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4)
나 빼고 다 회귀자-264화(264/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64)
Chapter 50. 급진전 – 3
장인 정신 넘쳐 나는 드워프 글리터토스가 발할라 재건축을 단독으로 맡아야 한다고 빡빡 우기는 탓에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 예민도 길드로 돌아가 한 번쯤 정리할 때가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기준을 대동하고 돌아가 정식으로 그를 간부로 등록하기로 했다.
물론 예민의 마음 같아서는 정식으로 기준을 길드 마스터로 등록하고 싶었으나 테라 길드에 소속된 이들은 예민만 보고 따라왔는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기준이 마스터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리 없었으니.
우선은 간부로 등록하고 서서히 길드 내에서 기준의 활약 비중을 높이며― 적절한 순간에 가면을 벗고 지구인이었음을 밝히며 정식으로 길드 마스터를 인계하는 것까지가 예민의 계획이었다.
“엑, 오빠 가면을 그렇게 은근슬쩍 벗겨 버리는 거야?”
계획을 검토해 달라는 예민의 부탁을 받은 지혜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가면은 그것보다 훨씬 결정적인 순간에 벗겨야 되는 거 아니야? 예를 들면 최종 보스랑 맞서 싸울 때 있잖아, 우리는 다 쓰러지고 오빠 혼자만 남은 상황에 오빠가 각성하면서 이제 이런 가면 뒤에 숨지 않아도 너를 이길 수 있다! 하면서 가면을 딱 벗어 던지고――.”
“그럼 봐 주는 사람이 최종 보스 말고 아무도 없잖아. 너 바보야?”
“기껏 아티팩트 이름도 페르소나인데…….”
예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준이 오빠가 가면을 썼던 건 레타에서 인간 종족이 지나치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잖아. 지금은 어차피 어떻게 위장하든 어디서 뭘 하든 모두가 오빠한테 집중할 테니까 굳이 숨길 의미도 없어. 아니, 지금까지 오빠가 가면을 쓰는 건 순수하게 성능 때문이겠지.”
“난 아주 조금 남은 오빠의 약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왜, 오빠 아주 확 바뀌었잖아. 보통 그런 변화를 보이는 사람들은 특정한 신분, 입장을 만들어 내서 조금 다른 자신을 꾸며 내는 경우가 많거든.”
처음을 그렇게 시작해서, 물론 신체와 정신 양면으로 성장한 지금은 괜찮겠지만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가면을 벗고 스스로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을, 특히나 그의 과거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지구인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지혜의 추측이었다.
빛의 용사니 뭐니 하며 주목을 받게 된 지금은 과거 지구에서 기준이 어땠든, 튜토리얼에서 무엇을 했든 아무 상관없겠지만…… 지혜의 말이 마냥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예민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가만 보면 너 진짜 준이 오빠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다?”
“그야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응? 뭐야, 설마 지금 이상한 착각해?”
“정말 내 착각일까……. 그렇게 친한 여동생 포지션에 있다가 은근슬쩍 어떻게 해 보려는 거 아냐?”
“아니이!”
지혜가 정색하며 예민의 뺨을 꼬집으려 했으나 마법사가 전사와 피지컬 대결로 이길 리가 없고, 금세 역으로 뺨을 꼬집히고 말았다.
지혜는 전류를 흘려 예민을 떼어 내곤 부푼 볼을 매만지며 그녀를 째렸다.
“나 견제할 시간에 견제할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그래서, 진짜 아냐? 나 안심해도 돼?”
“아니거든! 얘는, 가뜩이나 내 연애도 골치 아픈데 엉뚱한 얘길…….”
“……연애?”
“너 진짜 오늘 죽었다.”
파티 내 친선 대련이 펼쳐지길 한참, 송화다식과 모약과를 대량으로 찍어 낸 기준이 외출 준비를 마치고 두 사람을 찾았다.
“뭐야, 열의가 뜨겁네. 나랑도 한판 할까?”
“아뇨, 오빠! 바로 출발해요!”
물론 예민은 로라나 틸라 같은 멤버는 그대로 우르알타에 두고 떠나고 싶어 했지만 그녀들이 예민의 뜻에 순순히 따라 줄 리가 없었다.
혹을 떼어 놓기는커녕 휴가를 냈다며 우니카까지 따라붙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그녀에게는 틸라나 로라를 대하듯 할 수도 없는 것이, 아직까지도 우니카의 이마에는 기준을 위해 뿔을 꺾어 주고 남은 흔적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기준에게 뿔을 꺾어 주는 것으로 정확히 자신이 원하던 포지션을 얻어 낸 우니카가 한 손에 여행 가방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기준의 옷소매를 부여잡으며 씩씩하게 외쳤다.
“그럼 출발하죠!”
“……진짜 만만치가 않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던졌는데 기준과 둘만의 시간을 만드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코르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길드를 변명으로 내세워 기준과 둘만 남을 수 있게끔 작전을 구상하는 예민이었다.
* * *
우르알타를 나와 소도시 투리스까지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는 방법도 있겠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움직임을 읽힐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이동은 틸라의 아공간에 다른 이들을 전부 집어넣고 기준과 틸라가 손을 잡고 악의 비상을 발동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발할라 건설 작업이 아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데도 건설 기간 동안 공식적인 움직임을 갖지 않기로 한 것은 건설이 끝나면 글리터토스를 다시 우르알타로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글리터토스는 자신이 아공간에 있는 사이 루멘 파티가 우르알타에서 코르로 이동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퇴근할 필요 없지, 글리터토스?”
“그야 이걸 완성할 때까지 바깥 공기를 맡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말하니 뭔가 찜찜한데.”
“아냐, 찜찜할 것 없어. 그냥 열심히 건설만 해 줘.”
벌써 기초 공사 작업이 마무리되어 건물의 틀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 글리터토스를 격려한 기준은 파티원들을 끌고 아공간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로, 예민이 없는 동안 누구도 드나들지 않았는지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돌아온다고 연락은 했었어?”
“네. 튜토리얼 때 몇 번 파티를 같이 맺어서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들을 간부로 앉혀 놨거든요. 슬슬 찾아올…….”
말하기가 무섭게 집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아마 예민이 돌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대기하던 이가 집무실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노크해 온 것이리라.
“들어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과연 가죽 갑옷을 입고 안으로 들어오는 여성은 기준도 튜토리얼에서 몇 번 함께 행동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 협동을 할 때도 압도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는 예민을 곱지 않게 보며 으르렁거릴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예민을 따르는 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 과연 사람들을 휘어잡는 예민의 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마스터. 그리고…….”
지혜와 은신의 모습을 확인하곤 습관적으로 그들과 함께 움직이던 남자의 그림자를 찾던 여자는 직후 길드의 원로 멤버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다 기준에게 시선이 멎었다.
“당신…….”
물론 가면을 쓴 염인 영웅, 준이 예민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저번 그랜드 퀘스트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코르에 널리 알려졌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준의 루멘 파티가 테라 길드의 수뇌부와 접촉하는 장면을 본 길드원들이 어쩌면 염인 영웅이 예민에게 반해 길드로 들어오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기도 했다.
“기준 씨네요?”
기준은 그 말에 조금 놀라 몸을 굳혔다.
물론 예민의 파티원들을 제외한 지구인들과 가까이서 접촉한 적이 드물긴 하다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 바로 그의 정체를 맞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정작 기준이 가면을 벗어 얼굴을 보이자 그 여자는 뜨악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니, 그냥 닮은 사람이었어요?”
“본인 맞아요. 왜 잘 맞혀 놓고 거기서 물러나는 건데?”
“그야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그렇죠! 그래도 그렇구나, 종족 등급이 오르면 가끔 로또 맞은 것처럼 변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던데, 당신이.”
고개를 음음 끄덕이며 납득한 여성이 예민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축하드려요, 마스터.”
“그…… 어떻게 알았어요? 오빠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당황하며 대꾸하는 예민을 여자가 다소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녀의 시선은 예민과 기준 사이를 완만하게 왕복하고 있었다.
“아니 그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다 알죠.”
아하.
기준의 가면 너머 모습을 꿰뚫어 보고 맞힌 것이 아니라, 기준과 예민의 관계를 보고 알아맞혔다니.
그래도 이 여자와 튜토리얼 때 엄청 많이 얽혔던 것도 아닌데 잘도 그것만으로 맞혔다며 감탄하고 있자니 여자가 바로 그의 착각을 수정해 주었다.
“2차 튜토리얼 때 마스터가 그쪽을 엄청나게 찾아 헤매셨거든요. 게다가 모습을 고스란히 묘사한 그림도 막 뿌리고 해서 그때 조금이라도 활약했던 파티라면 모두 기준 씨를 기억할걸요. 반대로 모른다는 건 허접이라는 증거예요.”
“아―― 완벽히 이해했어요.”
“아…… 으으…….”
천하의 예민도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기준은 그 모습을 보며 지구인들의 2차 튜토리얼을 함께 겪지 못한 탓에 생겨났던 괴리감이 다소나마 해소되는 것과 동시에 예민에 대한 인상이 또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도 그 여자가 예민에게 윙크를 하며 제 공적을 자랑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니, 오빠가 정말로 가면을 벗어 버렸어……. 기왕이면 루시가 갓 등급으로 각성할 때 같이 벗었으면 좋았을 텐데.”
“에픽 등급 다음이 갓 등급이라고 누가 그래?”
“제가 정했어요. 신화(Myth)라고 하면 왠지 발음도 별로고 레전더리 등급이랑 겹치는 것 같잖아요.”
기준이 전혀 극적이지 않은 장면에서 가면을 벗었다며 아쉬워하는 지혜와 언제나처럼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헛기침으로 감정을 털어 낸 예민이 박수를 쳐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았다.
“그동안 쌓인 보고나 들을게요. 중요한 건 통신으로 전해 들었지만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그것도 부진했으니까요.”
“코르에 사는 사람들까지 다 알고 있어요. 정말로 영웅 준이랑 함께 움직이신 거면 어둠의 문명 하나를 완전히 끝장내고 오신 건데, 그야 정신이 없으셨겠죠.”
그녀는 1차 튜토리얼까지만 해도 예민 파티를 제법 경쟁해 볼 만한 상대로 취급하고 날을 세웠으나, 2차 튜토리얼 때는 예민이 절대 알려 주지 않으려 하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깔끔하게 그녀에게 굴복하고, 서로 날을 세울 때가 아니게 된 레타에 이르러선 그라티아의 그랜드 퀘스트가 달성되는 과정에서 굴복을 넘어 예민에게 감복한 상태였다.
심지어 예전의 파티원이었던 기준은 예민을 넘어 압도적으로 성장하며 레타에서 독점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파티가 재결성되자마자 마법 왕국과 동맹을 맺어 흡혈귀들을 소탕하고 브리콜라카스를 멸절하기까지 했으니.
“전쟁이 일어난 건 알고 계시죠? 우리 길드에 일어난 변화는 크지 않으니 그 전쟁과 관련해 그라티아에 일어난 중요 사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보고 드릴게요.”
“부탁해요.”
티란누스 제국과 프런티어 왕국이 전쟁에 돌입하는 것으로 그라티아 왕국에 찾아온 변화는 무엇인가.
티란누스나 프런티어가 그라티아에 원군을 요청할 리도 없고, 지리적으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니 별 영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았다.
티란누스가 무너져도, 프런티어가 무너져도 빛의 진영은 크게 약화될 것이고 어둠의 진영은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그라티아 왕국은 대륙의 다른 왕국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빛의 진영에 생겨난 공백을 메꿀 준비를 하는 한편으로, 두 거대 국가의 전쟁을 멈출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물론 누구나가 알고 있을 것이다.
티란누스와 프런티어의 전쟁은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고, 어느 한쪽이 철저하게 무너지지 않는 한 어정쩡하게 수습하는 것 따윈 불가능하리라는 사실을.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죠. 그라티아로선 최대한 자국에 닥칠 피해를 막으며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게 최선인데…….”
“다른 방법도 있죠. 차라리 어느 한쪽을 도와 전쟁을 빠르게 끝내 버리는 것.”
기준이 딱딱하게 내뱉는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전쟁이 길어지면 확실히 빛의 진영 전체가 위태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그들이 불더미 속으로 짚을 지고 들어가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 때에 테라 길드 하우스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태자 렉투스였다.
“준은 있는가! 있군!”
“있는데, 왜?”
당연히 렉투스가 사랑해마지않는 예민을 찾아온 것이라 생각한 기준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그를 맞이했다.
한데 그가 다음에 내뱉는 말이 걸작이었다.
“큰일났네! 빛의 용사가…… 파툼이 프런티어에 붙었어!”
“환장하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