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09)
나 빼고 다 회귀자-309화(30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09)
Chapter 59. 신 문명 – 3
―지금부터 보물을 가장 많이 획득한 세력의 위치가 공개됩니다.
―보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수록 몬스터의 적의를 사기 쉬워집니다.
기준은 눈앞에 나타난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정답을 찾아낸 연금술사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였네.”
“우리를 묻어 버리려고 작정이라도 했나 보네요.”
이벤트이고 경쟁 컨텐츠이며, 참가자의 목숨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만큼 이런 시스템의 태도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지적할 구석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시스템의 ‘간단한 오류’ 따위로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죽어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벤트의 내용과 구조, 전개까지도 모조리 시스템의 악랄한 안배로 생각되었다.
―가, 갑자기 엄청 많은 기척이 느껴진다! 할아버지가 막아 내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기준의 손에 들려 있는 베이컨이 기겁하며 외쳤다.
―어떻게 하지? 이러다 애들을 모조리 빼앗겨 버리겠어!
―절대로 우릴 물건처럼 다루는 놈들한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럴 바에는 놈들과 같이 죽어 버리겠어!
창과 도끼, 목걸이, 갑옷 등등 베이컨이 위치를 알려 주고 라피가 회수한 각종 보물들이 기준 주위를 마치 인공위성처럼 떠돌며 저마다 시끄럽게 한 마디씩 뱉어 냈다.
그 숫자만 무려 서른, 이미 다른 세력의 손에 넘어간 극소수의 츠쿠모가미를 제외하면, 미궁 안을 떠돌던 보물을 기준이 모조리 회수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시스템 측이 제재를 가하는 것도 당연한가 싶기도 하지만 정령사 한 명의 존재로 뒤틀릴 이벤트라면 연 측이 잘못 아닐까.
“쭌, 큰일이야. 아무래도 우리 세력 전체가 노출된 것 같아. 채널과 관계없이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데?”
쉬는 시간마다 별동대원들과 레톡을 하고 있던 비체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해 왔다.
단순히 보물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도 아니고, 테라 길드 전체가 노출되었다는 것.
심지어 이벤트 채널이 나뉜 것도 무색하게도 공간좌표상으로 테라 길드와 가까워지면 채널이 겹쳐져 노출된다고 하니 테라 길드가 통째로 보물 취급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보물은 많이 획득했잖아. 보상은 세력 전체에 주어질 테니 다른 멤버들은 모조리 퇴각하라고 하고 정예부대만 남아서 도망 다니면?”
“여태까지의 이벤트와 규정이 비슷하다면 그런 방법은 안 통해. 이벤트가 종료되거나, 아웃되는 순간까지 확실하게 참여하지 않고 중도 포기를 해 버리면 그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
“완전히 우리 길드원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듯한 규칙이잖아…….”
하긴, 기준의 활약만으로 모든 길드원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애초에 수만 명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것도 없이 기준이 이끄는 루멘 파티만으로 이벤트를 휘저으면 될 일이었다.
베이컨과 접해 보물들을 쉽게 모을 수 있을 것을 알았더라면 더더욱.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해. 조금만 더 늦으면 우리와 흩어져 있는 멤버들이 모조리 각개격파당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그들을 모조리 모으자니 아무리 그래도 인원이 너무 많아. 미궁에게 직접 부탁해서 공간을 넓히고 임시 거점을 만들어 농성할까? 그래, 그게 제일 낫겠다.’
기준의 방어능력과 등급을 초월한 정예 병력들의 공격력이라면, 진입 구간을 제한하고 농성한다면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켜 내는 것이 가능할 터.
이 또한 조금 전 그의 발상과 마찬가지로 기준 개인의 능력과 루멘 파티의 희생을 강요하는 계획이었으나, 모든 소환자 문명이 겨루는 이벤트에서 그들과 동등한 경쟁을 가능케 하는 것이 전부 극소수 실력자 덕분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구할 수 있는 애들은…… 전부 구했어.
그러나 기준이 결단을 내린 그때 베이컨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우리를 도와줬어. 그러니 이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모두 같이 미궁의 심처에 숨어 있으면…….
―베이컨,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이 사람은 믿어도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 그런데 그들을 모조리 우리 터전에 들이겠다니!
―용납 못해, 모두 엉망으로 만들 거야!
―무서운 사람들이 우리 마을까지 쫓아오면 어쩌려고!
―하지만 이대론 우릴 도와줬다는 이유로 이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거야!
기준의 손에 붙들리고부터 묘하게 기준에게 친절해진 베이컨은 이미 반쯤 그를 자신의 동료로 생각하고 있는 듯, 저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다른 츠쿠모가미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득했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이미 우리도 다 붙들려 자유를 억압당했을 거야, 그런데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을 또다시 위기로 내몰자는 거야? 더구나 이대로면 우리도 다시 위험해져!
―이 사람이라고 우리를 도구 취급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어? 당장 베이컨 너도 그 사람 손에 들려 있잖아!
―협력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 스킨십을 하고 있을 뿐이야! 더구나 너희도 알잖아, 이 사람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
시간을 끌기 싫어 그냥 잡았을 뿐인데 언제부터 그런 거창한 의미가 부여되었단 말인가.
상상도 못한 말에 움찔해지는 기준이었으나 베이컨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으니 눈치 없이 태클을 걸지는 않기로 했다.
더욱이 츠쿠모가미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 같기도 했고.
―그만, 점점 더 많은 기척이 가까워져 오고 있잖아. 결론을 내려야 해. 나는, 베이컨의 말에 부분적으로 공감해.
사람이 아니라 어떤 다른 작은 몸집의 종족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멋들어진 투구 모양의 츠쿠모가미가 말했다.
머리를 덮었던 부분이라 더 이성적인 것일까, 녀석은 투구 안쪽이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이글이글 불타는 두 눈동자가 깃든 것처럼 뚜렷이 느껴지는 시선을 기준에게 보내 왔다.
―하지만 아직 증거가 부족해. 다른 세력에 붙들려 있는 우리 동료들을 구해 줘. 그러면 우리 마을로 안내해 줄게.
―비키니!
―너 멋대로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입 다물어, 이 이상 합리적인 판단은 없어.
어째서 투구를 비키니라고 부르는 것일까, 무지막지하게 신경이 쓰였으나 기준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안내해 줘. 라피, 공간이동은 몇 명까지 가능할까?”
―으음, 이 미궁 안에서라면 두 명!
“비체, 도와줘.”
“오케이!”
부부는 일심동체, 기준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그가 하려는 것을 파악한 비체가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짱을 끼고 그에게 몸을 기댔다.
남은 인원들은 순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로라가 기겁하며 외쳤다.
“지금 보물을 획득한 다른 세력을 습격하시겠다는 건가요, 그것도 둘이서!”
“그게 제일 확실하잖아. 지금 걱정해?”
그 외의 다른 좋은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기준이 애매한 미소로 상황을 넘기려는 것과 대비되게 비체는 자신의 등 뒤로 새카만 박쥐 날개를 뽑아내며 씩 웃었다.
그것이 기준의 등 뒤에 솟아난 빛의 날개와 완벽한 대비를 이루니, 로라는 분하게도 한순간이나마 둘이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지혜, 내가 없는 동안 우리 파티원들이랑 같이 이 부대를 이끌어. 츠쿠모가미들한테도 부탁할게. 함께 협력해서 먼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줘.”
―나는 너랑 같이 갈래!
―제대로 내 부탁을 들어주는지 확인하려면, 나도 함께해야겠지.
베이컨과 비키니가 기준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남은 스물여덟 명의 츠쿠모가미들은 기준을 신뢰하는 베이컨과, 멋대로 결정을 내린 비키니의 태도에 생각하는 바가 많은 듯 웅성거렸으나 끝내 그들의 뜻에 따라 오백 명에 이르는 테라 길드 정예부대 틈으로 스며들었다.
기준과 비체가 없어도 다른 파티원들의 능력이 강하고, 츠쿠모가미들도 비대칭전력이라 할 수 있으니 잠시 정도는 괜찮을 터다.
“그래서, 이미 다른 세력에 붙들린 츠쿠모가미는 얼마나 돼?”
―다섯 명.
“……내가 좀 너무하긴 했네.”
테라 길드를 제외하고 이벤트에 참가한 모든 세력이 통틀어 다섯 개의 보물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 기준은 무려 서른 개나 되는 보물을 확보했으니 시스템이 밸런싱에 들어가는 것도 오히려 당연한 조치가 아닐까.
하지만 그걸 빌미로 테라 길드를 몰살시키려 한다면 얘기는 다르다.
시스템이 의도한 바가 무엇이든 이쪽에서 모조리 차지해 버릴 것이다.
“바로 가자.”
“쭌이 방어해. 내가 공격할게. 오케이?”
“문제없지.”
―그럼 나는 계약자의 방어를.
―킷? 키이잇!
―나는 빠른 이동과 견제 담당!
우르의 대답만은 분명치 않았으나 문맥상 비체를 도와 공격에 가담하겠다는 뜻이리라.
기준이 베이컨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베이컨은 자신과 공명을 일으키는 동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 좌표를 라피에게 전달했다.
기준에게 직접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영적 존재인 라피에게는 녀석의 심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미궁에는 오늘 처음 찾아온 주제에 베이컨과 심상을 공유하며 이미 완벽하게 파악한 라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지금 이동할게!
눈을 뜨자 그곳은 이미 다른 통로였다.
어쩌면 보물을 이미 하나 획득한 탓에 마음이 풀어져 있던 것일까? 사람의 얼굴 대신 새의 얼굴과 부리를 달고, 등 뒤에 저마다 형형색색의 깃털 날개를 달고 있는 단일 문명으로 구성된 세력이 휴식을 갖고 있었다.
―저기다!
“보여!”
비체가 도약했다.
박쥐 날개를 세차게 젓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강하게 박차고 달려 나가는 그녀.
라피가 은근슬쩍 그녀의 속도를 보조했고, 우르는 어느덧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가 그녀의 움직임에 어울리는 불꽃을 빚어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새머리 인간들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미리 대비하고 있던 것처럼 저마다 병장기를 들어 올리고 능력을 발현했으나.
눈앞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쏟아지는 공격 모두가 그녀의 살갗 하나 해하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곁으로 따라붙으며 방패를 내세워 방해물들을 치워 버리는 기준의 방어력에 막히고 있었던 것이지만.
“불사신인가?! 신수라도 쓰러트릴 만한 공세였는데!”
“함정은 또 왜 발동 안 되는 거야, 아까 우릴 상대로는 악랄하게도 몰아붙여 놓고!”
“신수? 다른 건 몰라도 너희가 신수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건 알겠는데.”
기준이 씩 웃으며 방패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그의 모든 빛이 방패로 빨려 들어가며 거의 광선에 가까운 열기를 사방으로 토해 냈다.
광성의 여명에 전력을 투자해 적들을 도발하는 것을 넘어 무력화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광성의 여명(L) 스킬이 23레벨이 되었습니다.
일대를 빛이 물들이는 그 순간.
마치 자신의 고향에 온 것처럼 빛 속을 유영하며 돌진한 비체가 그 빛의 일부를 흡수해 만들어 낸 검으로 전방을 베어 내고 재차 한 발짝 나아갔다.
아마도 그들의 우두머리였으리라, 유독 화려한 날개를 달고 있던 이가 비장의 스킬이라도 펼칠 것처럼 날개를 활짝 펼치며 오색의 빛을 뿜어내다 말고 그녀의 칼질에 한 방에 썰려 퇴장하고.
무너지는 그의 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오고 싶어 웅웅거리던 작은 단검이 마치 비체가 빨아들인 것처럼 그녀의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회수 완료!”
“다음으로 가자!”
―오케이!
기준이 모든 공격을 막고, 비체가 적을 제압하고 보물을 빼앗는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나하나 강대한 문명을 상대로 고작 둘이서 덤벼든다는 것은 그들에게 이번 일을 부탁한 츠쿠모가미들조차 무모하다고 생각되었고, 그렇기에 그들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어떻게든 보조해 주기 위해 따라붙은 것이었으나.
자신들이 관여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츠쿠모가미를 회수하는 기준과 비체의 모습에 둘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음 좌표 알려 줘!
―그, 그래…….
태어나길 환수로 태어나고, 정령으로 거듭나선 이미 레전더리 등급이었던 만큼 약자의 입장 따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라피가 자신의 주인과 그 아내(진)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듯 순진한 표정으로 베이컨을 재촉했다.
베이컨은 그것을 보며 생각하고 말았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라면 도구처럼 취급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