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3)
나 빼고 다 회귀자-233화(233/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33)
Chapter 44. 늑대가 우는 밤 – 3
기준은 철저히 전투를 준비했다.
일단 전투는 어디까지나 안개 숲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초르트가 안개 숲의 환각에 무력화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다소나마 약화되리라는 확신은 갖고 있었다.
‘문제는 놈이 순순히 숲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인데…….’
그토록 야른비드르를 갈망한다는 초르트가 여태껏 수하들만 내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놈은 충동에 휘둘리는 늑대 인간답지 않게 상당히 신중해 보였다.
아무리 긴이 야른비드르의 입구를 열었다지만, 그 뒤를 이어 안개 숲으로 돌진한 늑대 인간들이 야른비드르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모두 죽어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쉬이 숲에 발을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눈치 게임 시작이지.’
긴이 야른비드르에 들어가는 것을 본 늑대 인간들이 모두 눈이 돌아가 돌진해 오는 것을 보며 직감했다.
아무리 초르트가 브리콜라카스의 수장이며 휘하에 충성스러운 늑대 인간들을 무수히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 주제에 신중하기까지 하다고 해도, 정작 그 구성원인 늑대 인간들은 멍청한 개 대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초르트는 참아도 늑대 인간들은 이걸 못 참는다는 얘기지.
거기에 기준은 늑대 인간들을 흥분시키는 데에 아주 효과가 좋은 ‘약’까지 갖고 있지 않은가.
‘발광 도발이 초르트에게까지 먹히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 하지만 다른 늑대 인간들에게는 확실히 먹힐 것이고―― 늑대 인간들이 부나방처럼 달려들어 산화하는 꼴을 보면 결국은 초르트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거야.’
혹여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판단한 초르트가 아예 군을 물려 버린다면?
이쪽도 초르트와 맞상대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니 오히려 감사한 일, 눈치를 보다가 적당한 때에 야른비드르의 입구를 열고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계약자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경계해.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보며 호흡을 고르는 기준의 귓가에 루시가 속삭여 왔다.
―난 일대일로 맞붙기만 하면 계약자가 얼마든지 그 똥개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 지금 계약자에겐 지나치리만치― 마치 운명처럼 어둠을 깔아뭉개기 위한 조건이 갖춰져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 똥개는 이미 수백 년간 브리콜라카스를 이끌어 온 지배자야. 심처에 숨어 자신에게 유리한 온갖 조건으로 떡칠을 하고 원정군을 맞이했던 그 얍삽하고 교활한 흡혈귀 놈들과 맞대결을 하면서도 그들 이상으로 문명을 번성시켜 온 놈이라는 거지. 놈이 계약자의 생각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돼.
“으음.”
기준은 약간 불안해져 말했다.
“그럼 역시 바깥에서 싸울까? 혹시나 안개 숲이 내게 안 좋은 변수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서――.”
―아니, 그럼 안 되지. 일대일로 붙으면 이긴다는 방금 내 말 뭘로 들은 거야? 그냥 상정 외의 일이 일어나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는 뜻이었어.
일단 지금 상황에서 안개 숲에 전장을 조성하고 적을 기다리는 것 자체는 옳은 판단이라는 얘기다.
그야 예민이 고개를 끄덕여 준 계획이니 어긋날 리는 없지, 하는 생각을 떠올린 그때에 마침.
숲 전체에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파동이 내달렸다.
“……하.”
방패를 들어 그것을 막아 낸 기준은 방금 그것이 자신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격을 갖춘 자의 존재감, 혹은 자신의 발광 도발과 같이 놈의 힘을 일부 분출하는 스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장난 아닌데.”
가시공을 처음 조우했을 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 당시에는 자신보다 강한 빛의 용사 파툼도 있었고, 워낙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난투였기에 적의 살기를 고스란히 받아 낼 필요도 없었다.
물론 놈이 제 영혼을 바쳐 불러낸 악룡은 이 이상으로 끔찍했지만, 그래도 그땐 금방 비체가 나타나 주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놈은 정확히 기준을 포착해, 지금부터 그를 죽여 버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전달해 오고 있었다.
오로지 그와 파티원들만의 힘으로, 하나의 문명의 수장을 이겨 내야 하는 상황이다.
원하는 바다.
기준은 두 개의 방패를 모두 정자세로 쥐며 파티원들에게 고했다.
“작전대로 가자. 초르트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적이 무슨 공격을 해 오든, 그건 모조리 내가 막아 낸다. 너희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너희는――.”
“초르트를 제외한 적을 우선적으로 참살, 그 후 초르트에게 공격을 퍼부으면 된다는 거지.”
틸라가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몸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어쩌면 레타에서 오래 살아온 만큼 초르트의 강함을 막연히 어림짐작하고 있을 뿐인 기준과는 달리 놈의 악명, 위세를 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까도 말했지만 모든 데미지는 내가 막아 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서 걱정되는 거야, 준……!”
자신이 위험해지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니까.
자신이 실수를 하게 되면 그만큼 기준이 위험해지니까.
그러나 기준은 틸라의 걱정을 알고도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급소에 정통으로 얻어맞든 옆구리에 스치든 난 다 똑같은 데미지로 막아 낼 수 있어. 그러니 적을 앞두고 몸을 움츠리지 마. 최대한 자신 있게 나서.”
“……응.”
고개를 끄덕인 틸라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오며 볼을 붉혔다.
“키스 한 번만 해 주면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갑자기?
거대 문명을 정면으로 대적한다는 상황을 앞두고 거절하기 힘든 타이밍에 실로 과감한 어프로치를 해 오는 틸라.
루시가 대경하며 손에 광구를 만들어 냈으나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도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기에 이미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덮기엔 무리였다.
그대로 그녀에게 이끌려 키스를 해 줄 뻔했던 기준은 늦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괜히 플래그 만들지 말고 집중해서 싸우기나 해.”
“이 타이밍에도 밀어내다니.”
“봐 봐, 민이도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잖아. 파티 선배로서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되지?”
물론 예민은 그들이 한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아무 망설임 없이 기준에게 키스를 조를 수 있는 틸라가 부럽고 증오스러워서, 만약 그녀가 성공한다면 어떻게 자신도 졸라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눈을 빛냈을 따름이었다.
“아니, 갑자기 러브 코미디 찍고 있지 말라고요! 생기던 긴장도 날아가잖아요!”
지혜의 적절한 태클에 다급히 눈빛을 거두며 물러난 예민이 큼큼, 헛기침을 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 와중에 지혜의 은신을 향하는 눈빛,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르고 그저 지혜가 방금 틸라에게 질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은신까지…… 이쪽이 훨씬 더 러브 코미디 같다고 생각했지만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아니, 신이 쟤는 왜 또 갑자기 준이 오빠를 라이벌시하는 건데?
아무리 둔해도 혜한테서 줄줄 새어 나오는 감정을 아예 모를 수는 없는 건데…….
혹시 혜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상태인 거 아냐?
‘……그래, 어쩌면 준이 오빠도.’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기준과 자신의 관계 진전의 힌트를 찾아낸 예민이 문득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야속하게도 하필이면 그때 가까운 곳에서 늑대의 하울링이 들려오며 그들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거대한 기세 여럿이 느껴졌다.
소녀의 망상이나 전개하고 있을 틈이 없다.
일단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게 끝나고 나면, 그때는.
‘이번 전투가 끝나면 오빠한테 좀 더 티 나게 접근해 보자. 더는 예전의 오만불손하던 내가 아니라고, 오빠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면…… 잠깐만, 이게 그 플래그라는 거 아냐?’
괜히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그 순간.
전방의 나무들을 모조리 휩쓸어 버리며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이구나――!”
“초르트께서 네놈의 목을 거두어 오라 명하셨다!”
“안전한 곳에 숨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전부 끝이다!”
말은 싸구려였으나 기세는 강렬했다.
애초에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족히 수십에 이르는 늑대 무리, 그것도 저마다 레전더리 등급 이상의 기세를 뽐내고 있는 강한 늑대 무리가 삽시간에 기준 일행을 포위했다.
실로 경악스러운 점은, 비록 레전더리 하급에 이를지언정 놈들은 아직 광폭화도 구사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
“뭐야 이거.”
기준은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토했다.
“레전더리 등급은 적다고 하지 않았었어?”
“적어. 브리콜라카스가 얼마나 거대한데, 그 거대한 문명을 통틀어 진정한 레전더리 등급은 수십 명에 지나지 않으니까.”
담담히 말하며 양손에 불꽃을 피워 내는 틸라.
신염인이 된 이후로 어지간해선 전력을 낼 기회가 없었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홍염수 로딤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불꽃으로 화해 그녀와 일체화하는 모습에, 그녀의 선명한 각오가 엿보였다.
‘한 문명에 속한 레전더리 등급이 수십 명이라. 아니, 프런티어 왕국 같은 최전선 사람들에겐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자신의 무대가 확장되었다고 보아야 할까.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납득은 갔다.
어쩐지 투리스에선 그것만으로 존중받았을 유니크 등급의 강자가 밀물처럼 밀려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래서 그놈들이 오늘 전부 여기로 몰려왔다고.”
“아마도.”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본진에 있다가 침략을 당한 흡혈귀들조차 수도공과 핵심 전력 일부를 따로 빼어 후일을 도모했거늘.
그저 야른비드르를 찾아 나섰을 뿐인 초르트가, 기준 한 명을 죽이겠다고 브리콜라카스에 있는 레전더리 등급 전원을 이쪽으로 보냈다고?
그만큼 야른비드르가 간절하다는 얘기인가?
“초르트께서 새로운 빛의 용사의 죽음을 원하신다.”
“실로 굉장한 능력, 그리고 담대한 용기.”
“어쩌면 우리 모두 이 자리에 죽어 묻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까 수백 명으로 분열한 기준이 빈틈없이 안개 숲을 보호했듯, 놈들 또한 빠져나갈 틈 없이 기준 일행을 포위하며 입을 맞추어 으르렁거렸다.
“우리 전부의 악의를 뒤집어쓰고도 빛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얼빠진 표정을 짓는 기준을 늑대들이 마구 비웃었다.
“때마침 이곳은 안개 숲, 환각에 정신이 나간 용사가 그대로 어둠에 떨어졌다는 얘기도 그럴듯하군.”
“푸하하하하하!”
아, 이 녀석들은 아무래도 기준의 심연 면역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더구나 정작 안개 숲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건 놈들인 듯한데, 아직 광폭화도 쓰고 있지 않은 주제에 눈이 맛이 가 있지 않은가.
니체 선생님께서 보고 비웃으실 것이다.
드높은 격 덕에 어찌 목표물을 놓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아마 광폭화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쓰지 못하는 것이겠지.
가뜩이나 안개 숲의 환경 디버프에 시달리는 상황에 광폭화까지 구사하면 완전히 돌아올 수 없게 될 테니까.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상황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는 기준이었으나…… 이윽고 그의 몸짓이 멎었다.
“초르트는?”
브리콜라카스의 핵심 전력을 모조리 보낸 주제에 정작 초르트의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직접 기준을 잡아 죽이겠다는 강렬한 살의가 선명하게 느껴졌었는데.
“이제야 깨달았나.”
안개 숲의 환각 탓에 예민을 기준으로 착각한 늑대 인간 한 명이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지껄였다.
“위대한 그분께서는 이미 원하는 곳에 발을 들이셨다.”
“마치 숙명과도 같이, 감히 그분께 이빨을 들이댄 새끼 늑대의 목을 친히 꺾으러 가셨다.”
“우습지 않은가! 그분께서 숲에 들어가실 수 있었던 것은 그 겁 없는 새끼 늑대가 숲의 힘이 깃든 털과 발톱을 흘리고 다녔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숙명의 악의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악의가 내려올 것이다. 놈에게도, 그리고 네놈들에게도!”
기준은 그 말과 함께 예민을 덮쳐 오는 늑대 놈의 턱 밑에 날카롭고 빠르게 송곳니를 박아 넣으며 번개같이 루시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뭐랬어, 계약자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