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1)
나 빼고 다 회귀자-261화(261/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61)
Chapter 49. 라그나로크 – 6
그래도 빛의 용사라고 불리는 입장에서 망자의 손발톱으로 만들어진 유령선을 붙잡아 타고 다니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한 기준이었으나 파티원들의 마음은 이미 확고했다.
기준이 헬헤임의 대지에서 솟아나는 망령들을 부활도 하지 못하게 완전히 녹여 버리는 사이, 그의 파티원들은 망자 정예 부대를 차근차근히 쓸어버리며 나글파르를 점령했다.
그러던 중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 한 가지 발각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글파르에 승선한 망자들을 죽여도 온전히 죽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나! 이 망자들의 심장이 배에 감춰져 있는 게 분명해요! 이 선원들은 여기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영원히 묶여서 뱃일이나 해야 하는 신세인 거야……!”
기준의 광 마력으로 대지가 완전히 깨끗해진 후, 선상 전투가 소강 상태에 이르렀음을 확인한 기준이 지혜와 렌카를 대동하고 갑판 위에 내려서자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지혜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며 또다시 입으로 해적 영화의 OST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녀의 추측이 아예 엇나간 것 같지도 않다는 것.
기준은 분명 자신 못지않게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긴과 로라에게 죽임을 당하고도, 영혼 상태에서부터 다시 꾸물거리며 뭉쳐 되살아나는 망자들을 보곤 눈을 빛냈다.
영력을 에픽 등급으로 성장시킨 덕일까?
분명 소멸해야 하는 상황에서 되살아나는 망자들의 혼과 이어지는 가늘지만 굳건한 끈, 그 대량의 끈이 흐르고 흘러 수속하는 지점을 단숨에 잡아낼 수 있었다.
“고유 영역이라는 추측은 했지만 정말로 그런가 본데? 아무래도 이 배를 불태워 버리지 않는 한 이것들을 완전히 죽일 수 없는 모양이야.”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 배 자체를 하나의 보스급 몬스터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나글파르를 완전히 끝장내지 않으면 이미 그 안에 부속되어버린 망자들은 언제까지고 되살아날 뿐.
물론 세상에 무한이란 없으니 망자들을 되살아나지 못할 때까지 끊임없이 죽여도 된다.
그 경우 에너지를 소진한 나글파르도 자연히 함께 무너지겠지.
“그럴 수가…… 우리 해적선 못 타는 거예요?”
“완전히 해적선 취급하고 있네…… 바이킹 선이면 사실 해적선이랑 크게 다를 거 없긴 하지만.”
그래서 배를 탈취할 방법이 없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나글파르가 몬스터, 정확히는 영적 몬스터 취급을 받는 것이 득이 되었다.
악령 삼부카와 영적 계약을 맺고 수하로 들인 것처럼 나글파르 또한 기준이 거느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등급으로만 따지면 에픽 등급에 근접하는 레전더리, 심지어 헬의 기운까지 잔뜩 받았지. 원래는 내가 거둘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기준은 말없이 루시와 눈빛을 교환했다.
배에 승선했던 놈들을 모조리 잘근잘근 밟아 약화시키기도 했고, 뭣보다 루시가 품은 강렬한 빛이 나글파르를 약화시켜 주고 있었으니까.
루시와 헬의 관계성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빛에 의한 어둠의 약화가 아닌, 보다 고차원적인 영역에서의 힘겨루기가 일어난 듯하지만…….
“너희가 원한다면 이 배를 제압해 볼게.”
“부탁해요, 오빠! 아니 스패로우 선장님……!”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절대 그렇게 부르지 마.”
“지혜 너 이리 와.”
“끼에에엑!”
기준에게 지나치게 버릇없이 군다는 이유로 예민이 지혜의 기강을 잡는 사이.
기준은 살루타리스를 전력으로 발동해 영력을 끌어 올리며 루시, 그리고 삼부카에게 시선을 보냈다.
“계약을 도와줘.”
―물론이지, 누구도 헛짓거리 못 해.
―기꺼이, 하지만 이미 항복한 듯하네요.
삼부카의 말이 맞았다.
마치 기준을 두려워하는 듯, 어쩌면 기준과 계약한 루시의 진실된 정체를 깨닫고 납작 엎드린 듯 그렇게 나글파르는 순순히 기준이 내미는 영적 족쇄를 제 목에 채웠다.
놈에게 실체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기준이 승선하기 전까지만 해도 호시탐탐 저주를 발해 파티원들을 거꾸러트리려는 듯 살기등등하던 놈이 완전히 기세를 죽이고 기준과 그 파티원들을 주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기준이 나글파르와의 연결을 감지한 순간 메시지가 그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신화 시대의 보물, 종말을 알리는 징표 중의 하나. 망자를 이끌고 라그나로크에 참전하는 지옥의 배 나글파르(Naglfar)를 정복하고 종속시켰습니다. 이 위대한 업적에 영력(E)이 3, 살루타리스(L) 스킬이 5레벨 올랐습니다.
―업적 달성으로 인해 레전더리 등급 칭호 [유령선의 선장]을 얻었습니다. 칭호 효과로 인해 지휘 능력이 향상되며, 당신과 계약한 모든 영적 존재의 능력이 20% 증폭됩니다. 영력(E)이 2 올랐습니다.
나글파르와의 계약이 업적으로 인정되어 영력이 다소 성장할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칭호의 효과는 뜻밖이었다.
계약한 모든 영적 존재라니, 나글파르와 망자들뿐만 아니라 기준과 기존에 계약한 루시와 우르, 심지어 삼부카의 능력까지 2할 증폭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소 뒷걸음질로 개구리를 잡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개구리가 아니라 드래곤 한 마리는 잡은 격이었다.
“역시 업적은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른다니까.”
―아아니, 이런 유령선 따위로 이렇게 좋은 칭호를 얻을 거였으면 나는 대체!
“하지만 루시 넌 나와 처음 계약했을 때 레어 등급이었잖아.”
―큭……!
―키이이…….
나글파르와 간접적으로 비교를 당하며 짜증을 내는 루시도 그렇고, 능력이 2할 증폭되었음에도 여전히 우르의 기분은 좋지 않아 보였다.
아직까지 레전더리 등급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나글파르 같은 강대한 영이 기준과 계약한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기준이 귀여운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우르를 껴안고 쓰다듬어 주고 있자니, 유령선이 완전히 파티의 차지가 되었음을 알게 된 지혜가 신이 나서는 이제 막 부활하는 망자들에게 새로운 처지를 강제 주입 시켜 주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너희 이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춘식이1, 2, 3…… 아얏!”
“일일이 이름 부를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이름 붙이지 마.”
“그냥 간단하게 폴로 하죠. 폴1, 폴2, 폴3…….”
“글쎄 왜 굳이 이름을 붙이려고 하냐니까?”
계약 효과는 확실했다.
기준이 나글파르를 제압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자를 향해 살기등등하게 덤벼들던 망자들이 이제는 파티원들을 무시하고 오직 기준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으니까.
생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망자들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솔직히 조금 소름 끼치기는 했으나 저들도 최소 유니크 등급부터 시작하는 든든한 전력들.
기준 이전의 선장이었던 방패를 든 노인, 흐림(Hrymr)을 비롯한 정예들은 족히 레전더리 중상위에 드는 무력을 지니고 있고, 나글파르가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도 않으니 루멘 파티와 같은 극상성을 만나지 않는 한 크게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무녀들에 이어 새로운 무력 집단이 더해졌다고 생각하니 결코 나쁠 것이 없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기준이 다루는 빛이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문제였는데, 일단 계약을 통해 아군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피아 식별이 가능해져 그것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물론 직접적으로 빛을 쏘여 주면 약화되기야 하겠지만 그것까지야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응, 역시 용사가 끌고 다닐 만한 비주얼은 아니네.”
“의외성 있어서 좋은걸요, 뭐.”
망자 선원들이 모두 제자리를 잡자 나글파르가 허공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비경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은 검붉은 수탉과 나글파르가 양분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너져 내리는 비경을 뒤로하고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나글파르.
―뺙?!
혹시나 그사이 비경으로 접근해 오는 누군가가 있을까 오우카를 비롯한 정예 무녀들과 함께 주위를 비행하며 순찰하고 있던 포르티스가 거대한 유령선 위에 기준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자신을 완벽히 대체하는 탈 것을 찾아버린 주인을 보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차, 우르뿐만 아니고 포르티스까지.”
―어차피 공중전을 치를 땐 이 둔해 빠진 배가 아니라 그리핀을 타고 싸워야 할 텐데 말이야.
“그건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악의 비상의 네 번째 옵션, [모든 날개 달린 생물에게 악의 축복을 내려 가속시킨다.]를 나글파르에 적용할 수 없을지 확인해 보는 기준.
물론 나글파르는 날개도 없고 생물도 아닌 탓에 악의 비상의 효과를 받을 수 없었다.
“역시 공중전은 포르티스밖에 없지.”
―그걸 굳이 확인해 보다니, 계약자도 은근히 너무해.
“이 녀석하고 계약하면서 얻은 칭호가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 혹시 다른 게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해서.”
기준은 경쟁자의 등장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아드는 포르티스를 달래 주며 오우카에게 확인했다.
“오우카, 주위에 뭐 없었어?”
“예, 주인님. 어쩌면 발할라에 이어 이곳 역시 제국도, 프런티어 왕국의 손도 닿지 않은 미개척 영역이 아닌가 싶어요.”
비경―헬헤임까지 하프의 안내를 받아 특별한 통로를 타고 반쯤 순간 이동에 가깝게 이동한 것이다 보니, 그 이동 과정에 정확히 어디를 거쳤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요툰헤임의 갈그비드르는 야른비드르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형성된 야생 밀림 한가운데에 있었고, 발할라는 오지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곳 헬헤임은 주위를 둘러봐도 반쯤 얼어붙은 대지가 보일 뿐 정확히 이곳이 어디인지 헤아릴 길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계조를 편성했던 것.
참고로 기준은 이제 오우카가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포기했다.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이곳으로 바로 이동해서 개척을 해 봐도 좋겠네.”
악의 비상의 두 번째 옵션, 자신이 기억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힘을 이용하면 간단한 일이다.
최전선, 빛의 진영과 어둠의 진영의 치열한 대립이 이루어지는 미개척 지대에서 기준 일행도 나름의 입지를 점하려면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빛의 진영과 어둠의 진영 모두가 목을 매는 미개척 지대, 당장 비경 발할라와 헬헤임 모두 미개척 지대에서 발견되었음을 감안하면 향후 그들과의 대립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명확했다.
“하프가 준 선물이 참 많네. 설마 미개척 지대 한중간으로 고속 이동시켜 줄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으리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하겠어.”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일대에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이 엄청나게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겠지만요…….”
오우카가 침착하게 덧붙인 말에 기준을 제외한 파티원들이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지혜가 먼저 나서서 물었다.
“오빠, 우리 이제부턴 뭐 해요? 역시 약탈하러 가나요?”
“집 지으러 가야지.”
“아, 맞다.”
발할라의 잔해를 수거한 후 아직 재건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지혜.
“그라티아로, 정확히는 우르알타로 가자. 드워프들한테 일거리 줘야지.”
“마침 잘됐네요.”
예민이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슬슬 길드도 다시 확인해 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우르알타에 건설 의뢰를 하고 나면 같이 코르로 가요. 이제 오빠를 간부로 등록해도 괜찮겠죠.”
그렇게 말한 예민이 잠시 멈칫하더니 기준의 눈치를 보며 ‘괜찮을까요?’ 하고 물어 왔다.
“괜찮아. 레타에 대해 많이 알아갈수록, 지구인들끼리라도 뭉쳐야겠다는 생각이 심해지고 있기도 하고…….”
“맞아요,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도 좋겠죠. 길드 확충을 하는 거예요.”
예민은 자신이 길드를 만들어 놓은 것이 허사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다만 기준은 조금 더 멀리 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종말의 예언을 겪은 것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아까 지혜도 말했던가? 튜토리얼은 25년이었는데 레타 대륙에 떨어지고부턴 1년 만에 이렇게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이 놀랍다고.
어쩌면 상황은 점점 더 급박해질지도 모른다.
비체의 위기, 신들의 반응, 제국과 프런티어 왕국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지구인들한테 조금 더 성장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을 텐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답답한 마음에 폰을 확인해도, 아직 비체로부터의 답신은 없다.
그는 초조감을 억누르며 일행과 함께 우르알타로 향했다.
전쟁 소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