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6)
나 빼고 다 회귀자-256화(25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56)
Chapter 49. 라그나로크 – 1
팅커벨은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얼굴은 생각보다 밝은…… 아니, 새하얗게 질린 듯이 보였다.
비체를 걱정하는 마음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던 기준은 녀석을 보자마자 기겁해 외쳤다.
“뭔데, 비체가 그렇게 위험한 거야?!”
“반대예요! 당신 대체 뭘 만든 건가요!”
“뭘 만들었냐니, 너도 옆에서 만드는 거 지켜봤잖아?”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레타에서 금지되어 있는 굉장히 위험한 물건을 쓴 게 아닐까 의심했을 거예요!”
“뭐 어땠기에 그러는데?”
팅커벨은 본인의 어휘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했으나 일행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투쾅, 비유웅, 콰아아아, 같은 폭발음뿐이었다.
어쨌든 모약과가 비체에게 큰 도움을 주어 당장 위기 상황을 벗어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당신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엄청 뿌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아아, 정말!”
혹시 이 녀석은 비체를 조금 엄한 의미에서 좋아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질투에 넘치는 표정으로 투덜거리던 녀석이 입술을 삐죽 내밀곤 아주 작게 중얼거리듯이 덧붙였다.
“곧 쫓아갈 거라고…….”
“흐음.”
쫓아오겠다니.
그렇게 박력 넘치고, 심장 두근거리는 선언이 있을 수 있다니.
기준은 그 말에 뭐라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이상의 제스처를 취하려는 순간 얼굴 표정이 무너질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제 제법 큰 규모의 파티를 이끌고 있는 그가 입가를 흐느적거리며 바보처럼 웃음을 흘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미 반쯤 그렇게 되어 있는데, 준?”
“틸라, 내 생각을 자연스럽게 읽지 말아 줄래?”
다행히 그의 목소리는 떨려 나오거나 웃음기에 묻히지 않았다.
“어쨌든 정말 다행이야. 여전히 내가 직접 가 주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스스로 오겠다니, 베아트리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었지. 얌전히 기다리는 타입이 아니잖아? 어쩌면 그래서 준을 쟁취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오늘 일로 기준과 비체의 사이가 보다 굳건히 연결되었음을 확신한 틸라가 부러움 반, 질투 반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준을 배려한 걸까? 베아트리체가 오려면 한참 남았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고 있었나봐…… 준, 오늘 밤에 술 한잔 어때?”
“그렇게 속내를 훤히 드러내는데 내가 마시겠다고 답하면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냐?”
“크흠!”
비체가 안전하다는 소식에 기준과 틸라가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옆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팅커벨이 기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주세요.”
기준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
“뭘?”
“그 페이스트리 과자 말이에요, 과자! 제가 용사님께 무사히 전해 드리고 오면 주겠다고 했잖아요!”
“아, 이거? 그치만 네가 필요 없다며?”
한 번 잣기름에 튀긴 약과를 다시 아이언 허니에 굴려 마치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는 그것을 보기 좋게 그릇에 담아 놓은 것을 보며 팅커벨이 침을 뚝뚝 흘렸다.
“그래서 제가 빨리 다녀오겠다고 대답했는데!”
“어라, 그게 달라는 말이었어?”
팅커벨은 기준이 무슨 말을 원하는지 금방 깨닫고 이를 벅벅 갈았으나 애초에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명백히 자신의 업보였다.
보잘것없는 인간 출신인 주제에 비체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은 얄밉기 그지없는 남자, 하지만 그 요리 실력만은 자신이 아는 누구보다도 우수한 남자…….
요정 상인은 약과에 대한 욕망을 이겨 내지 못하고 끝내 고개를 숙여 굴복하고 말았다.
“주, 주세요…… 먹고 싶어요.”
“좋아, 허락하지.”
백만의 지구인이 튜토리얼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형성되었던 나방…… 요정과 기준의 증오 관계가 그의 완벽한 우위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자, 너희도 와. 다들 같이 먹자.”
팅커벨이 돌아오기까지 긴장감에 휩싸여 있어 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기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가 제일 어울릴까요, 역시 녹차인가?”
“마침 저희가 만들어 보관해 두고 있던 전통차가 있으니 그걸 내올게요. 앞으로는 아공간에 만들어 놓은 숲에서도 잎을 구할 수 있을 테니 차를 만드는 데 문제가 없겠네요.”
“우와, 침엽수 잎으로도 차를 만드는구나.”
“지구에도 있어. 당장 솔잎차도 있잖아.”
기준이 전력을 다해 만들어 낸 모약과의 맛이 궁금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즉석 다과회를 준비했다.
팅커벨은 차는 필요 없고 당장이라도 과자 먼저 먹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차마 더는 독촉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님, 여기 차입니다.”
“주인님이라고 부를 필요 없다니까.”
“죄송해요, 버릇이 되어서 그만.”
버릇이 된다는 건 그만큼 평소에도 그런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는 뜻인데…… 기준은 생글생글 웃는 오우카를 보며 지적하는 것을 포기했다.
우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제법 향기로운 쓴맛이 입 안을 훑고 지나간 후 은은한 단맛이 감돌며 절로 목울대를 울리게 하는 것이, 이 차만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모두 기준이 약과를 먹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여 조금 부담스러웠다.
기준은 모두의 시선 속에 천천히 약과를 깨물었다.
파삭, 하고 몇 겹의 반죽이 부서지며 달콤하기 그지없는 꿀이 흘러나왔다.
갓 튀겨 내 따끈따끈하고 바삭바삭한 과자에 감도는 은은한 잣과 꿀의 향기, 질리지 않는 수십 겹 반죽의 식감.
모약과에 대해 알고 있는 어설픈 지식만으로 도전했기에 ‘그냥 맛있는 꿀과자로 완성되면 성공이다’ 하고 생각했던 기준이었으나 이는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절묘한 맛이었다.
요리가 주는 감격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 순간 기준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설을 향해 가는 요리사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 낸 달콤한 과자를 섭취합니다. 절실한 마음은 요리사가 품은 빛과 고유 스킬의 힘을 온전히 담아 전달합니다. 당사자가 아니라 해도 이 감정을 이해하는 만큼 요리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보유한 빛 속성의 힘이 두 배로 증폭되며 모든 상태 이상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얻습니다. 당신에게 상태 이상을 부여하려는 적을 상대로 모든 능력이 70% 증폭됩니다. 이 효과는 기운을 일정 이상 소모하거나 과자가 소화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음.”
아니, 분명히 엄청나게 맛있긴 한데.
효과도 터무니없는 수준이기는 한데!
기준의 마음을 공개 고백이라도 하는 듯한 시스템 메시지에 기준은 비체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이상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엇보다 약과를 먹고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하던 이들이, 다음 순간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일제히 그를 돌아보는 것이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 줄래?”
“나 이거 괜히 먹은 것 같아, 준. 내가 엄청 눈치 없이 끼어든 사람이 된 것 같잖아? 어쩌면 체할지도…….”
“미안, 미안……! 나중에 너만을 위한 요리도 만들어 줄게!”
“어머, 정말? 그땐 어떤 메시지가 나타나려나, 나는 베아트리체에게 향하는 마음의 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걸.”
“대답하기 곤란한 말은 하지 말아 줘, 정말 맛있고 특별한 요리로 만들어 줄 테니까…….”
틸라가 자신에게 품은 마음을 아는 만큼 미안함을 금치 못해 섣불리 약속해 버리는 기준.
그것이 실수였다.
“…….”
“…….”
감히 자신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특정한 방향에서 기준을 향해 꽂히는 시선이 두 개.
그래, 두 개였다.
―계약자는 좋은 바람둥이가 되기는 글렀네.
‘바람둥이는 모두 나쁜 거야, 루시.’
―하지만 사랑의 정령인 내 관점에서 봤을 때 오직 한 명만을 위해 나머지를 모두 내치는 건 더 나빠.
‘정말 엄격하다니까.’
더한 실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기준은 그 이상 말을 아꼈다.
그러자 이것도 그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자연히 남은 두 사람의 시선은 틸라에게로 향했고, 그녀는 기준이 바라는 대로 은은한 미소만으로 둘의 시선을 받아쳤다.
셋이 치열한 눈싸움을 하는 사이 기준이 박수를 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는 말했다.
“자, 먹고 푹 쉬고 나면 바로 움직이자.”
“……오빠는 마왕을 기다리는 게 아닌가요?”
눈싸움을 하던 예민이 서운함과 망설임, 조심스러움이 적절히 담긴 표정을 지으며 물어 왔다.
어쩌면 조바심도 있지 않을까.
기준은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되는 마음에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면서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비체가 곧 따라온다고 그게 오늘내일이 되지는 않을 거야. 저번에 대화를 나눴을 때만 해도 아직 포인트가 한참은 부족했었거든.”
“……그래요? 그렇다면, 아직은.”
예민이 뒷말을 흐렸지만 기준은 어쩐지 그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알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이전엔 느낄 수 없던 성질의 것이었다.
확실하다, 기준이 예민의 감정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아차린 것이다.
당장은 로라나 틸라와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도, 마음이 조급해지면 보다 대담하게 접근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비체, 내게 답을 줘…….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최대한 빨리 와 줘……!’
파티를 이끈다는 것은 무엇인가, 연애란 또 무엇인가.
아직 한 명에 대한 사랑을 감당하기도 벅찬 기준에게는 더없이 어려운 문제다.
확실한 것은, 비체와의 재회가 이 상황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다음 국면으로 진전시키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우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복잡한 마음을 숨기려 보다 단호하게 기준이 선언했다.
그의 시선이 악령이 깃든 하프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며 늑대 인간 긴이 눈을 빛냈다.
“펜리르를…… 잡으러 가나요?”
“적어도 하프가 알려 주는 대상은 모조리 사냥하고 싶네. 가능하면 비체가 오기 전에 모조리.”
헬을 비롯해 성역의 신들은 비체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
어쩌면 그들은 이미 기준과 비체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과의 거래나 대화에 비체를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여러모로 규격을 벗어난 비체를 제하고도, 기준 파티의 힘만으로도 헬의 안목에 들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럼 하루만 쉬고 움직여요. 다들 지쳤으니까.”
“그래, 하루. 내일 저녁은 발할라에서 먹는 거다.”
“그 말은 불길하게 들리니까 관뒀으면 좋겠어요.”
“……발할라? 당신들 대체 뭘 하려는 거죠!”
“아.”
그때까지 모약과가 주는 감동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팅커벨이 문득 정신을 차렸다.
기준은 잠시 비브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그로부터 당분간 팅커벨은 레타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