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4)
나 빼고 다 회귀자-234화(234/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34)
Chapter 44. 늑대가 우는 밤 – 4
초르트가 구사한 것은 아마도 대상의 특질을 복사할 수 있는 아티팩트일 것이다.
어쩌면 그 대상은 같은 늑대 인간에 한할지도 모르지만 불행히도 긴은 놈과 같은 늑대 인간이었으니.
여태껏 기준은 접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기물이지만 고유 영역도, 상대방이 입는 데미지를 끌어오는 아티팩트도 있는데 그런 것이 결코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변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결국 적을 얕본 것이다.
레타 대륙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모든 일에 대비할 수는 없다.
후회보다는 일어난 일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것이 좋을 터.
기준은 방어 자세를 순식간에 풀어 버리며 두 개의 방패를 모두 날카로운 빛의 송곳니로 바꿔 적을 겨누었다.
“최대한 빨리 놈들을 해치우고 초르트 뒤를 쫓아야 해. 어쨌든 여기에 초르트가 나타날 일은 없으니까― 서두르자.”
“레전더리 등급의 적 수십 명을 상대로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하는 준이 너무 좋아.”
여태껏 홀로 브리콜라카스를 상대해 온 긴이라면, 루멘 파티가 그를 찾아낼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죽는다면…… 솔직히 그 녀석의 자업자득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복수는 확실히 해 주리라.
―그래도 역시 개 대가리 무식한 건 어쩔 수 없네. 정예 병력은 모두 여기에 놔두고 혼자서 들어가다니 무슨 생각일까? 그렇게 이 비경이 만만해 보였나?
“그분을 우습게 보는구나, 이미 대륙의 역사가 그분을 기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거늘! 우린 그저 그분을 방해하는 벌레들을 치워 내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께서 철의 숲을 정복하고 돌아오시면 그때 비로소 늑대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을 것이다!”
루시의 도발을 견뎌 내지 못한 레전더리 등급의 늑대 인간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일제히 기준에게 쇄도해 왔다.
역시 발광 도발을 쓰는 것보다 루시한테 도발을 맡기는 게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기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너흰 어차피 전부 여기서 죽을 텐데, 그렇게 초르트 곁이 좋으면 내가 걔랑 같이 묻어는 줄게.”
“네놈은 땅에 묻히지도 못할 것이다!”
“뼛조각 하나 안 남기고 통째로 집어삼켜 주마――!”
―카가가각!
기준이 잽싸게 내민 송곳니와 늑대 인간들이 내민 발톱, 이빨 따위가 연달아 충돌하며 기분 나쁜 쇳소리를 냈다.
놈들의 발톱과 이빨에 맺혀 치열하게 타오르는 오러는 겉보기와는 달리 소름 끼치게 차가웠고, 빛과 열이 가득 담긴 기준의 오러와는 그야말로 극상성인지라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설마 이렇게나 확연히 밀릴 줄은 몰랐으리라, 눈을 부릅뜨면서도 일단은 물러나려는 놈들을 향해 기준이 대지를 박차고 그대로 돌진하며 밀어붙였다.
그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놈들의 술수인지 서늘한 손바닥이 수십 개 솟구쳤으나―― 기준의 전신을 감싼 빛에 닿자마자 모조리 녹아내린 탓에 그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일단 한 놈!”
―칭호 [최후의 용사], [한계 초월자], [범람의 종식자], [자이언트 킬러], [흡혈귀 사냥꾼]의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어느덧 기준의 머리 위로 떠오른 광륜이 치열하게 회전하며 눈부신 빛을 토해 냈다.
놈들의 오러를 약화시키고, 체내에 흐르는 차가운 어둠의 마력마저 일시적으로 동결시키는 그것은 하나의 스테이터스가 아닌 권능에 가까운 힘.
놈들이 모르는 사이 이미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고유 영역의 힘까지 더해, 기준 본신의 등급이 유니크라는 사실이 민망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빛의 힘이 방패 끝에 자라난 송곳니 하나에 압축되어 전방을 베어 갈랐다.
“끄륵……!”
“피해, 놈이 폭주……!”
여태껏 기준이 탱커로서 방어에만 전념했던 것은 적을 공격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어리석은 늑대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송곳니의 궤적에 정통으로 걸린 늑대 인간 둘이 그대로 찢겨 나가고, 그나마 조금 뒤에 있던 놈은 발에 오러를 집중시키며 늑대 인간의 특성을 살린 빠른 회피를 실시했으나 동료들을 벤 직후 더욱 크게 확대되며 전방으로 확산되는 오러를 막아 내지 못해 몸의 절반 정도를 잃고 나가떨어졌다.
“후우…….”
한 명은커녕, 자신보다 격상의 적을 단숨에 셋이나 죽여 버린 기준을 향해 적아를 불문하고 경악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물론 기준은 레어 등급일 때부터 자신보다 등급이 높은 적을 일격에 죽이곤 했지만 레어 등급이 유니크 등급을 죽이는 것과, 유니크 등급이 레전더리 등급을 죽이는 것은 또 다른 얘기였다.
구체적으로는 레전더리 등급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적이 쌓아 온 방어력, 체력, 아티팩트, 스킬을 모조리 극복하고 목숨을 끊어 놓는 데 필요한 스킬, 공격력과―― 그것에 소모되는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다.
기준을 탱커로만 보면 간과하기 쉬운 일이나― 기준은 동급의 그 누구보다도 방대하고 질이 높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나치게 흥분했어, 계약자. 마음이 급한 건 알겠지만 페이스 조절해.
‘조금 무리해서라도 일단 수를 줄여 놓는 게 낫겠다 싶었거든. 내 한계는 잘 알고 있으니까 안심해, 루시.’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한계를 넘어서는 무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기준은 직감하고 있었다.
오히려 여태까지가 너무 쉬웠던 것이다.
그의 여정에 대해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가 가시밭길에도 정도가 있다며 혀를 내두르겠지만 실상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시기적절하게 강한 동료가 도와주거나, 상성과 상황의 도움으로 수월히 헤쳐 나온 기준 입장에서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조건이 너무 좋았던 거겠지. 사실 지금도 조건은 좋아. 적의 공격은 나한테 닿기도 전에 녹아내리고 내 공격은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 이런데도 겁을 먹고 내 안전을 생각하며 페이스를 조절할 때가 아니잖아.’
완벽에 가까웠던 작전을 망쳐 버린 긴 녀석에게 해 줄 말이 잔뜩 있었다.
그러니 그 녀석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다들 공격해! 전법은 같아, 어차피 너희가 데미지를 입을 일은 없으니까 망설일 것 없이 모조리 쏟아부어!”
“네!”
“알겠습니다!”
기준이 단단히 각오했음을 알아차린 파티원들은 가타부타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제히 늑대 인간들을 공격했다.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늑대 인간들에게 돌격하며 발광 도발을 시전한 기준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너희 발톱을 뽑아다가 초르트 목덜미에 꽂아 주마!”
―도발이 조금 약한데, 계약자. 거기선 ――를 뽑아서 초르트의 ――를 ――하겠다고 해야지.
아무래도 루시 역시 기준 못지않게 흥분한 모양이었다.
기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재차 송곳니를 길게 뽑아내 휘둘렀다.
첫 격돌로 죽어 나간 동료들을 보고 교훈을 얻었는지, 늘 무식하게 들이받고 보는 늑대 인간들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피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물론 그것을 대비하고 있던 기준의 파티원들은 빈틈이 드러나는 것을 놓치지 않고 놈들을 공격했다.
“큭?! 여기도 불꽃!”
“나약한 벌레 주제에 감히……!”
아무리 피해 봤자 전장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다시 기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놈들을 제약하는 숨겨진 조건이 하나 더 있었으니…….
“이, 이건.”
“거대한 황금빛이 일대를 휘감고 있어…… 설마.”
“고유 영역! 제국과는 손을 잡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피, 피해. 빠져나가!”
“빠져나갈 수 없어……!”
일대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반구 형태의 결계가 기준의 의지에 따라 단숨에 좁혀지며 놈들이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물론 수십 명의 레전더리 등급이 상대인 만큼 놈들이 힘을 합쳐 고유 영역을 부수고자 한다면 기준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준과 그의 파티원들이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는다면 말이다.
“어디 부지런히 움직여 봐.”
압도적인 기동력을 장점으로 삼는 늑대 인간들 입장에선 발목에 족쇄를 달게 된 것과 같으리라.
숫자가 많다는 점은 이제 장점이 될 수 없었다.
루멘 파티에 속한 면면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반면, 기준이 예리하게 휘둘러오는 두 개의 거대한 빛의 송곳니를 피해야 하는 늑대 인간들은 점점 더 좁아지는 고유 영역의 벽에 가로막혀, 일단 이것을 부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발톱 한두 번 박아 넣는 정도로는 영역에 금도 낼 수 없었다.
오히려 찬란한 빛에 발톱이 녹아내릴 따름.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정말 제국이 전력을 다해 키워 낸 비밀 병기라도 된단 말인가……!”
“놈을 죽이는 것이 빨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우왕좌왕하는 사이에도 놈들의 전력은 하나둘 줄어들어 갔다.
틸라를 제외한 멤버들은 빈틈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적이라도 쉬이 잡아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목표를 집중시켜 화력을 쏟아부으면 한 명 한 명 죽일 수 있었다.
“신 군!”
“알고 있어, 괜찮아!”
“목, 목만 노려! 재생은 오빠가 막고 있으니까!”
“저는 준 님을 돕겠습니다!”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으로 날아드는 은신의 비수가, 가장 생생하고 또 가장 죽음에 가까운 힘이 담긴 렌카의 검은 식신이, 예민의 등급 이상으로 거대한 힘을 품은 롱 소드가, 칠현자에게 사사한 지혜의 마법이, 늑대 인간들의 몸에 흐르는 피를 썩어 버리게 만드는 로라의 칼날이, 다른 이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틸라의 불꽃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늑대 인간의 전력을 줄이고 있었다.
“크르르륵……! 이대론 안 돼, 모두 당한다!”
“아냐, 놈도 언젠가는 지칠 거야! 이만큼 방대한 마력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어!”
“목숨을 바쳐 놈을 막아!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놈의 목을 베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전더리 등급은 과연 빈말이 아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동료가 죽어 나가는 상황에 이르러도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늑대 인간들은 그 한정된 영역 안에서도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움직이며 기준의 갑옷을 긁어 내고 그의 투구를 벗기려 들었다.
결코 부서질 것 같지 않은 그의 두 방패를 부수기 위해, 그것을 감싸고 있는 빛을 걷어 내기 위해 그들이 쌓아 올린 모든 마력을 불태웠다.
‘만만치 않네.’
그의 시야를 모조리 뒤덮으리만치 쇄도해 오는 늑대 인간들의 공격, 그것을 뒤덮은 검은 기운에 기준은 속으로만 신음했다.
만약 기준이 평범한 빛의 용사였더라면 이미 침식이 시작되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의 고유 스킬이 그것을 막아 주고 있지만― 아무리 그가 효과적으로 적을 상대하고 있어도 놈들의 목숨을 건 묵직한 일격을 감당할 때마다 그의 마력이 출렁이며 수직으로 하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팔의 방패를 맹렬히 휘둘러 공격을 막아 내고, 놈들의 목덜미와 사타구니에 송곳니를 박아 넣으면서도 기준은 쉼 없이 살루타리스를 시전했다.
그의 영력을 품고 체내를 미친 듯이 빠르게 순환하는 흐름, 그 흐름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기준의 사고마저도 불분명해지고 있었다.
―계약자, 괜찮아?!
‘괜찮아, 할 수 있어. 이제 절반도 안 남았어.’
절반이나 남았다고 투덜댈 수도 있었는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향하는 살의에 반응해 방패를 들어 올려 막고, 몸을 뒤틀어 방패를 내려찍어 그 원인을 제거한다.
송곳니의 크기는 처음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들어 있었으나 그만큼 몸을 빠르게 놀려 간극을 메꿨다.
치열하게 회전하는 마나 서킷이 일으키는 소음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죽여……!”
“내 이성이 모조리 사라져도 상관없어, 어차피 눈앞에 있는 놈만 죽이면 되니까!”
기어이 늑대 인간들도 마지막 수단을 냈다.
광폭화, 스스로 이성을 놓아 버리고 공격력을 끌어 올리는 짐승의 기술.
황금의 결계 안에 갇혀 싸우다 보니 어느덧 이곳이 안개 숲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골수까지 치미는 마기가 마지막 판단력까지도 앗아 가 버린 것이리라.
기준은 놈들의 마기가 한순간에 폭주하며, 방패에 두른 아다만트마저 단숨에 걷어 낼 수 있는 파괴력을 갖춘 괴물들을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이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신기루를 이용해 놈들 틈을 벗어나며 맹렬히 외쳤다.
“틸라, 아공간 열어! 빨리!”
변화는 한순간이었다.
기준을 포함한 파티원들이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틸라의 곁으로 집합하고, 열린 아공간 게이트에 몸을 던져 넣는다.
수십 번을 연습한 듯한 일사불란하고 빠른 움직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허공에 나타난 게이트를 보며 흥분한 늑대 인간들이 일제히 돌진해 왔으나 그땐 이미 틸라마저 아공간에 들어가며 입구를 닫은 후.
주위를 온통 뒤덮고 있던 기준의 고유 영역도 사라져 안개 숲의 모습이 되돌아온 공터에, 거인이 짓밟고 지나간 듯한 전투의 흔적과 더불어 이성을 잃은 늑대 인간들만이 남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늑대 인간들은 자신의 적을 찾아 필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실체가 있는 적이 아닌 환각뿐이었다.
아공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뻗어 버린 기준이 맨정신으로 지금의 놈들을 보았더라면 말해 주었을 것이다.
작전 [어딜 보는 겁니까?]가 끝났다고 말했나?
그건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