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3)
나 빼고 다 회귀자-253화(253/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53)
Chapter 48. 어제와 다른 내일 – 3
비체를 위해 무슨 수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은 떠올리지 못해 그라티아 왕국이 됐든, 마탑이 됐든, 제국이 됐든 접촉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비경을 뛰쳐나온 직후.
“준 님! 긴급한 연락이 하나…….”
마치 그가 연락이 닿는 곳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요정 상인 비브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그녀의 뒤를 점하듯 또 다른 요정 상인이 나타났다.
“언니?! 직접 오는 건 규정 위반…… 아아, 진짜! 나중에 벌을 받아도 저는 안 도와드려요!”
“비브? ……팅커벨!”
“팅커벨이 아니라 나방, 그게 아니얏!”
기준의 외침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내던 요정 상인이 자신이 헷갈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욱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용사님도 아닌 당신이 저를 그 애칭으로 부르다니! 저를 팅커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용사님뿐이세요!”
“뭘 모르시는 소리를, 지금 준 님께선 제국이 인정하는 빛의 용사라구요.”
비브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하는 말에 팅커벨이 이를 갈며 반박했다.
“다 속고 있는 게 분명해. 용사님을 기묘한 수단으로 세뇌한 것처럼 많은 이들의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거야……!”
“만약 그런 거면 더 대단한 거 아냐?”
기준이 무심코 태클을 걸자 확실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팅커벨이 입을 꾹 다물었다.
“후우…… 아니, 지금은 이 남자의 능력이나 캐내고 있을 때가 아냐.”
그러더니 곧 제 뺨을 짝짝 두드리며 정신을 되찾고, 진지한 표정으로 기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용사님께서 위험한 상황에 처해 계세요.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러 왔으면서 여태까지 준 님을 그렇게 욕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팅커벨이 낯짝 위로 철 가면을 몇 개 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며 손을 뻗는 비브.
기준도 여전히 팅커벨의 인성이 더럽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분하게도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비체와 관련된 소식이야말로 기준이 지금 가장 애타게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비체가 많이 위험해?”
“어쩌면요,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하세요.”
“그러면 내가 그곳으로…….”
“자격이 안 됩니다. 제가 그곳을 드나들 수 있는 것도 페널티 절반, 요정 상인으로서의 특권 절반이 있어 가능한 것이니까요.”
자격이라, 어쩌면 헬이 하려던 말도 그런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비체가 위험한 상황에 지금 자격 운운하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지 않은가.
기준의 눈빛은 살벌해졌으나 반대로 그를 바라보는 팅커벨의 눈빛은 제법 상냥해졌다.
그를 좋아하진 않아도 비체를 걱정하는 그 마음만은 기꺼운 것이리라.
“제가 알고 있는 당신의 능력은 그리 대단치 않지만 그중에 딱 하나, 저는 물론이고 누구나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용사님을 도와주세요.”
“부탁을 하러 와 놓고, 그렇게 꼭 준 님을 디스하는 말을 넣어야만 하는 건가요?”
자신의 계약자인 기준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 비브가 툴툴거리자 기준이 녀석을 달래며 말했다.
“아니, 나한테 되도 않게 친한 척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아. 오히려 이쪽이 요정의 정석 아닐까?”
“안 돼, 언니가 요정 상인의 명예를 모조리 깎아 먹고 있어…….”
덤으로 기준은 팅커벨이 그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 것인지도 알아차렸다.
이 빌어먹을 나방이 인정하는 기준의 능력이라곤 하나뿐이니까.
“요리 말이지?”
“맞아요. 정말로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주기적으로 보내 주는 요리가 그분이 전장에서 크게 활약하게끔 도와줬거든요.”
기준은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처음엔 막연히 빛의 요리를 섭취해 비체가 지닌 어둠을 억누르고, 다른 어둠에 대항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덕도 크겠지만 그 외에 보다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기준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통해 비체가 자신의 고유 스킬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둠의 진영의 괴물들보다도 끔찍한, 존재만으로 공포와 오염을 불러일으키는 외신의 권속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힘,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 말이다.
‘에그테르의 종말의 저주를 겪으면서 보다 확실히 깨닫게 됐어. 실제로 지구에 저런 괴물들이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 대륙에 종말이 찾아온다면 그 형태는 분명 외신들의 침공이겠지. 그리고 그렇다면 내 고유 스킬이 가장 크게 활약할 수 있는 것도 확실하고…….’
맙소사, 종말이라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에 닥쳐오는 위기를 막아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는데, 어쩌다 이런 일에까지 엮이게 되었단 말인가.
“정말 요리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공간 능력을 다루는 저희 요정 상인들조차 차원의 틈에 출입하려면 엄격한 심사 끝에 허가를 받아야만 하니까요. 아무리 당신의 성장이 빨라도 이 대륙에 대한 공헌도가 받쳐 주질 못해요.”
“공헌도라면 준 님도 어마어마한 기세로 쌓긴 하셨는데…….”
비브가 옆에서 계산해 보더니 팅커벨에게 구체적인 수치를 속삭였다.
그러자 팅커벨이 순간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애써 여유로운 체하며 말했다.
“흥,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로 쌓아 나간다고 해도 앞으로 1~2년은 더 굴러야 해요. 어디 쉽게 공헌도를 쌓을 수 있는 그랜드 퀘스트 같은 게 여기저기 널려 있는 줄 알아요?”
“그래, 어쨌든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거지. 좋아, 알겠다고.”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헬이 했던 이야기와 공통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짜증 났다.
그들에게 딱히 악의가 있어서 기준을 속이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이 그저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납득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그랬다.
‘진정해, 기준. 지금 내게는 비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있잖아.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자.’
사춘기 때에나 느껴 본 무력감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기준은 바로 그들을 이끌고 틸라의 아공간 게이트를 열었다.
이 일대에서 계속 어슬렁거리고 있어도 좋은 꼴을 못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기준 일행에게야 이제 브리콜라카스 따윈 어찌 되든 좋았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조금 전에 그들 문명의 수장인 초르트가 비경에 들어갔었으니, 그는 나오지 않는데 기준 일행만 빠져나오면 아직까지 이 근처에 있을 늑대 인간들이 그것을 수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초르트는 물론이고 정예 병력까지 일소당한 지금 문명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도 수상하지만.’
실질적인 붕괴 상태라 봐야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수두룩하게 남아 있을 늑대 인간 놈들과 직접 싸우는 건 상상 이상으로 귀찮고 따분한 일일 터이다.
어차피 비경에 입장할 수 있는 것은 루멘 파티뿐이고, 설혹 결계가 헐거워진 틈을 타 다른 이가 비경에 진입한다 한들 딱히 큰 소득을 얻을 수는 없을 터.
“이건 또 뭐죠? 개인이 아공간을 보유하고 있다니, 대체 어떤 신화 속 생물을 사냥해야 이런 일이 가능…… 네? 외신의 권속과 뿌리가 같은 지렁이? 그건 또 대체.”
틸라의 아공간을 처음 겪으며 황망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던 팅커벨은 아공간 안에 대기하고 있던 200명의 무녀를 마주하고는 아예 말을 잃었다.
“어머나, 준 님! 마침 의식에 쓰일 인형이 완성된 참인데…….”
“펜리르와의 일전은 조금 미뤄졌어. 대량으로 요리를 할 생각인데 도와줄 수 있을까?”
“그야 물론이죠!”
오우카가 진두지휘하는 200명의 무녀들이 기준의 요리 보조로 달라붙었다.
비체가 지금 쉴 시간도 없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가정하에, 전투식량 대신으로 먹기 좋은 것은 먹는 방법이 간단하고 하나하나가 품은 열량이 높은 것…….
그렇다, 바로 이번 비경에서 크게 활약했던 송화 다식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기준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물론 다식도 좋은 간식이지만 격한 전투를 치르고 있을 그녀에겐 이것보다 더욱 맛있고, 달콤한 요리를 전해 주고 싶었다.
“해서 다식이 아닌 다식과를 만들겠습니다.”
“오빠, 혹시 약과 말하는 건가요?”
“정답.”
다식과, 유밀과, 가장 쉽게는 약과.
밀가루 반죽에 꿀과 기름을 섞어 반죽해 말린 것을 틀에 찍어 모양을 잡고 다시 기름에 튀겨 내, 거기에 또다시 꿀 혹은 조청을 발라 완성하는…… 그야말로 칼로리 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과자다.
지금이야 약과가 제사상에 오르는 쓸데없이 달기만 하고 기름 냄새 나는 공장제 과자로 유명하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약과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약과로 만드는 것도 성의가 없어 보여 기준은 여기에 약간의 변주를 주기로 했으니, 바로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반죽을 밀고 접어 만드는 모약과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튀르키예의 유명한 디저트 가운데 바클라바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모약과와 만드는 방법이 흡사하며 모양새도 비슷하고, 뭣보다 맛 또한 끔찍하리만치 달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한 조각 집어 먹으면 케이크 한 조각이랑 비슷한 수준일걸.”
“그래 보여요, 오빠…….”
모약과를 만들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기름 만들기다.
모처럼 요정 상인이 곁에 있으니 기름 정도는 사서 써도 되겠지만 비체를 생각하는 기준의 마음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더구나 모처럼 레전더리 이상 가는 등급의 기름을 만들 재료를 바로 얼마 전에 수확했으니―― 바로 야른비드르의 잣나무에서 얻어 낸 잣이었다!
그냥 먹기도 비싼 잣을 잣기름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참기름 대신 써서 약과를 튀기겠다니 미치광이의 발상이었으나 기준은 강행했다.
본디 잣기름은 산패가 참기름보다도 빨라 도저히 튀김에는 써먹을 수가 없지만, 야른비드르에서 얻어 낸 잣을 냉압착으로 추출해 만든 기름은 200도 정도는 끄떡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걸 써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 조금 질투 나려고 하는데.”
“저희가 초르트와 싸울 땐 잣에서 기름을 뽑아낼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지금도 딱히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
“한두 시간 빨리 만든다고 극적으로 전황이 개선되는 상황도 아닌 모양이니까요…… 역시 질투는 나지만요.”
틸라와 로라는 은근히 투덜거리면서도 무녀들과 함께 기준의 부탁에 따라 잣기름을 만들었다.
기준은 그사이 밀가루 반죽에 아이언 허니를 첨가하고, 잣기름이 완성되는 대로 그것을 섞어 모약과 반죽을 만들어 내곤 그것을 부지런히 밀고 접어 가며 반죽을 겹겹이 쌓아 갔다.
완성된 반죽을 적당히 잘라 모양을 잡고 잣기름에 튀겨, 아이언 허니가 겹겹이 쌓인 반죽 한 층 한 층마다 스며들 수 있게끔 뿌려 냈다.
지나치게 달지 않은 꿀을 써 먹는 데 부담이 없고, 본디 튀김에는 쓸 수 없는 잣기름을 레전더리 등급으로 뽑아내 기어이 기적의 콜라보레이션을 완성해 낸 기준의 역작 모약과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하며 만들어 낸 요리는 한계를 몇 번이고 초월해 기적적인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으니, 요리사의 마음과 본질이 모두 담긴 이 과자를 먹는 것만으로 요리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요리의 본질을 보다 깊이 깨닫고 요리에 자신의 힘을 보다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게 됩니다. [영혼의 요리(U)] 스킬이 50레벨이 되었습니다!
아마 시스템도 기준이 만든 모약과의 저력을 깨달은 것이리라, 어지간한 전투 스킬보다도 성장이 느리던 요리 스킬이 단번에 10레벨 가까이 성장했다.
기준은 그것을 가지런히 포장해 비체가 하나씩 쉽게 까먹을 수 있게끔 했다.
사실 그녀에게 도움이 될 조건만 고려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는 여기에 꾸준히 만들어 비축해 두고 있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같이 포장했다.
딸기 케이크는 비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
전투를 무사히 이겨 내면 그 기념으로 먹었으면 했다.
“좋아,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어.”
“뭐예요 이거, 저 반죽 미는 것밖에 안 도왔는데 요리 스킬 얻었는데요…….”
“나도…… 어쩌면 그만큼 방금 요리가 대단했던 걸지도 몰라.”
“뭐가 대단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요리 과정에 참여했던 이들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 팅커벨만은 그가 만들어 낸 모약과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짐작해 낸 모양.
“이거…… 혹시 고유 스킬의…….”
“잘 배달하고 오면 너한테도 한 조각 정도는 주지.”
“피, 필요 없습니다!”
“정말?”
“……빨리 다녀오죠.”
틸라의 아공간을 나선 팅커벨이 금세 모습을 감췄다.
그녀가 서두르는 모습을 보고 또 괜히 자신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을 만들었나 싶어 마음을 쓰는 기준을 비브가 달랬다.
“언니는 그분을 정말 좋아하고 따르시니까요. 만약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으면 준 님을 찾아올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즉시 전력이 되는 인물을 포섭했을 거예요. 아마 지금 그분께서는 피할 수 없는,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를 대비하고 계신 거겠죠.”
“그 말을 들으니 더 걱정이 된다만…… 후우, 모르겠다.”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전투가 아니라 요리로 비체를 돕는다는 게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면 그가 한계에 막혀 있었을 때 초월하게끔 도와줬던 것도 요리 스킬이었다.
“루시, 늘 고마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존재도 잊고 있었던 주제에.
비체가 위험하다는 얘기에 눈이 뒤집혀 요리를 하겠다며 온갖 난리를 떨어 댔던 기준을 보며 흥, 코웃음을 친 루시는, 그러나 곧 그의 곁으로 포르르 날아와 그의 뺨에 입맞춤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나야말로 고마워, 계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