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6)
나 빼고 다 회귀자-246화(24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46)
Chapter 47. 종말의 그림자 – 1
영원할 줄 알았던 증오는 우습게도 헛돌던 끝에 허무하게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부모를 잃고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은 아직까지도 어리광을 부리는 꼬맹이에 불과했음을 긴은 이 거대한 감옥에 내동댕이쳐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정말 스스로 복수를 달성할 수 있을 줄 알았나? 정말 목숨을 내던질 각오였다면 어떤 위기가 찾아오든 그 과업이 나만의 것으로 남도록 지켜 냈어야지. 하지만 난 어떻게 했지? 준 님을 발견하자마자 주인과 재회한 개 새끼처럼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잖아. 이 숲에 들어오고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서 땅바닥이나 긁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거야.’
스스로의 한심함에 대해 논하자면 몇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필생의 대적이라 여겼던 초르트와의 결전을, 정작 자신은 쏙 빼놓고 기준과 그 파티원들이 치르게 된 연유를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가 너무 머저리처럼 느껴져 헛된 상념을 되풀이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초르트가 이 숲에 잠든 무엇인가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긴도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명백한 목적을 띠고 움직이는 집단에는 빈틈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것을 공략해 초르트 휘하의 늑대 인간들을 제법 잡아낼 수 있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숲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함정이 숨겨져 있는지, 자신이라는 변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조금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충동에 휘둘려 날뛰다 한심하게도 사지로 직접 몸을 던졌으니, 전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커녕 휘둘리고 또 휘둘려, 초르트보다도 위협적인 비경의 주인에게 눈도장을 찍혀, 어쩔 도리 없이 기준마저 위험에 빠트릴 뻔하지 않았는가.
“아까부터 왜 그러냐? 할 일 없으면 여기 와서 일이나 하냐.”
캐트시의 특징에 대해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반말로 해석하기 쉬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긴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하나같이 통이 매우 넓은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젊고 아리따운 여성들의 틈에 파묻혀 있는 단화 신은 고양이, 나비냐가 있었다.
무녀들에게 애교나 피우며 고양이 흉내를 내는 줄 알았으나 녀석은 손바닥 위에 올라올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상을 칼로 세심하게 깎아 내고 있었다.
“그건……?”
“주인님이 벌집에서 얻어 낸 밀랍으로 만든 인형이냐. 강한 마력이 깃들어 있어서 무녀들이 술법에 다루는 데 제격이라고 했냐.”
“우리 나비냐는 똑똑하기도 하지.”
“어쩜 손재주도 좋아, 주인님…… 아니, 준 님과 똑 닮은 인형이네!”
술법에는 재주가 없는 긴도 지금 나비냐와 무녀들이 정성껏 만들고 있는 밀랍인형에 담긴 심상치 않은 주력(呪力)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 기준이 200명의 무녀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녀들이 틸라의 아공간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으나, 독특하고도 뛰어난 능력을 지닌 200명의 부하가 오직 기준만을 섬긴다고 생각해 보면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혼자서 천지 분간도 못하고 날뛰고 다니는 동안에도 준 님은 차근차근 힘을 키워 오셨구나. 물론 당시에도 나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셨지만…… 이젠 정말 바라보기도 힘들 만큼 멀고 높은 곳에, 이르신 거야.’
자신이 펜리르에게 쫓기고 있지 않는 상태였더라면 과연 초르트와의 일전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숫자가 부족한 것이라면 여기 있는 무녀들이 나서면 될 일이고, 그중에서도 강한 축에 드는 무녀들은 자신과 일대일로 붙어도 전혀 밀릴 것 같지 않은데?
물론 백여 명에 가까운 무녀들이 지혜의 마법진을 구축하고, 마력을 보충해 준다며 결계 안팎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에는 그들과 같은 인원이 남아 있지 않은가.
‘거대 문명의 수장을 상대하면서도 준 님은 전력을 내고 있지 않은 거야. 펜리르를 생각해 뒷일을 안배할 여유가 있는 거야…….’
힘의 규모가 다르고 준비성이 다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안도감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질투, 허무감, 그리고 옅은 절망감이었다.
“너는…….”
그러다 문득 무녀들 틈바구니에서 밀랍인형을 조각하며 냐냐 거리고 있는 캐트시에게 다시 시선이 갔다.
“너는 괜찮은 거야? 밖의 전투에 참여도 못 하고 있는데…….”
“냐아, 왜 그렇게 꽁해 있나 했더니 주인님과의 힘의 차이를 느껴서 그런 거였냐?”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순순히 대답할 생각은 않고 그의 속내를 짚어 내는 나비냐를 보며 긴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쥐어박고 싶느냐면, 그야 나비냐의 적나라한 지적이 그의 여린 가슴을 무자비하게 쥐어뜯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쓰기엔 주인님과 차이가 너무 나냐. 그리고 난 주인님이 날 필요로 할 때만 나서면 되냐. 여태까지 내가 해야 되는 걸 못 한 적은 없냐.”
나비냐는 잠입과 수색, 정탐에 특화된 능력자.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있고, 나서야 하는 장소에선 언제나 확실하게 활약해 왔다.
그러니 이런 보스전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걸 두고 긴처럼 땅을 팔 일은 없었던 것이다.
작은 덩치, 장난스러운 성격과 비교해 확고한 주관과 의지에 긴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귀엽지!”
“긴이라고 했죠? 속상한 건 알겠지만 거기서 그러고 있어도 마음만 축 처질 뿐이니까 와서 같이 인형이라도 만들어요.”
“냐냣!”
나비냐의 말에 동의하듯 한마디씩 끼얹으며 녀석을 쓰다듬고 껴안는 무녀들 틈바구니에서 누군가가 그를 신경 써 주듯 한마디 던졌다.
“나는…… 아니야. 전면에 나서서 싸워야만 해, 그래야만 했어.”
“그, 그럼 지금부터라도 눈치랑 실력을 좀 기르냐!”
무녀들의 가슴에 파묻혀 허우적대던 나비냐가 정색하며 내뱉는 말에 긴은 가슴깊이 공감했다.
언제나 정확한 사리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강적과의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최소한 그 두 가지를 갖추지 않고서야 매번 오늘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자신의 복수조차 자신이 해내지 못하고 한심하게 타인에게 맡기는 일이.
‘복수라, 그것도 오늘로 끝인가. 내가 관여하지 못하는 곳에서 멋대로…… 끝나는 거야.’
긴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입을 열어 말했다.
“지금부터라, 이미 모두 끝났는데.”
“빚쟁이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대개 빚은 이제부터 시작이냐.”
“어쩜 우리 나비냐가 현자였어!”
“과거의 한심한 자신과는 작별하고 이제부턴 빚쟁이로서 하루하루 빚을 갚아 나가는 새로운 삶을 사는 거냐.”
그래, 긴에게 남은 것은 나비냐의 말마따나 기준에게 진 빚뿐이다.
끝내고 싶어도 이제 그가 멋대로 끝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준 님이 이것까지 의도하고 나의 복수를 망쳐 놓으신 거라면, 정말이지 존경할 수밖에 없겠네.’
긴은 쓴웃음을 짓고는 일어나, 무녀들과 캐트시를 도와 밀랍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캐트시의 말대로 지금은 준 님께 빚을 갚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 외의 자잘한 감정은…… 분명 자잘하지 않은 감정도 섞여 있지만, 최우선을 행하기 위해서 지금은 잊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끝나고 기준이 가져온 초르트의 심장을 끝내 받아 든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빚이 늘어나는 것은 달갑지 않지만, 빚을 갚기 위해선 우선 그가 강해져야 했으니까.
초르트의 심장을 소화한 끝에 손에 쥐게 된 힘은 분명 매우 거대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 * *
―요리에 영혼과 빛을 담아내는 요리사가 전설의 비경에서 채취한 것들로만 만들어 낸 과자를 먹었습니다. 이 과자가 소화되기까지 당신의 육신과 영혼은 숲의 비호를 받습니다. 모든 능력이 40% 성장하며, 격상의 적을 상대로도 전혀 위축되지 않습니다.
꿀과 꽃가루를 뭉쳐 만든 과자, 다식이라고 부르는 과자를 기준에게서 받아먹은 긴은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초르트의 심장을 먹고 크게 강화된 참인데 거기서 모든 능력이 40% 상승하기까지 한다고?
“준 님, 이 증가 폭은 대체…….”
“대단하지? 슬슬 왼쪽 어깨에 특급 요리사 스티커라도 붙일까 생각 중이야.”
농담을 던진 기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자극하는 말을 던졌다.
“거기에 로라의 버프까지 받으면 펜리르한테도 이가 박히겠지?”
초르트에게 정당한 복수를 행하려던 긴, 그러나 초르트와의 일전이 벌어지는 사이 그가 이곳 아공간에 발이 묶여 있어야만 했던 것은 모두 펜리르의 방해 때문이다.
복수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허탈해하는 긴을 일시적으로나마 의욕이 나게 만들고자 기준은 굳이 펜리르를 들먹인 것이다.
“무…… 물론입니다!”
“좋아, 답답하게 갇혀 있느라 고생했어. 이제 같이 나가서 싸우자.”
긴에게는 펜리르의 어그로가 강하게 끌리고 있으며, 펜리르를 귀찮게 하던 초르트가 사라진 이상 그를 발견하기만 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그를 노려 올 터였다.
초르트와의 더블 부킹을 피하기 위해 여태까지는 그를 숨겨 두었지만 기실 기준 입장에서도 펜리르가 적극적으로 나와 주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반드시 준 님께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그래, 펜리르의 심장을 어떻게 할지는 지금부터의 네 공헌도를 보고 결정하는 걸로 하자.”
기준이 던진 말에 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기준은 펜리르의 심장을 얻을 수 있다면 긴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긴이 기준을 보모처럼 여기게 되어도 곤란했다.
기준도 레타에 떨어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워낙 많은 일을 겪은 탓에 이젠 이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에 주목한다.
기준이 동료들과 함께 어둠의 문명을 무너트리는 업적을 세웠다고 하면, 그 과정에서 기준이 어떤 식으로 행동했느냐가 그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의 행동이 이 세상에 끼친 영향에 따라 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단한 물건을 얻어도, 그것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그가 정당한 활약을 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착용하기 위해선 드래곤 슬레이어 칭호를 필요로 하거나, 흡혈귀 사냥꾼이라는 칭호를 요구하는 아티팩트가 있는 것처럼.
‘그것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지금 긴은 조금 위험한 상태인 셈이지.’
하티의 심장부터가 긴의 능력으로 얻어 낸 것이 아닌데, 거기에 초르트의 심장까지 섭취한 상태.
물론 과거 오랜 세월 늑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연구에 시달리며 긴 본인부터가 특수한 업을 짊어지고 있던 탓에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체한 것처럼 더부룩한 상황이겠지. 당장 능력을 증폭시켜 주기 위해 일단 먹이고 봤지만, 초르트의 힘을 제대로 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빡세게 굴리는 수밖에.’
본인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겠지, 긴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무장을 점검했다.
“그럼…… 틸라?”
“오케이.”
모든 이가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기준은 틸라에게 부탁해 아공간의 출구를 열었다.
본디 초르트와의 격전의 여파로 주위 환경이 모조리 날아간 공터,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굵은 적색의 기둥이었다.
“아니, 기둥이 아니었네.”
너무 거대해서 한눈에 전경이 들어오지 않았을 뿐.
고개를 들자 기둥을 뒤덮은 거대한 천막과, 그 너머로 한층 비대한 기둥…… 그래, 거인의 몸통이 보였다.
기둥이 아니라 거인의 다리였던 것이다.
그런 다리가 한둘이 아니라 수십 개, 이 둘레를 빙 둘러싸고 서 있으니 모르는 이가 보거든 거대한 신전 안에 들어온 것이라 착각할 지경.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저 너머, 이 기둥을 다리로 삼은 거인들의 살의 섞인 시선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느껴지니 말이다.
초대받지 않은 난입자가 퇴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철의 숲은 손님들에게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