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0)
나 빼고 다 회귀자-280화(280/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80)
Chapter 53. 끝의 시작 – 5
루멘 파티는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래는 펜리르의 송곳니와 요르문간드의 부산물을 더해 장비를 만들고 파티 전력을 보강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 그러지 못했다는 것.
‘급하게나마 혈독이라도 모두 얻어 다행인가.’
피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로라는 물론이고, 긴 역시 탄환에 독성을 담아 쏘아 낼 수 있게 됐으니 전력이 껑충 오른 셈이 되었다.
암살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며 적의 급소를 노리는 은신과 독의 조합은 뭐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겠고.
“다들 배부르게 먹었지?”
“네!”
“상황을 봐서 바로 모약과를 먹으면 되는 거겠죠.”
오늘의 요리 세팅은 돈까스 덮밥이다.
파티원들 전원이 먹는 것으로 발할라가 부여하는 재생력의 무려 34%를 외부에서도 적용받을 수 있게 되는, 에인헤랴르들이 이 돈까스 덮밥을 먹었으면 혹시 라그나로크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은 기적적인 음식.
이것으로 일단 정신없어질 것이 뻔한 전장에서 생존을 확보하고, 결정적인 순간― 자신보다 아득히 강한 누군가와 대치하게 되었을 때, 모약과를 복용해 모든 능력의 30% 증폭 효과를 누리며 적을 상대한다.
물론 모약과에는 적이 상태 이상을 걸어 와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 기준 일행부터가 평타로 상태 이상을 걸고 다니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티란누스와 프런티어의 전사들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충분히 주의해야 돼, 계약자. 그들은 악도 어둠도 아니고 언데드도, 몬스터도 아니고, 하물며 용종도 아니며 계약자보다 거대하지도 않아. 물론 신격도 아니고. 계약자가 연달은 두 신수와의 싸움에서 본래보다 월등한 힘을 낼 수 있었던 요인이 모조리 가로막혔다는 사실, 잊지 말고 명심해.
“주의할게.”
루시에게 얘기를 들으니 새삼 원래 그가 적용받고 있던 칭호 효과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 것 같았다.
스스로 말하기도 낯간지럽지만 그가 보유한 칭호들은 어둠에 맞서 싸우는 빛의 용사에 더없이 어울린다.
애초에 다른 빛의 문명과의 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들에게는 같은 진영의 사람을 상대로 유효한 칭호도 여럿 있을 거야.”
그때 틸라가 무심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니 다들 주의해. 방심하지 말고, 혹시라도 싸우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죽여.”
“물론이죠.”
빛의 진영과의 전투가 익숙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경고라도 해 줄 셈이었겠지만, 놀랍게도 이곳에 있는 멤버들은 원래 어둠의 진영과의 전쟁보다는 같은 사람과의 분쟁에 더더욱 익숙한 이들이었다.
단지 싸우는 대상이 그들보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고 강하다는 게 문제일 뿐.
“다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 전투는 최대한 피할 거고, 애초에 우리 목표는 대화뿐이니까. 그렇지, 렉투스?”
“물론 그렇지만 이런 무서운 배를 타고 가야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그라티아 왕궁 외부에 선박해 있는 유령선―나글파르에 호위 기사 몇 명과 함께 몸을 싣고 있는 렉투스가 당장에라도 탈출하고 싶은 표정으로 외쳤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정식으로 제국군에 합류하든가.”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이 망령들은 정말 우리를 해치지 않는 건가? 애초에 이런 배를 타고 전장에 난입하면 어딜 어떻게 봐도 어둠의 진영의 공습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걱정하지 마, 어차피 우리는 성역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렉투스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이유는, 그야 물론 제국의 요구에 따라 전장에 나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혼자 달랑 제국으로 출두해 봤자 버림 패로 쓰일 것이 뻔하고, 애초에 제국이 그라티아에 괘씸죄를 부여한 까닭은 용사 파툼이 그라티아에서 있었던 일로 흑화했기 때문이니.
렉투스가 전장에 출두해 파툼과 관련된 사태를 해결하기만 한다면 제국도 더는 트집을 잡지 못하지 않겠는가.
현지의 마탑 소속 마법사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낸 율영의 말에 의하면 파툼은 전쟁이 소강 상태에 이른 그때 제국의 몇몇 엘리트들과 함께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고 하니, 신들에게 놀아났음을 깨닫고 흑화해 버린 그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기준이 굳이 그라티아에 들러 렉투스를 배에 승선시킨 이유는 그래서였다.
결코 그의 존재조차 까먹고 있던 찰나 퀘스트를 수행할 생각이 없냐는 독촉이 테라 길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신수다 성역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파툼까지 잊어먹고 있었는데 렉투스를 기억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쨌든 어찌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렉투스가 제국에 엿을 먹지 않게 된 것만은 다행이었다.
“프런티어의 최종 목적지가 성역이라는 건 얼추 알겠지만…… 애초에 성역을 무너트린다고 시스템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는 있는 걸까?”
“모두 부순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전혀 불만을 갖지 않겠지.”
준비를 마친 파티원들을 유령선에 승선시키며 문득 기준이 중얼거린 말에 율영이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프런티어의 수뇌는 이미 소환자로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을 모조리 얻은 이들이야.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게 뭘 것 같아?”
“티란누스 제국?”
“그리고 무섭게 성장하는 신예 소환자야. 준, 너 같은 영웅 말이야.”
―끼에에에엑! 내 모자!
유령선의 선장, 방패를 든 노인 흐림(Hrymr)의 선장 모자를 괜히 빼앗아 본 율영이 그 모자에 보호 마법을 걸어 다시 녀석의 머리 위에 씌워 주고는 말을 이었다.
“자신들이 빠르게 성장해 정상을 차지한 만큼 저들은 경쟁자를 누구보다도 싫어해. 성역을 부수는 것만으로 정말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면 제국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경쟁자가 늘어날 일도 없어지겠지. 어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명확해지지?”
“확실히 그렇네.”
어둠의 진영과 이 세상의 경계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에 대한 대비가 놀라우리만치 미흡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지능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슬퍼질 정도로 미련하지 않은가.
“가자.”
―우리의 주인께서 출발하자고 하신다! 닻을 올려라!
―흐히히히히힛! 출항이다, 출항! 라그나로크다!
―모든 것의 멸망이 다가온다!
“…….”
나글파르는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속도도 굉장히 빠르며 은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레전더리 등급의 망령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훌륭한 유령선이었으나 생긴 것은 물론이고 구성원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재수 없는 것이 옥의 티였다.
―목적지는 성역! 우리의 여신께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삼부카의 선율이 울려 퍼진다.
허공에 생겨나는 흐릿한 타원형의 게이트, 그 너머로 뻗어 나가는 가상의 통로.
파티원들이 결사적인 표정을 짓고, 렉투스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가운데.
비로소 유령선이 게이트를 통해 허공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얼마나 가야 하는 건가!”
“글쎄, 한 10분?”
“농담이겠지? 그라티아에서 제국까지는 와이번으로 날아도 일주일 이상은 걸리는데!”
렉투스는 원래 기준과 파티원들을 대동하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제국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되면 제국의 통제를 받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해서 기준이 제시한 방법에 따르기로 했던 것인데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절대 그의 말에 따르지 않았으리라…….
“지혜, 방어막 캐스팅할 거야.”
“네!”
“고유 영역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쓰지 마, 그건 최후의 수단. 안 그래도 오늘을 위해 단단히 준비해 왔으니까 일단 나를 믿고 맡겨.”
종말의 예언은 한 치의 어김 없이 그들을 헬의 눈앞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곳은 성역의 중심, 원을 그리며 서 있는 거대한 비석들이 지키고 있는 돌제단.
아마도 그곳을 통해 헬뿐만이 아닌 다른 신들이 지상에 모종의 간섭을 해 오는 것이리라.
제국군이 수호하는 곳도, 프런티어가 목적으로 하는 곳도 그곳일 테고.
그들이 탄 유령선이 갑자기 그곳에 나타나면, 모르긴 몰라도 헬과의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무수한 공격 세례가 이어지지 않겠는가.
“마법사는 원래 제 영역에서 싸우는 존재. 지혜 너도 지금 잘 배워 두도록 해.”
“오오, 밑에서 거대 로봇이 튀어나올 것 같은 비주얼이네요……!”
그것을 예상하고 기준은 원래 나글파르를 대상으로 고유 영역을 펼칠 생각이었으나 율영이 그것을 막았다.
자신이 어떻게든 해 보겠다면서 마탑을 털어 마련한 온갖 귀한 재료들을 동원해 며칠간 틈틈이 나글파르에 마법진을 새기더니.
지금 지혜와 함께 마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선체 곳곳에 새겨진 마법진이 일제히 발광하며 반투명한 자색의 원형 보호막을 거대한 배 전체에 덧씌우고 있었다.
빛무리의 중앙에 선 채 스태프를 쥐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율영을 보면 새삼스럽게 그녀가 칠현자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역시 제법 쓸 만한 애네. 공간 계열의 깨달음이 있어서 그런가.
“오래 버텨 주면 좋겠는데.”
율영과 지혜의 마법 영창이 완료되어 갈 즈음 타이밍 좋게도 통로의 끝이 보였다.
놀랍게도 출구 부근을 향해 무수한 마법과 공격 세례가 날아들고 있었는데, 역시 대륙의 최정예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삼부카를 동원한 공간 이동마저 미리 감지하고 그것을 막아 내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후후, 우습네요.
만약 삼부카라는 이름을 얻기 전의 하프였더라면 공간 이동이 그대로 취소되어 유령선째로 중간의 어딘가, 어쩌면 제국 한복판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준과 정식으로 계약하고 힘을 얻은 삼부카는 공간 이동을 방해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자신이 얻은 권능으로 무력화하며 출구를 개방했다.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출구 너머, 새하얀 세상으로 유령선이 돌진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그곳은 설국이었다…….”
“할 것 같더라.”
기준이 레타에 떨어진 지도 곧 1년이 된다.
처음 그라티아에 도착했을 땐 초봄의 날씨였는데, 아마 제국은 그라티아보다 계절이 좀 늦게 찾아오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눈보다도 그 눈과 비슷한 숫자만큼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들이 더 중요했다.
“언데드?!”
“일단 공격해!”
“성역을 향해 돌진하고 있어―― 뭐야, 왜 저렇게 빠른 거지?”
나글파르는 원래 빠르지만 지금은 삼부카의 선율의 효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 속도에 버프를 얻고 있는 것이 더욱 컸다.
가뜩이나 눈 탓에 시야가 어지러운데 사방에서 날아드는 마법과 활 따위의 공격 탓에 이미 제대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
기준은 자색의 방어막 곳곳이 출렁이는 것을 보며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직은 그것이 버텨 주고 있었다.
“제국 놈들, 도와주러 온 것도 모르고 공격해 대네.”
율영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실시간으로 손에 쥐고 있는 각종 마법 재료들로부터 마나를 끌어모아 방어막을 보강하고 있었다.
“프런티어 측도 공격해 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최정예들은 나서지 않고 있네. 우리가 성역을 부수려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야 아무리 봐도 어둠의 진영 같으니까.”
기준은 방어막이 부서지는 대로 나서서 고유 영역을 발동할 생각으로 방패를 힘을 주어 쥐었으나― 기어이 방어막에 균열이 내달리던 그때, 돌연 나글파르가 한층 가속했다.
―오오오오오오! 여신이시여! 여신의 기운이 느껴진다!
―지금의 주인과 만난 것은 역시 운명이었구나! 오롯이 죽음이신 그분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고 계신다!
갑자기 들떠 소리 지르는 망자들.
기준도 돌연 제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그곳에 보였다.
스톤헨지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비석들로 보호를 받는 제단의 정중앙, 그로부터 수직으로 수백 미터가량 상공에.
몸의 절반은 소녀, 절반은 노파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여인의 환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의 강림?!”
“조건이 갖춰지지 못하면 결코 불가능한 일인데, 대체……?”
“머, 멈춰라! 지금은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냐, 헬은 분명 어둠의 진영 측의 여신이란 말이다――!”
여신의 정체를 알아본 제국 측에서 동요했으나 프런티어 측은 그것을 오히려 좋은 기회로 여겼는지 그들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거대한 여인의 환영― 헬이 입을 열어 말했다.
―설마 정말로 이 단기간에 내가 요구한 것들을 모두 해낼 줄은 몰랐군, 빛의 용사 기준.
그 순간 전장이 멈추었다.
발악하며 소리 지르던 제국군도, 그런 제국군을 몰아붙이던 프런티어도.
그들을 각각 통솔하던 드라코니안들도.
모두가 제단에 이른 유령선을, 그 안에 승선하고 있을 기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