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08)
나 빼고 다 회귀자-308화(308/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08)
Chapter 59. 신 문명 – 2
―모든 물건은 언젠가 새로운 생명을 얻을 가능성이 있어.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부수는 건 나쁜 짓이야!
―그 논리를 확장시키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겠지만, 응. 나도 계약자가 이대로 싸워 봤자 계속 방패를 부숴 먹을 뿐이라는 건 공감이야.
“알았어, 그래. 방패 완성될 때까지는 황금태양만 쓴다고. 그럼 됐지?”
기준이 방패를 하나만 들게 되었다는 얘기에 모두 환호했다.
딱히 츠쿠모가미의 환심을 살 생각으로 꺼낸 말은 아니다.
단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방패를 들고 싸우는 것보다는 방패 하나에만 힘을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
특히 이번 이벤트 던전에는 감춰진 속내가 더 있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여긴 아무도 없어! 나만 숨어서 살아가고 있을 뿐 나와 같은 처지의 동료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을 리가 없잖아!
“역시 이곳은 원래 츠쿠모가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나.”
―그걸 어떻게?!
루시의 기세에 지레 겁을 먹고 모든 정보를 토한 검 형태의 츠쿠모가미가 불과 조금 전 자신이 한 말도 기억 못하는 것처럼 기겁했다.
“이 미궁도 마찬가지고?”
―아니야, 할아버지는 츠쿠모가미가 아니야! 그냥 좀 늙고 오래된 건물일 뿐이야!
“건물이 늙었다는 건 또 참신한 표현이네.”
기준의 가벼운 떠보기에 홀라당 넘어간 검이 검날을 붕붕 흔들며 부정했다.
여전히 루시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공격 시도로 간주하고 부러트려 버렸으리라.
그로써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한 기준은, 이어지는 습격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다시금 녀석에게 캐물었다.
“너희도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겠지?”
―그래, 조용히 잘 살고 있던 우리들의 터전에 갑자기 침략자들이 나타났어! 우리를 만들어 냈으면서 멋대로 버리고, 방치했을 땐 언제고 간신히 찾은 우리의 평화를 부수려 들다니!
“아, 지금 인정했네요.”
“쉿, 준 님이 질문하고 계십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츠쿠모가미들은 시스템과 사전에 합의 같은 건 하지 않은 모양이다.
원래 이 미궁은 츠쿠모가미들이 모여드는 터전 같은 곳이었고, 시스템이 멋대로 이곳에 공간마법을 적용시키고 몬스터들까지 끌어들였다고.
“이곳이 문명의 터전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츠쿠모가미는 사실 몬스터도, 문명도 아니니까. 굳이 말하자면 정령에 가까우려나.”
―물건 취급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개념 없는 신들이라도 멋대로 침범할 수는 없어.
―우리는 물건이 아냐! 온전한 영을 갖고 있다구!
루시의 직설적인 표현에 잔뜩 화가 난 츠쿠모가미가 검신을 부르르 진동시키며 반박했다.
적을 공격할 때 저 기능을 발현하면 효과 장난 아닐 것 같은데, 하고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기준이 녀석을 다독였다.
“그래, 그건 믿어 줄게. 그래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정말 내가 방패를 부숴 먹은 걸 탓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냐?”
―맞아!
“아닐 텐데? 네가 나한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속내는 뭐지?”
―아니라니까! 결코, 여러 영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당신이라면 우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타났다가 방패를 부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찔러 버리려고 한 게 아냐!
이쯤 되면 츠쿠모가미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루시, 얘 왜 계속 속내를 감추질 못하는 거야? 혹시 츠쿠모가미 종특 같은 건가?”
―나도 츠쿠모가미는 잘 모르지만, 계약자 매력이 너무 높은 탓 아냐? 저번에 그 바보 같은 마도사도 계약자가 가볍게 찔렀을 뿐인데 톡, 하고 터져서는 비밀을 와르르 쏟아 냈잖아.
설득력 높은 발언에 기준은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참고로 다른 일행들은 츠쿠모가미를 볼 수는 있어도 녀석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는 없는지, 허공에서 붕붕거리는 검과 대화를 나누는 기준의 모습을 다소 기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전장을 완벽히 정리하고 돌아온 비체가 기준의 등에 매달렸다.
“쭌! 그거 뭐야, 이번 미궁에서 처음으로 얻은 보물?”
“아니, 츠쿠모가미야. 아무래도 미궁 측의 츠쿠모가미들이 나와 협력해서 소환자들을 쫓아내고 싶은가 봐.”
“뭐야 그거 재밌겠다!”
―헉?! 어떻게 내 속내를 모조리 파악한 거야!
이 순진한 녀석을 계속 놀려먹는 것도 재밌겠지만 솔직히 이 자리에서 녀석과 계속 떠들고 있다간 습격자들을 끌어들이게 될 뿐이다.
자신의 한 손에 아다만트와 함께 빛을 두른 기준은 빛의 사슬에 붙들려 허공에서 부르르 떨고 있는 검을 향해 과감하게 손을 뻗었다.
녀석은 자신을 물건 취급하려 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저항하고 급기야는 손잡이 부분에서 날카로운 검날 수십 개를 만들어 내 그의 손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려 했으나, 기준은 그 수십 개의 검날을 문자 그대로 갈아 버리며 기어이 검 손잡이를 붙들었다.
츠쿠모가미 역시 굉장한 힘을 갖추고 있었지만― 아다만트와 에픽 등급 광마력을 이겨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가, 강해……!
―얘 왜 조금 좋아하는 것 같지?
츠쿠모가미의 목소리에 기분 나빠하는 루시.
그러나 기준은 녀석을 붙드는 순간 자신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탓에 두 영에게 제대로 반응해 주지 못했다.
―미궁에 숨겨진 보물을 획득했습니다. 유니크 등급의 보물로, 정산 시에 문명/단체별로 획득한 보물의 개수와 등급에 따라 시스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시 츠쿠모가미야말로 이번 이벤트의 보물 취급이었던 모양.
츠쿠모가미는 그 생성 원리상 자신을 쓰다 버린 사람을 미워하게 마련인데, 그런 상처 입은 영혼들이 모인 미궁을 멋대로 이벤트 장소로 선정하고 그 안에 꽁꽁 숨어 있는 츠쿠모가미를 보상으로 삼아 사람들에게 분배하다니 잔혹한 것도 정도가 있었다.
―후, 후아아. 이대로 다시 인간의 뜻대로 휘둘리는 건 싫어……!
―그러니까 왜 목소리가 별로 안 싫어하는 것처럼 들리냐니까? 그리고 너 기분 나빠! 계약자의 매력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 걸로도 모자라 생물과 무생물까지 가리지 않게 되다니!
심지어 이 녀석의 목소리는 명백한 남자아이인 것이다.
솔직히 이 이상 기분 나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내가 갖고 있으면 설마 이벤트가 끝날 때 시스템 측이 회수해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그건 불가능하니까 안심해. 그보다 나는 오히려 지금 이 전개를 시스템이 노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걸.”
기준의 손에 들려 파르르 떨리며 기뻐하는 변태 검을 지그시 째려보며 비체가 예리한 추측을 내놓았다.
“우리 쭌이 사람 좋은 호구인 건 이미 여러모로 알려졌잖아. 게다가 저번 일로 고위 정령사라는 것도 알려졌고. 그런데 츠쿠모가미가 나타나는 미궁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쭌이 그들과 접촉하리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시스템은 무능 그 자체야.”
“듣고 보니 설득력이 있는데. 그럼 내가 이번 이벤트에서 굉장히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리라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었겠네?”
“반대지. 쭌과 다른 모든 문명 사이에 노골적인 대립각이 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
비체가 딱 잘라 말했다.
“역시 이번 이벤트, 준을 완전히 묻어 버리려고 계획한 게 맞아. 어떻게 할 거야, 준. 츠쿠모가미의 말을 들어 볼 테야?”
“응.”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는 애들을 굳이 다른 문명에 넘겨주는 짓을 하지도 않을 거고?”
“……확실히 좀 걸리기는 하네.”
―역시 좋은 사람이었던 거야……?!
이 츠쿠모가미는 귀가 이렇게 가벼우니까 상처를 입는 게 아닐까?
기준도 자신의 손에 들린 검에 살짝 꺼림칙함을 느끼면서도 비체에게 뒷말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게 왜 우리한테 안 좋은 일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 츠쿠모가미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면 결국 우리가 유리한 건 마찬가지잖아.”
“이번 이벤트가 이대로 아무 변화도 없이 이어진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 뒤는 비체가 굳이 설명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츠쿠모가미를 손에 쥐었을 때처럼 다시 한 번 시스템 메시지가, 이번엔 기준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보물을 획득한 문명/단체가 나타났습니다. 이제부터 각 단체의 장은 남은 보물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역시 이벤트는 이런 지원이 따라붙는 법이란 말이지…….”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떤 이벤트든 그렇다.
노골적으로 앞서 나가는 팀이 생기면, 느슨해진 분위기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다른 팀에 기회를 줄 겸 어드밴티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준 또한 단체의 장인 만큼 이 혜택을 볼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그의 손에 소통 가능한 츠쿠모가미가 들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준의 행동 양식을 읽어 낸 시스템이 그에게 엿을 먹이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 이름은 뭐지?”
―난 베이컨이야! 날 만든 사람이 그걸 좋아했어! 그래서 베이컨이 뭐야?
“그래, 베이컨.”
―베이컨이 뭐냐니까?
기준은 베이컨에게 간략히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안 그래도 미궁에 언데드들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침입한 상황에, 그들이 자신들을 찾기 쉬워졌다는 얘기까지 듣자 베이컨 녀석도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게 되었다.
“길게 말 안 해. 도와주지, 그러니까 다른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그들을 사람들 손에 넘기고 싶은 건 아니지?”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라고 우릴 멋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
“없지, 그러니까 네가 선택해. 다만 우리는 미궁의 보물에는 그리 집착하지 않아. 어디까지나 이벤트에서 상위권 보상을 노리고 참가한 거니까 너희와 우리 모두 이점이 있는 거래가 되겠지.”
어쩌면 길드원들 가운데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겠지만.
알 바인가? 기준이 없었으면 다른 이들이 보물을 찾아내기도 힘들 테고 설령 찾아내더라도 지켜 낼 수도 없을 텐데, 보물을 얻지 못하는 대가로 이벤트 상위권에 랭킹되어 시스템 보상을 챙길 수 있다면 기준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오, 오빠도 리더다워졌네요!”
“그냥 다 같이 득을 볼 방법을 강구할 뿐이야. 그래서 대답은?”
―으으…… 그래, 도와줘. 솔직히 못 미덥지만 너 말고 다른 믿을 만한 사람도 안 보이고…….
마음의 결심을 내린 베이컨은 기분 탓인가 진동을 더하며 설명했다.
―몬스터들이 너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들도 다 미궁 안쪽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신기한 힘이 작용해서 우릴 다 떨어트려 놨던 것 같기도 하고…….
“시스템의 힘이네.”
―어쨌든 위치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공유받고 있으니까, 모두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여전히 대부분 애들은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깊숙한 심처에 숨어 있고!
―시스템도?
―절대 못 건드려, 할아버지 권능이 집약된 보호구역이니까!
어째선지 그 부분에서 나서서 질문하는 루시에게 베이컨이 씩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루시는 그 말에 어딘가 마음이 걸린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침음을 흘리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뭐. 여차하면 계약자가 어떻게든 하겠지.
“내가 모르는 데서 나한테 부담을 더 끼얹는 건 그만둬 줄래, 루시.”
어쨌든 얘기가 정리됐다.
기준이 베이컨과 손을 잡은 탓인지, 지금까지는 어둑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던 미궁의 분위기도 일변하여 마치 그들을 환영하는 듯했다.
―그르르륵.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 중 일부가 양옆으로 접히며 새로운 통로를 개방하고 있었으니까.
“와, 치터다! 아니…….”
“그래그래 비터.”
베이컨의 도움을 받는 치터, 줄여서 비터.
“안내해, 베이컨. 네 친구들 찾으러 가자.”
―위치만 공유해 줘! 내가 데리러 갈게!
씩씩하게 대꾸하는 기준을 뒤따라 라피가 싱글벙글 웃으며 덧붙였다.
기준이 라피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라고 했어, 라피?”
―내가 데리러 갈게! 이 미궁 안이라면 얼마든지!
설마 시스템도 이것까진 예상 못 했겠지, 기준과 비체는 서로를 마주 보며 동시에 군침을 꼴깍 삼켰다.
그로부터 삼십 분 후, 기준은 무려 서른 개에 이르는 츠쿠모가미를 회수했다.
시스템이 대책에 나선 것도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