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9)
나 빼고 다 회귀자-289화(28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289)
Chapter 55. 길드 확장 – 4
―이번에도 대국민 오디션 하는 거야?
“아니, 파티원 모집도 아닌데 뭘. 그리고 저번에도 대국민은 아니었어.”
기준은 길드 하우스 근처로 몰려든 인파를 내려다보며 루시의 말에 답했다.
“간단한 면접 정도는 하겠지만. 제국이나 프런티어 측에서 보낸 첩자일 수도 있고.”
“면접 정도로 그걸 전부 걸러 내기는 힘들 거예요. 당장 첩자가 아니라고 해도 순수하게 호의나 존경심만으로 우리 길드에 가입하려고 하는 건지도 알 수 없고.”
대규모 집단을 이끌어 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사람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은 장본인인 예민이 다소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오빠가 지금 대륙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존재인 건 사실이에요. 어쩌면 제국도 오빠가 전전대 용사인 베아트리체와 함께만 아니었어도 공식적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내보냈을지도 몰라요.”
“더욱이 그라티아 왕궁의 정보부에서 알아본 바로는 프런티어에서 이미 대대적으로 귀공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지.”
“렉투스, 너는 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여기 끼어 있는 거냐?”
“잘 물어봤다.”
기준의 태클에 렉투스가 용안을 번뜩이며 대꾸했다.
“제국은 이미 그라티아에 귀공과 테라 길드의 축출을 요구한 상황. 설령 불상사가 있어 그 집행이 다소 미뤄지더라도, 그 기간 동안 그라티아가 귀공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해서 부득이 내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
“아, 그래. 우리 그라티아에서 나갈 때 또 이상한 변명 만들어 가면서 따라오지만 마라.”
“큭……!”
아직까지도 예민을 포기하지 못하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렉투스가 솔직히 성가시긴 했지만 제국의 견제를 받으면서까지 테라 길드와 좋은 인연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는 그라티아의 의지에 감사하기도 했다.
“어쨌든.”
자신의 말을 끊은 렉투스를 일별하지도 않고 차가운 태도로 말을 잇는 예민.
“오빠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레타인과 소환자를 불문하고 넘쳐 난다는 얘기에요. 물론 그날 오빠의 모습은 정말로 영웅적이었지만― 그런 만큼, 오빠한테 달라붙는 것으로 떨어질 콩고물을 원하는 사람도 많겠죠. 특히 신수라든가.”
“비경이라든가.”
“혹은 성유물.”
“종말의 예언 버프는 이제 끝인데 말이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목소리에 절로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전 대륙에 송출한 두 개의 영상의 파급력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는 한데…….
그럴듯한 칭호나 명성 따위를 바라고 몰려들었다가 기준의 실체를 깨닫고 떠나갈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가 웃자 예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빠의 뜻에 동참할 사람이 아니면 곧 제멋대로 이탈할 거예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당장은 도움이 되겠죠. 제국이나 프런티어에서 보낼 무력 부대와 상대하는 데에는…….”
“으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요, 오빠. 설마 언제까지고 오빠가 모두를 지킬 생각은 아니죠? 애초에 우리가 덩치를 불리려던 건 집단과 맞설 힘을 얻기 위해서였잖아요? 그리고 전투의 규모가 커지면, 희생은 필연적이에요.”
끽 소리도 낼 수 없는 정론.
기준이 자신과 엮여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길 원치 않았더라면 애초에 길드니 확장이니 엄한 소리를 하지 않고 그가 지킬 수 있는 작은 범위의 사람들만 지켜야 했다.
언제나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예민의 모습에 다소 거리감을 느껴 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집단의 장이 된다면 그녀처럼 사고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오빠는 괜한 걸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이것만 생각해요. 오빠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미 그 과정에서 발생할 피해를 감수하고도 오빠를 도와주고 싶으니까 따라가는 거예요. 그러니 오빠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꺼려, 정작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오히려 그 사람들을 배신하는 게 되는 거죠.”
“말이 제법 세네.”
“오빠는 능력은 출중한데 여태껏 사람 위에 서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음, 그렇다기보단 늘 집단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어떤 식으로든 기준의 단점을 지적하고 싶지 않은 비체가 인상을 찡그렸음에도 예민은 기가 죽는 일 없이 당당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오빠한테 부족한 부분은 제가 채워 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빠는 주저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요. 그냥, 본격적으로 집단이 커지기 전에 이 부분을 꼭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어요.”
“……그래.”
예민이 이렇게까지 말해 주는데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내고 싶지 않은데’ 같은 말로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겠지.
따지고 보면 먼저 제국과 왕국을 도발한 것은 기준이다.
이미 개인의 범주에 놓고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서 자신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부터가 만용.
1회 차 튜토리얼에서 그가 실패했던 것도 모조리 혼자 짊어지려고 했던 탓이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일개 파티의 멤버였던 그 당시보다, 파티를 넘어 길드, 혹은 그보다 더 큰 집단의 장이 된 지금에서야 그는 타인과 짐을 나누는 방법을 자세히 배우게 된 것이다.
“아―― 그리고 또.”
여태껏 씩씩하게 말을 늘어놓은 주제에 묘하게 말을 질질 끄는 투로 예민이 말했다.
괜히 다른 사람 눈치를 한 번씩 본 그녀가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말을 하는 것처럼 그에게 제안했다.
“길드 마스터 변경이 조금 갑작스럽게 이루어졌잖아요? 사실 오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길드를 만들어도 전혀 문제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일단 충성심이 높고 지구인 비율도 높은 테라 길드를 쭉 데려가는 게 유리하니까.”
“그건 당연하지.”
“그러니까 그……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공식 석상에서는 오빠와 제가 조금 더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다들 납득하기 편하지 않을까요……?”
“어이.”
방금 태클을 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지혜였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어쩌면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예민이 살벌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자 힉, 소리를 내며 테이블 밑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다.
“과연, 여자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뻔뻔해질 수도 있구나…….”
“그냥 길드 해체하고 처음부터 만들지? 파벌이 나뉘면 괜히 반목을 일으킬 수도 있잖아.”
그러나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반대 의견.
물론 예민은 그런 반발까지도 예상하고 그들을 꺾기 위한 대사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놀랍게도 거기서 다시 끼어든 것이 바로 렉투스였다.
“반발? 별걱정을 다하는군. 애초에 예민 양이 길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준이 국왕 폐하와 담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민 양의 공적을 세운 그랜드 퀘스트는 아예 준이 나서서 이끌었던 것과 다름이 없고, 왕궁과 준의 관계를 보면 테라 길드가 어째서 지금까지 그라티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는지 모르는 쪽이 문제지.”
“그렇긴 합니다만 사람이 늘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길드 마스터를 준 씨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물론 그렇소만.”
예민의 비서가 하는 말에 렉투스 역시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대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길드 마스터를 바꾸는 일인데 애초에 불만이 아예 안 나올 수는 없소. 어차피 테라 길드는 이번에 대폭 확장하고 개척지로 떠나게 될 텐데, 거기에 불만을 품는 이도 있을 것 아니겠소.”
“그건…….”
“길드 마스터의 변경과 더불어 변화하는 환경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기에 오히려 이번 기회에 길드 마스터까지 확실하게 바꾸는 것이 잡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보오. 특히 지금의 길드 마스터가 준의 파티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여자를 상대로는 언제나 다소 이상한 말투를 구사하는 렉투스였으나 말 자체는 그리 틀리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하든 떠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남은 이들은 준의 카리스마로 휘어잡을 수 있으리라 장담하오. 내가 보기에 당장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당신인 것 같은데.”
비서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누구보다 예민에게 매료된 것도 그녀이고, 당장 기준이 송출한 영상을 보며 그의 위엄에 전율하기보다는 앞으로 무수한 위기를 겪을 것이 뻔히 보이는 그와 함께하면 예민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그녀였으니까.
“다 함께 도약할 때가 온 것이지. 기회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위기가 두렵다고 주저앉는 사람은 버리고 가면 그만이오.”
누가 왕족 아니랄까 봐 다소 귀족적인 사고 방식으로 냉정하게 끊어 내듯 말하는 모습이 다소 예민과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런 생각을 읽어 내기라도 했는지 예민이 기준을 살짝 째렸다.
“게다가 파벌? 파벌은…… 까놓고 말해, 이번에 테라 길드에 보충될 전력은 지금 테라 길드가 갖춘 정예들을 월등히 뛰어넘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파벌 따윈 걱정할 필요도 없을 거요. 살아남으려면 지들끼리 으르렁거릴 틈에 단련을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낫겠지.”
이럴 수가, 렉투스가 도움이 되다니……?!
전율하는 기준을 째린 렉투스가 문득 표정을 바꾸어 웃었다.
“사실 비장의 정보가 하나 더 있다만.”
“어떻게든 안 쫓겨나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구나…… 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쓸데없이 예리한 지혜가 입을 다무는 가운데 렉투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준, 귀공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는 얼마나 되지?”
“포인트? 레타 포인트 말하는 거야?”
렉투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 포인트 상점을 업그레이드한 이후로는 포인트를 쓸 일이 없어 계속 쌓아 두기만 했었는데…… 말을 들은 김에 상태창을 열어 하단에 시선을 돌리니 어느덧 레타 포인트가 3,850만씩이나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퀘스트나 칭호, 업적 보상 등으로 얻은 것 이외에도 강한 몬스터들을 사냥할 때마다 소량으로 포인트를 얻어 온 것이 쌓여 이렇게나 모인 것.
사실 그 밑으로 스킬 포인트가 33 쌓여 있는 것도 보였는데…… 어지간한 스킬은 모두 자력으로 성장시키고 있으니 대체 어디에 포인트를 써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아껴 두었다가 정말로 결정적인 순간, 자력으로는 더 성장시키기 힘든 스킬을 성장시키는 데에 쓴다면…….
아니, 그래도 포인트로 올릴 수 있는 것은 스킬 레벨뿐, 진화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
“준?”
“아, 3,850만이야.”
“…….”
렉투스의 부름에 사실대로 답하자 잠시 시간이 멈추었다.
렉투스는 물론이고 여태껏 그와 함께했던 파티원들도 설마 그가 이렇게까지 포인트를 많이 모았으리라곤 짐작도 못 하고 있었던 것.
“그, 그러면 별문제 없겠군.”
렉투스가 다소 경직된 얼굴로 말했다.
“이미 첫 번째 문명 스킬을 개방했다고 들었는데.”
“맞아. ……첫 번째?”
“음, 그라티아도 이미 수십 년 이상 소환자들과 접촉하고 때로는 감시, 관리해 왔다. 약소 문명에 주어지는 특권이나 문명 대표의 권한 등도 파악하고 있지.”
벌써부터 렉투스가 할 말을 깨달은 기준이 눈을 빛냈다.
렉투스는 그의 생각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5천만 포인트를 모으면 두 번째 문명 스킬을 개방할 수 있다. 테라 길드의 주 구성원은 지구인이지? 적어도 그들의 지지를 얻기에는 충분하지 않겠나.”
……원래 약소 문명은 워낙에 약하니 저들끼리 힘을 모아 함께 레타 포인트를 쌓아 문명 스킬을 획득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개이기는 하지만, 기준이 쌓은 포인트가 워낙 많으니 지구인 출신 파티원들로부터 각출하면 어렵지 않게 5천만 포인트를 모을 수 있겠지.
렉투스는 굳이 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준이 호구 같아 한심했지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여성 대부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점이 인기의 이유인가 싶어 또 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