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9)
나 빼고 다 회귀자-249화(24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49)
Chapter 47. 종말의 그림자 – 4
지구에 있을 때의 기준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특별해지는 것을 포기하고 남들과 자신을 맞추고자 했다.
타고난 돌출된 생각은 쉽게 꺾을 수 없었으므로, 그가 가장 먼저 교정한 것은 바로 자신의 행동 방식과 생활 패턴이었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보편적인 규격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제때에 일어나며 제때에 자고, 제때에 공부하고 제때에 운동하며 제때에 제대로 먹는다.
철저히 조사해 가장 건강하고 보편적인 시간표를 작성하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며 적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타고난 정신력으로 버텨 냈고, 이윽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기준은 자신이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며 서글픈 안도를 품었다.
누구나가 완벽하게 짜인 시간표를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을, 단순히 정신력만으로 초 단위로 구분되는 스케줄을 지킬 수는 없다는 것을 당시의 그는 몰랐다.
특별하고자 했으나 모난 돌이 정을 맞듯 그렇게 무수히 상처를 입어 움츠러든 그는― 스스로에게 평범해야만 한다고 암시를 걸던 그는, 자신의 특별함을 있는 힘껏 외면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 결과 형성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보편적인 생활 수칙’은 그의 반평생을 지배하며 습관을 넘어 절대적인 규칙으로 승화했고.
초인이라 불러 마땅한 정신력과 의지로 레타 대륙에 넘어오는 순간까지 그것을 관철한 기준은 자신이 애써 묻은 다른 ‘특별함’들 대신 유일하게 강화된 정신력에 바탕을 둔 고유 스킬,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도 진짜 또라이 같네.’
어째선지 눈앞에 펼쳐지는 지구의 광경, 그 속에서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철저한 생활 수칙에 맞춰 움직이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준은 혀를 찼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그는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던 것이리라.
평범해야 한다는 데 집착해 자신의 이상성을 무시했으니, 무엇이 평범하고 무엇이 특별한지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그 집착 덕분에 특별한 고유 스킬을 얻게 되고, 그 덕에 비체와 만나고, 그 덕에 다시금 재능을 되살려 성장하고 있으니 이제 와 과거의 미련했던 자신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운명이란 단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신의 뒷걸음질로 훌륭하게도 쥐를 잡아냈으니 어찌 불만을 토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걸 보고 있을 필요는 없는데.’
후회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전의 개쩌는 매드 무비 같은 것도 아니니 이걸 이렇게 보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새벽까지 잠을 설치며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헛바람이 들어 여자를 만나러 다녀도 모자랄 청춘을,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하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일찍 자며 허비하는…….
그런 재미없는 짓만 반복하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줄 이유가, 잠깐?
‘생전의 개쩌는 매드 무비? 뭐야, 나 설마 죽었나?’
마지막 순간 에그테르가 사력을 다해 빚어낸 멸망…… 종말의 저주를 맞고?
그것을 떠올린 순간 기준은 전신에 한기가 감도는 기분이었다.
여태까지도 어둠의 문명을 대표하는 강자들을 상대했을 땐 마지막 순간마다 어김없이 놈들이 저주를 뿜어내곤 했다.
마치 어둠의 문명을 관장하는 신에게 주입이라도 당한 것처럼, 하나같이 기준을 어둠으로 영락시키고자 짙은 원한이 담긴 저주를 남겼으나― 그 모두가 기준의 고유 스킬에 막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비체는 일찍이 기준의 고유 스킬이 지닌 진정한 힘을 깨달았을 터, 아마도 그때부터 그가 언제고 빛의 용사가 되리라 생각하며 그것에 대비한 훈련을 시켰으리라.
‘하지만 그것조차 통하지 않았다고? 정말?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아직 그에게 남은 수단이 얼마나 많은데.
강건한 육신, 전신을 신철로 만드는 아다만트 스킬에 그의 체내를 끊임없이 휘돌며 영력과 광 마력으로 말미암아 능히 구세를 가능케 하는 살루타리스, 두 개의 방패와 갑옷, 타격을 회피하게 만들어 주는 부츠까지 있는데.
그 모두를 무시하고 곧바로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키나 하단 말인가?
아니, 불가능하다.
이것이 그의 죽음일 리가 없었다.
뭣보다 정말 이것이 주마등이라면 이렇게 무의미하게 이어질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환각이겠네. 내 고유 스킬은 환각까지도 막아 주는데, 그걸 뚫고 들어온 시점에서 범상치 않긴 하지만.’
하지만 마음가짐을 달리 먹고 침착함을 되찾자 그의 정신도 바로 섰고, 순환을 멈추었던 영력과 마력은 다시금 가속도를 붙여 체내를 휘돌았으며, 에너지를 공급받은 아다만트가 그의 육신을 넘어 영혼까지도 신의 영역에 이르도록 이끌어 다시금 저항력을 더했다.
그러자 자연히 환각에 대한 저항력도 늘어나…… 주마등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급가속했다.
빨라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구 역사상 가장 바른 청년인 기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의 평균을 내어 자신이 들을 수 있는 모든 강의를 듣고, 다른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동아리에 들어가고, 평범을 위장해 그렇게 기행을 이어 갔다.
군대에 들어가서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가 되었다.
튀지 않으려 애쓰고 정해진 생활 규칙에 따르는 그의 의지는 군대와 아주 잘 맞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하나 그의 수칙과 어긋나는 것이 있었으니 야간 근무였는데……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는 그 위기의 연속을 기준이 어떻게 이겨 냈는지는, 굳이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
자연히 영상을 빨리 감기 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렇게 전역하고, 복학하고, 떠넘겨진 동아리 회장직을 어쩔 수 없이 수행하고, 쓸데없는 여자의 접근, 선배들의 술주정, 운동권에 끌어들이려는 머저리들,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교수들의 폭거를 이겨 내며 어찌어찌 평범하게― 적어도 그의 인식으로는 평범한 척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
‘이때쯤 레타에 납치됐던 것 같은데. 이제 슬슬 환각이 끝나려나?’
서서히 정신이 또렷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을 단순한 주마등이라 여겨 넋을 놓고 있었더라면 여전히 의식이 고등학생 시절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환각이 곧 끝난다는 생각에 어딘가 안도하고 있던 그는 다음 순간 눈을 부릅떴다.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한없이 어두운 하늘의 틈새로 넘실거리는 커튼…… 아니, 그것은 막대한 에너지를 품은 초월적 존재의 손과 발, 혹은 수염이나 머리카락, 어쩌면 눈이나 입, 귀였다.
격이 낮은 이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의식을 잃거나 심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문자 그대로 멸망을 형상화한 듯한 존재.
‘뭐야, 이런 기억은 없었어. 말도 안 되잖아……!’
기준 또한 그것을 보았다.
주위 모든 이가 쓰러져 경련하거나 몸이 터져 죽는 가운데 기준은 어찌 그것을 버텨 내고 있었다.
멸망의 강림으로 모든 건물이 부식되어 무너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잠들어 있던 화산이 폭발하며, 찢겨 나간 하늘에서 내리치는 뇌우로 대지가 불타오르는 그때.
기준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그를 제외하고도 100만 명의 인간이 그 순간 지구에서 사라졌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을 주마등처럼 보고 있는 지금의 기준은 사라지지 않고 멸망해 가는 세계에 그대로 의식을 남겨 두고 있었다.
―……!
그저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 지구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지구가 멸망하고 있었다.
설마 이게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란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만약 그렇다면 과거의 기준이 사라진 지금까지 그의 의식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스스로 관측하지 못했던 광경을 되새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게 그의 기억 속 광경이 아니라면?
정말로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그의 뇌에 영사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구는 이미 멸망했고, 살아남은 백만 한 명의 인간만이 레타로 소환된 것이라면?
―……?!
그러나 다음 순간.
지구의 종말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놀랍게도 지금의 기준과 시선을 마주쳤다.
당연하게도 놈의 드높은 격, 영력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사악하고 거대한 어떤 힘이 기준을 짜부라트리려고 하는 그때에 기준은 안도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면, 저 존재와 지금의 내가 눈을 마주치는 일은 있을 수 없지.’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에그테르가 빚어낸 종말의 저주의 실체이리라.
라그나로크를 노래하는 그 빌어먹을 목동이 제 버릇을 못 버리고 기준의 세상이 멸망하는 환시를 보여 주며, 덤으로 그의 영육을 끝장내려 하는 것이리라!
“내가 죽어 줄 것 같아?”
기준은 어느덧 자신이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음을 깨달았다.
전신에 흑갑을 두르고 있었고, 양손에는 각기 달과 태양을 형상화한 방패를 쥔 채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외신을 막으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신을 휘도는 고고한 영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차원을 베어 내고 우주를 유영하는 괴물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설 수 있게끔 그의 신체의 격을 강제로 높여 주는 신철로 전신이 코팅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덤벼 봐, 이 문어대가리 새끼야!”
그의 의지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빛이다.
루시로부터 받아 그가 개화시킨 빛.
그의 심지에서 비롯되어 외부로 하염없이 뻗어 가는 환한 빛!
―초월자에 저항하며 사그라지지 않고 피어나는 빛. 신마저도 초월하는 당신의 의지는 그 기백과 격을 빛에 오롯이 담아내 모든 적을 꿰뚫습니다. 유니크 등급의 발광 도발 스킬이 한계를 초월하여 레전더리 등급의 광성의 여명 스킬로 진화합니다!
―눈부시고 순수한 빛이 초월 격의 존재를 훌륭히 도발하며 동시에 크게 위축시킵니다. 광성의 여명(L) 스킬이 5레벨이 되었습니다.
환각 속에서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를 기준은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모든 게 거짓일지라도 이것만은 진실이었다.
스스로의 성장을 강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에그테르는 이겨 낼 수 없는 종말 앞에 그가 무릎 꿇기를 바랐을지 모르겠으나―― 과거를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기준은 새삼 물러나거나 숨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니 오히려 에그테르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 ……?! ……!!
그의 적은, 홀로 세계를 무너트리고 하늘을 가득 메워 존재보다는 현상이라 불러 마땅한 것을 두고 적이라 칭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기준을 똑바로 인식하고 경악하며 공포했다.
어쩌면 기준이 지닌 실낱같이 작은 가능성이 언제고 몸집을 불려 자신을 끝장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처럼.
그가 더 자라나기 전에 끝장내려는 듯, 지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듯, 그것이 지상을 덮쳤다.
온갖 부정과 어둠, 멸망이 담긴 육신이 기준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기준은 흔들리지 않고 끊임없이 빛을 발했다.
굳건히 치켜든 두 개의 방패로 막아 낼 수 없을 터인 적을 막아 내며 그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내가, 기준이다!”
솔직히 말하면 좀 쪽팔렸지만.
그 순간 거짓된 세상이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똑딱, 체내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생각하는 다음 순간―― 그의 눈앞으로 재차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화적인 업적 달성!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가 한계를 초월해 에픽 등급으로 성장합니다! 당신의 체내 시계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당신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합니다. 신을 초월한 의지는 언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있어 마땅한 자리로 올려놓을 것입니다. 광륜(L)이 10, 매력(E)이 5 올랐습니다.
―업적 달성으로 인해 에픽 등급 칭호 [종말에 대적하는 자]를 얻었습니다. 칭호 효과로 인해 신성 능력이 30% 증가하며, 당신이 이끄는 집단에 당신의 스킬 효과를 일시적으로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한계를 맞이하지 않은 모든 스테이터스가 5 성장하며, 매력(E)이 추가로 5 올랐습니다.
에그테르 이 새끼 이거 하프 들고 나타날 때부터 느낌이 좋더라니 역시 보물 고블린이었구나.
성유물 하나를 펜리르에게 잽싸게 바친 건 용서하기 힘들지만, 놈이 마지막에 펼친 저주로 스킬 두 개가 진화하고 무려 에픽 등급 칭호를 얻기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솔직히 성유물보다도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둔 셈.
특히 칭호를 얻으며 성장한 스탯은, 다른 칭호의 효과처럼 기존의 스테이터스에 장비 효과처럼 추가되는 스탯이 아니라 아예 스테이터스 자체를 성장시켜 주는 효과였다.
당장 느껴지는 효과는 더 미진해 보여도 그의 장기적인 성장을 놓고 보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오빠! 오빠아……!”
저주를 이겨 내고 얻은 보상을 점검하던 기준은 귓가에 들려오는 애달픈 울음소리에 비로소 자신이 멸망해 가는 세계가 아닌 야른비드르 숲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덧 예민이 그의 품에 매달려 오열하고 있었다.
“죽으면 안 돼요. 오빠, 제가 더 잘할게요, 이대로 죽으면 안 돼……!”
“민아.”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민아? 나 괜찮은데…….”
그러나 예민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파티원들도 그에게 달려들려고 하다가 그가 정신을 차렸음을 깨닫고 머쓱해하며 멈추는 모습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길게 느껴졌던 환각 속 시간 흐름과 달리 실제로 그가 멈춰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듯했다.
“오빠, 뭐 하고 있어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 지혜가 양팔을 벌려 허공을 껴안는 제스처를 취했다.
예민을 안아 주라고? 하지만 연인 관계도 아닌데 그런…….
그러나 기준이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여도 지혜는 눈을 부라리며 재차 제스처를 강조해 보였다.
망설이던 기준은 틸라마저 부드럽게 미소 짓곤 지혜의 말대로 하라며 손짓하자, 속으로만 한 차례 한숨을 내쉰 후에 곧장 예민을 껴안아 주었다.
“아?!”
순간 몸이 굳어 버린 예민은 울음마저 그치고 천천히 그를 올려다보고는, 곧 자신도 양팔을 벌려 그를 깊숙이 껴안고는 기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멀쩡하다는 것을 알고도 울음을 그치지 못해 품속에서 훌쩍이는 소리를 내는 예민을 보며.
여태껏 그녀가 발하던 굉장히 간단하고 분명한 신호를 이를 악물고 무시해 왔던 기준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민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