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48)
나 빼고 다 회귀자-348화(348/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48)
Chapter 65. 기준 – 5
농밀한 안개가 변질된 마탑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그것을 휘휘 감돌았다.
지금 이 순간도 대기 중의 농도를 높여 가는 외신의 아우라.
프런티어의 마탑이 그 근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탑에 가까이 갈수록 안개가 심해져 일반병들은 아예 탑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였고, 그나마 기준의 고유스킬을 공유하는 덕에 지휘관급 용인들이 간신히 이질감을 느꼈다.
안개에 보호받는 마탑의 실체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준과 관계가 깊은 그의 파티원들뿐이었다.
“저거 완전…….”
하늘을 찌르듯 늠름하게 우뚝 솟은 마법사들의 지성과 오만의 상징은 온데간데없고, 외신의 영향을 짙게 받아 기괴하게 비틀리고 보는 것만으로 정신에 충격을 주는 외계 문자들이 비틀린 탑 벽면에 빽빽하게 적혀 기괴한 마력을 뿜어내는 모습.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좋았겠으나 그나마 다행하게도 기준의 고유스킬은 외계 문자에도 완전한 저항력을 갖고 있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블랙 마……!”
“거기까지 해, 신아.”
은신과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하고부터 부쩍 어른스러워진 지혜가 이번엔 먼저 나서서 태클을 걸었다.
“프런티어의 인간들이 먼저 외신을 불러들이려고 연구를 한 거니까 굳이 따지자면 블랙이 아니라 레드잖니!”
“역시 혜 누나……!”
“네가 그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어른스러워지기는 개뿔, 아주 둘이 잘 만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지혜의 영향을 받아 은신이 까불거리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툴툴거리는 기준이었으나 파티원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저것이 저들 나름 긴장감을 덜어 내려는 시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고유스킬을 발동하고 있는 기준조차 외신의 짙은 아우라를 품은 마탑을 마주하니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인데 파티원들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여기만 무너트리면 어떻게든 될 것 같지?”
이곳이 그들의 최종 목표라는 얘기.
물론 이걸 무너트려도 당장 외신의 기운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외신의 권속들을 정리하는 길고 긴 작업이 남아 있겠지만.
아까 크림슨 드라코니안의 전력 대부분을 격파하기도 했으니 이 증오스러운 건물만 무너트리면 희망이 보일 듯했다.
―와, 인간들은 정말 대단하네.
루시가 앞으로 나서 마탑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외신의 기운을 끌어다 쓰는 연구를 한다기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린 건가 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어. 처음부터 부작용을 감수하고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이 외신의 기운을 정화해 사용할 생각이었나 봐.
“부작용과 정화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루시?”
―아, 내가 말한 부작용이라는 건 기운을 사용하는 사람이 겪을 부작용이 아니라 그 외의 인류가 겪을 부작용을 말한 거였어.
“아니 그게 무슨.”
혜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고 부작용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다니 어떻게 그렇게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지?
―정말…… 정말 미쳤군. 수백 번이고 반복되어 온 이 세상이거늘 이런 끔찍한 것이 탄생한 적은 없었는데.
미카가 조롱당할 때만 나서던 가브가 드물게도 루시의 말에 동조했다.
늘 태평하던 라피마저 기가 차 웃음을 터트렸다.
―모든 조건이 기적적으로 맞물렸나 봐. 악마적인 두뇌를 이전 회차에는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문명이 크림슨 드라코니안이라는 사악하기 그지없는 후원자를 만나 꽃을 피웠다든가?
―그리고 그 후원자들을 악마한테 팔아먹는 결말까지 완벽하네. 물론…….
누군가를 비웃듯 삐뚜름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높이 들어 마탑의 꼭대기 너머를 바라보는 루시.
기준 역시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 있는 것을 포착했다.
끄트머리가 찢어지고 해져 까마귀 깃털처럼 펄럭이는 로브를 걸친 괴인이 수하들과 함께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눈동자가 있어야 할 위치에 흑요석과도 같은 것이 박혀 반짝이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배신자!”
우두머리의 모습을 알아본 비체가 소리 높여 외쳤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어쨌든 이전에 세스와 함께 나타나 그녀에게 있는 외신의 힘을 훔쳐 달아났던 바로 그놈이었던 것이다.
마탑주였던 세스가 상전 모시듯 하던 것을 보아 프런티어의 실세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지만 설마 저렇게 최종 보스 같은 위용을 뽐내다니!
―기다리고 있었다, 용사.
“대사까지 마왕 같잖아……!”
―알아서 여기까지 와 주다니 고맙기 짝이 없어. 레타 정벌의 신호탄으로 네놈의 목을 꿰뚫어 주지!
먼 거리에서 정확히 자신을 노려보고 선언하는 놈의 모습에 기준은 반가움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놀랍게도 놈들은 눈에 박은 흑요석을 제외하면 딱히 변이된 것도 없어 보였다.
정말 프런티어의 모든 인류를 외신에게 팔아넘기고 자신들은 온전히 외신의 힘만을 이용하고 있단 말인가?
―저 탑은 외신의 힘을 끌어들이는 수신기이면서 동시에 정화시설이야, 주인. 저들 딴에는 외신의 아우라에서 순수한 에너지와 외신의 사념을 분리해 사념만을 방출하고 에너지는 자신들이 다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게 분명해.
이전 시스템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성과 순수한 에너지를 분리하는 데에 성공한 점에서 착안, 그와 같은 연구를 외신의 기운을 상대로 수행했을 것이라고.
“그런 것도 가능해?”
―계약자한테도 가능할걸? 일단 내 힘도 신성력의 일종이야.
“과연.”
“하지만 그건…….”
점점 더 마탑 밖으로 흑요석 눈깔이 달린 비행 인간들이 많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며 비체가 반박했다.
“굉장히 유명한 일이라 나도 알고 있어. 마탑이 많은 이들에게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이기도 해.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스템의 제재를 받아 좌초했다고 들었는데. 신성, 즉 시스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짓이니까.”
―그래서 시스템의 제재를 받지 않는 외신의 힘의 연구에 시선을 돌린 게 아닐까 싶네. 혹시 너도 알고 있어?
“전혀.”
율영이 질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신들과 완전히 척을 질 수 없어. 하지만 소환자라면…… 세스라면 마탑주이기도 했으니 과거의 연구 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을 거야.”
왜 굳이 프런티어의 잘나가는 소환자가 마도왕국에 속해 있었던 건지 완전히 이해가 되는 느낌을 받으며…… 기준은 방패를 들었다.
그 순간 정면으로 거대한 빛의 방어막이 생겨나며, 플라잉 보석 눈깔 괴물들이 시전한 마법들을 모조리 방어했다.
“이미 방패에 큰 의미가 없는 것 아냐?”
“어디까지나 빛으로 방패를 잡아 늘린 거야. 방패의 방어력이 중요해.”
“음, 잘 모르겠네요…….”
사실 월식(E)을 다루는 기준조차 가끔 이 스킬의 진의를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사기 스킬이 얼마나 사기인지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막아 보니까 알겠는데, 이거 외신의 기운인데? 결국 실패했다는 거야?”
―당연하지. 애초에 시스템의 신위를 자신들의 권능에 덧씌워 사용하던 신들과, 존재 자체가 부정한 외신들은 결이 달라. 순수한 에너지로 분리될 수 있을 리 없잖아.
―주인조차 외신을 배척하는 게 전부인데 저들이 무슨 수로? 신체 변이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지 그 반동으로 정신과 영혼은 완전히 침식됐어. 이 대지에서 죽어 나간 다른 이들은 영혼만이라도 구원받았을 텐데, 괜히 머리를 굴리니까 저렇게 되지.
―가련하게도.
―왜 저들을 동정하지? 동정해야 할 것은 엉망이 되고 있는 이 세상이야.
가브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도 저걸 본 순간 눈치챘잖아! 수신기야! 외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끌어당기는 수신기를 만들어 버린 거라고!
―아니, 하지만 이제 알았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고.
―설마 저렇게 안 좋은 방향으로 머리가 잘 굴러갈 줄 알았나. 대단하긴 하다, 진짜.
루시와 라피가 천연덕스럽게 가브의 말을 받아넘겼으나 그녀들을 따라 웃을 상황이 아니란 것쯤은 기준도 잘 알았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아? 지금 바로 부술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 크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저 너머의 흑요석 눈깔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준에게 손을 뻗었다.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내밀린 손끝에 막대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다음 순간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기준을 향해 발사되었다!
그러나 기준도 앞서 놈들의 공격을 받아 내며 이미 견적을 잡은 바, 오히려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며 빛으로 물든 방패를 내밀어―― 그 공격을 받아 냈다.
너무나도 강한 태양 빛은 지구의 그림자를 만들고, 달은 그 그림자에 가려져 사라지듯이, 그 막대한 에너지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루멘 파티 앞으로! 일단 놈들을 쓰러트리고 생각하자!”
―탑은 파괴하지 마, 계약자! 파괴하더라도 놈들을 통해 최대한 비축된 힘을 소모시키고 해야 돼!
파티에게 지시를 내리며 라피의 힘으로 만들어 낸 바람의 발판을 딛고 재차 도약하는 기준의 곁으로 날아든 루시가 큰 목소리로 경고했다.
―지금 저 탑은 거대한 화약고와도 같아. 저 사도들의 몸에 담아내지 못한 기운이 쌓이고 또 쌓여 폭발하기 직전이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다행히도 저 사도들은 탑에 비축된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어. 그러니 놈들을 죽이지 말고 최대한 힘만 빼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야.
만약 그 전에 잘못해서 탑을 붕괴시킨다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가브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들 들었지? 탑은 부수지 마! 다른 인원들은 일대를 최대한 정화해서 아우라의 농도를 낮춰!”
“알겠습니다!”
그와 때를 맞추어 지상에도 외신의 권속으로 화한 변이체들이 대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한꺼번에 몰려오는 그들을 보면 디펜스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지켜야 하는 것이 아군의 성이 아닌, 적들이 직접 만든 외신의 탑이라는 점이 실로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결코! 너희에게는 이 힘을 내줄 수 없어!
아, 완전히 맛이 간 게 맞구나.
기준이 허공을 성큼성큼 밟고 도약을 반복하며 가까워질수록 배신자를 위시한 비행 변이체들이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먼저 나서서 탑을 공격하려 드는 이들도 있었다!
―맙소사, 막아!
―아무래도 저쪽도 견적을 냈나 보네. 저들로는 계약자를 막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거야.
―차원의 틈 전선은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외신을 조금이라도 방해해 줄 수는 없는 거야?
―신들이 몇 명 잡아먹혔다는 건 알겠어. 벌써 몇 명의 권능이 느껴지지 않네.
―심판의 날이네.
루시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하지만 심판을 내리는 건 우리야. 계약자!
“알고―― 있어!”
기준이 방패― 모순의 은월에 자신의 마력과 영력을 최대한 불어넣어 냅다 내던졌다.
변이체들의 우두머리가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수천, 수만 발의 검게 물든 마나 미사일을 쏟아 냈으나, 방패는 그 모두를 빛으로 잡아먹고 놈에게 날아들며 기어이 놈의 복부에 꽂혔다.
그 순간, 시리도록 푸른 달그림자가 놈과 일대의 모든 비행 변이체들을 한 자리에 묶었다.
“월하은영!”
마탑 상공에 거대한 달이 드리웠다.
일순이지만 외신의 힘조차 묶여 진공 지대가 된 그곳에, 기준이 내민 날카로운 송곳니가 작렬했다!