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16)
나 빼고 다 회귀자-316화(31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16)
Chapter 60. 용사의 검 – 4
삼부카는 굉장히 독특한 성장과정을 거쳐 완성된 정령이다.
처음엔 인간이었고, 복수심을 이겨 내지 못해 어둠의 진영에 합류, 기준에 의해 죽음을 맞는 순간 밴시로 되살아났으며.
기준에게 두 번째로 죽음을 당하고도 깊은 원한이 남아 악령의 형태로 잔류했을 때까지만 해도 얼마 가지 못해 성불하리라 생각되었으나 하필이면 그녀가 달라붙은 기준이 뛰어난 영력을 지닌 탓에 성불하기는커녕 점점 품은 힘이 커져 갔으며.
밴시로서의 능력 일부를 되찾고, 기준이 싸워 이겨 낸 어둠의 진영 세력의 힘을 하나둘 흡수하며 점차 존재감을 늘리더니, 급기야는 무녀들이 섬기던 이자나미의 힘에, 종말의 힘을 얻어 비로소 전설 등급의 어둠의 정령으로 거듭난 것.
그럼에도 그녀가 루시나 우르, 라피처럼 기준에게 계약 스킬로 속박되지 않은 것은 그녀는 다른 정령들과 달리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로 태어났을 뿐, 본래는 성장도 미래도 약속되지 않은 악령 출신이기 때문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이 커버할 수 없는 존재라는 얘기다.
다만 그렇기에 얻은 이점도 있었으니 바로 다른 계약 정령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자유행동 능력과, 기준의 영력을 빨아들이지 않고도 자의로 강대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건 그녀가 마력과 감정 등의 연료를 빨아들일 대상과 적절한 시간뿐.
“아니, 저쪽도 레전더리 등급이 많을 테고 저주 방비도 확실할 텐데 저걸 그냥 그대로 처맞고 있네…….”
―그대로 처맞는 게 아냐, 악령의 종말이 그걸 뚫고 들어갔을 뿐.
감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은인에게 폭발물을 투척한 크림슨 드라코니안들에 대한 분노로 삼부카가 이를 갈고 준비한 종합 어둠마법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명색이 최강의 소환자 세력임에도 불구, 거기에 그대로 걸려 정신을 못 차리는 도마뱀들의 모습에 비체는 혀를 내둘렀다.
환각, 공포, 혼란, 그 모든 저주에 깊이 걸려들수록 삼부카의 진정한 힘, 종말이 놈들의 정신과 영혼 사이로 스멀스멀 파고든다.
스테이터스를 깎고, 마력과 체력을 깎아 내고, 수명을 깎아 낸다.
한 번 쓰고 나면 충전이 힘들어 자주 드러내지 못하는 데다 영 빛의 용사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아 공식 무대에서는 별로 써먹은 적이 없긴 하지만, 기준이 가진 힘 중에서는 고유영역과 더불어 단연 최강이라 불려 마땅했다.
“저런 건 100년에 한 번 만나도 놀라울 지경인데 우리 자기는 대체 어떻게 저런 걸 만들어 낸 거지?”
―계약자의 영력이 심상치 않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저렇게 거대한 영력을 품고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야. 그만한 존재의 옆에 있으면 평범한 악령이 대정령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비체가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은 ‘우리 자기’라는 말에 살짝 열 받으면서도 루시는 친절하게 비체의 무지를 보듬었다.
기준은 자신의 영력이 드문 재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정확히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각한 순간부터 레어 등급이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잠들어 있던 능력이 깨어나듯 가파르게 에픽 등급까지 성장한 그의 영력은 그냥 드문 수준이 아니라 인세에 다시 없을 재능이었다.
필멸자라면 영혼의 크기에 한계가 있을 텐데, 그는 마치 수억 년 이상 살아온 고신처럼 방대한 영력을 품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루시와 우르, 라피 같은 신화적 존재들을 동시에 거느릴 수야 있겠는가?
그만한 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아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아니, 보나 마나 그의 고유스킬 덕분이겠지만.
“아무튼 자기 덕에 일이 쉬워졌네. 그럼…… 이쪽도 제대로 싸워 볼까?”
―채앵!
비체가 흐뭇하게 웃으며 빛의 검을 들어 올린 순간.
코앞에서 격렬한 금속음과 함께 한 명의 용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비체에게 돌진해 왔던 골든 드라코니안들과 비교하면 놀라우리만치 몸집이 작았으나, 양쪽 관자놀이 위로 돋아난 두 개의 황금색 뿔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했으며 영롱하게 번뜩였다.
덩치는 작아도 몸에 품은 힘은 여타 용인들을 압도한다는 단적인 증거.
작고 날렵하며 강하니 암살자로 활동하기엔 최적이리라.
빛의 검과 부딪친 것은 놈의 손에 들린 단검이었는데, 보석처럼 오색으로 반짝이는 게 암살자의 무기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했다.
‘모든 빛을 빨아들여 제 안에 가두기에 완벽한 은신을 보조해 주고, 적을 공격하는 순간 빛을 방출하며 사용자의 스펙을 높여 주는 아티팩트.’
성유물이 아니다 뿐이지 제국의 재보를 있는 대로 쏟아부어 탄생한 이 에픽 등급의 암살 단검은 제국이 반드시 죽이기로 마음먹은 대상에게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비체도 이전에는 이것에 당했다.
물론 그때도 완벽히 죽이지 못했기에 그녀가 끝내 침식되어 레타 대륙 밖으로 나갔었지만.
―좋아 보이는 단검이네, 계약자가 봤으면 은신 꼬맹이한테 주려고 했겠다.
“쭌은 왜 맨날 좋아 보이는 거 있으면 남한테 못 줘서 안달이야? 엄마야?”
―그 비슷한 무언가 같긴 해. 1회차 튜토리얼 때부터 몸에 붙은 습관이 안 사라지나 봐.
“타락한 용사, 베아트리체……!”
습격에 실패한 암살자는 짐승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재차 덤벼들었다.
암살용 단검인 주제에 보관한 빛을 전부 소진하기 전까지는 사용자의 스펙을 계속해서 높여 주는 사기적인 성능인 탓에, 그의 움직임은 비체의 인지 영역을 벗어날 만큼 빨랐다.
문제는 단검의 능력이 어디까지나 빛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학습능력이 없는 거야?”
놈의 단검이 비체의 가슴팍에 틀어박히기 전, 그녀가 뻗은 손에 단검에 깃들었던 빛이 모조리 빨려 나오며 허공에 멋들어진 무지개를 그려 냈다.
그것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한데 뭉쳐 빛의 창을 형성하더니, 비체의 등 뒤로 내쏘아져 다른 쪽에서 접근해 오던 드라코니안 한 명을 격추했다.
드라코니안들의 맷집이 워낙 질긴 탓에 비체의 마법과 츠쿠모가미들의 일제 공격에 당하고도 살아남아 있던 놈이었으나, 그냥 빛도 아니고 아티팩트 내부에서 특수하게 정련된 빛의 창에 당했으니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죽었을 터다.
“정말로 빛을 되찾은 것인가……!”
오색의 빛을 머금고 있는 빛의 창을 불러들여 다시금 전방을 겨누게 하자, 비체와 마주하고 선 암살자의 입에서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체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저번에 그걸 보고도 안 믿는 놈들이 남아 있었구나. 쭌의 쇼맨십에 불과한 줄 알았어?”
“어찌 그런, 섭리를 거스르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냐!”
“우리가 시스템의 계산에서 벗어난 게 그리도 꼬와? 균형이 흐트러지는 게 그렇게 무서워? 백날 천날 빛과 어둠 진영이 저울만 재고 있으면 좋겠지?”
“제국이 취할 태도가 확실해졌을 뿐이다!”
티란누스 제국 황족 출신의 암살자는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비체의 도발을 흘려 넘기고는 그녀와 간격을 벌렸다.
효력을 잃은 단검을 품에 넣고 놈이 꺼내 든 것은…… 황실의 인장이었다.
“성검이 이곳에 있는 게 확실해졌으니 더는 시간을 끌 것도 없다! 오라! 성검이여!”
아니, 단순한 인장이 아니다.
티란누스 제국은 성검 제작에 특수한 소재를 조달하면서 당연히 수작을 부려 놓았는데, 그중 하나는 성검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성검이 가까이에 있을 경우 그것을 강제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제국 황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성검을 탈취당했을 때에 대비한 능력으로, 선택된 검 하나에만 그러면 될 것을 후보로 제작된 검에까지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을 보면 제국의 일 처리가 얼마나 확실한지 알 수 있다.
……드워프들이 어째서 그걸 그냥 프타흐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했는지도 아주 잘 알 수 있다.
―아!
―누나는 상처 입었어, 쉬어야 하는데!
―저 나쁜 도마뱀!
츠쿠모가미들이 경악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골든 드라코니안의 마법 능력은 비체와 기준에게는 기스를 못 내도 성검은 확실히 불러들였다.
심처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어 있던 장검 한 자루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와아…….”
글리터토스의 아버지 글리터핑거가 손수 채취한 오리할콘에 제국의 온갖 재보를 더해 만들어 낸 성검은 검이면서 동시에 예술품 그 자체.
비체는 그것을 보며 그 안에 담긴 힘을 쉬이 가늠할 수 있었고……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그 비실이 후배가 가지고 있던 성검보다 확실하게 좋아 보이는데? 대체 왜 저걸 버리고 그 무식한 대검을 골랐던 거지?”
―난 알겠는데.
비체를 비웃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루시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용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검이잖아. 마감과 장식도 제국과 연관성이 안 보이고, 심지어 손잡이부터 검날 끝까지 용인이 아닌 보편적인 체격의 인종에게 적합하게끔 설계되어 있어.
“아.”
듣고 보니 그렇다.
파툼의 대검은 무식하게 거대할 뿐만 아니라 손잡이가 용인의 두껍고 거대한 손에 맞춰져 제작되어 있었고, 또 곳곳에 용이 새겨져 있는 등 딱 봐도 뭘 상징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글리터핑거는 제국에서 들어온 의뢰일지언정 대상을 용인에게 한정하지도 않았고, 드워프의 미적 감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제국의 쓸데없이 화려한 장식도 과감하게 삭제해 버렸다.
……그 결과물이 성검으로 선택받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오라!”
하지만 지금 비체에게 암습까지 했다가 발려 버린 용인은 우연히도 몸집이 작고, 성검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고려해서 놈을 보낸 것이라면 박수를 쳐 줘야겠지.
―날 버린, 사람들…… 싫어……!
제국의 인장이 발한 강제력에 끌려 나온 장검으로부터 다른 츠쿠모가미가 누나라고 부른 것치고는 지나치게 여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체는 적의 변신 과정을 기다려 주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놈이 성검을 회수하기 전에 죽여 버리려 들었지만, 그때까지 죽지 않고 버티던 나머지 드라코니안들이 처절하게 덤벼들어 그것을 막아 냈다.
―도움…… 요청해야겠지?
“그렇게 히죽히죽 웃는 거 짜증 나니까 그만둬 줄래.”
루시의 말에 뾰족하게 대꾸하는 비체였으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그녀라고 마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 크림슨 드라코니안들은 삼부카가 맡아 대부분 정리해 주었으나 놈들 중에서도 제정신을 되찾고 마법에서 벗어난 놈들이 하나둘 다가오고 있었고, 골든 드라코니안들은 비체의 주변에서 죽어 나자빠질 때마다 주위로 금빛 마력을 뿌려대는 것이 딱 봐도 비체도 해제하기 힘든 고위 마법을 발동하려는 것이 뻔했다.
하지만 폼나게 나서 놓고 여기서 다른 이들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다른 통로가 뚫렸다!”
“저, 전투 시작이다! 다들 틀어막아! 방벽 옮기고!”
그래, 그리고 꼭 이럴 때 아군들도 바빠진다니까.
“비체!”
“일단 내가 해 볼게!”
당장이라도 그녀를 도와주러 뛰어올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기준에게 단호히 고개를 저은 비체는 자신들의 목숨을 대가로 기어이 비체를 구속하는 대마도를 완성해 내는 골든 드라코니안들을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둘러보고는, 힘겨루기를 하는 용인 황족과 성검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사실 자기한테 고유스킬을 공유받기만 하면 이 구속 술식도, 성검을 든 암살자도, 동족의 피를 뒤집어쓰고 독이 잔뜩 오른 크림슨 드라코니안들도 어찌어찌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 전에 한번 해 보고 싶은 게 있다.
“야, 나도 용사인데.”
비체는 눈부신 빛을 토해 내며 인장의 힘에 저항하는 허공의 성검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나한테 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