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7)
나 빼고 다 회귀자-257화(257/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57)
Chapter 49. 라그나로크 – 2
악령, 삼부카가 다시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여러 영상이 번갈아 떠올랐다.
비밀을 엿들은 대가로 그 자리에 구속된 팅커벨(모약과를 먹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드디어 스스로 밝힌 이름은 모르간이었으나 누구도 그 이름으로 불러 주지 않았다.)은 그것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대체 무슨 아이템이기에 그 많은 비경의 정보를 토하는 거죠? 만약 이것들이 모두 공략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양의 전리품이 나오겠죠! 안 그래도 저 혼자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차라리 잘됐죠, 다른 요정 상인들은 싫지만 그래도 언니한테는 양보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대단한 양의…… 그게 아니라!”
미안하지만 일행은 새삼 자신들의 특별함을 팅커벨에게 설명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제 납득했지? 그럼 너도 쉬고 있어. 출발은 내일이야. 요툰헤임의 붉은 수탉을 먼저 사냥하러 갈 거야.”
“사실상 수탉보다는 거기에 딸려 나올 다른 망자들이 주 사냥감이 될 것 같긴 한데.”
“네? 전 이래 봬도 바쁜 몸입니다만!”
“언니 어차피 당분간 한가하잖아요.”
“윽?!”
팅커벨은 비체의 전담 요정이다.
비체가 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금 자연히 팅커벨도 업무량이 줄어든 상태일 터다.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아 틱틱거리고는 있었지만 여러 비경에서 나오는 전리품을 도매하는 일을 요정 상인이 마다할 리가 없었다.
“자자, 솔직해지도록 하세요, 언니.”
“에, 에잇! 정말 싫다니까……!”
“출발까지 여유가 있으니 우리 같이 온천에 몸이나 담그러 가죠!”
비브가 모르간을 끌고 아공간 안에 있는 온천을 향해 날아갔다.
……혹시 모르간을 붙잡아 두는 건 핑계고 실은 비브가 계속 이곳에 머무르고 싶었던 것뿐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린 기준이었으나 지금까지 비체만을 생각하느라 비브를 크게 배려해 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니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최소한 파티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는 수준으로는 달래 줘야겠지.’
이 숲으로 오고부터 얼마나 정신없이 움직였던가.
펜리르를 사냥하러 온 곳에서 브리콜라카스와 숙명의 대결을 펼치고, 펜리르 대신 멸망의 노래를 부르는 에그테르와 결전을 벌이고, 그런가 싶으면 이 비경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비경 여럿의 정보를 토해 내는 하프를 얻고, 갑자기 신의 목소리와 접하게 되고, 비체의 위기를 알게 되어 요리를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목적이 몇 번이고 뒤집혀 이젠 처음 야른비드르에 무엇을 하러 왔던 것인지도 까먹을 지경이지 않은가.
“그럼 다들 쉬고 있어.”
“형은 어디 가려고요?”
“아공간 밖으로 나가서 그사이 모여든 늑대 인간들 있으면 그놈들 정리하고, 숲에서 나머지 자재들도 가져와야지.”
“그럼 저도 도와드려야죠.”
은신이 흔쾌히 선언하며 기준에게 따라붙었다.
펜리르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가 불완전연소 상태가 되어 버린 긴 역시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예민과― 어째선지 로라가 일순 눈싸움을 하더니 질 수 없다는 듯이 따라나섰지만 싱글벙글 웃고 있는 틸라가 양팔을 뻗어 두 사람을 동시에 붙들었다.
“후흐, 남자 멤버들이 빠진 틈에 우리 여자들끼리 친목을 다져 볼까?”
“네? 아뇨, 하지만 전 오빠랑――.”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려는 이 시점에 우리 후발주자들끼리 함께 대항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참이거든! 우리도 온천으로 가자!”
“후발이라니 제가 한참 먼저, 아!”
“읏, 틸라――!”
틸라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가는 예민과 로라.
기준은 저 셋이 무슨 얘기를 나눌지 몰라 두려워졌지만 가만히 있는 벌집을 먼저 나서서 건드릴 만큼 바보는 아니었기에 묵묵히 그녀들을 전송했다.
여태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같은 파티로 묶이지 못하고 겉돌던 멤버들이 비록 기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지만 이제야 비로소 한데 뭉치는 듯해 묘한 안도감도 들었고.
그런데 그것을 보며 뭔가 생각하던 지혜가, 자연스럽게 은신의 곁에 달라붙어 밖으로 따라 나오려고 하던 렌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그러면 우리도 가야지. 여자 멤버들 다 오라잖아.”
“네? 저 그룹과 저희는 별개고, 그보다 저는 신 군과 함께…… 아니, 마법?!”
순수한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의 끝에 이르러 하이휴먼이 된 지혜는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마력을 운용해 사람을 구속하는 마법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은신이 그 광경에 멍하니 두 눈만 깜박거리고 있자 기준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여자 문제로 고생하는 게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가벼워진 것이다!
“신이 너는 진짜 조만간 삼자대면 한 번 해라.”
“네? 준이 형, 저 혹시 혜 누나한테 무슨 잘못한 거 있어요?”
“눈치가 없는 것도 죄라면 넌 종신형 감이야.”
“그러면 형은 사형감인데요?”
기준에게는 강한 표현을 자제하는 은신이지만 그 말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태클을 걸었다.
기준이 순간적으로 대꾸를 하지 못하고 침묵하자 은신의 눈이 빛났다.
“형 그런 반응 색달라서 너무 좋은데요. 이참에 우리도 탁 터놓고 얘기나 좀 해 보는 거 어때요.”
“아 시끄러워, 긴도 보고 있는데 뭘 터놔 터놓기는. 나무나 베러 가자.”
“터놓고 얘기한다면…… 저도 조금 흥미가 있기는 있습니다만.”
“아니, 돌아 버리겠네 진짜.”
사내놈들을 입 다물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 기준은 둘을 이끌고(포르티스와 예민의 헤라클레스 풍뎅이도 따라왔다.) 밖으로 나섰다.
어느 정도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곳에는 정말로 늑대 인간들이 쫙 깔려 있었다.
야른비드르가 뚫릴 것이라는 기준의 예상과는 달리 놈들은 숲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그 대신 일대를 장악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우.”
“저렇게 충성심이 각별한 놈들이었다고?”
―그르르르…….
―놈들이다.
―놈들이 그분을 죽였어! 은늑대다!
―은늑대가 그분의 심장을 먹고 분수에 넘치는 힘을 얻은 거야!
처음 늑대 인간들을 만난 유적에서만 해도 놈들은 동족이나 다른 늑대의 심장을 먹어 힘을 불리는 연구를 이제 막 시작한 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 저놈들은 그것을 당연한 상식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 그 유적으로 쫓겨났던 늑대 인간들은 그런 당연한 상식조차 배우지 못한 버림 패였던 것이 아닐까.
문득 드는 생각을 밀어내며, 기준은 자연히 놈들이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저놈의 심장을 빼먹으면 내가……!
―개소리하지 마라, 나다! 내가 브리콜라카스를 이끄는 새로운 초르트가 될 것이다!
―그르르르르르! 심장을 내놔! 심장을!
―그분의 성유물을 내놔라!
역시나, 초르트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목숨 바쳐 놈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던 늑대 인간들도 결국은 힘의 노예였을 뿐.
초르트가 죽고 문명이 와해에 이른 이때에, 늑대 인간들은 놈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놈이 남긴 유산을 노리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어중간한 신념이 아니라 욕망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라면 상대하기는 편할 것이다.
“긴, 이 정도는 네가 감당해야겠지?”
“물론입니다, 준 님. 제가 업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안 그래도 초르트의 심장을 먹고 불공정하게 얻은 힘을 제대로 녹여 낼 기회도 얻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긴은 기준의 부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물경 수천을 가뿐히 넘기는 늑대 인간들의 시선은 모조리 녀석에게 꽂혀 들었다.
입가에 피가 묻은 놈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브리콜라카스에 남은 늑대 인간이 저들뿐인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오기까지 이미 동족상잔을 제법 치른 모양.
“저들을 모두 꺾을 즈음이면 긴도 자신이 먹은 심장의 정당한 주인임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
“……형, 설마 이대로 놔두고 가자고요?”
“처음엔 같이 싸울 생각이었는데.”
“괜찮습니다.”
긴이 단호히 대꾸하며 두 개의 권총을 들어 올렸다.
하나는 지극히 짧은 기간이나마 그의 스승이 되어 주었던 서글픈 운명의 흡혈귀 사냥꾼의 권총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찬가지로 흡혈귀 사냥꾼이 남긴 것으로 기준이 얻어다 준 권총이다.
“준 님께서 막아 주시기엔 너무 약한 것들입니다. 이 정도는 저 혼자 이겨 내지 않으면,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그래, 그럼 우린 안으로 들어가 볼게. 신아, 가자.”
“진짜 위험할 것 같은데…….”
물론 긴 모르게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땅을 파고 들어간 헤라클레스 풍뎅이라든가, 은밀히 기준의 뒤를 따라 나온 몇 마리의 박쥐라든가.
기준이 적당히 눈치를 주자 녀석들은 그의 뜻을 알아들은 듯 안개가 되어 허공중으로 흩어졌다.
성유물로 만들어진 일시적 권속에 불과한 놈들이 고위 흡혈귀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것을 보면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저기에 기준의 빛까지 다룰 수 있으니 여차할 때 긴을 지켜 줄 방어막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을 터.
―놈들이 숲 안으로 들어간다!
―쫓아! 어쩌면 놈들이 초르트의 성유물을 감추고 있을지도 몰라!
초르트의 성유물은 아니고 성유물로 만들어 낸 박쥐라면 너희 주위에 있는데, 바보같이.
기준과 은신은 놈들을 비웃듯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유인책 아닌 유인책에 휘말려 그 뒤를 따른 수백 마리의 늑대 인간들은 당연히 길을 잃고 환각에 시달리다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형, 쟤 진짜 괜찮을까요. 정서가 많이 불안정해 보이는데요.”
“우리라고 엄청 안정되어 있는 건 아니잖아.”
무사히 야른비드르에 입성하자마자 은신이 하는 말에 기준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더 심하지. 저 똥강아지는 실제 나이라도 어리지, 계약자 파티원들은…….
“루시, 정말 나이로 갈굴 거야? 진심이라면 나도 대응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데?”
루시가 침묵했다.
기준은 녀석을 품으로 끌어들여 쓰다듬어 주며 방패 하나를 들었다.
월광혈아로 길게 뽑아낸 핏빛의 송곳니를 다듬어 굉장히 날카롭고 기다란 검의 형태로 빚어냈다.
“우리는 여기 나무들 전부 베어 낼 때까지 못 돌아가는 거야.”
“전부…….”
은신은 군말 없이 자신의 단검 위로 오러를 끌어 올리면서도 나무를 베어 내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은 자신의 무장을 보며 도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떠올렸다.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상념을 애써 떨쳐 낸 은신이 애써 화제를 전환했다.
“형은 진짜 가만히 쉬는 법이 없네요. 대체 쉬는 때가 언제예요?”
“쉬는 때라.”
안 그래도 초 단위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던 기준이 십 년에 이르는 비체의 교육 탓에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으니.
그래도 그가 한계를 넘어 무리할 때면 언제나 비체가 그를 강제로 붙들어 쉬게끔 만들었다.
대련에서 기절시켜 재우는 것도 휴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지금의 그도 비체가 와 줄 때까지는 쉴 수 없다.
―아직 불안한 거지, 계약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루시가 가만히 그런 말을 해 왔다.
기준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픽 웃었다.
“네가 있잖아, 루시. 그러니까 괜찮아.”
―이 패턴 바로 얼마 전에 한 번 당했던 것 같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리던 루시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숲의 주인이 완전히 자리를 비우고, 예언자마저 죽어 완전히 시커멓게 물든 야른비드르에 돌연 낮이 찾아왔다.
숲을 빼곡히 메우고 있던 나무들이 뿌리만 타올라 일제히 그 자리에 쓰러졌다.
기준과 은신이 어처구니가 없어 루시를 바라보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우리도 빨리 일 끝내고 온천이나 들어가자, 계약자.
“루시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형이랑 혼욕하려는 것 같은데.”
“정령이랑 혼욕은 무슨 혼욕이야, 늘 같이 있는데.”
“……진짜 강력한 경쟁자가 여기 있었네.”
그러나 루시의 깜찍한 꿈은 좌절되었다.
일을 빠르게 끝마치고 아공간으로 복귀한 세 남자를 따라 곧장 온천으로 향하던 루시를 틸라가 확보해 버린 탓이다.
다음 날, 일행은 하프가 안내해 주는 경로를 따라 새로운 비경― 요툰헤임의 숲 갈그비드르(Galgviðr)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