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45)
나 빼고 다 회귀자-345화(34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45)
Chapter 65. 기준 – 2
사방이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안개와 꾸물거리는 무언가, 부정형의 고체인 듯하다가 액체처럼 녹아내리며 덮쳐 오는 괴물, 식물이었다가 돌아오지 않는 지난날의 미련과도 같은 환몽으로 변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도플갱어처럼 모습이 변하는 괴물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괴물들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환경.
등급이 낮은 이들은 조금만 방치되어도 곧 자신들이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모르게 될 지경이었다.
“사제들은 정화의 간격을 보다 빠르게!”
“걷어 내고 불태워! 전방에 있는 것은 네 연인이 아냐, 그냥 지금 바로 불태워――!”
차라리 뚜렷한 사람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던 세스는 약과였음을 일행은 금방 깨달았다.
아니, 이미 프런티어 전역에 마수를 뻗은 외신의 세력이 이미 기준과 면식이 있는 세스를 보내 선전포고를 한 셈이리라.
외신들이 이 세상을 탐내는 이유가 풍부한 마력이든, 신성이든, 혹은 신적인 존재나 시스템이 보유한 강대한 권능이든 그 모두를 기준은 품고 있었으니.
저들 입장에선 극상의 먹잇감이 알아서 제 입으로 기어 오는 것을 보았으니 인사라도 해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 그게 아니라.
기준이 자신들의 대적자라는 사실을 뚜렷이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를 탐색하려 드는 것이겠지.
“형.”
점점 더 심해지는 환경에 예민해져 아예 프런티어 전역을 불태울 기세로 마법과 권능을 난사해 대는 정예군단을 보던 은신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기준을 불렀다.
“이게 지금 형 스킬하고 종족 스킬 덕에 저희가 영향을 거의 안 받고 있어서 그런가 저 사람들 힘들어하는 게 더 무섭게 느껴지네요.”
“정신이상자밖에 없는 마을에서 너 혼자 정상이면 당연히 무섭지.”
극도로 힘들어하는 병사들과 달리, 평균 등급이 더 떨어지는 지구인들은 지극히 태연했다.
기준의 고유스킬 덕분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지구 문명만이 얻을 수 있는 문명 스킬이 두 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레타에서 가장 험악한 환경에 처한 지금 그들은 적응 스킬에 의한 보정을 최대로 받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진화 스킬로 실시간 성장까지 이루고 있었으니.
이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버티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은 또 한차례 전체적인 등급을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전 지금 살짝 코스믹 호러를 느끼고 있는데 형은 혹시 이런 거 보면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인 사상을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미지에 대한 공포로 그럴싸하게 치환해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를 말하는 거야?”
기준은 길게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빛을 머금은 방패를 던져 전방에 나타나는 무수한 촉수와 어둠, 첫사랑과 목수의 환영 따위를 없애고 있었다.
그에게 일절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꾸준히 방향성을 바꾸어 나타나는 환영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내 유치원 시절 첫사랑하고 수 형이 왜 키스를 하고 있냐고, 범죄 그 자체잖아.
어처구니없는 환영에 코웃음을 치고 있는 기준의 모습을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비웃음으로 받아들인 은신이 재차 말했다.
“그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으면 이미 좋아하는 것 아녜요?”
“아, 러브크래프트? 한창 힙한 걸 좋아하는 시기의 문학 소년은 으레 크툴루를 한 번쯤은 꿈꾸고 넘어가는 법이지. 나이를 좀 먹고 나니 크툴루가 한국에서도 은근히 메이저가 되어서 재미가 없어졌지만.”
“그리고 그때부턴 자연스럽게 러브크래프트를 까게 되는 거구나.”
“자신의 사춘기 시절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을 그 시절을 견인했던 우상에 대한 분노로 치환하는 건 흔한 일이잖아. 원래 뭐만 하면 씹덕 타령하면서 인터넷에서 욕하는 애들도 대부분 이쪽에 어설프게 발을 담갔다가 탈덕한 애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예를 들면 웹소설이 라이트노벨 같다면서 욕하는 경우가 그렇다.
대개는 양쪽 모두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다.
애초에 어떠한 문화나 문학의 형태를 열등하다면서 까 내리는 것부터가 글러 먹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 듣다 보니 묘하게 설득이 돼……!”
감탄하는 은신 옆에서 지혜가 굵은 꼬챙이 수천 개에 동시에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움찔거리고 있는 것은 못 본 척해 주기로 했다.
외신이 보여 주는 환영보다 더한 극딜을 파티원에게 꽂아 버린 기준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전방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화려하게 불타며 정화되고 있는 대지가 보였다.
처음엔 프런티어의 군단과 집단전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 많은 군대를 대동한 것인데, 정작 지금까지 군대가 한 일은 땅에 불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내년 농사는 잘되겠네.”
“밭에서 문어가 자라도 나는 몰라.”
비체는 질색하며 성검을 휘둘렀다.
그에 따라 마치 유성우가 내리듯 저 하늘 위에서 빛에 뒤덮인 수백의 츠쿠모가미가 쏟아져 내리니, 용인을 덮치다 말고 그것에 꿰여 버린 어두운 연기 덩어리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소멸했다.
외신은 결코 바보가 아닌지라 자연환경으로 군단을 압박해 오는 동시에 곳곳에 레전더리 등급 이상 가는 사도급의 정예를 숨겨 두고 있었으나, 외신의 세력과의 전투에 이골이 난 비체는 터무니없는 기감으로 군단의 활동 영역 전체를 커버하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성검과 츠쿠모가미들을 통솔해 사도들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달라.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거나 접한 신화 속 신들, 혹은 전승은 지구의 것과 거의 완전히 같았잖아.”
“그랬죠?”
“그런데 이건…… 뚜렷하지가 않잖아. 크툴루 신화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미지의 공포적인 존재에게 이름과 특성을 붙여 인지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건데, 내가 보기에 이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거든.”
소위 크툴루 신화의 신들이 현대의 소설과 만화 등의 매체에서 공포는커녕 매력적인 개인으로서 등장하거나 혹은 우주적인 공포라는 거창한 별명을 달고 있는 주제에 결국엔 퇴치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이름이 붙고, 특성이 붙어 접근법이 생겨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끝까지 미지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인지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개인이 될 수 없어야만 한다.
러브크래프트 원전만 해도 두루뭉술한 묘사가 잦고 인간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죽어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볼 때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후대의 창작자들은 거기에 살을 붙여 신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신화는 단박에 재밌어졌고 소위 공식이 생겨나며 여러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지만, 그 탓에 신비와 경외는 줄어들고 말았다.
“잘은 알지 못하지만 아마 러브크래프트는 어떤 식으로든 외신과 접했던 게 아닐까? 지구의 다른 신화가 생겨났던 것처럼. 다만 외신은 그 성질이 지구의 신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지구의 신들이 이해되기 위한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면 외신은 그 반대라는 거군요. 이것도 그럴싸한데……?”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제일 높지만. 외부의, 미지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건…….”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린 것인지 비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지에 대한 공포를 하나의 단어로 만들기만 해도 벌써 공포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은데……?”
“물론, 알면 알게 될수록 덜 무서워지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러브크래프트가 제대로 한 건 한 셈이지.”
애석하게도 그는 외신의 사념을 수신하는 과정에서 미쳐 버렸는지 인종차별주의 사상을 품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설령 기준이 크툴루 신화에 통달했다 한들 그것을 외신들을 상대하는 데 유효하게 써먹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외신들의 힘은 그보다 좀 더 애매모호하고 보다 치명적이었으며, 보다 광범위했고 불가해했다.
“루시, 전에 아무리 프런티어에 외신의 힘이 넘쳐나도 외신들의 강림과는 다른 얘기라고 했었지?”
―응.
인간 형태로 자신의 동료들을 통솔해 마찬가지로 프런티어의 대지를 빛과 불로 불태워 정화시키던 루시가 기준의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이곤 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건 신들이 파업 투쟁을 안 하고, 시스템의 힘이 최대로 강화되어 있을 때 했던 얘기라서 지금은 좀 다르네. 계약자도 예감하고 있겠지만 프런티어에 외신의 힘이 점점 더 많이 새어 나오고 있어.
“그래, 그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레타를 외신으로부터 수호하는 결계는 지금 이 순간도 점점 약화되고 있을 거야. 결전이 그렇게 머지 않은 듯해, 그때까지 계약자는 어떻게든 서사의 영역에 이르러 줬으면 해.
“그러니까 루시 네 말은…….”
―프런티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에픽 등급이 되면 이상적이겠네. 아마 그렇게 되면 스테이터스는 초월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가능성이 생겨.
어쩌면 지금 당장도, 아니 그건 좀 힘드려나.
사실 루시는 기준이 고유스킬을 일찍 초월시킨 것만 해도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 덕에 이렇게 외신의 기운이 짙은 곳에서도 수만 명 이상을 완벽히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처음부터 줄곧 짐덩이로만 여겼던 지구인들…….
루시는 순전히 저들을 기준의 양심과 정신을 지키기 위한 묵직한 토템쯤으로 여기고 있었으나, 온갖 기연을 겪어 이곳에까지 이른 수만 명의 지구인들은 기준 한 명의 지지를 받아 말도 안 되게 성장하는 것이 보였다.
전부 기준 덕에 생겨난 두 개의 문명 스킬 덕분이다.
―외신의 쫄따구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용인들보다 더 쓸 만할지도 몰라. 신들은 대체 여태까지 뭘 한 거람? 외신을 상대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종족을 계약자가 실시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게 인간의 장점이지.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요, 오빠가 어떻게 인간이야. 빛의 날개랑 천사 고리 같은 걸 달고 있으면서.”
옆에서 날아든 지혜의 통렬한 태클에 기준은 바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여기서 한 번만 더 등급이 오른다면, 어쩌면 순수하게 빛으로 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참이다.
유니크 등급 때부터 광휘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빛의 정화를 품은 존재로서 빛에 통달했다는 의미였을 뿐 신체 구조는 인간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의 내부에 머무르던 빛의 힘이 날개라는 형태로 외부로 뻗어 나왔으니, 이다음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완전한 빛으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와 기대감이 반반 섞인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외신도 무서울 것이 없겠지.
자신부터가 물질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니, 고유능력뿐만 아니라 완전히 대등한 위치에서 놈들과 겨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 아마 계약자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어. 그도 그럴 게…….
루시는 기준의 생각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재차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 달린 열두 개의 날개에서 동시에 벼락처럼 뻗어 나온 빛의 세례가 전방을 훑으며 대지에서 기어 나오던 검은 연기를 일소했다.
그러나 완전히 지워 낼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형태를 지닌 검은 군단이었다.
꾸물거리는 촉수, 딱딱한 갑각질로 뒤덮인 피부, 검게 물든 방어구와 무기…….
그 가운데에는 진홍과 심흑이 섞인 비늘도 엿보였다.
크림슨 드라코니안이 외신의 사도로 변이한 것이다.
―뭐, 남은 얘기는 초월하고 나면 그때 하자구. 아무래도 질 좋은 경험치들이 몰려온 것 같으니까.
―더 부지런히 움직여, 우르! 이래서 우린 주인 언제 진화시키겠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움직인다고 우쭐거리지 마세요.
한때 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종족의 처참한 말로에 침음을 삼키는 골든 드라코니안들과 달리,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를 발견한 천사들은 두 눈을 번쩍이며 곧장 그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프런티어까지 힘겹게 끌고 온 정예 군단을 단순히 방역 업자로 격하시키는 장렬한 전투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