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05)
나 빼고 다 회귀자-305화(30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05)
Chapter 58. 문명 이벤트 – 5
―칭호 [배후 던전의 공략자(L)] 효과로 모든 능력이 20% 증가합니다.
―500명에 이르는 대집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칭호 [헬의 대리자(E)], [발할라의 주인(L)] 효과로 지휘 능력이 크게 증폭됩니다.
기준과 루멘 파티가 이끄는 명실상부 테라 길드 최정예 전력 500명이 가장 넓은 통로를 타고 미궁 안으로 진입한 순간, 그들 눈앞으로 일제히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살아있는 미궁에 진입합니다. 미궁 안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경우 포인트를 지불하고 퇴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퇴각 요청을 수리하는 데 딜레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신중히 판단하고 적시에 퇴각해야 합니다.
이런, 미궁에 진입하자마자 벌써 첫 번째 수작을 찾아 버렸다.
빛의 진영 측의 인력이 소모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정말인지 사람 목숨 따윈 파리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시스템 측에서 드물게도 퇴로를 마련해 놓은 것은 좋다 치고.
‘딜레이가 생길 수 있다고…… 하.’
이건 바꾸어 말하면 퇴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시스템 측에 트집을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레타인이나 소환자들과의 분쟁에선 공정하게 처벌을 가하고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거늘, 정작 그 시스템이 기준의 목에 낫을 드리우니 저항할 방도가 없었다.
그만큼 지난날 있었던 일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리라.
신수의 연속 사냥, 비체의 합류, 파툼의 정화, 헬의 포상…… 그리고 어쩌면 루시의 등장과 기준의 레전더리 등급 각성도 거기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죽지 않으면 될 일이지. 별동대가 잘해 주면 좋겠는데.’
은밀하고 강한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별동대는 수십 개로 쪼개진 테라 길드를 암중에서 호위하고, 다른 강한 문명의 움직임을 견제할 것이다.
아무리 잘 대비해도 죽을 사람은 죽겠지만, 자기 누울 곳도 모르고 발을 뻗은 사람들을 모조리 지켜 낼 수는 없는 법이지.
‘살아남으면 강해지겠지. 특히 지구인들은 말이야.’
미궁에 들어온 순간 기준은 자신의 칭호 효과뿐만 아니라 문명 스킬인 [적응(U)]과 [진화(R)]가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적응 스킬로 인해 일시적으로 증폭된 능력치는 대략 20% 정도.
극한 상황에 이르면 스킬의 효과가 더더욱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타 문명에 비해 다소 약한 편인 지구 문명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면 아직 별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는 미궁의 초입부터 적응 스킬이 발동하는 지금 상황이 썩 위험하다는 얘긴데…….
“다들 소속된 파티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고, 주위를 끊임없이 경계해. 전진한다.”
기준은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종말에 대적하는 자(E)] 칭호 효과를 발동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의 스킬 효과를 자신이 이끄는 집단에 부여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능력, 여태까지는 파티 단위로만 적용해 본 탓에 500명을 상대로도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명 한 명에게 부여되는 스킬 효과가 조금 열화되기는 하나 가능은 했다.
―계약자 혼자서 공격에 방어에 버프까지 다 하네.
‘그거 다 너한테 배운 거지.’
루시의 말에 노골적인 아부를 던진 기준은 무슨 스킬 효과를 적용시켜야 길드원들의 생존률이 높아질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고유스킬인 [고장 나지 않는 체내시계(E)]가 제일 유력하기는 한데, 이건 상태이상과 저주 등에 터무니없이 강력하긴 하나 재생력이나 방어력에는 놀랄 만큼 보정을 주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더욱이 저주뿐만 아니라 축복이나 치유까지 튕겨 내는 탓에 지금 상황에는 더더욱 적합하지 않았고.
‘살루타리스? 아냐, 이걸 일시적으로 익혀 봤자 운용이 너무 힘들어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길드원들이 이미 익힌 서킷과 충돌할 수도 있고.’
그럼 남는 건 하나.
바로 아무 조건 없이 방어력과 재생력을 높여주는 사기 스킬, [아다만트(L)]다.
500명 전원에게 스킬 효과를 공유해 주자 모두 움찔했으나, 기준이 자신의 능력임을 밝히자 모두 안도했다.
“축복 계열 능력도 갖고 계셨나.”
“아무리 그래도 500명한테 동시에 축복을 걸 수 있는 건가? 더구나 효과도 터무니없잖아…….”
까면 깔수록 새로 드러나는 기준의 능력에 전율하면서도 길드원들은 당장의 생존률이 높아진 데 안도했다.
기준의 마음 같아선 여기 있는 500명뿐만 아니라 미궁에 진입한 테라 길드원 전원에게 스킬 효과를 공유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였다.
만약 가능하더라도 레전더리 스킬의 효과가 언커먼 정도로 격하되겠지.
아다만트의 스킬 등급이 오르거나, 칭호의 효과가 높아졌을 때에나 다시 생각해 볼 법한 일이었다.
“함정입니다, 준 님.”
은신이 빠지고 파티의 유일한 척후가 된 긴이 보고해 왔다.
“주위 환경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계속해서 함정 내부에 움직임이 엿보이기도 하고요.”
“즉?”
“마법으로 전방을 파괴하는 것이 제일 좋겠습니다.”
정말 그 무식한 방법이 최선인가? 하는 표정으로 긴을 돌아보는 기준.
그러나 기준과 떨어져 지내며 직업 능력을 숙달하고 나름 전문가 티를 내게 된 긴의 표정은 매우 단호했다.
―정말이네. 똥강아지 말마따나 함정이 마치 살아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 같은데? 아니…… 계약자, 함정이 점점 다가와. 바닥을 봐, 대리석이 흐르고 있어.
“뭐?”
루시의 경고에 화들짝 놀란 기준이 길드원들을 일시에 물리곤 바닥의 상태를 확인했다.
미궁 주제에 멋들어진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정말로 물이라도 흐르는 것처럼 기준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흘러오고 있었다!
“재밌네, 일단 내가 부숴볼까?”
“아니, 비체. 이 거대한 미궁에 함정이 하나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벌써부터 힘 빼지 마.”
아닌 게 아니라 500명이 하나의 통로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미궁은 거대했다.
평균 키가 2미터도 안 되는 인간들이 아니라, 족히 5미터 이상의 신장을 지닌 괴물들이 편하게 나다닐 수 있을 만큼 높고 넓은 천장과 복도.
함정도 그네들 기준으로 설치된 것인지 규모가 무식하게 커, 이걸 일일이 파괴하고 있다가는 미궁에 숨겨져 있다는 보물을 찾아 내기도 전에 마법사들이 모두 나자빠지게 될 것이다.
“가만, 살아있다 이거지. 그럼 도발도 통하는 거 아냐?”
거기서 기준은 언제나처럼 무식하게 자신이 몸으로 때운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니, 쭌, 오바야. 스톱!”
“날―― 봐라――!”
“그거 하지 마!”
잽싸게 자신을 붙잡는 비체를 뿌리치고 바닥을 박찬 기준이, 긴이 포착한 함정 일대로 몸을 던지며 우렁차게 외쳤다.
레전더리 등급으로 승급하며 한층 눈부시게 변한 그의 도발 스킬, 광성의 여명이 일대를 빛으로 가득 채웠다.
아군에게는 눈부심 효과가 덜하지만 그래도 대충 눈이 멀기 직전의 광량!
만약 이 자리에 언데드가 있었더라면 모조리 녹아내렸을 것이고, 어둠 진영의 능력자가 있었더라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을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함정 지대에 설치되어 있던 천장 함정과 바닥 함정이 그에게 반응하며 일제히 감추어 두었던 독아를 드러냈다.
―콰과과광!
―솨아아아아……!
“와, 장관이네…….”
“화살 날아드는 것 좀 봐, 누가 보면 발리스타인 줄 알겠다.”
그냥 함정에 몸을 던진 수준이 아니다.
그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함정마저 완벽히 도발해 그것들이 철저히 기준을 조준하고 함정을 격발하게 만든 것이다.
본디 함정은 지형을 파괴하거나 독무를 분사하는 등 최대한 많은 침입자들을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기준의 초월적인 도발 스킬은 그런 기본적인 이치마저 무시하고 모든 함정이 오직 ‘기준을 죽인다’는 목표 하나로 숨겨진 모든 것을 토해 내도록 만들고 있었다.
“오.”
어차피 고장 나지 않는 체내시계에 막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독과 저주 따위는 가뿐히 무시한 기준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강철 화살, 폭발마법, 원형 톱날 따위를 몸으로 받아 내며 감탄사를 토했다.
“이것들 공격력이 꽤 되네. 솔직히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스킬 수련 좀 되겠다.”
―수백 명은 너끈히 죽일 함정을 몸 하나로 받아 내고 있는데 당연하지…….
농담이 아니라 함정에 쓰인 자재들의 수준도 범상치가 않았다.
기준은 자신의 방패에 막혀 튕겨 나가는 원형 톱날 하나를 붙들어 자세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일반 강철은 아닌데…… 못해도 레어 등급의 소재 아닐까?
“이거 수집해다가 글리터토스한테 가져다 주면 좋아 죽겠는데?”
―여유부릴 때가 아냐, 계약자. 아무리 봐도 어쭙잖은 레어 등급으로는 버텨 내지 못할 함정이잖아.
“그쪽은 안전하게 함정을 회피하거나 부수면서 나아가길 바라야지. 우리는 최대한 빨리 미궁을 돌파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별동대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나머지 팀을 돕는 거야.”
루시와 대화를 마친 기준이 손을 뻗자 라피가 센스 있게도 사방에 흩뿌려진 함정의 잔해들을 바람으로 모조리 한데 모아 그에게 내밀어 주었다.
족히 작은 집 하나는 가득 채우고도 남을 흉기 더미를 모조리 인벤토리에 수납한 기준은 무너져 내린 바닥에 착지하며 길드원들에게 이젠 안전하다는 사인을 보냈으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기준에게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쭌, 혼자 다 해 먹으면 좋아?”
아연해져 얼어붙어 있는 길드원들의 분위기를 깨트려 준 것은 유일하게 기준과 전력이 동급인 비체였다.
기준은 라피와 우르에게 부탁해 부서진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고 녹여 굳히며 그녀에게 대꾸했다.
“비체, 이걸 적재적소라고 하는 거야. 이 함정을 다 부수려면 마나가 얼마나 들었겠어? 하지만 난 방금 소모한 마나를 이미 모조리 회복했다고.”
“그거 다 누구 덕분이야.”
“그야 최고의 마나 서킷을 전수해 준 위대한 비체님 덕분이지.”
“알면 됐어.”
살루타리스의 공능은 이제 와 말하는 것도 입 아픈 수준이니까.
바닥 다지기를 마친 기준이 비체와 합류해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치자 그제야 긴장감이 풀린 길드원들이 다시 대열을 갖추고 기준을 맞이했다.
다만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여태껏 영상으로밖에 보지 못했던 그들은 오늘에서야 그의 진정한 힘의 편린을 보곤 한층 그에게 존경심을 품게 된 모양.
“긴, 앞으로도 함정은 모두 내가 막을 테니까 체크 부탁해.”
“알겠습니다.”
긴 역시 기준의 무지막지한 돌파 방식에 어이가 없었는지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준, 네 능력이 원래부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어?”
“글쎄. 그냥 함정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는 말에 문득 생각이 났을 뿐이라.”
어쩌면 이 능력을 갈고닦아 궁극에 이르면 세상 전체를 상대로 도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역시 그건 표절 문제가 되려나…….
―그런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고 고찰해 봐, 계약자. 함정의 성질이 이 미궁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처음에 살아 있는 미궁에 진입한다고 했잖아?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은데.”
“살아 있는 미궁…… 살아 있는 물건, 인가요.”
그런데 기준의 말에 혹시나 그가 상처를 입었을까 싶어 치유해 주러 다가왔던 로라가 반응했다.
“왜, 로라?”
“아뇨, 설마 싶기는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시스템이 그런 짓까지 할까.”
고민 어린 표정을 짓던 로라가 품에서 조심스럽게 황금잔을 꺼내 들었다.
“긴, 피를 부탁드립니다.”
“네?! 가, 갑작스럽지만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로라의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어딘가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드러내고 살며시 들이미는 긴.
로라는 그런 긴을 무척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는, 에휴, 한숨을 쉬며 한쪽 손톱을 길게 늘여 쿡 찔렀다.
긴의 목에 난 자그마한 상처에서 송골송골 솟아난 핏방울이 로라의 손톱을 타고 흘러내리다, 로라가 밑에 받친 황금잔 안으로 들어갔다.
“아.”
긴이 순간적으로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로라는 그것을 깔끔히 무시하고 잔에 자신의 핏방울 또한 떨어트려 혈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다음 순간 잔에서 튀어나오는 수십 마리의 박쥐들.
놀랍게도 그것은 로라의 능력과 긴의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사방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척후와 탐색에 최적화된 것.
“성유물은 역시 성유물이구나.”
“……저건 저것대로, 큼, 아무것도 아닙니다.”
긴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는 것 같았지만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다.
로라는 박쥐들을 부려 미궁 통로 안쪽으로 날려 보내곤 긴에게 지시했다.
“당신도 통제할 수 있을 거예요.”
“네, 느껴집니다. 미궁 내부의 함정을 모조리 찾아내죠.”
“아뇨, 실은 함정이 아니라 다른 걸 찾아보고 싶은데요.”
로라가 조심스럽게 말하며 기준과 비체에게 손짓했다.
가까이로 모여든 파티원들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로라가 말했다.
“어쩌면 이 미궁에는 츠쿠모가미(付喪神, 부상신)가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