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5)
나 빼고 다 회귀자-265화(26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65)
Chapter 50. 급진전 – 4
빛의 용사로 활동하던 파툼이 실종된 시점에서 제국은 다음 대 빛의 용사를 찾기 시작했다.
기준은 그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어쩌면 제국의 수뇌부가 파툼의 실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레타 대륙에서 몇 달간 연락 두절이 일어나는 게 꼭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당장 기준이 이끄는 파티도 재수 없게 용암 지렁이를 통해 아공간으로 날려지기도 했고.
그런데 파툼이 실종된 순간 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바로 다음 주자를 찾는다는 것도 어딘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해서 제국에서 먼저 파툼에게 위해를 가했든가, 아님 파툼이 ‘나 빛의 용사 그만둘래!’ 하고 보고했든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했던 배신이라니.”
“이걸 어둠의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틸라의 말에 그저 쓴웃음을 흘리는 기준.
일행 앞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기준도 그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었다.
악룡과의 격전에서 죽어 버린 와이번의 사체를 짊어지고, 그 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 파툼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자연히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 어둠의 진영이 아니라 소환자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건가.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다는 것은 파툼은 그 절망적인 사건을 겪고도 끝내 어둠에 침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악룡의 저주를 기준이 모조리 받아 내지 않았더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국은 파툼을 어떻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비체처럼 침식이라도 시키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제국의 2황녀, 스카이나의 말을 듣기로는 마탑을 끌어들여 빛의 진영의 전력을 보강하려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얘기만 하고 있어도 답이 나올 리 없지. 역시 제국으로 가야겠어.”
“같이 가 주겠나!”
기준이 결론을 내린 순간 옆에서 튀어나온 렉투스가 기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는 렉투스를 보며 두 눈을 깜박였다.
“같이? 너도 제국으로 가겠다고?”
“물론이다. 파툼이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했던 곳이 우리 그라티아 왕국이지 않나. 우리 왕국에서 모습을 감춘 파툼이 프런티어 왕국 측에 붙었으니, 그라티아에서 이 사태를 모르는 척하면 제국의 분노를 살 것이다.”
“그저 시간 순서가 그럴 뿐 그라티아에 도의적인 책임은 전혀 없을 텐데.”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라티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용사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었다거나, 어둠의 진영과의 전쟁에서 무리를 시켰다거나, 몰아붙이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귀공은 알고 있나? 높으신 분들이라는 건 언제나 겉치레에 목숨을 건단 말이다.”
기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당장 이 말을 하는 렉투스 본인부터가 그라티아에서 국왕 다음으로 높으신 분일 텐데.
“그래서 네가 제국으로 가서 뭘 하려고? 파툼에게 다시 제국으로 돌아오라고 설득이라도 하게?”
“구색 맞추기다. 당연하지만 제국도 사실은 그라티아에 잘못이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제국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 그라티아의 후계자에 해당하는 나를 전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지.”
“터무니없이 피곤하고 쓸데없는 짓이군.”
“하지만 귀공이 함께해 주겠다니 안심이다. 적어도 전장에서 눈먼 화살은 맞지 않게 되었군.”
언제부터 기준이 렉투스를 호위해 준다는 식으로 얘기가 진행된 걸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사이좋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곤 단호히 말했다.
“그건 따로 의뢰해라, 렉투스.”
“저번 그랜드 퀘스트의 보상을 지불한 탓에 국고가 휘청거리는데……!”
“그래서 은근슬쩍 동행하려고? 어림도 없지. 나라고 한가한 게 아냐. 원래는 가차 없이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나도 나름 파툼과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안 쫓아내는 거다.”
“귀공은 1년도 안 되어 완전히 다른 소환자 같은 짠돌이가 되었군.”
“먹일 입이 한둘이어야지.”
“큭…….”
신음을 흘린 렉투스가 은근슬쩍 예민을 살피더니, 곧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에 예민 양이 참가한다는 조건으로 의뢰를 내겠다.”
“또또 속내가 빤히 보이는 조건을 첨부하고…… 민아, 어떻게 할 거야? 길드 일로 바쁠 것 같으면…….”
“아뇨, 오빠가 위험한 곳엘 간다는데 제가 빠질 수는 없잖아요.”
그런 질문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히 대꾸한 예민이 렉투스에게 보라는 듯이 기준의 손을 잡았다.
“저는 테라 길드의 장이기 이전에 루멘 파티의 멤버예요. 파티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일에 빠질 생각 없어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
대답이 됐나,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렉투스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군을 쓸데없이 도발할 필요가 없으니 예민의 손을 떼어 놓으려 한 기준이었으나 예민은 오히려 그의 손을 더욱 굳게 잡으며 생긋 웃었다.
“렉투스 공, 그럼 제국으로 떠나는 날 뵙겠습니다.”
“큭, 귀공이 원망스럽다……!”
“퀘스트나 제대로 가져와라.”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준 렉투스가 번개 맞은 개구리 같은 표정으로 돌아간 후, 기준은 파티원들과 다시 진지하게 논의했다.
“이대로 제국으로 넘어가면 우리가 제국 편을 들어 프런티어와 대적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 입장에서 제국을 공격하는 것도 문제가 되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오빠?”
“글쎄, 제국도 프런티어도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이긴 한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빛의 진영의 전력을 무의미하게 깎아 먹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하지만 기준이 나선들 전쟁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기본적으로는 방관하며 다른 세력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회가 생기면 그때 가서야 움직일 셈이었는데…….
“파툼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파툼과는 만나야 해. 뭐하면 파툼을 확보해서 튀는 방법도 있고.”
틸라의 아공간도, 악의 비상도 있다.
제국과 프런티어에 제아무리 날고 기는 강자가 많다 한들 도망 정도는 칠 수 있겠지.
“지금 정해야 하는 건 한 가지야. 전장으로 향하기 전에 종말의 예언의 후반부에 있는 늑대와 뱀…… 펜리르와 요르문간드를 처리해 성역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뒤로 미루느냐.”
“먼저 성역에 가는 게 나을 듯해요. 헬에게서 무슨 얘기를 듣든, 아니면 무엇을 얻어 내든, 신들과 얽힌 일을 먼저 푸는 쪽이 오빠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예민이 영향력이라는 말을 입에 담자 틸라가 그녀를 돌아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의 영향력으로 두 국가 간의 전쟁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저도 몰라요,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특히 제국은 신들과 시스템에 관련해 감추고 있는 게 많은 것 같으니까. 제국의 수뇌와 접촉하기 전에 이쪽의 패를 하나라도 늘리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물론 기준도 본인의 존재로 전쟁을 멈출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지만 상당 부분 예민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시스템, 프런티어 왕국에서 제국을 치려고 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빛의 용사를 선출하는 시스템이나 신들과 접촉할 수 있는 성역을 제국이 관리하는 이상 프런티어가 이 대륙의 주도권을 확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 과연 제국을 무너트린다고 해서 소환자들이 시스템을 제 뜻대로 할 수 있느냐가 궁금해지는데, 글쎄…….
“어라?”
생각을 거듭하던 기준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제국을 무너트리고 싶어 하는 이유가 시스템 때문이라면, 혹시 프런티어가 가장 먼저 노리는 곳은…….”
“성역?”
눈을 깜박이며 동조하는 틸라.
점점 더 여유가 없어지는 느낌에 기준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좋아, 예민이 말대로 종말의 예언을 먼저 해결하는 게 좋겠어. 만약 성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퀘스트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니까…….”
“말 나온 김에 바로 펜리르에 도전하는 건 어때? 저번에 다 잡을 기회를 놓쳐서 아쉬웠잖아.”
“민아, 괜찮겠어?”
“네, 그야 물론…….”
그러나 그녀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말을 덧붙이려던 순간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길드 마스터, 돌아왔구나!”
“응? 당신…… 아.”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최강, 기준과 예민에 이은 마지막 문명 대표로 테라 길드에 속해 활동하고 있으며, 덤으로 예민에게 반한 무수한 남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당신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길드에 들어왔는데!”
“길드 운영에 문제는 없었을 텐데요. 이 대륙에서 원정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는 일이 드문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무슨 일이죠?”
“우리 길드에서도 전쟁에 참여하자고!”
예민은 순간 기준을 돌아보며 정말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최강을 돌아보며 한층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 파티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아니, 길드를 이끄는 건 마스터지만 그게 구성원들의 뜻을 모조리 깔아뭉개도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 전쟁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우리 길드원들 모두 그 얘기로 달아오르고 있었거든?”
강한 어조로 주장하는 최강.
“당신, 진짜 마스터한테 무례한 것도 적당히……!”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낸, 아까 예민에게 보고를 올렸던 여자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잡아당겼으나 문명 대표로서의 힘은 갖추고 있는지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만의 뜻이 아니라 길드원 전체의 의지다. 이대로 미적거리고 있으면 다른 놈들한테 뒤쳐져. 전쟁은 곧 기회다, 나서서 기회를 잡아야 할 것 아냐!”
“기회? 제국과 최전선의 소환자들이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우리 길드가 어떻게 기회를 잡는다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예민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대꾸하며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길드원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코르의 던전조차 모두 정복하지 못했잖아요?”
“길드원들…… 이라기보단, 소환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 길드 전체에 퍼지고 있는 얘기가 있기는 해요. 아까 드린 보고서에…….”
뜻밖에도 최강의 말을 부정하지 않은 여자가 예민에게 눈짓을 했다.
그제야 아까 렉투스가 찾아오는 바람에 전쟁과 관련된 보고를 미처 다 듣지 못했음을 떠올린 예민이 보고서를 파락파락 넘겨 뒷장을 찾아내니, 그곳에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소환자들을 레타 대륙으로 소환한 것은 티란누스 제국이며, 프런티어 왕국은 그런 제국으로부터 소환자들을 해방하고자 제국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
“제대로 작정했네.”
“심지어 멋모르는 이들이 그대로 믿어 버리기 쉬운 내용이기까지.”
이미 어둠의 진영과도, 또 신들과도 몇 번씩이나 연관되어 큰 퀘스트를 치른 기준 입장에서는 결국 제국도 무대의 인형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래도 프런티어 왕국은 단순히 제국을 공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전 대륙의 소환자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까지 시도하는 모양.
심지어 제국을 대표하던 ‘선’, 빛의 용사 파툼까지 프런티어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니 더더욱 그들의 주장에 힘이 실릴 터였다.
“이건 제국이 한 방 먹었네요.”
“어쩌면 프런티어 측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마탑에 미리 간섭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야.”
“너흰 다들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냐!”
소문의 전모를 알게 된 파티원들이 거기에 동조하기는커녕 쓴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분위기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여긴 최강이 분노하며 외쳤다.
“이대로 그 티라노사우르스 제국에 놀아나고 싶은 거냐고! 아무리 봐도 놈들이 수상하잖아!”
“제국이 수상한 건 맞지만, 정말로 제국이 소환자들을 소환한 거라면 지금보다 놈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소환했겠지. 제국 취향의 인재를 미리 골라낸다든가.”
기준이 딱 잘라 대꾸하자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 최강이 순간 읏, 하며 뒤로 반 발짝 물러나더니 말했다.
“이 기생오래비처럼 생긴 놈은 누구야?”
기준은 그 말에 새삼 자신의 맨얼굴이 드러나 있음을 자각했다.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가면을 벗고 있었던가.
어차피 파티원들밖에 없는 자리라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아, 이렇게 오빠의 맨얼굴의 가치가 내려가는구나. 이제 오빠가 가면을 벗든 안 벗든 다들 그러려니 하게 될 거야……! 기껏 가면을 쓴 고고한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혜 누나…….”
“이분은 제가 속한 파티의 리더예요.”
한숨을 내쉬며 대꾸한 예민이 기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뭐라고?!”
“당신, 능력이 좋은 편이라 놔두고 있었지만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내 길드에서 나가.”
아무렇지 않게 기준에 대한 간접적인 고백을 해치운 예민이 경악해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최강은 바라보지도 않고 그 옆에서 최강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여자에게 지시했다.
“길드원들을 모아 주세요. 어쩌면 저 바보와 동조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길드를 나갈 거면 나가더라도 자신들이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알려 줘야겠죠.”
상황이 조금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길드원들을 소집해 전체 공지를 하고 길드원 가운데 2할 가까이가 최강을 따라 길드를 탈퇴한 후였다.
이런 일이 테라 길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더욱 치명적이었다.
단순히 나쁜 소문이 도는 정도가 아니라, 레타인과 소환자들 전체의 대립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