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9)
나 빼고 다 회귀자-239화(23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39)
Chapter 45. 먹는 자와 먹히는 자 – 3
―헤에, 초르트가 자신했던 이유가 있기는 있네.
드디어 찾아낸 거대 벌집을 앞에 두고 일행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자니 문득 루시가 말했다.
그러나 기준 일행은 당장 그 말에 무슨 뜻이냐고 캐묻지 못했다.
그래 봤자 소나무 수액이나 빨아 꿀을 만드는 꿀벌 주제에 덩치는 1미터가 넘어가고, 삼각형 머리 위에 검은 갑각질의 투구를 쓴 데다, 꽁무니로 날카롭고 길게 자라난 독침을 뽑아내 파티 전원을 겨누고 펑펑 쏘아 대는 놈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경 정보에는 이런 미친 총 쏘는 꿀벌이 나타난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비경 정보라는 게 대체 뭐예요?! 그런 거 들어오기 전에 읽을 수 있어요?”
“나중에 말해 줄 테니까 지금은 저놈들 숫자나 줄여!”
―투다다다다다.
기준은 발광도발을 수시로 사용하며 벌 떼의 어그로를 자신에게로 집중시켰으나 순순히 돌진해 오는 놈은 절반도 안 되었고 나머지는 멀리서 독침을 끊임없이 쏘아 낼 뿐이었다.
꿀벌은 침을 한 번 쏘면 내장까지 빠져나오는 탓에 죽는다는데 그럼 저놈들은 말벌…… 아니, 말벌이라도 저렇게 침을 소총처럼 연달아 날려 댈 수는 없으리라.
“아니, 그런데 이 독침…… 주우면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누가 도적 아니랄까 봐…….”
투척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은신은 기준의 방패에 맞고 튕겨 나가는 수십, 수백 개의 독침을 차례로 주워 꿀벌 놈들과 미러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사이 불꽃을 채찍에만 집중시켜 파괴력을 극대화한 틸라와 로라 등의 딜러진이 기준에게 덤벼드는 꿀벌들을 처리했고, 지혜는 하이휴먼으로 거듭난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양의 마력을 끌어모아 꿀벌-사격병들을 모조리 범위에 넣는 대마법을 시전했다.
“벌집 안 상하게 조심해서 해!”
“알고 있어요!”
그녀의 마력이 휘어잡은 일대에 끔찍한 냉기가 맺혔다.
붕붕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고 있던 꿀벌들의 날개가 강대한 마력에 저항할 틈도 없이 얼어붙고, 동력을 잃은 놈들이 차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직후 렌카가 기묘한 손동작을 차례대로 펼쳐 내자 꿀벌들이 떨어진 자리가 시커멓게 물드는가 싶더니 몸을 파르르 떨던 놈들이 하나둘 얌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혼을 잠시 격리했어요. 취약해졌으니 지금 죽이세요.”
“흡――!”
혼을 격리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당최 알 길은 없었으나, 어쨌든 그것을 최상급의 디버프로 이해한 예민과 은신이 동시에 돌격해 놈들에게 마무리 타격을 가했다.
출신이 이곳 비경인지라 최소 유니크 상위 등급에 달하는 능력을 갖춘 꿀벌 수백 마리가 고작 몇 분 만에 모조리 죽어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자화자찬을 하기엔 이 숲에 들어오기 전 기준이 보인 활약이 활약이었기에, 일행은 그저 담담히 승리를 자축하며 전리품을 빠르게 수거했다.
“오빠, 벌집 부탁해요.”
“오케이――.”
기준은 파티원들이 꿀벌들의 갑각질 투구나 영구독침생성기관 따위를 부지런히 수거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스레 감회를 느꼈다.
레타에 적응한 로라나 틸라, 렌카와는 달리 튜토리얼 시절만 해도 몬스터 사체를 제대로 루팅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지구 출신 아기들이 지금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꿀벌들의 갑각을 분리하고 내장을 해체하고 있지 않은가.
‘더러운 일은 모두 내가 한다는 각오 같은 건 필요 없었던 거지. 결국 여기에 적응하고 살아가려면 모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는 건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현대 지구에서 잘 살던 이들이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 떨어져 마음고생을 하는 꼴을 보며…… 그래, 자신 혼자 고생하더라도 최대한 그들의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가?
머지않은 언젠가 모든 고생이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그런 희생이 가능했다.
설마 그게 튜토리얼이고 레타 대륙까지 끌고 와서 더한 고생을 시킬 줄 알았으면 그렇게 화원에서 꽃 키우듯이 애지중지하지는 않았겠지.
‘그래, 쟤네 도축이 허접한 것도 전부 고생을 안 시킨 내 탓이었던 거야. 나중에 집중 교육해 줘야겠다.’
―계약자, 도축도 많이 하기만 한다고 느는 건 아냐.
기준은 루시의 말을 무시하며 꿀벌들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지켜 내던 거대 벌집으로 다가갔다.
크기만 수 미터에 달하는 그 거대한 벌집은 거인들이 사는 숲답게 수십 미터 이상 높이로 치솟은 거대한 전나무의 중턱에 매달려 있었는데, 본래라면 벌집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그것을 지키고 있어야 할 호위병들마저 기준의 발광도발에 끌려 나온 탓에 정말로 벌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안에 여왕벌이 있는 것 같아, 계약자.
“보통 게임 보면 여왕벌이 제일 세고 그러던데.”
―그야 등급은 높겠지. 이렇게 높은 격의 일벌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려면 그보다 한층 높은 격을 지니고 있어야 하거든. 하지만 그래 봤자 생산 탱크에 불과한데 무슨 전투 능력이 있겠어.
그것도 맞는 말이라 생각하며 포르티스를 타고 날아올라 벌집으로 다가가자, 그 안에서 위이잉― 하고 사이렌 같은 소리가 났다.
다른 벌들은 모조리 발광도발에 이끌려 빠져나온 가운데 끝까지 버티고 있던 여왕벌이 발악 겸 위협 삼아 내는 소리였다.
기준은 잠시 묵념하고는 손끝에 빛을 모아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 하나를 만들어 내, 벌집 어딘가를 쿡 찔렀다.
놀랍게도 한 방에 죽지 않았으므로, 송곳니 끝을 통해 광마력을 집약시켜 그것을 깔끔하게 태워 죽였다.
―레벨이 1 올라 95레벨이 되었습니다. 광마력(E) 2, 광륜(L) 1이 올랐습니다.
“진짜 레전더리 등급 개체였나 본데. 그것도 네임드급. ……이렇게 쉽게 죽여서 미안할 정도야.”
―보통 전투병을 대량으로 생산해 부리는 지휘관형 개체는 스스로의 전투력은 그 격보다 월등하게 떨어지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신기하단 말이지.
처음에 내뱉었던 말의 복선을 루시가 빠르게도 회수했다.
―초르트 저 자식은 끊임없이 레전더리 등급에 준하는 늑대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데 본신의 전투력도 굉장한 것 같거든.
루시는 지금 이 순간도 숲 전역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는 그녀의 감지권 안에서 초르트가 펜리르의 수하들과 본격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마치 한계라곤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늑대들을 만들어 내는 그의 힘 앞에 야른비드르의 정기를 받고 강하게 자라난 늑대들마저 밀리고 있다고.
만약 그게 개인의 고유스킬이라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해서 기준은 추측했다.
“아마 고유영역…… 그러니까 성유물의 힘이 아닐까 싶어.”
―보통은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절대자가 되는 게 고유영역의 힘인데, 반대로 외부로 나가 침입자를 먹어 치우는 힘? 그 늑대라면 그럴듯하네.
고소하는 루시.
―그래도 격하의 숫자를 늘리기만 하는 능력은 계약자하고는 상성이 안 좋을 텐데, 임자 만난 셈이지.
“조금만 더 분석해 줘, 루시. 그놈도 계속해서 전력을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
기준이라고 정말로 놈이 무서워서, 펜리르에게 겁을 먹어서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펜리르를 찾아가는 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함정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미는 짓이리라는 직감이 들어서, 어떻게든 그 전에 초르트를 공략할 방법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아이언 허니비의 벌집(L-)]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벌집이 그 해답이 되어 줄지 몰랐다.
“레전더리 마이너스래, 루시.”
―기왕이면 마이너스는 빠지길 원했는데.
“아직 모르는구나. 이건 2차 도축의 대상이야.”
―뭣……?!
2차 도축.
기준이 바로 방금 만들어 낸 말로, 한 번 획득한 전리품을 다시 한 번 도축 스킬로 가공할 수 있을 때 쓰기로 정했다.
이 거대한 벌집을 유니크 등급에 이른 기준의 도축 스킬로 완전히 해체해 그 구성품을 얻어 낸다면, 어쩌면 그 과정에서 스킬의 영향으로 한층 등급이 높아진 물품을 얻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꿀에 로열젤리까지……. 신수를 사냥한 이래 내가 직접 얻은 식품류 전리품 중에선 최고급일지도 모르겠는데.”
―피요오오오오!
“아, 물론 네 몫도 있지.”
벌집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급 단백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벌의 유충이다.
이 등급 높은 숲에서 좋은 것만 먹고 자라난 유충이 얼마나 몸에 좋을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기준 일행은 다른 좋은 것 놔두고 벌레를 찾아 먹을 만큼 식성이 좋지 않았기에, 벌집에서 얻어 낸 유충은 모조리 포르티스의 몫으로 돌아갔다.
―완벽한 도살이란 죽음의 과정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한 점의 낭비도 하지 않는 것. 격상의 적의 둥지를 모조리 털어 버리는 경험 끝에 도살(U) 스킬이 55레벨이 되었습니다.
―아이언 포레스트 허니(L), 아이언 포레스트 로열젤리(L+)를 얻었습니다.
“거봐.”
―계약자, 핫케이크 구워 줘. 빨리.
“그래, 일단 다식 먼저 먹고.”
아무리 루멘 파티가 먹을 것에 정신을 놓아도 자신만은 초르트를 경계하겠다는 루시의 마음가짐은 수 미터가 넘어가는 벌집에서 루시가 빠져 죽어도 모를 만큼 거대한 양의 꿀을 보며 깔끔하게 사라졌다.
기준은 수십 리터, 까딱하면 백 리터도 넘길 듯한 양의 최고급 꿀을 미리 준비해 온 용기에 솜씨 좋게 모조리 담았다.
사실 채집이 까다로운 것은 로열젤리가 가장이었으나 벌집에서 유충과 로열젤리를 순식간에 구분해 담아내는 기준의 솜씨는 수십 년 경력의 양봉업자가 보고 감탄할 수준.
물론 전부 도살 스킬 덕분이었다.
―피이이잇!
“맛있어? 다행이네.”
유충을 손가락으로 한 마리씩 튕겨 줄 때마다 포르티스가 고개를 이리저리 뻗어 날름 받아먹는 것이 무척 귀여웠다.
“당분간 포르티스 영양 간식은 문제없겠고…… 로열젤리는 다들 아침에 한 숟갈씩 먹으라고 해야겠다.”
―이제부턴 애들도 고생시킬 거라고 바로 방금 다짐했던 사람이 또…….
고생을 시키니까 그런 만큼 몸에 좋은 걸 먹여 줘야 한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기준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미 그것이 파티 리더보다는 엄마에 가까운 마인드라는 것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왕벌 사체에서는…… 따로 건질 게 있나?”
―왕관 있네.
정말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구에서 열심히 일하시던 양봉업자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꿀과 로열젤리를 채집하던 기준은 일벌들이 쓰던 투구 대신 여왕의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검은 갑각질의 왕관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레타 대륙으로 되돌아왔다.
―아니……, 계약자, 이거 아티팩트인데?
“자연적인 아티팩트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가…….”
사방 천지에 레전더리 등급의 먹을 것(송화), 전리품(송진, 목재)이 널려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천연적으로 생성된 아티팩트라니, 새삼 이 비경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깨닫는 기준.
저 망할 초르트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놈을 처리하고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비경을 탐색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이건 무슨 능력……, 어.”
[아이언 허니 크라운(Legendary)] [내구도 ― 32,000/32,000] [방어력(L) ― 80] [옵션 1 ― 마력, 매력 15 증가] [옵션 2 ― 모든 벌레 계열 몬스터에게 매력 효과 증폭] [옵션 3 ― 자신보다 격하에 해당하는 벌레를 삼백 마리까지 지배한다. 매력 스테이터스에 따라 이 숫자가 증폭되며, 한번 내린 지시에 대해서는 착용 해제해도 최대 100일간 유지된다.] [착용 제한 ― 매력 스테이터스 전설 등급 이상]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악몽이 되살아나는 철의 숲에서 모든 위협을 이겨 내고 자신의 무리를 이끌던 벌레의 지배자가 남긴 지배의 정수.]……아니, 잠깐만?
―계약자?
“벌 찾으러 가자.”
순간 이 아티팩트를 잘 활용하면 테이머 행세도 할 수 있겠다느니, 보다 효과적으로 초르트를 밀어붙일 수 있겠다느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우리가 직접 양봉하자……!”
바로 양봉업자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