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0)
나 빼고 다 회귀자-320화(320/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20)
Chapter 61. 배우는 모두 모였다 – 2
사람들을 피해 츠쿠모가미들이 숨어 살던 미궁은 위치가 적나라하게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이벤트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짓밟혔다.
침략자들을 몰아낸 것은 좋은 일이나 이대로 이곳에 숨어 있어도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마치 시스템이 상정되지 않은 변수인 츠쿠모가미 집단을 부정하며 대륙에서 몰아내려는 것만 같았다.
숨어 지내던 이들을 멋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고는, 자신들이 만든 장치가 아니라며 지워 버리려는 것이다.
기준이 이번 이벤트에서 모든 세력을 적으로 돌리는 대담한 작전을 감행한 것은 자신들을 손바닥 위에서 구르게 하려는 시스템, 혹은 그 너머의 신들의 적나라한 의도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으로 너희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우리는…….
더는 미궁이 안전한 은신처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기준의 말을 듣고 웅성거리던 츠쿠모가미들 틈에서 나선 것은, 이번에도 역시나 베이컨이었다.
다만 녀석은 기준에게 뭐라 대꾸하기 전에 먼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곳에는 비체가 가만히 서 있었다.
정확히는 검집에 들어가기 싫어 웅웅 진동하며 투정을 부리는 성검을 얼러 주고 있었던 것이지만.
―누나는…….
―…….
―그렇구나…….
말할 것도 없지만, 성검은 비체 곁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곳 미궁은 어디까지나 모든 것을 잊고 잠들 수 있게 해 주는 도피처였을 뿐, 비체와 만난 이상 미궁에 계속 머물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츠쿠모가미는 혼을 얻어 삶을 갈구하게 된 물건.
그리고 성검이 바라는 삶은 비체에게 있었다.
아니― 엄격하게 말하자면 미궁에 숨어 사는 것을 삶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츠쿠모가미들은 자신의 근본이 된 물건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버린 존재들을 증오하고 또 미워하면서도,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물건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들이 품은 한(恨)이 그들의 정신과 육체까지도 강제로 고정시켜 묶어 두는 것이다.
―나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야 한다며, 같은 처지의 동족이 있으니 괜찮다는 핑계로 미궁 깊숙한 곳에 꼭꼭 숨어 자신의 마음마저도 감추어 두고 있던 츠쿠모가미들은 성검이 제 짝을 만나는 것을 보며 잊었던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또 배신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깥세상에는 온통 이기적이고 추악한 사람들밖에 없다는 것을 당장 오늘 실감하게 된 참이 아닌가.
그렇지만 이 자리에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이가 있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갈래!
베이컨의 선언에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다른 츠쿠모가미들이 잇따라 내뱉었다.
―나도 갈래! 너라면 믿을 수 있어!
―몸을 바쳐 우리들을 지켜 줬어……! 한 번만 더 믿어 보고 싶어!
―나도, 나도! 나도 같이 가!
기준과 비체가 구출했던 서른 명의 츠쿠모가미는 망설일 것도 없다는 듯 단숨에 기준 쪽으로 날아들었고, 방어전을 함께 치렀던 다른 츠쿠모가미들 또한 그들의 뒤를 따르고 싶은 듯 머뭇거렸다.
그들이 당장 합류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전투 능력이 없어 심처에 숨어 있던 츠쿠모가미들이 오들오들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준과 비체와 함께라면 자신들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한 츠쿠모가미들은 괜찮다, 버려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약간이나마 싹텄다.
하지만 전투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원래부터 미궁에서 보호만 받아 오던 이들은?
아무리 저 남자가 상냥하다지만 짐이 될 녀석들까지 받아 줄까?
혹시나 다시 그들을 버리지는 않을까?
―거,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데!
늠름한 워해머의 형태를 띠고 있는 츠쿠모가미가 바닥을 쿵, 찍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그 직후 미궁 할아버지한테 무슨 짓이냐며 양옆에서 다른 츠쿠모가미들이 그를 쿡쿡 찔러 대긴 했지만 말이다.
―당신에게 우리 능력을 제공할 테니 저 아이들을 지켜 줘! 그러면 나도 너와 함께 가겠어!
―바, 바보야! 부탁하는 건 우린데 뭘 그렇게 큰 소리를 높이고 있어! 그러다가 저 사람이 우리까지 안 받아 주면 어쩔 거야!
―뭐?! 이, 이기적인 녀석이, 그렇다고 저 불쌍한 아이들을 버려두고 가자는 거냐!
―말을 고르라는 거지! 난 저 사람과 함께 가고 싶단 말이야……!
―싸우지 마! 우리끼리 싸우면 답이 없다고!
―아직 저 사람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받아 달라 말라 하는 것부터 웃겨!
―미궁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 만약 우릴 다 받아 준다고 해도 미궁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내분을 일으키는 츠쿠모가미들.
기준은 저들의 바닥을 찍은 자존감과 애정을 갈구하는 본성에 처량함마저 느꼈으나 그와 비체를 제외한, 영력이 없는 다른 이들은 현대 사회였더라면 아홉 시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했을 법한 단체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뭔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자기, 어떻게 할 거야?”
“억지로 구속할 생각은 없지만 따라오겠다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물론 없지.”
츠쿠모가미들이 전원 ‘우린 아무것도 안 할 거고 넌 우릴 구해 줬으니까 앞으로 사는 것까지 책임져라.’ 상태인 것도 아니고, 전투 능력이 있는 이들은 확실히 도와주겠다는 발언까지 했으니까.
비전투원들을 보호하는 것쯤이야 어려울 일이 없다.
틸라의 아공간 내부 발할라에 보호하면 최소한 기준과 틸라가 죽기 전까지는 모두 안전할 것 아닌가.
“내 뜻은 전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
지들끼리 싸우면서도 기준과 비체의 대화를 빠짐없이 듣고 있던 츠쿠모가미들이 난리를 피우던 것을 멈추고 조용히 그들 곁으로 몰려들었다.
아직 자아가 불완전하거나 전투 능력이 일절 없는 츠쿠모가미들도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로 몰려들었으니, 그 숫자가 거의 300에 가까웠다.
―우리는 살고 싶어. 우리를 보호해 주신 미궁 할아버지에게는 감사하지만…… 지금까지는 살아온 게 아니었어. 그저 숨이 붙어 있었을 뿐이지.
츠쿠모가미도 숨을 쉬냐는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던 기준은 근처에서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혜를 발견하곤 단숨에 진정했다.
세상에 저 녀석만큼 반면교사로 좋은 녀석도 없다.
그리고 딱히 지혜와 호흡을 맞춘 게 아니니까 비체가 질투하는 시선으로 지혜를 노려보는 건 삼가 줬으면 했다.
―할아버지, 저희는 이 사람을 따라가고 싶어요. 미련한 짓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 번 사람을 믿어 보고 싶어요. 보내 주실래요?
―야, 베이컨!
―하지만 어떻게 해, 너희도 다 같이 가고 싶잖아! 할아버지한테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낫잖아!
재차 웅성거리는 츠쿠모가미들의 모습에 기준은 한숨을 내쉬곤, 가만히 벽으로 다가가 한 손을 얹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따라오고 싶다면, 내가 힘 한 번 빡세게 써 볼게. 영력이 송두리째 뽑히겠지만 어찌 네 형태를 변형시켜 우리 거처로 옮기는 것까진…….”
―그럴 필요 없다.
묵직한 노인의 목소리에 기준은 깜짝 놀랐다.
이 자식 말할 수 있으면서 여태까지 입 다물고 있던 거였나!
아니 물론 미궁과 계약하고부터 그의 의사가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오고 있긴 했지만!
―나는 어른스럽지 못해. 둥지 밖으로 나가는 새끼를 배웅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지만 내 눈에는 하나같이 나약해 빠졌어.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어. 그냥은 못 보내.
―할아버지이…….
그의 단호한 선언에 츠쿠모가미들이 축 늘어지고, 기준 또한 긴장감이 솟았다.
그런가.
어쩐지, 사실상 이번 이벤트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골든 드라코니안 세력과 크림슨 드라코니안 세력을 비체가 홀로 감당하며 미진한 느낌을 받던 차였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사실 미궁이 숨겨진 보스였다니 완벽하게 짜인 시나리오가 아닌가!
손을 잡고 협력했던 동료가 주인공을 배신하며, 아군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적으로 나타나는 순간의 그 전율.
이렇게 잘할 거면 아군이었을 때부터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애초에 원래가 어정쩡하게 약했던 탓에 쉬이 어둠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라는 진리를 기준이 깨달은 것이 언제던가……!
―함께 가야겠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욕해도 알 바가 아니다.
“응?”
기준의 망상은 미궁이 팔불출 같은 말을 뱉는 순간 멈추었다.
―그러니 힘을 빌려다오.
기준은 미궁의 선언 직후 자신에게서 막대한 양의 영력이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벤트 보상으로 레벨업을 거듭하며 영력이 완전히 충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력 스테이터스, 각종 영혼 관련 스킬의 성장을 이룩한 덕에 아슬아슬하게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응? 미궁이…….”
“무너진다?!”
영력을 무식하게 퍼붓고 있음에도 실시간으로 미궁 곳곳에 금이 가고 천장에 구멍이 뚫리며 잔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도주해야 하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던 기준은 곧 미궁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미궁에 깃들었던 영혼이 떠나가면서 미궁이 츠쿠모가미로서의 힘을 잃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츠쿠모가미의 힘으로 지탱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져라 난리를 쳤는데 미궁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길드 마스터, 슬슬 도망가죠?!”
“마법진, 마법진! 율영 님!”
“아냐, 괜찮아!”
기준이 윽박지르듯 외친 직후 신기하게도 무너지던 미궁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한 광경.
지혜가 경이로운 표정으로 기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설마 ‘멈춰’의 권능을 얻은 거예요……?!”
“신아, 네 여친 뒤통수 한 대만 때려 줘.”
“우리 누나가 때릴 구석이 어디 있다고 때려요.”
―내가 했다.
루멘 파티 명물인 삼인조 콩트를 잔혹하게 끊어 버리며 바닥에서 뭔가가 치솟았다.
기준은 자신의 눈앞에 멈춘 흑색의 거대한 구슬을 바라보며 말을 골랐다.
마법사의 오브라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단지 구조물이라기엔 그 안에 뭉친 마력과 영력이 방대하기 짝이 없었다.
“코어?”
―그렇다. 나 자신을 미궁의 코어 하나에 응축시켰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정착할 곳을 찾아야 해.
―와,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우리랑 같이 갈 수 있대!
―와, 와와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츠쿠모가미들은 미궁이 자신들을 막기는커녕 함께 간다는 것에 환호하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여태까지 미궁의 은혜를 입었어도 그와 직접 접촉하지는 못했던 츠쿠모가미들이 할아버지에게 재롱을 부리는 손자 손녀처럼 미궁 코어에 제 몸을 부딪쳤다.
기준은 황금 목걸이 형태의 츠쿠모가미를 시작으로 온갖 츠쿠모가미들에게 뒤덮인 코어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런 미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집을 소개해 주지.”
―격이 낮은 곳에는 머무를 수 없다. 적어도 네 무구를 만든 장인 정도는 데려와야 한다.
“글쎄 안심하라니까.”
붕괴가 지연된 미궁을 둘러보며 음음, 고개를 끄덕인 기준이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신화적인 건축물이라고 들어는 봤나 모르겠네.”
이렇게 해서 틸라의 아공간에 감춰진 기준의 비밀 무기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기준과 테라 길드를 집어삼키려 개시되었으나 끝내 그들에게 모두 내어 주는 결과가 되어 버린 이벤트의 막이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 혹시 감춰진 보물 같은 거 없나? 츠쿠모가미들 말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