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03)
나 빼고 다 회귀자-303화(303/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03)
Chapter 58. 문명 이벤트 – 3
기준은 스타트부터 워낙에 잘 풀린 탓에 잊어버리기 쉽지만, 본디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레타 포인트’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레타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온갖 편의 기능은 물론 생필품, 문명에 따라서는 문명 카테고리 상점까지 레타 포인트를 쓸 구석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소환자들은 포인트 상점에서 포인트를 소모하는 것까지는 차마 바라지도 못했다.
1년마다 한 번씩 레타 포인트로 내야 하는 세금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이 세금을 맞추기 위해선 약한 몬스터 몇 마리 잡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강한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잡거나 던전을 여럿 클리어하거나 업적을 세우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소환자에게는 이 역시 어려운 일이니 결국 남는 것이 NPC, 즉 레타인들에게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준을 따라 테라 길드에 합류한 소환자들이 고려해야 하는 것은 비단 미개척지가 갖는 위험성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레타인들과 엮일 일이 없어 퀘스트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만큼 기준과 함께하며 얼마나 많은 레타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만 했던 것.
물론 이미 먼 과거에 세운 업적들로 향후 몇 년간은 세금이 면제된 기준은 이런 걱정까지는 미처 공감해 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문명 이벤트는 참가만으로 많은 레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어요. 포인트가 적은 일반 소환자들 입장에서는 놓치기 힘든 기회예요.”
“위험한 함정인 게 뻔히 보이는데도 발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참 악질적이네.”
“발을 뺄 생각도 없으셨으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우니카.
기준은 그녀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그는 대량의 소환자들이 참여하는 이번 이벤트를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위험한 놈들은 맞상대하면 되고, 끌어들일 가능성이 보이는 놈들은 길드로 끌어들일 수 있다.
더욱이 시스템이 주관하는 대형 이벤트인 만큼 보상도 확실할 텐데, 아무리 노골적인 함정이라도 이만큼 탐스러운 보물이 있다면 넙죽 올라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길드원들은?
솔직히 말해 대부분의 전력이 레어, 하다못해 언커먼 등급인 사람들도 있는데 위험한 곳에 일부러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내 방어 능력이 대단해도 수만 명의 길드원들을 모조리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겠지.
하물며 그들은 이미 미개척지의 위험을 감수하고 기준을 따라나선 사람들이니 겁을 먹고 물러서는 일도 없을 터다.
“어쩔 수 없나, 멤버들 전원에게 공지하고 참가 희망자를 선별하되 위험성을 주지시키는 수밖에…….”
“문명 이벤트는 시스템이 주관하는 행사이니 곧 소환자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길드 입장에서는 그 전에 알려 두고 입장 정리를 하는 게 좋겠죠.”
“그러고 보니 아직 시스템 메시지도 없는데 문명 이벤트에 대해선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건…….”
우니카가 시선을 돌리자 그쪽에 있던 율영이 부끄러워하면서도 한 손을 들어 보였다.
“마탑에 있는 애들이 알려 주더라고.”
“율영이 너무 유능해……!”
“큼, 이게 칠현자야, 칠현자. 아내 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여자!”
자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깨를 펴는 율영을 지금만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체의 기준 독점 기간.
기준에게 자기 어필을 하는 율영을 쏘아본 비체가 흥,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국이 의도한 거겠지. 문명 이벤트는 소환자들의 축제니까 제국보다는 프런티어 뜻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잖아? 아마 놈들은 우리가 멋대로 프런티어와 충돌해 양측 세력이 줄어드는 걸 가장 바라고 있을 거야.”
“지나치게 악의적인 해석 같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참…… 가만, 문명 이벤트에 레타인은 아예 참석할 수 없는 거야?”
그러면 당장 율영부터 참가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율영을 바라보니 그녀는 굉장히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 소환자야. 어렸을 때 소환돼서 전쟁에 패배하고 노예 신세가 되려는 걸 마탑 덕분에 구제된 케이스.”
“그런 마탑에 똥을 뿌리고 나온 건가.”
“또, 똥이라니! 솔직히 여태까지 해 줄 만큼 해 줬거든!”
버럭버럭 화를 내는 율영의 말을 듣다 보니 또 다른 부분도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소속된 문명은 없는 거지?”
“마탑에 소속된 소환자인 거지.”
“그럼 문명 이벤트에는 어떻게 참가해? 소속된 문명이 없는데 참가할 수 있는 거야?”
그 문제는 율영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틸라는 자신이 문명을 대표하는 입장이니 동료가 없어도 괜찮지만, 로라 또한 이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문명과 레타인의 혼혈이고, 렌카 또한 전쟁에서 패배한 문명 소속이니까.
“그건 문제없어. 문명 이벤트는 어디까지나 소환자이기만 하면 참가 가능하고, 길드 단위로 참가하는 거라면 그 길드에 소속을 두면 되니까. 모르긴 몰라도 시스템은 그렇게 참가 인원이 늘어나는 쪽을 더 선호할 거야. 그쪽이 더 엉망진창일 테니까.”
“시스템에 대한 악의만 나날이 늘어가고 있구나…….”
참가 자격 문제는 해결됐다.
비록 완전한 레타인이라 이벤트에 참가하지 못하는 우니카가 우울해하고 있었으나 이것만은 기준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핫, 저와 준 님의 아이라면 문명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왜 그런 헛소리를 하면서 명안을 떠올렸다는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네.”
다행히도 우니카가 괘씸죄로 집단 린치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 이상으로 훌륭한 샌드백이 곧 나타났기 때문이다.
“저기…… 회의 중이시라고 들어서 왔는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셋이서 나란히 얼굴을 붉히고 들어오는 지혜와 은신, 렌카의 모습에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잃고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들 딴에는 숨길 생각이겠지만 이미 사소한 몸짓이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 따위가 그들의 관계를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늘 틱틱거리던 지혜와 렌카도 묘하게 사이좋아 보이는 것이 구체적인 상상을 하기 싫어도 하게 만드는데…….
“축하해.”
무표정한 얼굴로 예민이 먼저 박수를 쳤다.
1회차 튜토리얼 시절만 해도 모든 이의 동경의 대상, 절대적인 아이돌로 군림하던 그녀가 하루 만에 짝사랑하던 오빠, 이어서 동생과 친구에게까지 뒤처진 상황.
감히 비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지금의 그녀에게 태클을 걸 수 없었다.
“축하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체에게 날아드는 관심을 다른 이에게 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설령 친동생보다 아끼는 동생이라도 아낌없이 희생할 준비가 된 기준 또한 그녀를 따라 박수를 쳤다.
“축하해!”
“축하해요.”
“축하해.”
“축하해!”
영리하게 기준의 의도를 파악한 비체를 시작으로 다른 여성진까지 일제히 박수를 치자 기어이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그들이 폭발했다.
“하지 마요 무서워!”
“최종화 아니거든요! 이제 막 시작인데!”
“순수하게 축하해 주는 건데 왜 그래.”
“어디 가서 쉽게 못 할 경험이잖아. 축하해.”
“그마아아안!”
솔직히 기준으로선 지혜가 어떻게 은신에게 고백하고, 렌카까지 포함해서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커플이 성립되기 전까지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더는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셋이었던 이유는, 첫 번째가 누가 될지를 끝내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 문명 이벤트에 대해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넵.”
농담으로 위장한 회심의 어프로치를 완전히 무시당하고 살짝 열 받은 우니카가 예민과 비슷한 무표정으로 나서서 소란을 진정시켰다.
“중요한 것은 이번 문명 이벤트가 펼쳐지는 장소입니다.”
“미개척지라며? ……혹시 우리 거점과 가까운 장소가 선정되었다든가.”
“아닙니다. 길드의 거점보다 한참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완벽한 오지입니다.”
“그런데 참가를 어떻게 해. 설마 그 좌표까지 도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이벤트, 뭐 이런 건가?”
그 말에 대꾸한 것은 우니카가 아닌 율영이었다.
“아니. 마탑에서 좌표를 얻었어. 참가비를 낸 이들은 모두 마탑의 게이트를 통해 그 장소로 이동하게 될 거야.”
기준은 어째서 마탑이 이번 이벤트의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었던 것인지 그제야 완벽히 깨달았다.
굳이 말하자면 마탑은 참가자가 아닌 운영진 측이었던 것.
이러면 제국은 완전히 이번 건과 관련이 없어지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혹시나 해서 묻는데 그 과정에서 제국이 마탑을 억압해 헛수작을 부릴 가능성은 없어?”
“아무리 제국이 막장이라도 그 정도는 아냐. 더구나 지금 마탑이 제국의 간섭을 받는다지만 그 정도로 무너진 것도 아니고.”
“그럼 딱히 문제될 게 없는 것 아냐? 다들 똑같은 입장에서 참가하는 거니까. 아, 혹시 우리가 미리 그 좌표로 가면…….”
“시스템이 우리를 처벌할 구실을 주는 격이지.”
“역시 그렇겠지.”
그 부분에서 우니카가 헛기침을 했다.
기준을 비롯한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가 미약한 한숨을 토해 낸 후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는 이미 문명 이벤트를 여러 번 겪은 분들이 계실 텐데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말할 것도 없지.”
“장소 선정부터가 말도 안 되잖아.”
“그렇습니다. 문명 이벤트는 원래 레타 대륙의 정세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특수한 아공간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만 레타 대륙, 그것도 여태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한 미개척지에서 진행된다니요.”
“오.”
생각해 보면 새로 이 대륙에 진입하는 문명을 위해 튜토리얼 채널까지 만드는 것이 시스템의 힘이다.
이벤트만을 위한 아공간이 만들어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기는 했다.
기존의 문명 이벤트는 그 진행 과정이나 결과는 제쳐 두더라도 장소 선정만은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데 이번만? 역시 우리를 노리는 거 아냐?”
“가능성이 있습니다. 좌표상으로는 우리 거점과 굉장히 먼 거리에 있긴 하지만 이 대륙에는 어떤 신비가 잠들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이벤트가 진행되는 지역과 우리 거점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흠, 북유럽 신화 계통일지도 모르겠네.”
가장 정착하기 좋을 것 같아 링비 섬을 고르긴 했지만, 기준은 그 외에도 종말의 예언을 따라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와 관련된 여러 유적을 찾아냈고, 그것들 모두 미개척지에 있었다.
어쩌면 링비 섬과 이어지는 북유럽 신화의 유적이 이번 문명 이벤트의 무대가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 거점 위치는 프런티어에서도 곧 파악할 테고, 설령 우리 거점 앞으로 바로 텔레포트할 수 있어도 결국 거점 안으로 멋대로 들어올 수는 없고.”
비체가 씩씩하게 말하며 기준의 머리를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더구나 시스템은 지금 프런티어의 상태를 모르는 게 분명해. 내 생각이 맞다면 이번에 걔네는 우리 경쟁 상대가 아냐.”
“프런티어만 경계해서는 안 됩니다. 프런티어의 기조에 동의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문명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래, 하지만 괜찮을 거야. 우리가 제일 강하니까.”
“…….”
“포기해, 언니는 지금 지나치게 행복한 나머지 무한 긍정 상태에 돌입해 있어.”
우니카는 율영의 말에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비체의 가슴에 파묻혀 입을 열지 못하는 기준 대신 예민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길드원들에게 바로 상황을 알리고 이벤트를 준비하죠. 시스템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 전에 파티하자! 나랑 준이 이어진 기념 파티!”
“장례식 치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좀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