을 가라앉힌 율영이 이를 빠득 갈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다루는 능력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대처하기 힘든 건, 바로 저주야.”
“예상했어.”
“저주라고 해도 한 종류가 아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현상을 구현해 낼 수 있는 데다, 그중에 강력한 자들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조종해. 따지고 보면 어둠에 침식되어 타락하는 것도 이 저주에 당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
“네가 이번에 당할 뻔했던 것 말이지.”
“지금도 안전하지 않아.”
기준의 말에 그를 째릿 노려보며 말한 율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제발 그 여자가 준비한 함정에 스스로 뛰어든다는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네.”
“뭐야, 밖에서 듣고 있었어?”
“위험해! 물론 너한테 신비한 힘이 있다는 건 알아, 여태까지 보아 왔으니 네게 심상치 않은 저항력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고!”
그녀의 걱정을 가볍게 받아넘기는 기준에게 화가 난 것일까, 율영이 불현듯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자신의 안위를 위한다기보다는 기준을 걱정하는 느낌이라 그도 적잖게 당황했다.
‘이 여자 원래 이렇게 열혈이었나?’
―그럴 리가, 단순히 피가 좀 뜨거워질 만한 이유를 우리 계약자가 제공한 거겠지.
피가 뜨거워져?
스스로는 스마트 가이를 자칭하지만 사실 눈치가 썩 훌륭한 편이 아닌 기준은 루시의 말에 자신이 율영을 화나게 한 일이 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흑마법사들이 다루는 마법이 잔혹하고 위험한 이유는, 제물을 준비하면 얼마든지 격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야. 그들이 대체 언제부터 마탑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작정하고 함정을 판다면, 너도 위험할 수 있어. 베아트리체 언니처럼…….”
과연, 기준을 비체와 겹쳐 보고 있기에 그런 것이었나.
비로소 답을 얻은 기준은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오답도 답은 답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각개 격파 하다가는 콘클라베 때까지 맞출 수 없다는 건 너도 알지? 이미 저들은 경계를 시작했어. 파티원들의 힘을 빌려 팔마주 내부에는 잔뜩 빛의 함정을 깔아 두긴 했지만― 저들이 작정하고 숨어든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우리지. 황녀가 나를 미끼로 쓰는 건 달갑지 않지만 어쨌든 그녀는 상당히 효과적인 작전을 꾸미고 있어. 내가 거기에 어울려 준다면…… 일망타진까지는 몰라도, 놈들이 마도 왕국에서 다시는 나대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너……!”
그때 마침 적절하게도 기준이 갖고 있는 통신구가 착신을 알렸다.
아무래도 황녀는 흑마법사들에게 성공적으로 함정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응하지 마! 내가 상대할 테니까. 그 여자가 어딜 감히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예전과 똑같은 짓을……!”
빽 소리를 지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율영.
나비냐와 은신 역시 그녀를 말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도 이건 현자님하고 동감이네요. 왜 굳이 형이 더 위험한 길을 가려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우리 이미 잘하고 있는 거 아녜요?”
“맞냐! 내가 그렇게 못 믿음직스럽냐?!”
은신은 둘째 치고 나비냐는 그냥 기준에게 막말을 하는 듯했지만, 기준은 녀석들에게 알밤을 먹이는 대신 말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를요?”
“나만 가는 거 아냐. 너희도 간다.”
“……예?”
“히이이이익?! 내가 뭐를 잘못했냐! 흑마법사가 구축한 진지에 맨몸으로 기어들어 가는 건 싫냐!”
“아니,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 파티원 전부 데리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음…… 물론 모습을 숨기긴 해야겠지만, 마침 틸라가 거기에 적절한 능력을 얻었으니까 괜찮겠지.”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기가 질린 표정으로 기준을 바라보는 율영.
“혼자 죽는 것도 아니고 파티원들까지 전부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고? 그나마 당신은 저항력이 있어서 괜찮겠지만 파티원들은 무리야!”
“응? 아직 설명 안 해 줬나?”
“무슨 설명? 당신 고유 스킬에 대한 설명?”
“아니.”
기준은 제 등에 걸고 있는 방패를 툭 치며 말했다.
“고유 영역에 대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