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39)
나 빼고 다 회귀자-339화(339/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39)
Chapter 64. 선악의 저편 – 2
“수도로 돌아오자마자 마주친 게 파스투스였던 건 아주 운이 좋았어.”
레전더리 상급의 강자가 눈 깜박할 사이 죽어 버리는 모습에 아연해져 있던 것도 잠시, 곧 평정을 되찾은 스카이나가 무척 비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땐 꼬박꼬박 오라버니라고 불러 줬던 주제에 죽자마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우스웠다.
“다른 황자들은 그래도 황금혈의 주인답게 머리를 조금 굴리지만 파스투스만은 너를 직접적으로 질투했던 머저리거든. 과격파가 불리해질 걸 알고 있어도 너를 앞에 두고 물러나거나 양보할 수 없었겠지.”
파스투스에게 제국을 위해서라도 이쪽에 붙으라는 말을 늘어놓았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를 한층 도발하기 위한 말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인성이 새카맣다는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기준은 불과 조금 전까지 파스투스와 함께 움직이던 병사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테라 길드와 섞이는 것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병사들이 너무 단순한 거 아냐?”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었어. 머리를 굴리는 건 제국의 수뇌부면 족하니까. 저들은 황족의 명을 따라 목숨이고 영혼이고 내던질 수 있는 것들이야.”
제국은 오랜 세월 레타 대륙을 지배하며 골든 드라코니안, 그중에서도 황족을 신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황제가 천자를 자칭하듯, 이집트의 파라오가 최고 제사장이면서 신의 아들로 취급받았듯 시스템의 신들과 접촉할 권한을 독점하면서 자신들 또한 신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았던 것.
같은 이치로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기준도 황족과 비슷한 권한을 확보했다.
기준이 홀로 있으면 모르되 황족인 스카이나와 손을 잡은 이상 그들의 정당성을 따질 이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는 내전이 이어지리라 생각했지만…… 네 힘을 보니 그럴 것도 없어 보이네.”
“그래, 일단 이거 받아.”
“소멸시킨 줄 알았는데…….”
기준의 손바닥 위로 튀어나온 황금의 창을 받아 쥐며 스카이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파스투스에게 주어졌다는 게 아쉬울 만큼 좋은 성유물이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계륵이네. 황실의 핏줄을 이은 용인밖에는 다룰 수 없는데 안타깝게도 난 마법을 조금 다룰 뿐 무기에는 문외한이라…….”
“그럼 일단 내가 쥐고 있을게.”
“내가 여태껏 당신을 띄워 주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용사라는 직위가 당신을 골든 드라코니안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
뭐라 말을 잇던 스카이나가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은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나치게 어이가 없는 나머지 눈이 새하얘지고 입만 떡 벌어진 모습이다.
주인에게만 감응해야 할 황금의 창이 기준의 손아귀에서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 두께가 얇아졌다 두꺼워졌다 하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다루고 있는 거야――?!”
“내 고유스킬 덕분인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아.”
신의 영역에 이른 그의 고유스킬은 이제 일일이 메시지를 띄우지도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근원에 접해 있는 스킬의 발동 여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필시 세상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이 스킬이 온갖 제약을 뜯어고쳐 성유물의 소유권을 얻은 것이리라.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내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행할 수 있게 해 주는 스킬. 그야말로 초인을 위한 스킬이네. ……다만 조심하지 않으면 타인을 무시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긴 한데.’
위버멘쉬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은 니체이고, 그가 초인과 반대되는 이들― 즉 스스로 가치를 규정하지 못하고 남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이들을 ‘노예’라고 칭하며 이들과 닮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노예들을 멸시하고 억압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거기까지 가면 니체보다는 나치에 가까워지게 된다.
오히려 진정한 초인이라면 노예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 또한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이미 죽은 놈까지는 알 바 아니니까 창은 잘 쓰겠지만.
안 그래도 그의 전투기술이 월식으로 집약되면서 더 이상 무구의 형태에 구애되지 않게 된 참이니 자연스럽게 창을 한 손에 쥐는 기준이었다.
“팔랑크스 같아요, 오빠.”
“역시 본인도 내심 쌍방패가 쪽팔렸던 게 분명해.”
“방금 내가 쭌에게 전수해 준 전투기술에 토를 다는 녀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리의 선두에 선 기준이 티란누스 황족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성유물을 쥐고 나아가자 그 효과는 지극히 발군이었다.
황족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병사들은 그것만 보고도 눈이 뒤집혀 기준을 따르게 될 지경이었으니까.
심지어 황족들에게도 그 장면이 자못 충격적이었는지, 3황자인 파스투스보다 계승 순위가 딸리는 황족들은 아예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를 시도하거나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당신은 이 제국을 차지하고자 하는 건가?”
“설마, 그냥 너희랑은 싸울 만큼 싸웠으니 이제 그만 화해하고 한 팀을 먹자는 거지.”
제국을 받아 봤자 귀찮기만 하고, 뭣보다 곧 외신이 쳐들어온다는데 나라를 가진대 봤자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하는 황족을 기어이 쫓아가 마무리하고 돌아온 스카이나는 생각이 다소 다른 듯했다.
“황실의 성유물을 쥐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제국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몰라.”
“솔직히 지금까지는 제법 만만했는데.”
수도에 입성한 지 불과 몇 시간 되지도 않아 3황자 파스투스를 비롯해 여태 조우한 과격파 집단들을 모조리 갈아 버리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을 병력으로 받아들여 전진하는 그들의 세력은 10만 이상으로 불어난 상황.
슬슬 황금으로 세운 티란누스 제국의 황궁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투를 얘기하는 게 아냐. 이제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국의 구심점은 당신이 될 거라는 얘기지.”
“……?! 어쩐지 아까부터 인상이 희미하더라니, 오빠를 강조하려고 일부러……! 이걸 포석으로 삼아 오빠와 결합하려는 속셈이었구나!”
“아니, 솔직히 나도 이 사람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는데.”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 예민과 그녀의 지적에 떨떠름하게 대꾸하는 스카이나.
그러나 곧 그녀의 표정이 돌변하더니 뾰족하게 외쳤다.
“결계!”
“읏?!”
전투에서는 한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율영이 잽싸게 전방을 막는 결계를 쳤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떨어져 내리는 불덩이는 막아 냈으나, 마치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일행과 함께 진군하고 있던 용인들 가운데 몇몇이 폭발을 일으킨 탓이다.
“간자인가!”
“아니, 마법이야! 지극히 악랄한, 피술자의 영혼을 연료로 삼아 발동하는 황실의 마법……!”
“익숙한 마법이야. 나도 저기에 당했었지.”
“…….”
그러니까 지금은 아군끼리 서먹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다행히 이미 한 번 이 마법에 당해서 익숙해져 있던 비체가 빛의 방어막을 펼쳐 준 덕에 결계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도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3황자 파스투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이 활짝 열린 황궁 정문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상공 100미터 즈음에 그들을 지휘하는 황족이 부유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하나, 여자가 둘이었다.
스카이나의 시선은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용인에게 꽂혀 있었다.
“렉스 오라버니……!”
“이름 한 번 직관적이네.”
누가 들어도 황태자라는 사실을 예상하게끔 하는 이름이 아닌가!
과연 기준의 예상이 맞았는지, 렉스라는 이름을 지닌 황자가 머리 위에 얹은 찬란한 보석 관을 과시하듯 고개를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설마 네가 이렇게 당당하게 군사를 움직일 줄은 몰랐다, 스카이나. 이렇게 대담한 성격은 아니었을 텐데.”
딱히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일행의 귓가를 울리는 것은 물론 수도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먼저 군사를 이끌고 수도를 당당히 활보하며 온건파 황족들을 사냥한 것은 누구죠?”
“그건 물론 나의 어리석은 동생 파스투스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구나.”
앞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불덩이들이 지상에 착탄하고도 기세를 잃지 않고 데굴데굴 구르며 불꽃으로 온갖 선을 그려 내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짙은 마력으로 마법진이 완성되고 있음을 간파한 율영이 제 마력을 뻗어 내 그것을 방해했다.
스카이나와 대치하는 척 몰래 그들을 묻어 버릴 대마법을 구성하다 말고 방해를 받은 황태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실력이 좋은 동료들을 데리고 왔군. 계승전에서 밀려났다고 외부의 힘을 빌리다니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추한 것은 주제를 모르고 신위를 탐하는 오라버니예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십니까? 너무 오랜 세월 지배자로 군림하며 살아온 탓에 지루해져, 그만 죽고 싶어지신 겁니까?”
“시야가 낮은 이의 눈에는 저와 같은 것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인 황태자가 일순 스카이나의 옆에 선 기준을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그와 함께 황태자가 이끌고 나온 군사 가운데 최정예에 달하는 이들이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오르니, 그 숫자가 100에 달했는데 경악스럽게도 그들 모두가 레전더리 상급에 이르는 힘을 자랑했다!
3황자 파스투스에게 성유물이 없었더라면 일대일로 싸워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이들…….
그러니까 대체 왜 파툼을 용사로 삼았던 건데?! 물론 파툼도 강했지만!
“너희는 무슨 레전더리 등급을 찍어 내기라도 하는 거냐?”
“타고나길 유니크 등급인데, 조금만 자질이 있어도 레전더리 등급에 이르는 건 어렵지 않아. 하물며 수백 년 세월을 살아가는 골든 드라코니안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게 사기이지 않은가!
이런 놈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고도 외신을 막지 못했으니 역시 신들이 계속 회귀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기준은 생각했다.
차라리 저것들을 만들어 내는 데 쓴 에너지를 소수에게 집중시켰다면 외신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너희가 되찾아야 할 것이 보이나? 저자다. 저자가 티란누스 황실을 모욕하고 신의 제단을 무너트렸으며, 기어이 신성까지 훼손했다. 거짓된 빛에 감싸인 타락한 용사! 놈을 쓰러트려야만 비로소 제국에 빛이 돌아오리라!”
“오라버니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준을 희생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리석은 스카이나, 보이지 않느냐? 지상에 남은 신성을 모조리 놈이 움켜쥐고 있다. 신으로 향하는 길이 놈에게로 이어져 있단 말이다!”
처음부터 줄곧 연극조로 말을 늘어놓던 황태자였으나 마지막에 내뱉은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순간 놈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 몸을 굳히는 기준.
그 귓가로 루시의 감탄한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나를 보고 있는데? 게다가 저 보석관…… 미약하지만, 신성이 느껴져. 상대가 계약자만 아니었더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물어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날개 달린 드라코니안들을 위시로 황태자의 군단이 일제히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에 마주하는 테라 길드와 스카이나의 병력 또한 마주 무구를 들었다.
황궁의 앞에 이르러 비로소 대회전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