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6)
나 빼고 다 회귀자-326화(32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26)
Chapter 62. 트리거 – 1
이벤트가 끝나고 신들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는 이유로 루멘 파티는 저번 이벤트로 쌓인 피로를 털어 내자마자 곧장 길을 나서야 했다.
길을 나선다고 해도 거점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호숫가일 뿐이었지만.
“우니카, 매번 너한테 부담을 지워서 미안해.”
이번 원정에 나서는 것은 루멘 파티 전원.
심지어 은밀 기동이 중요시된다는 이유로 신수 토벌 때도 이벤트 때도 집을 지키고 있던 나비냐까지 합류시켜야 했다.
자연히 그들의 부재중에 길드를 관리하는 역할은 우니카에게 돌아갔으니.
마스터가 없을 때 길드를 관리하라고 있는 게 서브 마스터인데 예민은 자신이 기준의 곁에서 떨어지면 그사이 그가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할 것처럼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탓에, 차라리 우니카를 새로운 서브 마스터로 내세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만, 테라 길드의 신입 관리부터 타 국가와의 동맹까지 모조리 우니카의 주관인데 이걸 그냥 길드 마스터의 비서라는 감투만으로 감당시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길드를 통솔할 사람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죠.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준 님. 저는 준 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려고 당신을 따라온 거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우니카는 거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어 보였다.
이전부터 집단을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그녀이니만큼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 대신, 돌아오시면 단단히 보상해 주셔야 해요. 데이트도 있고요.”
“그, 그래.”
안 그래도 바로 얼마 전 루시의 폭탄 발언 때문에 여성진의 분위기가 뜨거운 가운데 자신의 존재도 잊어 먹지 말라며 겁도 없이 장작을 던져 대는 우니카의 돌발 행동에 기준은 전율했다.
이 여자도 저 여자도 악셀을 풀로 밟아 대는데 대체 왜 그녀들에게 과속 딱지를 끊어 주는 사람은 없단 말인가.
―그거 계약자가 끊어 줘야 돼. 면허정지 기간은 10…….
“그만. 거기까지.”
루시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농담을 필사적으로 끊어 내며 돌아서기가 무섭게 호수 바닥에서 하늘색의 눈동자와 머리색이 인상적인 날개 달린 요정이 튀어나왔다.
―준비는 됐어?
“혹시 우리도 물속으로 들어가야 해? 그러면 준비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형편없는 걱정을 하다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패배자.”
―도망자.
―진짜 동맹이고 뭐고 다 죽여 버리고 싶네.
요정이 이를 갈며 날갯짓하자 호수 바깥으로 퐁퐁 솟아난 물방울들이 기준과 일행을 덮쳐 가두었다.
설마 신위니 어쩌니 하는 말은 페이크였고 실은 루멘 파티를 기습하려던 것인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잠깐 했던 기준은 물방울 속에서도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호흡할 수 있음을 곧 깨달았다.
―결계야. 이 이상은 나도 보호할 수 없어. 놈들의 영역에 몰래 들어가려면 힘이 제법 소모되거든.
“그러면 일단 파티원들을 아공간에 감춰 둘 수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다시 꺼내면 되거든.”
―뭐? 그런 터무니없는 권능을 어디서…… 아니, 그래도 안 돼.
단순히 기준 한 명의 잠재력에만 기대는 파티가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휘휘 젓는 가브.
―그 안에서는 어떤 공간의 권능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어. 아공간을 연다면 그건 최후의 순간에나 해.
여태까지 제대로 써먹어 본 적도 없는 나글파르 및 200무녀 폭격이 시작도 전에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낭패감을 느끼고 입맛을 다신 기준이 문득 뭔가를 깨닫고 율영을 바라보았다.
“뭔데, 그 ‘잠깐, 이러면 얘는 완전히 쓸모없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은.”
“내 생각이 너무 읽기 쉬운 걸까.”
―응.
“내 능력은 공간마도뿐만이 아니거든?! 게다가 이번에 네가 준 오브로 새로운 능력도 숙달했으니까 그런 걱정 따윈 하지도 마. 아니, 딜 미터기 가져와! 딜 미터기! 누가 제일 잘하나 측정하게!”
“누가 율영한테 딜 미터기 같은 말 가르쳐 줬니.”
지혜가 기준의 시선을 피했다.
하여간 이 파티에 안 좋은 것들은 모조리 그녀가 만들어 내는 것이 분명하다.
―너희 사이가 좋은 건 알겠지만 내 앞에서 그렇게 자랑하지는 말아 줘.
―어머, 미카랑은 잘 안 되나 보네?
―잘 안 되고 자시고 우리 사이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없는걸.
미카, 아직까지 기준이 만나지 못한 네임드 천사의 이름이다.
이번 작전에는 함께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모습을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자 그것을 눈치챈 가브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미카는 우리 중에서 가장 많은 힘을 보전했어. 신이 아닌 것 가운데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고, 그래서 함부로 바깥에 나오면 들키기도 쉬워.
“저번엔 미카도 데려오겠다면서?”
―이 거점 안은 괜찮지. 하지만 밖은, 특히나 신들의 힘이 강하게 미치는 곳은 미카가 들어갔다간 단박에 아웃이야.
물방울에 감싸인 루멘 파티를 이끌어 호수 안으로 잠수하며 가브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더 이상 미카가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이번 작전에 성공한다면 그녀도, 우리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사에게는 성별이 없다는 주장도 제법 메이저하지만 성경에서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까지 싹 다 남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가브가 여자로 나타난 시점에서 미카도 여자라고 예상했어야 했나?
……하긴 루시퍼도 여자인 이 세상에 진지하게 그걸 따지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가브는 기준이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건 미카의 신성을 훼손하기 위해 놈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야. 하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잊힌 지 오래됐는데,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글쎄, 아마 우리 계약자의 고유능력 덕분이겠지.
―고유능력?
―안 가르쳐 주지롱.
소싯적의 천사들이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말다툼을 벌이는 동안에도 물방울에 갇힌 일행은 점점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아 갔다.
호수가 제법 깊긴 했지만 이젠 바닥이 보일 때가 되었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하강이 계속되는 걸까…… 기준이 문득 그런 의문을 떠올린 그때.
그는 문득 환경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은 어디로든 흘러. 놈들은 나를 경계해 물이 없는 곳에 신위를 감춰 두었지만, 그 어떤 신도 자연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 그곳에도 물은 있어.
가브의 말에 절로 태클이 걸고 싶어지는 기준이었으나 문과 출신이었기에 겸허히 입을 다물었다.
그를 대신해 품 안에서 고롱거리던 나비냐가 말했다.
“나도 잘 알고 있냐! 저번에 지혜가 인간의 70%는 물이라고 했냐!”
“오, 그건 고급 지식인데.”
“인간 열 명 중 일곱 명은 물이니 속아 넘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된다고 했냐……! 주인님은 물이 아니라서 다행이냐!”
“지혜 이 자식을 진짜.”
가브의 공간이동 방식에 일행이 어떤 생각을 하든 관계없이, 잠수는 계속되었다.
어느덧 새카맣게 물든 물속, 물방울에 갇혀 하강하는 그들 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이동하려고 하면 중간에 반드시 요르문간드가 끼어들어서 난리를 피웠는데 네가 그 자식을 없애 줘서 괜찮아졌어. 그것 하나는 감사할게.
“대체 어떤 이동방식이기에 요르문간드가…… 아니, 됐어. 이제 태클 안 걸어.”
다만 그것과는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가브는 요르문간드를 일대일로 상대해 이길 수 없는 건가?
그의 의문을 바로 읽어 낸 루시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가브는 전투형이 아냐. 물론 그래도 에픽 수준의 강함은 지니고 있지만, 요르문간드는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까. 뭣보다 요르문간드의 독은 순수한 물을 오염시켜. 상성이 안 좋다는 얘기지.
―그런 이유가 아냐! 단지 은밀하게 이동해야 하는 때에 내 힘을 드러냈다간 시스템에 감지되니까 도망쳤을 뿐이라고!
“그래, 그런 걸로 해 두자.”
―크윽, 이번 일만 아니었으면 정말로 죽여 버리는 거였는데……!
―혹시 계약자한테 아직 풀지 못한 감정이 있으면 지금 기회에 해소해 두는 게 좋을걸? 우리 계약자는 이제 곧 에픽 등급으로 성장할 거라서, 그때 되면 넌 계약자 앞에서 고개도 못 들 거야.
―하, 아무리 정세에 어두운 나라도 이 남자가 레전더리 등급으로 승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 알아. 레전더리에서 에픽으로 승급하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제국에 넘쳐나는 레전더리 등급 전사들은 다 병신이게? 물론 그것들은 병신이 맞지만!
―이런이런.
루시가 무척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너 계약자 레벨이 몇인지 알아?
―네 그 재수 없는 태도를 보아 이번 이벤트로 얻은 이득이 크긴 했나 보네…… 후, 좋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30레벨.
―50.
―말도 안 돼!
산전수전 다 겪었을 가브가 경악하는 모습에 살짝 자신감이 차오르는 기준이었으나, 1레벨에서 50레벨을 찍는 것과 50레벨에서 99레벨을 찍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기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루시 말마따나 그가 에픽 등급이 된다면, 그의 온갖 칭호들과 사기적인 고유스킬의 힘을 빌어 어찌어찌 외신과 적대해 볼 만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대체 어느 세월에?
‘확실히 이번 일은 나한테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네. 성장이 급한 이때, 성공만 하면 대량의 경험치가 보장되는 작전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여러모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지. 계약자는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에픽 등급이 되면 계약자의 성장도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믿고 있을게, 루시.’
―응, 믿어 줘.
어라, 또 은근슬쩍 루시와의 간격이 좁혀진 것 같은데.
루시가 본격적으로 자신을 공략하려는 것 같아 기준은 조금 겁이 났다.
깊어질 수는 있어도 떼어 낼 수는 없는 계약관계에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다행히도 물방울이 하강을 멈추고 상승을 개시했다.
“무슨 문제 있어? 왜 돌아가.”
―상승과 하강은 그저 이미지일 뿐, 우리는 처음부터 계속 흐르고 있었을 뿐이야.
“입구와 출구가 같다는 얘기야?”
―잘 알아듣네.
가브가 살짝 웃은 직후, 일행을 감싼 물방울이 수면 위로 통, 튀어 올랐다.
분명 수면이었을 바닥은 빠르게 말라붙었고, 곧 물방울마저 허공에 녹아내리며 일행을 낯선 환경에 뱉어 내곤 완전히 사라졌다.
그곳은 흰색의 돌로 이루어진, 그리 크지 않은 신전처럼 보였다.
―이곳이야.
―바로 내부로 잠입한 거야? 여전히 대담한 짓을 하는구나. 역시 역사상 최고의 주거침입자야.
―그건 그냥 계시를 내리려고 했을 뿐이야!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내부로 바로 들어오는 게 안전하다고!
“극소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농담은 그만두고 상황에 집중해 줄래?”
기준은 빠르게 인원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던 중 드물게도 은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표출하는 렌카의 모습을 발견했다.
“렌카,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 아뇨, 그저 환경에 놀라고 있었을 뿐입니다.”
렌카가 한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석실의 출구, 희미한 빛을 발하는 문.
그 너머로 이어지는 흰색 돌의 통로를 가느다란 눈으로 주시하며 그녀가 말했다.
“토리이(鳥居)에 대해 아십니까?”
“응, 신사 입구에 세워진 관문이잖아. 뭐라고 했더라, 인간 세상이랑 신성한 영역을 구분하는 문이지?”
“……정말로 박식하시군요. 우리 신 군도 그것만은 배웠으면 좋겠어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기준에게서 흘러나온 전문적인 답변에 렌카가 감탄했다.
하지만 기준은 ‘그것만은’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렌카에게 대체 내 뭐가 문제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으나, 바로 최근에 여성진이 제법 진심으로, 험악한 다툼을 벌였던 것을 떠올리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저것, 토리이입니다.”
다행히도 그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 렌카가 곧장 답을 내어놓았다.
석실 입구에 활짝 열린 문을 가리키며.
“신의 세상으로 가는 입구예요. 아니, 우리는 이미 안에 들어왔으니 출구라고 해야겠네요.”
그녀가 말을 마치는 순간 기준은 사방에 묵직하게 깔리는 기운을 느끼곤 옅게 신음했다.
신성한 영역이라?
줄곧 느껴온 기척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 루시가 주던 느낌이다.
그들은 이미 시스템을 지배하는 신들과의 전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