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37)
나 빼고 다 회귀자-337화(337/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37)
Chapter 63. 마지막 무대를 걷다 – 6
한바탕할 말을 쏟아 낸 후, 애써 여유를 가장하던 것이 완전 도루묵이 되어 버린 줄도 모르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집어 드는 스카이나의 모습이 기준에게는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여자가 과거 비체에게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떠올리자 절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제국의 반응은 어떻지?”
“내가 이곳에 온 게 곧 제국의 뜻이야. 프런티어의 삽질을 계기로 네가 운 좋게 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얻었다는 얘기지.”
“그게 아닐 것 같은데.”
제국이 한마음 한뜻으로 프런티어와 싸우려고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기준을 끌어들이려 했다면 우선 기준의 반려인 비체와의 관계가 최악인 스카이나를 이곳에 보내지는 않았을 터다.
그렇다면 남는 답은 하나.
“여기 온 건 네 독단이지?”
“…….”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기준의 시선에 스카이나는 더는 능청스럽게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기준이 판단을 내린 데에는 앞서 논한 이유가 물론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지금의 그에게는 직관을 넘어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신비스러운 능력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는 어쩌면 그의 체내에 머물러 있던 고유스킬이 진화하며 타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덕분일지도 모르고, 에픽 등급의 한계에 이른 영력 덕분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그와 계약관계에 놓여 있는 천사들의 진화 덕분인지도 몰랐다.
“당신…… 혹시 초월이라도 한 거야?”
자신의 속이 훤히 꿰뚫리는 기분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여는 스카이나에게 기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영적인 부분에서는 얼추 그럴지도 모르지.”
지금 단계에서 에픽의 한계…… 즉 99 스탯에 이른 능력치는 광마력과 영력, 매력까지 총 셋이다.
하지만 기준의 고유스킬이 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셋 중 가장 먼저 신의 영역에 이르는 것은 영력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말은 시스템이 결국 용사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얘기구나. ……처음 봤을 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죽여 버렸더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지 않았을 텐데.”
“대륙에 일어난 일을 모조리 내 탓으로 삼는 건 그만둬. 추해 보이니까.”
“맞는 말이야. 누굴 탓하겠어, 나도 정에 휘둘리는 한낱 필멸자에 지나지 않았던 거겠지…….”
그녀가 생뚱맞은 소리를 하며 기준이 아닌 누군가― 비체에게 일순 시선을 보내는 것을 기준도 느꼈다.
과거에 자신의 주도로 비체를 희생시킨 이후로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했던 걸까? 그래서 비체와 연이 닿은 기준에게는 과감하게 손을 쓰지 못했던 거고?
이런저런 추측은 가능하겠으나 기준이 논할 문제는 아니었다.
비체 역시 코웃음을 칠 뿐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스카이나가 미워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카이나라는 인간에게 더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에 반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스카이나도 그것을 느꼈을 테지만 과연 황족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일까, 놀라울 만큼 빠르게 신색을 회복하고는 재차 기준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네가 전부 눈치채고 있다면 나도 괜히 멀리 돌아갈 필요 없겠지. 그래, 맞아. 지금 제국에선 내전이 일어난 상태야.”
“프런티어에서 외신 사태가 일어난 이때에 맞춰서 제국의 내전…… 심히 공교롭네. 세상이 멸망하라고 누가 고사라도 지낸 건가 싶을 정도야.”
“농담이 아냐. 제국의 수뇌부 중 일부가 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신들을 대신해 우리가 시스템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어째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야.”
―그러게.
불과 조금 전까지 일어났던 신역 우당탕 대소동에 제국 놈들까지 끼어들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기준은 생각했다.
“그런 황당무계한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야? 너흰 방법도 모르잖아?”
“…….”
“거기서 왜 나를 보는데?”
“제국에 대마도사는 없지만, 대주술사는 있어. 신들의 명을 받아 대륙 전체를 커버하는 식(式)의 마법진을 그린 것도 우리들이고.”
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기준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제국이 무한히 반복되는 회귀에 대해 알고 있다면 지금과는 행동 패턴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그녀를 살며시 떠보았다.
“그럼 식의 정체도 알아?”
“빛과 어둠의 균형을 맞추는 주술진……이라고 전해져 내려오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 정도는 나도 알아. 여태까지는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 한심한 눈으로 보지 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어.”
“그래, 알겠으니까 얘기 계속해.”
식이니 시스템이니, 방대한 규모의 이야기로 기준의 기세를 제압할 생각이었던 스카이나는 지극히 태연한 그의 모습에 욱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시스템을 욕심내는 이들은 이 마법진을 수정해 시스템을 찬탈하고 싶어해. 성역을 매개로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한 거야.”
“신성모독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다니 똑똑하네.”
“그렇게 태평한 문제가 아냐!”
스카이나는 발악적으로 외쳤으나 이미 시스템이 빈껍데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기준은 심드렁할 뿐이었다.
혹시나 문제가 될까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귀신같이 그의 마음을 읽어 낸 루시가 바로 답을 주었다.
―신들은 그렇게 머리가 느슨하지 않아. 도마뱀들은 식을 찬탈할 수 없어. 만약 계약자 수준의 이레귤러가 나타나서 혹시나 식을 수정해 발동시킨다 해도, 그들이 빼앗을 만큼의 신위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아. 시스템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거든.
절로 안심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 협력한다고 확정되지도 않은 스카이나 앞에서 표정을 풀기라도 했다간 정치고수인 그녀에게 걸릴 테니 겉으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참고로 그들은 식을 발동시키는 제물로 너를 골랐어.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용사이면서도 시스템의 권능을 일부 무시하는 너를 매개로 삼는다면 시스템의 통제권을 빼앗을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면서 말이야.”
―오, 그건 제법 그럴싸한 말인데?
하여튼 이 제국 놈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지들 힘으로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산제물을 바칠 생각만 하다니!
“그래서 내전이란 그 과격파들과 지금의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파들 사이에 일어난 건가?”
“그래. 그리고 그 와중에 프런티어의 사건이 터진 거야. 농담이 아냐,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륙이 망해 버릴 거야.”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건 뭐지? 설마 우리 길드가 프런티어에 들어가 사태를 완벽히 해결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
“내전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엥, 그쪽?
그럴 거면 프런티어 얘기는 왜 했던 거야?
기준이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두 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스카이나는 뻔뻔하게도 말을 이었다.
“프런티어의 문제는 쉬이 해결될 일이 아냐. 지상에 강림한 외신의 사도들은 전염이라도 되듯이 빠르게 퍼지고 있고, 한낱 길드의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제압할 수 없어. 제국이 나서야 해.”
“프런티어의 사태를 해결하려면 제국이 나서야 하니, 제국의 내전을 빠르게 정리하는 걸 도와 달라고. 내가 해석한 게 맞아?”
“그래, 정확해.”
“……제국의 내전에는 어떻게 개입하는데? 혹시 잊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너희 제국이 주적으로 낙인 찍은 걸 알고 있거든? 바로 얼마 전 이벤트에서도 정예부대를 깨끗이 몰살시켰고.”
“그래, 그 덕에 과격파가 많이 줄어들었지.”
“…….”
혹시, 하고 기준은 생각했다.
혹시 제국 놈들이 유적에서 성검을 회수하려던 것도 그들이 발동시키려던 마법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부터 시나리오를 만들 테니 협력해. 너는 너를 붙잡아 제물로 쓰려는 못된 도마뱀 놈들과 싸우다가…….”
황녀가 스스로 도마뱀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모습에 비체가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아마 그것까지도 황녀가 의도했으리라 생각한 비체가 급격히 낯빛을 굳혔으나 이미 스카이나에게 그것을 들킨 후였다.
“싸우다가, 내 도움을 받아 그들을 원활히 물리쳤어.”
“네 도움을 받는다고?”
“시나리오라고 말했잖아! 나도 네가 제국의 암살부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은 당장 치워!”
“계속해.”
계속하고 자시고 스카이나의 시나리오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제국의 내전을 해결하고자 분주한 스카이나와 합류한 빛의 용사 기준.
둘은 이대로는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 판단, 제국에 빛을 되찾아 오자는 기치를 내걸고 합심하여 제국 황궁으로 진격한다.
그들의 목표가 나타났으니 당연히 내전의 한 축이 되는 과격파의 움직임도 읽기 쉬워질 테고, 기준이 황녀와 손을 잡고 나타났으니 온건파도 기준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힘들기야 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끝내 물리쳐. 나는 온건파의 지지를 얻어 제국의 여황이 되고, 너는 그 여황의 지지를 받아 제국과 함께 프런티어의 난리를 제압하는 거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무리 기준과 스카이나가 손을 잡는다 한들 온건파가 과연 순순히 기준의 존재를 용납할지, 내전을 제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고 해서 과연 스카이나가 수월히 황제의 위에 오를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정말 제국이 프런티어의 난을 제압하기 위해 나설 것인가, 등등 마음에 걸리는 점은 많았으나 그래도 아예 설득력이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내 제안은 이상이야. 네가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거야. 뭣보다 너는 대륙의 평화라는 얼간이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 이번 일은 네 목표와 완전히 부합하는 일이 될 거야.”
“……어떻게 생각해, 비체?”
기준은 한때 스카이나를 믿었다가 등을 찔린 비체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카이나가 비체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냈고……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은데? 제국의 수뇌는 몰라도 제국의 일반 시민들에게는 지금도 이미 빛의 용사로서의 준의 지지도가 높을 거야. 그런 상황에 준이 내전을 제압하기까지 한다면, 결코 제국이 준을 내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완성되겠지.”
“오.”
“그래, 맞아. 설령 누가 너를 배신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 거야!”
“물론 나도 완전히 같은 상황에서 찔리기는 했지만.”
“…….”
비체의 말에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스카이나.
그녀는 뭔가 무척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곧 비체가 어깨를 으쓱이며 재차 말했다.
“뭐, 준은 나와는 다르니까. 게다가 프런티어의 난리에는 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제국의 도움을 받아 그걸 진압할 수 있다면 손을 빌려주는 것도 좋아 보여.”
“계약서를 준비했어. 날 믿을 수 없는 건 이해해, 하지만 마법계약서라면――.”
“계약서 따윈 얼마든지 허점을 파고들 수 있지. 일이 잘못되어도 한 사람만 희생하면 해결되기도 하고.”
비체의 차가운 목소리에 스카이나가 재차 입을 다물었다.
“하나 약속을 받고 싶은 게 있는데. 준, 괜찮아?”
“응. 어차피 수락할 일이기도 했고.”
원래는 좀 더 스카이나를 가지고 놀면서 그녀를 조급하게 만들 셈이었으나 지금은 비체의 감정을 푸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 양보했다.
그의 배려를 이해한 비체가 그에게 눈웃음을 지어 주곤 스카이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전이 해결된 후에 나랑 준의 결혼식을 올려 줬으면 좋겠네.”
“윽?!”
“설마 준을 제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황제와의 결혼을―― 같은 생각을 하던 건 아니지?”
기준은 아무리 스카이나가 권력과 인재에 욕심을 내도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러겠냐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결혼이라니, 스카이나와 자신 사이에는 그 어떤 감정의 교류도 없었지 않은가.
그들 사이에 오간 거라고 해 봤자 기준이 일방적으로 베풀어 준 마파두부와 불닭볶음면 정도다.
그러나 어째선지 스카이나는 복부를 찔린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고개를 숙였다.
유일하게 드러난 용인의 새하얗고 날카로운 두 귀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
“후, 이 페로몬 덩어리 진짜.”
“……어?!”
[율영(레타) : 그래서 기어이 제국이 열어 주는 결혼식을 치르시겠다 이거죠?] [베아트리체(레타) : 신혼여행은 해산물이 유명한 프런티어 왕국이야. 여기저기 꾸물거리는 문어 많을 거야.] [예민(레타) : 정말 신나는 신혼여행이 되겠네요. 부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신틸라(레타) : 궁금한 게 있어. 베아트리체 네가 스카이나와 인연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녀가 준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로라(레타) : 저는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 베아트리체 님 때문에 준 님을 공격하지 못했다느니 헛소리를 해 댔지만 이전부터 요리를 얻어먹겠다는 핑계로 찾아올 때마다 즐거워했던 게 눈에 보였으니까요.] [베아트리체(레타) : 지금도 마파두부 해 달라는 거 간신히 쫓아 보냈어.] [예민(레타) : 잠깐만, 지금 황녀 따위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요. 누구 루시 본 사람 있나요?] [로라(레타) : 베아트리체 님이 밀착 마크하고 계시던 게.] [베아트리체(레타)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