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46)
나 빼고 다 회귀자-346화(34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46)
Chapter 65. 기준 – 3
먹빛의 끈적이는 점액이 쩍쩍 갈라진 대지 틈새로 스며 나와 지상을 점차 늪지대로 만든다.
하필이면 그것은 불에 강한 저항을 갖고 있어 프런티어를 통째로 태워 버리려 하는 연합군을 크게 방해했다.
지상을 가득 메운 것은 검보랏빛의 안개다.
환영, 환각, 중독, 저주 따위의 온갖 상태이상 종합 세트를 품고 있는 그것은 이제 보니 외신의 사도들을 강화시켜 주는 효능도 있는 것인지 안개를 빨아들일 때마다 검게 물든 용인들의 몸집이 커져 가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외신의 권속으로 화한 크림슨 드라코니안― 한때는 소환자 단일 세력 가운데 최강을 논하며 제국을 밀어붙이기도 했던 그들은 비늘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들고 일어난 팔을 고무 인간처럼 길게 늘여 전방을 휩쓸었다.
―그래도 용의 인자를 품었다는 것들이 이렇게 맥없이 타락해 버리다니, 그러고도 너희가 사탄의 후예야? 미카가 보면 통탄하겠다!
―우리 미카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마!
―가브 너도 구경만 하고 있지 말고 싸워, 빨리! 늪지대 정화해!
―대지는 제 불꽃으로 정화하겠어요. 가브, 당신은 방어를.
―잠깐, 가만 생각해 보니 사탄의 후예면 타락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혹시 용인은 설계부터 잘못된 종족이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하늘에는 이젠 출신을 감출 생각도 없다는 듯 저마다 빛나는, 불타는, 흐르는, 휘몰아치는 날개를 펄럭이며 종횡무진하는 천사― 정령들의 모습까지.
누가 보면 완전히 지구 종말이나 요한묵시록의 한 장면을 떠올릴 법한 모습이었다.
용은 없지만 대신 타락한 용인들이 대지를 가득 메우고 있기도 하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기준은 천사들이 왜 갑자기 미카의 이름을 입에 냈는지도 바로 깨달았다.
미카엘은 사탄이 화한 붉은 용을 무찌른 전승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탄은 종종 루시퍼와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루시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걸까?
―그르르르…….
이미 인류보다는 괴물의 그것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거대한 용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가 비슷한 탓일까, 오염된 용인들의 모습에 까무러치게 충격을 받은 제국군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마법과 포격을 쏟아 내고 있었으나 그것을 모조리 튕겨 내거나 심지어는 흡수하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 실로 전율스러웠다.
신수라도 능히 사냥할 법한 수준의 폭격이 이어지는데도 모조리 씹어 먹고 다가오는 괴물의 모습에 전장이 경직된 찰나, 비체가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아, 저건 아는 애네. 내가 용사일 때부터 활약하던 용인이야.”
“핵심 인물이라는 뜻이야?”
“그러네. 나도 본 적이 있어. 크림슨 드라코니안 중에서는 겉으로나마 착한 척을 하던 놈이라, 혹시 우리 종족을 지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하지만…….”
기준의 의문에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말을 보태는 틸라.
지금 틸라의 종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크림슨 드라코니안들도 결국 프런티어에서 자행되는 문명 사냥에 한 발 거들었거나 최소한 묵인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틸라의 눈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질이 달라진 것만 봐도 놈에게 무슨 취급을 받았는지 눈에 선히 보이는 듯했다.
“놈이 저렇게 되어 다행이네, 틸라. 대륙을 위해서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선택지가 사라졌잖아.”
“후후, 그렇네. 여긴 나한테 맡겨 줄래?”
“기꺼이.”
정령들은 딱 봐도 경험치를 많이 줄 것 같은 괴물을 기준이 양보하자 무척 아쉬워했으나 무시했다.
기준이 물러나자 괴물은 외신에게 무슨 텔레파시라도 받은 것인지 곧장 그에게로 몸을 틀었으나 틸라의 불꽃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오늘은 그냥 보내 줄 수 없겠는데.”
―코오오오오!
종족의 비사와 연관된 일인 탓인지 평소에는 차분한 홍염수 로딤 역시 울음소리를 높이며 불꽃을 피워 냈다.
괴물은 그녀의 불꽃에 몹시도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불꽃에는 신(神)이 깃들었기에, 외신의 기운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탓이다.
기준과 비체의 존재감에 묻히기 쉽지만 그녀는 엄연히 둘의 뒤를 잇는 파티의 강자이기도 하다.
기준의 고유스킬을 공유하는 지금은, 그를 제외하면 외신을 상대하기에 누구보다도 최적이랄 수 있겠지.
덤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준보다도 훨씬 일찍 레전더리 등급에 도달한 만큼 레벨만 따지면 레전더리 등급의 한계에 가깝기도 했다.
―그르르, 너어, 는……!
틸라의 불꽃에 대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외신의 아우라가 일부 타 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일순 이성이 깃든 목소리를 내는 용인.
틸라는 기꺼운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불꽃을 뿜어내 놈을 태웠다.
입은 꾹 다물고 있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아직까지, 죽지 않, 귀찮게――!
이성과 함께 뚝뚝 끊긴 목소리를 내며 용인 역시 마주 팔을 휘둘렀다.
놈의 팔에 가시처럼 돋아난 검은 비늘들이 놀랍게도 일제히 발사되어 틸라를 노렸으나 틸라는 전혀 개의치 않고 놈의 본체를 불태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녀 대신 몸집을 부풀린 로딤이 불꽃의 숨결을 뿜어내 비늘을 일소했다.
비늘이 깨지고 그 사이로 새어 나온 검은 체액이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저항했으나 그도 무의미하게 곧 불꽃에 녹아내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용인의 몸에 달라붙은 틸라의 불꽃이 점점 몸집을 키워 갔다.
괴물에게서 새어 나오는 체액을 태우고, 외신의 아우라를 태우고, 비늘들을 녹이고 가죽까지 불태웠다.
―네, 네가……! 네가!
끔찍한 고통에 저항하듯 소리를 높이며 괴물이 양팔을 앞으로 마구 휘저었다.
제대로 얻어맞았다간 기준의 방패라도 흠집이 갈 법한 끔찍한 힘이 담긴 공격이었으나 틸라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양손을 앞으로 뻗어 불꽃을 방출할 뿐이다.
로딤이 입을 크게 벌려 놈의 양팔을 삼켜 불태웠다.
괴물이 재차 비명을 높이고 로딤도 충격을 받은 것인지 허공에 내동댕이쳐졌으나, 곧 일대를 가득 메운 틸라의 불꽃 속에서 불사조처럼 기력을 되찾아 다시 도약했다.
―키아아아아악!
양팔이 녹아 사라진 자리에서 무수한 촉수가 자라났다.
용인의 육체가 소실된 만큼 이성도 사라진 것일까, 괴물은 다시 끔찍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놈의 전신에서 튀어나온 체액들이 검은 비늘의 화살 세례로 변해 쏟아지고, 그것들이 다시 틸라의 신염에 녹아 소실된다.
수천, 수만 줄기의 촉수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고 휘둘러지며, 이윽고 그 또한 불꽃에 타올라 사라진다.
틸라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선 채, 오직 괴물에게만 시선을 집중한 채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꺼번에 다수의 잡졸을 상대할 때는 채찍을 즐겨 쓰는 그녀였으나 진심을 다할 때는 무구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연료로 삼아 적을 태우겠다는 각오로 힘을 방출할 뿐.
신염인의 혼까지도 깃든 것일까, 상처 입은 괴물의 전신에서 제멋대로 솟아나 꿈틀거리는 수십 개의 촉수들을 상대하는 틸라의 불꽃 또한 자아가 깃든 듯이 촉수들을 단번에 휘감아 태워 버렸다.
찬란한 불꽃은 청백색에 이르렀다가 다시금 붉어지고, 오만가지 색으로 물들며 외신의 인자를 태워 내다가는 이윽고 그마저도 초월하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틸라의 불꽃은 여전히 괴물을 태우고 있었고, 그 증거로 놈이 비늘을 쏟아 내든 체액을 흩뿌리든, 새로운 촉수를 뽑아내든 그 모두가 중간부터 불타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이게 전력인가? 역시 평소엔 준한테 양보해 주는 게 맞았구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 같은데…….”
“……이러다 한계를 넘겠어.”
틸라와 괴물의 전투가 점차 격해지며 주위의 괴물들까지 끌어들였다.
기준의 빛 다음으로 외신에게 효과적인 신의 불꽃이, 검은 체액의 늪을 불태우는 우르의 불꽃과 만나 반발하지 않고 어우러지며 그 영역을 더욱 크게 확장시켰다.
그것은 우르의 불꽃과 마찬가지로 신기하게도 아군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은 덕에 일행은 안전했으나, 한계를 생각하지도 않고 끝없이 고열의 불꽃을 방출하는 틸라의 모습에 아군조차 지레 겁을 먹을 지경이었다.
특히 평소에도 틸라와 이래저래 티격태격하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로라는 기준을 전담 마크하던 태도마저 버리고 틸라를 회복시켜 주려 했으나, 그녀의 성법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연해졌다.
“제 힘이 통하지 않아요, 마치 다른 차원에 격리라도 된 것처럼……!”
―그냥 성질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자신이 만든 불꽃이 틸라의 그것과 만나 변하는 모습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대지로 돌아온 우르가 걱정하는 로라를 상냥한 목소리로 달랬다.
기준과 함께 있을 땐 말을 아끼는 그녀였으나 의외로 다른 멤버들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대상의 성질이 변화했으니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치유해 줄 수 없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녀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으니,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오히려 좋지 않아요. 그녀가 이겨 내길 바라며 지켜보도록 해요.
“중대한 기로라면…… 설마.”
―계약자, 지지 마! 더 화끈하게 날뛰어!
로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굳어 버렸다.
대신 우르의 사고를 읽어 낸 루시가 뒤처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기준을 독촉하며 사방으로 빛의 사슬과 화살의 비를 뿌려 댔다.
처음 오염된 용인들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위축되는 분위기였던 연합군은 루멘 파티의 강자들의 활약으로 오히려 자신감을 되찾고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며 촉수를 끊어 내고 불태웠다.
“불의 여신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모조리 불태워! 오물은 소독이다!”
“흐아아아압!”
틸라가 적의 우두머리를 붙잡아 두는 사이.
기준이 던진 두 개의 방패가 맹렬한 회전과 함께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며 전방의 용인들을 모조리 갈아 버렸다.
상대도 레전더리 등급의 용인 출신임에도 고전하지 않고 대량으로 몰살하는 모습은 이미 그가 서사의 영역에 이른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했으나, 실상은 외신의 권속이 되며 강화된 그들이 새로 얻은 속성 탓에 기준을 상대로는 오히려 취약해진 덕분이었다.
―레벨 업, 또 레벨 업! 이 기세야, 계약자!
―정말 아무래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네 주인이 진 것 같네.
일순 전장 전체가 불타올랐다.
대지 깊숙한 곳에서부터 새어 나오던 오염물이 일제히 증발하고, 그와 함께 대지를 가득 메우고 있던 불의 바다도 소멸했다.
아니, 모조리 한 점에 집중되고 있었다.
―이런.
설마 자신이 만들어 낸 불의 통제권까지 빼앗길 줄은 몰랐던 우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그 덕에 이 전장은 모조리 정화했으니 괜찮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틸라에게로 향하는 우르.
그곳에는 스스로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틸라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적이었던 용인은 최후의 발악으로 전장에 남은 사도들을 잡아먹고 크게 몸집을 불렸으나, 그래 봐야 장작이 늘어났을 뿐.
전장의 모든 열기를 끌어 모아 만들어 낸 한 점의 불꽃이 틸라의 손끝을 떠나 괴물에게로 닿는 순간, 모든 삿된 것이 괴물의 육신과 혼을 제물로 삼아 함께 타올랐다.
―우리에게로――오라――――!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외신의 사념파를 전달하는 괴물.
아이러니하게도 외신의 기운을 완벽히 소진하며 비로소 제정신을 되찾은 것인지, 순간 선명한 두 눈으로 틸라를 마주했다.
“너어, 는…… 이, 불꽃.”
“업화(業火).”
틸라가 고했다.
용인은 그 말에 깨닫는 것이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순간 완벽히 타올라 재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기준의 파티에 에픽 등급의 아군이 추가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