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5)
나 빼고 다 회귀자-245화(24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45)
Chapter 46. 늑대 사냥 – 4
당연히 로라는 엄청 부담스러워하며 그것을 거절했다.
다른 것도 아닌 성유물, 거대한 어둠의 문명 대표쯤 되어야 하나 정도 가지고 있을 법한, 대륙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지 않은가.
더욱이 이를 온전히 얻기는 더욱 힘든 일인지라 쿠드라크 문명과 충돌할 때도 몇 번이나 보기만 했을 뿐 끝내 그 모두 산산이 조각났었다.
그런데 성유물의 빠른 무력화에 이은 기준의 정화까지, 그야말로 우연에 우연이 겹쳐 얻게 된 온전한 성유물을 기준이 다루는 것도 아니고 아직 유니크 등급에 불과한 로라에게 주겠다니!
“물론 완전히 주겠다는 건 아냐. 로라 네가 내 파티에 있을 때까지만…….”
“저는 이미 제 목숨을 준 님께 바쳤습니다. 준 님께서 버리시지 않는 한, 저의 영육은 오롯이 준 님의 손에 들려 있을 것입니다.”
“그래, 아무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니까 믿고 줄 수 있는 거야.”
기준은 씩 웃으며 손을 뻗어 로라의 손을 잡고는 그녀의 손안에 잔을 쥐여 주었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손을 잡아 주는 기준을 마주하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충동에 시달리던 로라는 끝내 한숨을 쉬며 잔을 받아들였다.
“준 님, 당신은 실로 업이 깊은 분입니다.”
“응? 뭐야, 갑자기. 나 나쁜 짓 했어?”
“관점에 따라선 나쁜 짓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미 평생을 벗어나지 않겠다 맹세했음에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시고 더욱 세게 목줄을 조르시니…… 숨이 막힐 듯 행복해 곤란합니다.”
“목줄? 행복?”
―말투는 건방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하고 조금 비슷할지도. 대충 계약자가 먼저 꼬셨으니까 나중에 덮쳐도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야.
“아닙니다!”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를 지른 로라가 잔을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잠시 그것과 교감하는 듯하던 로라가 손끝을 내밀어 피를 똑, 떨어트리자 황금색이었던 잔이 신비하게도 불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잔의 겉면에 붉은 박쥐의 문양이 음각되는 것은 덤이었다.
“놀랍습니다. 마치 저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처럼…… 아니, 저와 상성이 좋았던 것이겠지요.”
아마도 수월히 성유물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리라, 다시 기준을 향해 돌아선 로라가 잔을 한 손으로 받쳐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안에는 어느덧 붉은 핏물이 차오르고 있었는데, 기준은 그것이 당장이라도 살아 숨 쉬는 무수한 숫자의 생명으로 화할 수 있음을 눈치챘다.
“예상대로네. 축하해, 로라.”
“준 님을 보필하기에 제 능력이 너무나 부족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고민마저 준 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어째선지 그녀의 시선이 기준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목에 못 박혀 있었다.
“로라?”
“준 님, 정말 죄송하지만…… 성유물의 능력을 시험하는 걸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중도 아니고 지금 바로 덮치려고 할 줄이야.
“그게 아닙니다!”
평소에도 로라에게 피를 주고 있었으니 새삼스레 흡혈을 거부할 필요도 없겠지, 기준은 흔쾌히 그녀에게 자신의 목을 내어 주었다.
일일이 흡혈할 필요 없이 그냥 피만 조금 얻어 내면 된다는 사실은 그다음에야 알았다.
“아.”
기준의 핏방울이 잔에 똑, 떨어진 다음 순간.
로라의 피와 기준의 피가 잔 안에서 섞이고, 거기에 그녀의 혈력과 성력이 부여되자 눈부신 빛이 일었다.
날개 끝부분이 황금으로 물든 박쥐 수백 마리가 튀어나온 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오…….”
“후우, 상당한 힘을 소모하는 듯합니다. 아직은 유지 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
미약한 신음을 흘린 로라가 은근슬쩍 기준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는 것을 본 루시가 눈을 부라렸으나 기준은 날갯짓하며 주위를 맴도는 박쥐들을 관찰하느라 그런 것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제법…… 강한 힘이 느껴지는데? 아직 로라의 등급이 낮아 초르트가 다루던 늑대들처럼 강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준 님의 힘이 곁들여진 덕이겠지요. 더구나 이 성유물은 이전 주인의 기록이 지워졌다고는 하나 그가 획득해 온 다양한 업으로 인해 크게 성장한 상태입니다. 제 수준에 비해 이 종복들의 격이 높다고 생각되신다면 아마 그 덕이겠지요.”
로라의 박쥐들은 비록 체력은 낮았으나 속도는 굉장히 빨랐고, 공격력도 유니크 등급은 되었으며, 실시간으로 로라와 시야를 공유하고 그녀의 힘을 전달받아 전방위로 투사할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준의 능력을 일부나마 공유 받아 상태 이상 저항력이 높고 빛을 다룰 수 있었다.
“뭐야 이거, 초르트가 다룰 때보다 사기성이 짙은 거 아냐? 초르트가 나를 뜯어먹는다고 빛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잖아.”
―늑대 인간보다 흡혈귀가 이 성유물에 대한 적성이 높다는 얘기겠지.
수백 마리의 박쥐를 다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파티의 전력이 껑충 뛰어오른 셈인데 여기에 유틸성까지 짙다니, 괜히 성유물이 아니었다.
다만 로라가 스스로 밝혔다시피 아직 유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이 흠으로, 그 시간을 아끼기 위해 로라는 박쥐들을 다시 불러들여 잔에 담고는 그것을 제 품에 넣었다.
……정면에서 보고 있어도 그것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준 님, 혹시 신경 쓰이는 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그의 시선을 눈치챈 로라가 배시시 웃으며 수녀복인지 드레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녀의 전용 복장의 가슴팍을 열어 보이려 하자 그 앞으로 날아든 루시가 기준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계약자!
“큼, 이제 정리하고 쉬자.”
역시 흡혈귀는 위험해.
혀를 차며 아쉬워하는 로라에게서 물러난 기준은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전리품을 수거하며 정비를 마친 파티원들 틈으로 가장 시선을 크게 사로잡는 것은 다름 아닌 예민이 부리고 있는 거대 곤충이었다.
“안 죽었네? 진짜 고독이 성공한 거야?”
“이 숲의 곤충들은 원래 서로 잡아먹는 성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빠. 원래는 그 일방적인 포식이 계속되지 못하고 난입자로 인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거나 기운을 통제하지 못해 폭발해 버리는데, 이번에는 워낙 상황이 특수해서…….”
예민이 자신의 매력을 증폭시켜 이 숲에 사는 벌레들을 모조리 끌어들여 폭주시킨 결과, 무려 브리콜라카스의 수장인 초르트의 살점을 뜯어먹고도 생존한 벌레 한 마리가 다른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족히 수 미터는 되는 크기로 성장했는데― 예민이 왕관의 지배력을 집중시킨 결과 얽히고설킨 다종다양한 기운을 정제해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초르트의 마지막 일격을 받아 내며 생긴 상처도 수복되었고, 생김새도 이전과는 달라져―― 까놓고 말해 아무리 봐도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길고 커다란 뿔을 지닌 거대 풍뎅이가 탄생했다.
당연히 등급은 레전더리였다.
“이런 놈 아까는 없었잖아.”
“저 뿔 자세히 보니까 벌의 독침처럼도 보이는데요?”
“겉보기만 장수풍뎅이지, 사실은 키메라 같은 거니까. 다른 모드도 있는데 변형시켜서 보여 줄까?”
“아뇨, 누나. 저는 로봇 이외에는 변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기준도 은신의 말에 동감이었다.
어쨌든 양봉에 쓸 꿀벌들은 이미 틸라의 아공간 내부에 조성된 숲에 집을 차렸으니 앞으로는 가끔씩 신경 써 주기만 하면 되고, 그와 별개로 예민이 직접 부릴 수 있는 레전더리 등급의 강력한 수하도 생겼으니 나쁠 것은 없었다.
“전장에 늘 벌레가 득시글거린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강한 놈을 데리고 다니는 건 찬성이야.”
“이런 키메라를 만들 수 있을 때 좀 더 만들어 두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듯해요, 오빠.”
“숲에 남아나는 벌레가 있다면 말이지.”
왕관을 얻어 벌레들을 부리게 된 예민, 성유물을 얻어 박쥐들을 부리게 된 로라.
둘의 성장만으로도 야른비드르에서 본전 이상은 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놀랍게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럼 이건 긴한테 줘도 되겠지?”
“빚으로 달아 둔다면 찬성이에요.”
“사고를 치고 다니는 데 비해 너무 약하니까. 보양식 준다고 생각하면 뭐.”
“좋아, 그럼 들어가자.”
기준이 일행을 이끌고 아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긴이 그들을 보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녀석의 시선은 기준의 손에 들린 초르트의 심장에 꽂혀 있었다.
“준 님, 설마…….”
“역시 알아보는구나. 네 선물이니까 받아.”
흔쾌히 놈의 심장을 넘겨주는 기준을 보며 긴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쉽지는 않았어.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
“이미 흡혈귀 문명을 소멸시키신 분이니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 순간 긴의 감정에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라면 아마도 질투일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회한일까.
자신이 그렇게나 원하던 복수를, 이렇듯 대수롭지 않게 이뤄 내는 기준을 보며 마냥 긍정적인 감정만 느낄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기준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를 위기에서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 님. 이런 귀물을 주신 것까지 포함해 은혜는 제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파티에서 부지런히 구르기만 하면 돼.”
이제 멋대로 도망치지 말라는 얘기였다.
쓴웃음을 지으며 순간 로라를 돌아본 긴은 성유물의 주인이 되며 또 한차례 성장한 그녀의 기운을 느끼곤, 굳은 표정을 지으며 초르트의 심장을 섭취했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져 기절했다.
―죽었나?
“멋대로 죽이지 마라.”
포르르 날아가 작대기로 긴의 머리를 쿡쿡 찔러 보는 루시.
기준은 무녀들에게 부탁해 긴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긴은 초르트의 심장으로부터 얻어 낸 기운을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그 내부의 기운은 크게 진동하며 증폭되고 있었으니, 그가 깨어날 때쯤엔 레전더리 등급의 적을 상대로도 활약할 수 있게 될 터.
―얘는 늘 한 것도 없이 얻어먹기만 하네. 저번에 하티의 심장을 먹은 것도 그렇고.
“펜리르를 상대로는 활약해 주겠지.”
―그러면 펜리르의 심장도 얘한테 먹여 주려고?
“고민 중이야.”
만약 펜리르에게서 심장보다 우선시해야 할 요소가 있다면 그걸 도축해야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펜리르의 심장을 먹어 긴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면, 조금 과하다 해도 녀석에게 선행 투자를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초르트가 어째서 그렇게나 식신랑을 찾아 댔는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걸 내가 먹고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생각이 짧고 어리숙한 자이나, 내뱉은 말을 거스르는 바보는 아니니까요. 이미 준 님께 충성을 맹세한 자의 힘이 늘어난다면 좋은 일이겠죠.”
기준은 냉정하게 말하는 로라에게 긴이 깨어나면 그런 말은 자제해 달라고 부탁한 후, 예민이 만들어 낸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앞에 모여 떠들고 있는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초르트를 처리했으니 이젠 펜리르와 싸워야겠지만…… 다들 고생했으니까, 일단 쉬자. 팬케이크를 몇 장이나 먹을지 주문 받는다.”
“열 장이요!”
―계약자, 나는 열한 장!
야른비드르의 벌들이 만들어 낸 아이언 허니와 팬케이크의 조화는 죽은 초르트도 벌떡 일어날 만큼 혁명적인 맛이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초르트의 능력을 모두 소화한 긴이 눈을 떴을 때.
기준은 비로소 본격적인 비경 탐색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